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75화 (75/211)
  • #75. 스승에 대한 헌사

    설양훈의 고민을 들었다.

    “나는 그 친구가 관둔 이유를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내겐 맨날 죄송하다, 죄송하다만 할 뿐이에요.”

    “그 당시 환갑이면 관둘 만도 하지 않습니까. 쉬고 싶을 수도 있죠.”

    “그런 것치고는 나가서도 여러 일을 했습니다.”

    “그럼 정말 죄송한 일이 있었다거나?”

    “제가 그런 뒷조사를 안 했을까요?”

    뭐 내가 써서 출간을 한 소설도 아니고 연재 중단을 한 소설까지 알고 있을 정도니.

    “아픈 데도 없고 돈이 많다지만 6남매입니다.”

    “그 나이에 자식이 많으면 그 나이에도 돈 들 곳 천지긴 하죠.”

    자식이 나이 들면 벌어다 부모 가져다 줄 것 같지만.

    부모가 워낙 잘나면 그런 거 없더라, 부모가 더 주면 줬지.

    “오죽하면 서로 궁합이 안 맞았나 계룡선사한테 물어볼 정도 아니었겠습니까.”

    “어 이유 없이 못 만나는 사람들에 그런 경우가 있긴 있죠. 근데 오히려 너무 안 맞으면 끈덕지긴 합니다. 저는 그냥 쉬고 싶었던 거 같아요.”

    70세 노인이면 그냥 쉬고 싶었을 법도 하다.

    돈도 나름 있는 거 같고.

    “잘됐지 않습니까?”

    “무슨?”

    “일하고 싶었던 노인을 뜯어말릴 정도면 쉬는 노인을 일하게 만드는 건 어쩌면 더 쉬울 수 있습니다.”

    비유 좋네.

    “그냥 일하는 노인에게 휴식을 권하는 게 명분이 더 좋아서 그런 것일 뿐이죠. 일하는 노인을 쉬게 하는 데 특화된 겁니다.”

    “그쪽은 70대 아닙니까, 한창이지요.”

    <인재 등용>

    사람을 구하고 발굴하는 일입니다. 그 사람의 진가를 깨워 내는 것이므로 교육의 최종 단계로 인성운에 150포인트를 부여합니다.

    노승환인가를 사찰한 자료라도 달라고 하려다 관뒀다.

    그러면 내게 신비함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한데 방법이….

    내가 그냥 만나서 사주로 꼬드겨서 일을 시키면 좋겠지마는 불쑥 찾아가서 사주 봐 드립니다.

    이건 전래동화 시절에 먹히던 지나가던 스님 메타 아닌가.

    명승철학관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연락처를 얻었다.

    사주를 AS해 달라는 요청도 들어오는 편이고.

    [어머 명승철학관 선생님이시죠. 예약이 밀려서 못 갔는데 웬일이세요?]

    “안녕하세요. 글은 잘 쓰시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덕에 인맥이 무척 넓어졌다.

    전주에서만 2천여 명이 넘는 사주를 봤지만, 그중에 노승환의 딸이 있을 줄이야.

    * * *

    “오, 어머니도 오셨네요?”

    “봉사하다가 들렀어.”

    시청에서 강좌하니까, 시청 근처 미용실의 김순옥도 강의 보러 나왔다.

    김순옥의 동원력은 익히 봤지만, 그녀를 따라온 아줌마 할머니 군단도 예사 숫자가 아니다.

    정아진의 학생들도 왔고 300명 돌파, 시청아트홀을 가득 채운다.

    오늘 여기서 끝이라고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하필 오늘이 최고로 많이 오셨다.

    새로 오신 분들도 사주를 풀어 드렸으면 재밌었을 텐데.

    강의를 마칠 즈음 작별 인사를 꺼냈다.

    “저기, 우리 반 어르신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이 2월 마지막 주죠?”

    “뭔 말인가.”

    “제가 다음 주부터 대전에 취업이 되어서 강좌를 더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게 며칠 전에야 결정이 됐네요.”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건가?”

    마지막까지 주로 남아 듣는 분들은 어르신들과 여학생 한 명.

    그리고 직장 동료인 소녀보살과 수이는 후딱 나가려다가 멈춘다.

    영민이 보살펴야 한다고 저리 나가던데.

    “아?”

    “흐음.”

    뭐 결정이 좀 급박하게 되어서 딱히 쟤들에게도 말을 안 했었다.

    저 둘이 다가와 물어보려고 하는데 어르신들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강의를 잘하시고 사람도 많은데 그러셔야 합니까?”

    “뭐 때문에 끝낸답니까?”

    “어른들이 이리도 좋아하는데 그걸 끝을 내나.”

    “그때 영감님들이 공무원들 혼내서 그런 거 아녀요?”

