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78화 (78/211)
  • #78. 호랑이 꼬리를 밟으면

    역술인은 운을 조금이나마 믿으니까, 그럴 운이다 해도 되는데.

    손님이 왜 그런 소리를 하나.

    그럴거면 사주를 보러 오질 말아야지.

    “저기 손님, 여자 친구는 있으시죠?”

    “예 부끄럽지만.”

    “부끄럽다고 말하는 걸 보니 역시 그쪽에서 보신 거 맞죠. 상사와 결혼하실 분.”

    “…예 그거 뭐 도사님이 다 맞추셨는데 말씀드려야죠.”

    들킨 이상 더 숨기지는 않는다.

    “변명할 시간 드리겠습니다.”

    “예?”

    “그러니까, 좋아서 한 겁니까? 아니면 그냥 상사들이 가자고 해서 갔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겁니까?”

    한심한데 솔직하기라도 하면, 맑은 물 같은 사람이라고 입바른 소리는 해 줄 셈이다.

    맑은 물에 흙을 끼얹은 것들이 잘못한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사람은 한심할 수 있지만 손님을 한심하게 보면 안 되지 싶다.

    정확히 말하면 한심하게 보는 티는 내지 말아야지.

    “처음엔 별로 가고 싶진 않았는데, 서비스가 좋은 아가씨가 있다고 부장님이 소개를 해 주셨습니다.”

    “그렇군요. 근데 사심이 없었어요?”

    “그게 그때는 제가 여자 친구랑 헤어져서.”

    “대기업 사원을 두고 헤어졌다, 성격에 문제가 있었네요.”

    “누가요?”

    대수는 아니다, 뭐 빌 게이츠하고도 헤어지는 세상인데 뭘.

    “여자라고 해 주면 마음이 편하겠죠?”

    “그, 그렇죠, 아무튼 그래서 좀 몇 차례 만났지마는 새 여자 친구 생기고 발길을 끊었어요.”

    “그 이후부터는 정말 안 갔습니까?”

    “예 저는 안 가고 선배들은 요새는 눈치 보고 다녀요. 작년 말부터 회장님이 영업에 그런 거 다니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셔서.”

    안 다니진 않네.

    그거 시기상, 설민혁한테 보내는 경고장이었던 거 같은데 엉뚱한 사원들한테 튀었나 보다.

    “말씀이 속사포네요.”

    “그래도 털어놓으니 좋네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한 것 같아요.”

    어느덧 사람의 사연에서 허언 정도는 구분할 능력이 생겼다.

    이건 작가 경력에 사연을 많이 청취한 것 때문이겠다.

    꾸며 쓴 말과 진심인 말은 다르다.

    이민준은 꽤 격정적으로 속내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미치는 줄 알았어요. 결혼할 여자라고 하면서 자랑하고 다니는데. 그걸 왜 자랑하고 다니죠? 아니 얼굴이 이쁘긴 해요. 근데 누가 알아보면 안 되잖아요? 걱정도 안 되나?”

    음.

    근데 그거 내가 얘기한 전략이다.

    결혼할 거면 주변에 연애를 자랑해서, 특히 얼굴을 팔리게 만들어 놔야 다시 그런 곳으로 쉽게 못 기어들어 간다고 말해 줬다.

    공사인지 진심인지 애매하게 볼 맞대고 얼굴 사진 찍기는 했더라.

    우리 자기 진짜 예쁘지? 이러면서 팔불출 흉내로 자랑하면 여자가 그걸 반박할 명분이 자학밖에 없다.

    근데 그게 본의 아니게 이민준이 딜을 맞았네.

    뭐 켕기는 짓 했으면 맞아야지 어쩌겠나.

    “근데 결국 제가 관두긴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분이 그런 짓 관두거나.”

    “왜죠?”

    “박 과장님 불쌍해서요. 진짜 가면 갈수록 더 불쌍해요.”

    38살에 잘나가는 대기업 과장인데 아버지 고향에 60 먹고 80 노모 모시고 사는 홀아비 느낌이 나서 좀 그렇긴 했다.

    “손님인데 반말해도 됩니까.”

    “아, 원래 막 그러실 줄 알았어요. 너 뭐 하는 놈이지? 막 이러시면서. 하셔도 되세요.”

    그럼, 마다하지 않고.

