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계룡선사 와운 김장생
61년생 여명. 김명신.
한겨울, 눈 쌓인 차가운 놀이터의 철제 벤치로 태어났다.
그 한랭함의 기운이 스며든 겨울철의 철제 의자는 사람이 오래 앉지 못하고 도망가니.
체온으로 달궈 줄 제대로 된 이를 만나지 못하였고.
한겨울 새벽 눈밭의 놀이터 벤치라 항상 외롭다.
그럼에도 위 여명은 겨울철 눈송이는 품어 주는 차가운 어머니이다.
겨울철 눈송이들은 이 철제 벤치가 아니고선 오래지 않아 녹아내리거나 진흙탕에 더럽혀질 것이니.
앉으려 하지 않는 체온을 가진 것들보다 이미 자신에게 앉아 햇살을 두려워하는 연약한 눈송이들을 보살핌이 어떨는지.
그것도 이리 태어난 운명의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오늘의 구독자 사주.
명관 거사.
문의) 대전한밭신문 편집국 042~.
“평생을 남자를 찾겠는데 결국 자식 홀로 키울 명일세. 환갑이라 이제 찾아도 별로일 거 같은데.”라는 말을 좀 세련되게 적었다.
대전한밭신문에서는 ‘구독자 사주’라고 단신을 지면에 게재하는데.
‘충청 대망론 – 호서 무림을 논하다’
이 기획 기사를 써 준 다음부터 소정의 고료를 받고 이를 적어 주고 있다.
신문을 구독하는 구독자들이 신청하면 그중 사람 한 명을 추첨해.
나 같은 술사에게 의뢰하고 내가 이를 풀어 주는 것이다.
그 단신 밑에는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61년생 소띠 물을 가까이 하지 말라, 73년생, 하루 종일 찝찝하다. 등등.
뭐 이런 게 적혀 있다.
이것도 나더러 해 보지 않겠냐 하는데, 이건 너무 재미로 보는 거라 안 한다.
같은 년생이 다 재수 없고, 다 이상하다는 게 말이 되냐.
- 전송했습니다. 확인해 주세요.
구독자 사주 기사를 보내고 메시지를 남긴 뒤 기지개를 쭉 폈다.
비대면 사주 좋아하지 않지만,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서 길게는 못 쓰니까.
해석보다는 풀이만 해 놓는 식으로 적어도 문제가 안 되었고.
사주의 소설적 구성이라 그런지 반응도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전화가 왔다.
042가 찍힌다.
이거 대전인데, 무슨 일이지?
앞 번호가 대전한밭일보가 쓰는 번호 같긴 한데 뒷자리가 다르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대전 한밭일보 출판부에서 전화드렸습니다.]
“아, 네. 무슨 일이실까요.”
기자 겸 편집국까지 겸업하는 열악한 처지의 현재현 기자일 줄 알았는데, 여자 목소리여서 놀랐다.
한밭일보는 맞는데 그 내부의 출판사라고 한다.
[저희가 긴히 말씀드릴 게 하나 있어서요. 전화로 하기는 좀 그렇고.]
“어, 네 그러면 날짜를 잡죠.”
[오시겠어요? 저희가 직접 내려갈까요?]
혹시 신문 연재 무협 같은 거라도 해 보자는 건가.
그놈의 무협에 빗댄 기획 기사가 그렇게 클릭 수가 많았는진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펌도 많이 되고.
심지어 각 포털에도 중상위권에 노출되는 기사가 됐다고 한다.
근데 신문 연재 무협은 너무 과거의 유산 아닌가?
구독자 사주 기사도 감성이 옛것이라 여겨졌는데.
“여기네.”
그래서 이번 대전행에서는 중앙로 쪽에 있는 낡은 5층 빌딩 대전한밭신문 본사에 들렸다.
성수기라 바쁘니 일하는 날보다 출장 왔을 때 가는 게 편하다.