    순간 숙연함과 격앙된 어른들의 감정이 섞여 표출되고 있었는데.

    이희자 어머니가 소리친다.

    “70만 원 받는다메, 가.”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는 발언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반응이 확 달라졌다.

    “글제, 아이고 선생님이 잘되셨네. 박수 한번 쳐 드립시다.”

    “그러게 말이요.”

    “고생허셨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관두지 말고 오래 다녀.”

    “어디로 가나. 서울로 취업 가나?”

    “대전으로 가요.”

    “출세했네. 여기 같은 시골 바닥에 젊은이들 먹고살 게 있어야제.”

    그렇게 마지막 강의가 끝났다.

    한 분 한 분 인사하고 돌아가려는데 김홍로 할배가 다가왔다.

    “선생.”

    “예 어르신.”

    할배는 괜히 내 손을 꽉 잡더니 몇 번 손등을 두드린다.

    “우리 죽기 전에 꼭 다시 보세.”

    “아이 물론이죠, 저 집 여기 있어요.”

    사주 보면 할배, 할매들에게 인기가 많아진다.

    학생들과 인사를 마치고 소녀보살 신당에서 오후 장사를 했다.

    이사는 다음 주고 2월까진 예약 손님이 있다.

    “3월 예약은?”

    “이래서 안 받았지.”

    겨우내 소녀보살 신당에서 신세 졌다.

    돈은 안 받는다니 종종 맛있는 걸 사 들고 내려와야겠다.

    “흐흥 명승 선생님 철학관은 저리 둘 예정이냐?”

    “대전에 명승철학관 새로 차렸다. 확장 이전이야.”

    “더 있지. 3월 되면 좀 한산할 터인데.”

    “언제까지 네 집에 신세 지겠냐?”

    “상관없다. 여자 혼자 살기에 담장이 낮아.”

    필요할 때마다 영민이는 사람이었다 고양이가 되었다 그러는구만.

    칼이 무서워서라도 못 달려들지 싶은데 그걸 휘두를 힘은 또 없어 보여서….

    운동을 하라는 조건을 넣었어야 했나.

    “여기 흉기가 너무 많다.”

    소녀보살 신당의 창고에 작두랑 언월도, 관성대제상도 있었다.

    어디서 뭐 사극 찍었나 했다.

    이어 수이가 사랑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가는 거예요?”

    “너 왜 목소리 잠겼냐.”

    “그게요…. 아.”

    “너 수업 끝나고 오기 전까지.”

    “그러지 마요. 왜 그래에?!”

    소녀보살이 뭔가를 이르려던 것 같은데 수이가 입을 틀어막는다.

    유학 떠나는 것도 아니고 차로 한 시간 거리인데 왜 이리 난리야? 싶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만나기가 힘들어지는 건 사실이다.

    대전에 친구들과 동기들이 좀 사는데 작년 한 해 한 번도 못 봤다.

    멀어지면 멀어진다, 떨어져 사는 것은 결국 연도 운도 아니다.

    기러기 아빠의 운에는 여자운도 자식운도 없으니까.

    그걸 생각해 보니 말 한마디는 해야겠다.

    “같이 가자 그럼, 먹여살려 줄 테니까.”

    “으에? 또 그런다.”

    “네 꿈이 정말 점술업에 있다면 같이 살면서 함께 있자, 나가지 않아도 될 둥지에 내가 친구가 되어 줄 거고.”

    “어, 어? 어어? 뭔 말예요? 왜 그래요…?”

    “넌 나랑 같이 있으면 운이 좀 더 폐쇄적으로 흐를지도 몰라, 그치만 그 작은 공간에서 알려주고 아껴 주고 가능하면 즐겁게 해 주고 싶으니까, 같이 가자.”

    소녀보살이 날 빤히 보더니 수이한테 대신 대답한다.

    “얘 진지해 보이는데?”

    제3자의 전달이 더 진심으로 들렸는지 수이의 목이 멘다.

    원래 당사자의 말보다 관측하는 사람의 말이 더 믿음이 가는 그런 효과가 있다.

    나도 사주 보면서 써먹는 심리 기술이기도 하고.

    손님 여러 명이 찾아오면 옆 사람의 ‘맞아, 맞아’를 유도하면 상대를 사주로 더 쉽게 녹일 수 있다.

    “그, 그런 말을 왜 이렇게 담담하게 해요?”

    “뭐 얼마나 그걸 더 절박하게 말해야 하냐? 부끄럽구만.”

    “이거, 이거 진심이에요?”

    “무리수인 건 알아, 너 학교도 나가야 할 테고 부모님이랑 떨어져 지내 본 적도 없을 테니까. 그래도 이 정도로는 밀어붙여야 너도 한번 그걸 깨고 나와 주지 않을까 싶네. 어, 울지 말고.”