    “그런 거 갖고 일 관둘려고 하는 니 인생관과 너 믿고 붙어 있는 여자 친구가 더 불쌍하다 임마. 너 어디가서 다시 취업할래? 차라리 해외 파견을 가서 오질 마 임마.”

    “아…. 부장님 말씀을 거절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게 안 되네요. 막 그런 거 하지 말라고 신입 오리엔테이션에선 가르치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부장님이 무섭게 말씀하시면.”

    “부장이 시켜서 갔으니 부장 놈 잘못인 거죠?”

    떠봤다.

    “결국 제가 못 이겨 낸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생겼고요. 하아.”

    “부장 탓입니다.”

    “예? 갑자기요?”

    “손님은 이미 내 탓이오 할 준비가 됐으니 남은 탓은 죄다 부장 것이죠.”

    내 탓이오 되는 인간이면 됐다.

    우두머리부터 업소 출신 첩과 혼외자 있는 기업에서 이런 걸 척결하면 회장만 우습다.

    약점은 고해시키면서 실컷 들었다.

    “부장님도 기러기셔서.”

    그래도 실드를 치네.

    거긴 왜 여자운 개똥인 사람들만 모여 있나.

    이놈이 제일 잘났네.

    생각해 보니 나머진 불쌍한데 이놈은 기만자일세.

    “제가 해결책을 드리겠습니다.”

    “도사님이오? 뭐 부적이라도 써 주시나요?”

    부적? 그거 괜찮다.

    “부적이라? 좋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거 근데….”

    “무료죠.”

    “비싼 거 아닌가요?”

    “스카이피아 후원사니까 상관없습니다.”

    부적은 쓸 줄도 모르고 딱히 효험도 없다고 본다.

    다만 돈 받고 줄 거 아니니까 상관없다.

    근데 뭘 써서 준다?

    이런 건 서경, 시경, 역경의 좋은 문구 하나 담는 게 낫겠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지필묵과 전주 한지를 잔뜩 사 왔다.

    전주 명승철학관 근처에 한지 공예 전시관 있어서.

    “어디 보자.”

    뭘 적을지는 딱히 모르겠어, ‘이민준 이거 인생 어떻게 됩니까?’라고 속으로 묻고 동전 여섯 번 던졌다.

    “우와, 진짜 점치는 거 같아요.”

    점치는 거 맞다.

    점괘대로 ‘천택리’라고 한지에 글귀 하나 적어서 줬다.

    부적스럽진 않고 서예로 쓴 글씨를 주는 것 같은데.

    글씨가 개판이다.

    “이게 무슨 뜻이죠?”

    “이미 호랑이 꼬리 밟았으니까 살금살금 걸어라, 안 그럼 뒤진다.”

    “헉.”

    주역이 참 있어 보이는 건 많다.

    “이거면 정말 해결이 될까요? 호랑이 꼬리를 이미 밟은 거라면서.”

    “아마 될 겁니다, 운이 정말 좋거든요.”

    “아 정말요?”

    “예 그 꼬리가 가죽만 남은 호랑이 꼬리일 수도 있는 겁니다.”

    “이야, 그런 거군요?”

    이래서 운세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근데 어쨌건 날 봤으니까 운이 좋다.

    내가 사주만 보는 게 아니거든.

    “정말 복채라도 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됐고, 제 말대로 되면 진짜 용한 역술인이라고 소문이나 내 주세요. 직원 손님 열 분 이상 끌어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 뭐 실적 같은 게 있으신가 봐요?”

    그런 건 딱히 없는데, 내가 좀 거기 사람들 사주가 알고 싶다.

    “복지몰이니까 당연히 직원분들이 이용하시면 실적이 있죠. 많은 이용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래도 받으세요.”

    이민준이 5만 원권 두 장을 꺼내서 주려다 내가 손목을 막아 제지했다.

    “안 받는다니까요. 그러면 복지몰인데 직원분들 안 오십니다.”

    “음, 그럼 이거라도 받으시겠어요?”

    …이번 주 로또?

    “이걸 왜?”

    “운을 주셨으니까, 저도 운을 드리고 싶어서요.”

    거절하려다 받았다.

    5천 원짜리 휴지 조각일 테니까 뭐.

    휴지는 뒤라도 닦지.

    “아이고 그럽시다. 그건 받을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효력도 없는 글귀 쪼가리 받아 가면서 무지하게 좋아하네.

    이번에 내가 제대로 된 해결책이며 상담을 해 준 적이 없다.

    그냥 뭔 놈의 고민인지 추리하고 이야기만 들어 줬지.