1층은 커피숍이지만 나머지 2~5층은 전부 한밭신문 관련 사무실들이었고.
2층 편집국 건물에 한밭신문출판이라고 출판사가 같이 붙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전화하셨던 그 호서 무림하고 구독자 사주 쓰고 있는 그.”
“아, 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구청 문화예술과 구민 강좌 담당 송희영 씨 닮은 아주머니였다.
기분 탓이긴 한데, 뭔가 이게 관상이 있지 않나 싶은.
“예.”
“아유 날이 춥죠?”
“괜찮습니다.”
적당한 다과를 제공 받고 앉아서 기다렸다.
출판사는 좀 방문해 봐서 막 긴장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저희가 사주 교양서적 혹은 교본을 기획을 하고 있어요. 선생님.”
“사주 교양서적이오?”
“사주를 글로 다루시는 능력이 있으시다고 생각하고요. 저번에 주셨던 구독자 사주도 결국 있는 가족에게 잘하라. 그 뜻이 담겼더라고요.”
“아 구독자 사주에 욕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좋게 쓴 욕을 할 때가 좀 더 많다.
원래 칭찬하는 것보다 까는 게 더 쉽다.
“그래도 좀 다르게 쓰시는 능력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번 저희가 교양서적을 같이 만들어 가 봤으면 싶어요.”
기분 좋은 제안이다.
자신 있고, 이런 글은 쓰라면 쓴다.
쓸데없는 격언과 좋은 말을 한두 번 했어야지.
드디어 서점가 교양서적에 등판하나?
종교/인문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는데, 그것도 나름 공부 좀 한 사람 티 날 것 같다.
“하겠습니다.”
책을 남기는 커리어가 꽤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 여러 나이 든 양반들을 보며 느끼는 찰나다.
“시원시원하시네요.”
“뭐 안 팔릴까 걱정은 되긴 하는데, 제가 할 걱정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100부도 안 팔려서 몇 만 원 받고 그런 게 걱정인데, 요즘 장사가 잘되어서 괜찮습니다.”
종교/신념/사상운 LV12가 되면 내가 쓴 책이나 남긴 말이 경전이 된다고 한다.
사실 사주강화술에 주석을 내가 직접 달아서 좀 더 읽기 편한 사주 교본으로 돈을 주고 만들어도 되겠다.
생각하고는 있었다.
- 엔터 좀 치지.
- 설명이 너무 많음.
- 읽다 지쳐요.
‘사주’가 주는 그 뭔가 접근하기 힘든 배리어 같은 게 있긴 하겠다만.
내 옛 글에서 죽어 가던 독자님들의 원념을 가득 담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준으로 쓸 것이다.
게임 판타지의 형식을 차용해서 한 권의 사주 게임 공략집처럼 쓰는 것도 가능할 것 같고.
<전공서 저술, 저작>
당신도 이제 비급을 남길 수 있습니다. 비급이 실효적이라고 한다면 타인에게 읽혀 사주 강화 레벨을 올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위의 저술을 인정받는다면 당신은 ‘공부, 학위운’ LV1을 지급받습니다.
비급을 쓰면 그냥 학위를 하나 주는구만?
공부 학위운은 졸업 논문 석사 논문 박사 논문과 비슷한 메커니즘을 향유한다.
“안녕하십니까.”
개량 한복을 입은 중년과 노년의 사이에 있는 듯한 남자가 한밭신문 출판부 쪽으로 다가왔다.
웃는 인상인지 눈을 안 뜬 것인지, 실눈이고.
눈꼬리가 좌우로 유독 긴데 이건 내가 아는 관상대로라면 모략가다.
실눈 캐릭터로 사용되는 만화 속 캐릭터는 그 근본이 관상학에 있다.
눈빛에서 그 감정의 정보가 전달되기 마련인데.
그 정보를 차단하기 쉬운 구조이면서 인상은 또 서글서글해서.