    욕망이 강하여 취향을 안 가리니 어떤 여인이든 다가오면 설레지만.

    그래도 이 녀석만큼 내가 먼저 제대로 들이댄 여자는 없고.

    자려고 따라 들어왔던 애도 없다.

    거기서 아쉬움과 설렘이 없으면 AI다.

    그 정도 애정을 본인은 말하기 싫어해도 보여 줬으면 좋다 싫다는 말을 표현을 해 줘야지 싶다.

    “그거, 그거 너무 많이 들어왔잖아요?”

    수이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데 목이 메어 있다.

    “난 그러고 싶으니까. 너도 그러면 좋겠다고.”

    “기다려,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안 돼요? 엄마한테도 말해야 하고, 나 학교도….”

    마마걸 같으니.

    인성운의 주거운과 어머니운이 너무 강하면 독립이 늦거나 독립하지 않고.

    가정과 공부의 굴레에 묶여 산다.

    본인만의 생각이 너무 강한데, 우유부단한 특성이 같이 있어 그 결정을 밖에서는 응원받지 못한다.

    그러니 집과 무조건 내 편인 어머니, 이어 집단이 소수라 결속력이 강한 컬트 문화를 향유한다.

    그리고 나도 그 컬트 문화를 하는 사람이고.

    이러면 내 둥지로 옮겨 타게 만들고 우유부단함에 결정을 내려 주기만 한다면 평생을 해로할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건데.

    “이 이상은 못 참지, 4년 가까이 눌러 참은 건데.”

    “4, 4년이라고요?”

    “햇수로는 5년이지 싶은데.”

    과거의 윤리관 희생하고, 길게 봤다는 명분을 취했다.

    그래야 안 기다린다는 게 설득력이 더 강하고 끌어낼 뭔가의 감정이 있다.

    거기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가 끌어낼 수 있는 감정의 변동을 유도했다.

    한정판이 나왔다는 심리다.

    “그랬어요? 나한테요? 좋아한다는 애들이 그리 많았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들이대는 애들이 꽤 있어서, 눈에 띄진 않았지만.

    그래도 교생 끝나기 며칠 전부터 ‘꾸미면 이쁠 앤데’ 하던 애가.

    ‘이상하게 꾸미네’ 싶게 하고 왔다.

    다만 진심만 얘기한다 해도, 여기서 안 그랬다고 말하면 분위기 잡치는 거고.

    “지금까지 연락하는 여자애는 너뿐인데.”

    연락처를 뒤늦게 얻었지 정확히는.

    그런데 그 정도는 속여 넘겨도 괜찮을 것이다.

    “억.”

    그리고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수이가 달려와 양팔을 벌리면서 와락 안긴다.

    대전은 다시 가고 싶었다.

    대학 다니면서 나름 정 붙이고 살았다.

    그치만 보증금 500에 25, 학교와 멀고 중국인 유학생들 밤새 술 처먹고 떠들어대는 자취방 하나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내려와야만 했다.

    이젠 대전서도 5000에 6~70은 내야 할 만한 영업장과 거처를 받았고 월급도 꼬박 나오는 직장까지 생겼다.

    그래서 돌아가려 했다.

    다만 남은 미련이 하나 있어, 끝을 볼 셈이었는데….

    “안 가면 안 돼요? 그러면 명승철학관 거기 있을게요. 계속 올게요.”

    “그게 안 되니까 이런 말을 한 거겠지?”

    “기다려 주세요. 네?”

    “그것도 어렵겠다.”

    “그, 그다음 학기에 휴학하고…. 가는 거는요?”

    그 말은 아쉽네, 겨울에만 이야기했어도 가자고 하는 게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필 여복이 낮을 때….

    “아냐 공부해라. 그게 너한테 좋으니까. 사주를 끝까지 할 거라면 오라는 얘기였어, 지금은 공부해.”

    수이가 사주를 취미가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한다면.

    사주강화술까지 잇게 해,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라 데려가고 싶었던 것이지만.

    대학 졸업 등 인생에 다른 보험이 될 만한 기술을 익히겠다면야 그것도 권장하는 바다.

    인생의 선택을 찰나의 욕망으로 끌어내긴 그렇잖은가.

    사주를 정말 열심히 한다는 전제하에 말하는 건데, 수이는 대학 졸업 등 인생의 청사진이 있는 것 같고.

    이런 이들은 그나마 아는 분야가 많아야 세상이 넓어질 테니 그게 낫다.

    이번엔 진짜 가슴팍에 안겨 우는데 내가 커져서 쓰다듬기 좋다.

    그냥 별 말 안하고 머리를 쓰다듬고만 있었다.