    “예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저걸로 해결될 리가 없다.

    상책은 그냥 버티는 거다.

    마인드만 유로피언 스타일이면 상관없지 않나.

    물론 본성이 그걸 못 견디니까 이직을 생각한 거겠지.

    상사의 부인이, 그렇고 그랬던 관계라.

    이거 상황이 거의 야설….

    이걸 버틸 멘탈이 그 정도가 안 될 뿐이지, 그거 아마 별일 없을 것이다.

    본인도 입 닥치고 있고, 여자도 입 닥치고 있고, 박효성도….

    아니 박효성은 자랑하라고 해 놔서 진단이 충돌하네.

    이민준의 이직 문제 해결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해외영업2팀 박효성 과장, 이민준 사원 서로 간에 여성 문제로 불편한 관계, 2년차 신입 이민준을 인사 이동 혹은 해외 파견시킬 것을 제안드립니다.>

    위 문서를 전송해서 넣었다.

    직책이 지주 회사 천지인과 스카이피아 특별(오너 일가 리스크)인사 관리 상임 고문이다.

    그 덕에 업무 제안서 같은 건 인사과에 넣을 수 있다.

    사무실이 뻘로 마련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역술인부터가 인생 참견쟁이인데, 고문도 기본적으로 훈수꾼이니.

    마침 훈수 둘 거 생겼으니 해야지.

    그리고….

    이민준 사원, 박효성 과장, 성진경 부장.

    한 여성과 함께한 사이.

    벌써 부장급이 걸려들었다.

    * * *

    “선사님!”

    “어 울보.”

    “아니거든.”

    반갑게 들어오던 설은겸의 웃음이 바로 뚱하게 변했다.

    이건 볼 때마다 설양훈이 보여 준 사진 생각해서 웃긴다.

    “푸흐흐흐.”

    “왜 웃어요?”

    “아 아니, 어서 오십시오. 커피라도 드실래요?”

    “자, 이사 축하드려요.”

    꽃을 다 받네. 음?

    어 꽃 받았다고 사주강화술 뭐 오르나 보다, 진동 울리네.

    “아이고 뭔 꽃을.”

    “어울리세요.”

    “음 은겸 양한테는 안 어울리죠.”

    “왜에?”

    “아, 드립 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망할 거 같아.”

    “뭔데요?”

    칭찬을 좀 하려고 했는데 상투적이라서 재미없어 관뒀다.

    아줌마들 먹힐 칭찬 같지만 설은겸 정도 미모의 여자애면 안 되겠다.

    진짜 미인이라 느끼면 맛깔난 드립이 생각이 안 난다.

    설은겸은 두 달 만에 본다.

    설은겸은 2월 중순쯤 귀국해서 거의 행사로 치러지는 아버지 첫 기일을 치러 냈었다.

    기일 행사가 너무 성대해서, 준비를 좀 한 모양이다.

    이 회사 홈페이지 요새 자주 들어가는데, 그날 찍은 사진 속의 검은 정장의 설은겸은 침통한 자리임에도 무척 아름답다.

    제삿날 이야기를 굳이 더 듣고 싶진 않았는데 설은겸이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할아버지 편지 이야기를 꺼낸다.

    “할아버지가 이런 편지를 써 주실 줄은 몰랐어요. 이건 울 뻔했어요. 진짜로.”

    그거 혹시 알고 얘기하는 건가?

    설양훈이 고 설정환 님에게 바치는 편지는 내가 썼다.

    나도 아버지한텐 편지 같은 거 쓰라면 못 쓰겠는데 남의 아들이다 생각하니까, 잘 써지더라고.

    회장 말대로 감정에 너무 치우치는 눈물샘 편지는 대필이 낫겠더라.

    설양훈한테 에피소드만 몇 가지 달라고 해도 침통해하길래 쓰는 데 고생 좀 했다.

    설은겸이 그걸 알고 얘기하나, 모르고 얘기하나 말해서 좋을 건 없으니 닥쳤다.

    조손지간에 좋은 추억으로 삼을 일일 거 같은데 내가 끼어들 필요도 없고.

    “선사님 오로라 보러 가신 적 있었죠? 저 사진 다 봤어요.”

    “예, 간 적 있습니다.”

    대학생 때는 졸업하면 뭐라도 될 줄 알고 야설과 공기관 알바로 번 돈 여행에 탕진했었다.