겉과 속이 다른 캐릭터를 표현하기 좋은 것이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오셨어요?”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 그냥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다만 느낌은 역사, 한문 선생 아니면 동종 업계 사람 같다.
“아 혹시 아실까요?”
출판사 직원분의 말에 동종 업계구나 확신이 생겼다.
오늘의 운세 기고하는 와운 김장생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인가.
“여긴 계룡선사님이세요.”
“아.”
짧은 목도리를 타이처럼 맨 개량 한복의 중년 남자는 계룡선사였다.
그 이름을 듣고 붙인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려 했다.
“이런 젊은 분이면 잘 모르시지 않을까요.”
엥.
겸손이 과하신 건가.
출판사 직원이 당연히 알 것이라는 양 소개하는데 그게 일반인일 리가 없잖은가.
계룡선사를 나 같은 사람들 아니면 누가 알아.
대전 사람들 사주를 다 봐 준 수준 아니라면야.
사주를 하십니까? 정도의 반응을 기대했는데.
과한 겸손, 혹은 ‘일반인들도 내 이름 정도는 다 알아.’ 느낌의 과한 자만일 가능성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그 호서 무림, 충청 대망론 기사 썼습니다.”
계룡선사의 작은 눈이 뜨였다.
“이야, 반갑습니다. 저는 와운 김장생입니다. 계룡선사라고들 하지요.”
“반갑습니다.”
“기사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아 저도 선사님이 쓰신 국운 기사 감명 깊게 봤습니다.”
그리고 김장생이면 장생長生, 사주의 용어인데.
이름을 개명한 티가 난다.
그치만 기술을 쓰기엔 일단 상대도 고수라고 봐서 안 깝치는 게 좋겠다.
“사주 교본이오? 우와….”
“이제야 남길 나이가 된 것 같아요.”
계룡선사도 출판을 앞두고 있었다.
십수 년 전부터 계속해서 권해 왔으나 이제야 공부를 마쳐서 그간의 공부를 총 정리한 교본을 적는다고.
흥미가 동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저것도 만약 비급이라고 한다면 탐이 나기도 하고.
한밭신문출판사에서 용무를 마치고 마침 둘 다 같이 나왔다.
계룡선사가 권했다.
“커피나 한잔하시겠어요?”
조금 이르게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다.
“아저씨랑 커피 마시는 취미 없긴 한데, 그린티 프라푸치노면 먹겠습니다.”
“젊네요. 가시지요.”
이 겨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드시네. 얼죽아였군.
물론 프라푸치노도 차갑긴 하다. 따뜻한 거 마실 걸 그랬나.
“저는 선생의 재주가 참 기발하다고 생각해요. 신문에 실린 글귀만 몇 개 봐도 그게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선사님의 감평의 깊이엔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아까 으레 했던 칭찬을 다시 나누고 앉았다.
“한데…. 뭐라고 해야 하나 불쾌하시게 들릴지 모르겠지마는.”
역시 좋은 인사 뒤에는 불편한 용건이 있네.
“아 어르신이고 대선배이십니다. 가감 없이 말씀해 주세요.”
“기교가 대단하나, 깊이가 없다고 보여져요. 사주로도 설명이 가능한 부분을 속설을 활용한다던가.”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한마디로 공부는 안 하고 겉멋만 들었단 소리.
일단 굽혔다.
40년 공부가 자랑인 사람이다.
이건 죽었다 깨나도 책만 읽고 실전으로 구른 내가 이겨 먹기 어렵다.
“이런 경우의 문제는 약간만 그 허점을 보이더라도 쉽게 무너지고 통변이 상세하지 못해요. 살도 배제하시는 듯하고.”
“제 고민을 알고 계시네요.”
“저는 그 부분을 젊은 선생께서 조금만 보완하면 참 좋겠다 생각을 해요.”
“마침 공부를 좀 더 해야지 싶었는데요.”
“그래서 말인데, 제 문하에서 배워 보는 게 어떨까 하네요.”