    수이는 갑자기 턱을 치켜들고 나를 보고 말한다.

    허리를 꽉 껴안은 깍지는 아직 안 풀고 있다.

    “그냥, 그냥 기다려 달라는 거 아녜요.”

    무슨 이야긴지 알겠어서, 몸이 반응해 단호히 대답했다.

    “됐다. 그러면 수십, 수백, 수천번 찾아댈 거라서 안 할란다. 그럼 거기 못 있어.”

    성욕이 강한 남자는 여기서부터 여자한테 을이다.

    특히 젊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젊으니까, 강하니까, 미치니까.

    ‘나이 들고 결혼해라.’는 사주의 감평이 있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욕망이 줄어드니까 욕망에 일을 덜 그르친다고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명승 선생이 을이 되지 않아도 될 비술을 줬고 그럴 레벨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니 가능하면 을질 안 하련다.

    “으아…?”

    “그러니 살자고 하지.”

    그치만 여자운 5레벨은 실망이다.

    나이와 사는 곳에 덜 구애받는다더니….

    변명하듯 메시지 보내지 마라 사주강화술 <유혹>, <유혹 실패> 뭐 이런 거 보낼 거잖아.

    수이는 우유부단함과 가정의 가호가 워낙 강한 딸이라 남자운이 잘 안 든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공부시켜 교사 시킬 딸, 어느 놈팽이가 사주 가르친다고 데려가서 동거하면 뒤집어지지.

    “수, 수천 번이라니. 그건 거의.”

    “장난이다.”

    여기서는 대답해 주지 않고 그저 머리를 헝클어 놓고 말았다.

    그러므로 여자운 더 올려야겠다.

    8레벨, 부인이 남편의 애인을 눈감을 정도로 남편을 좋아함.

    * * *

    수이네 집은 밤 되면 데리러 온다.

    그래서 언제 한번 회식이라도 할까 했는데 그게 안 된다.

    소녀보살 혼자만 남았는데 이제야 아까 그놈의 고백쇼를 지켜본 소감을 말한다.

    “멋있다 너?”

    “까인 건데 뭔 소리? 미련 떼려고 한 얘긴데, 기다리는 고향 처녀 두고 상경하듯이 되어 버렸네.”

    원거리 연애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보지만.

    정말로 내가 을 될 거라 참는다.

    “음…. 내가 다 설레던데, 나 데려갈래?”

    “그래.”

    “진짜로 갈 건데?”

    진짜로 오라는 거다.

    사무실, 영업장, 투룸텔 다 합쳐서 쓸 수 있는 개인 공간만 네 곳 정도 된다.

    영업장과 사무실에 다 휴게실 있고, 화장실 있고.

    좋은 본부를 받았다.

    “축생이랑 눈높이 맞추고 친구질 하는데 고양이다 생각하고 기르지 뭐.”

    “미친놈이…. 아니, 도르신 분 같으니.”

    고급지게 두 번 먹이네.

    “그 정도는 말씀하세요. 그냥 그 칼부림만 하지 말고, 너만 멋있다고 생각하는 대사 같은 것도 좀 자제하고, 그러면 된다.”

    그렇다곤 해도 오면 반갑게 맞이할 생각이지만.

    아는 사람 더 없는 대전이면 튀는 행동은 적었으면 한다.

    한복만으로도 존재감이 너무 튄다.

    물론 전통문화 수호의 입장에서 나야 눈감을 생각이지만.

    소녀보살 얘 EBS 아동 애니메이션 같은 거 본다.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도 보고.

    애기보살 흉내 내기 위한 뼈 깎는 노력이었다는데, 취미가 너무 유리되어 있다.

    애들이나 좋아하겠다.

    “내가 목소리를 앳되게 잘 내지 않아? 무섭게도 잘 내고. 그걸 하려면 대사가 필요해.”

    “창고 가서 언월도 들고 이 강동의 쥐새끼야 해 봐.”

    “이 강동의 쥐새끼 놈, 장강을 타고 가 건업을 쳐서 네놈을 사로잡으리라.”

    무당들은 관우 연구자가 많다.

    * * *

    이사 전날, 명승철학관을 찾았다.

    마지막은 아니다, 여전히 내년까지 권리가 있다.

    어차피 본가도 여기 있고, 김병용도 도울 거 같으니 틈틈이 내려올 예정이다.

    여전히 은은한 위스키 내음이 나는 이곳을 잠시 둘러보았다.

    명승 선생이 유명인과 함께 찍은 사진 액자를 챙겼다.

    이건 있어야 명승철학관이다.

    그리고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역술인의 검 4~8권을 개인적으로 제본해 왔다.

    이것들을 책상에 올려두었다.

    선생이 온다면 이 책들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산불 방호원이 다시금 나름의 길을 찾아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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