    낭만이 있었지….

    그리고 그 낭만은 산불 잡는 운장산 물다람쥐가 되어 보답받았다.

    “그 야간열차를 타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을 할아버지가 찾아봐 달래요. 그런 적이 있으셨고 그리로 가 보고 싶으시다고.”

    오로라 관광으로 유명한 아이슬란드는 철도가 없을 것이고.

    캐나다도 철도로 접근할 만한 오로라 스팟은 힘들 것이다.

    북위 60도면 인구가 적어서 여객 철도는 깔기가 힘들지 싶다.

    이러면 19~20세기에 철도 깔아서 굴리고 있는 동네밖에 없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 가는 철도가 하나 있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쯤에서 최북단 무르만스크로 가는 철도, 그리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르웨이 나르비크로 가는 철도가 있을 건데 아마 스웨덴 철도일 겁니다.”

    젊었을 적엔 소련 쪽은 못 갔겠지 싶으니.

    “그걸…. 다 아세요?”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냥…. 철덕이라서 그러한데 말은 안 했다.

    기차 타고 비행기 타고 배 타고 이런 거 좋아한다.

    사주에 큰 쇠가 힘이 강력해서 그런가.

    “근데 오로라가 목적이면 빨리 가야 됩니다.”

    “날 좀 풀리고 생각을 해 두고 있었는데요. 따스할 때에.”

    “아니오. 그 북위 한 58~60도쯤 되는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있어 봐서 알겠지마는 해가 엄청 빨리 지잖아요. 춘분이 지나면 그쪽은 해가 급격히 늘어서 밤에도 해가 떠 있어요. 오로라를 관측할 기상 상태가 안 나옵니다.”

    “진짜요?”

    “최대가 곡우까지입니다. 4월 20일, 그 이후엔 밤이 너무 짧아서 관측하기 어렵습니다. 백야 현상은 보겠지마는.”

    “뭐야, 완전 현지 코디네이터야…. 이거 그 점술가시니까 천문에 통달한다 그런 거예요? 막 별 보고?”

    그건 시계 나오고 나서 없어진 풍경일걸?

    별 보고 시간 파악할 수밖에 없던 시절 이야기다, 사주는 시간 필요하니까.

    “노인네 건강은 믿는 게 아닙니다. 돈을 얼마든 쓸 수 있고 최고급으로 모실 거라면 당장 준비하는 게 좋겠네요. “

    “네, 알겠어요.”

    돌아가려던 설은겸은 나를 몇 번 흘깃하더니 다시 뒤돌아선다.

    “아 그리고요. 선사님.”

    “예.”

    “고마워요.”

    “갑자기?”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네?

    허그하라는 동작 같은데 저건 모른 체했다.

    지가 먼저 달려들면 모를까.

    그러자 설은겸은 어색하게 팔을 내리고 양손을 모아 쥐고서 말한다.

    “아니에요. 헤, 거기 꽃 보시고요. 또 뵈어요.”

    고마울 일?

    아무래도 영감이 그 편지 쓴 거 나라고 주책 부린 거 같다.

    설은겸에게 받은 꽃바구니엔 종이 카드가 하나 있었는데.

    장식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 * *

    <스카이피아 인사팀에서 회신드립니다. 말씀하신 사안 확인하였고 즉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사를 위한 고문에…>

    일했다.

    일 처리 빠른 거 봐….

    그 둘 사이 껄끄러우니까, 한 명 딴 데 보내 달라는 건 해 볼 만한 이야기다.

    이민준이 좀 진지하게 인사팀에 상담을 했으면 아마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물론 그걸 상담하다가 상사들이랑 그런 데 갔다, 상사들과 한 여자를 만났다 따위가 발각될까 사리기도 했겠지만.

    “권력이 좋긴 좋네.”

    아마 회장의 혼외자이거나 최소 무슨 정치인 출신인 줄 알고 이렇게 빠르게 조치해 줬겠지.

    점술가가 권력자들을 미래를 빌미로 희롱할 수 있다지만.

    권력자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현재 운명을 그냥 쥐고 흔든다.

    그래서 운명을 바꾸려면 권력이 필요하다.

    이민준의 운은 그래서 좋았다.

    내가 그냥 사주 하청업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그가 준 운은 어떨까?

    - 순서에 관계없이 번호만 맞으면 당첨입니다.

    “오.”

    다섯 개가 나란히 맞았다.

    다만 로또에도 세로드립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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