“와, 가르쳐 주시려고요?”
“우리 선생이면 이미 일가는 이루었으니 수강료는 받지 않을게요. 계룡산 아래 동학사에 저희 산채가 있어요.”
뭔데 이렇게 좋게 봤어?
‘너 내 제자가 돼라.’는 무협의 근본 기연 아닌가.
또한 돈 안 받고 가르치는 자의 최고의 호의다.
돈 받으면 단순 수강생 모집이고.
“아이구 좋게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명승철학관, 명승의 문하에서 배웠다지요.”
“아 그렇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예 알아요. 한데 그 사람 사주에 대한 태도가 영 진지하지 못했어요. 맞추는 방법은 신기하나 사주에 스탯? 과 강화라는 걸 도입해야 한다며 길길이 날뛰며 우기더군요.”
“…….”
“그런 소리를 하면 사기꾼이라는 말밖에 더 듣겠는가 싶더군요. 그 색이 묻어나 보여요.”
아, 급 X같네?
스승 모욕은 못 참지.
난 고수를 만났다 싶어 얌전히 듣고 예, 예 할 생각이었고.
제자 제의도 좋게 봐준 것이라고 생각해 고마워하던 찰나였다.
거기다 진짜 무협도 아니고 국어 선생님, 수학 선생님, 영어 선생님.
다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여 누구든 스승으로 모실 생각이 있었다.
근데….
사주가 아무리 신묘해도 사주로 사람 키와 수명을 늘리는 비술인 사주강화술을 못 이기는데 이 뭔?
“감사하신 말이나, 그렇다면 선사님께는 배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예?”
“저는 사주를 사주로서 이야기를 쓰려고 배운 겁니다.”
“이야기라고요?”
“그리고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절실하게 공감하고 즐겁게 받아들여 주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야기에 어떤 가공을, 비약을, 환상을 넣건 개의치 않습니다.”
“그걸 사주라고 말씀하시기엔.”
“저는 사주가 그 사람만이 가진 운명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많이 배운 지식은 반드시 자랑하고 싶은 법입니다. 그걸 자랑하며 주입하는 순간 그건 사주를 보러 온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걸 보는 역술인 혼자만의 이야기이지.”
이건 내가 소설 쓰다 지적받던 그대로를 말했다.
그러니까 고증과 전문 지식 아주 열심히 넣은 잘 쓴 이야기 사주를 만들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난 그 지적에 관심이 없다. 그러다 망했는데 왜?
아니, 소설이 아니라 사주라 있기야 했지만.
이런 태도를 가진 자에게 받을 가르침은 없다.
“그리고 그런 사주를 보고 계시는 것 같네요.”
“…….”
“그러므로 저는 선사님의 일방적으로 듣는 자에게 주입하는 데 주안을 둔 가르침은 받지 않겠습니다.”
“진지하지 못한 사주는 설득력이 부족할 텐데요?”
“진지하지 못해도, 젊은 세대에겐 더 젊게, IT 세대에겐 IT에 맞게 비유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애쓴 흔적이 보이는 명승 선생님의 의견이 전 맞다고 생각합니다. 원하신다면 증명해 드릴까요?”
“증명이라?”
“선사님의 사주의 진리를 담은 비결과, 명승 선생님의 영향을 받은 기교로만 사주 보는 제가 쓸 교양서 어느 쪽이 더 팔릴지를 보면 됩니다.”
김장생은 그 말을 듣자 입을 꾹 다물었다.
일반적으로 교양서적이 더 팔린다.
교양서는 매대에 있지만 종교/철학은 한참 뒤져야 구석탱이에 있다.
질 싸움은 안 걸지.
“그런 걸로 나한테 내기를 거는 건가요?”
“동종 업자를 사기꾼 취급하시는 편협함이라면 글에서도 나만 옳다는 오만함이 드러날 것이고 그건 읽는 이를 저자와 싸우게 만들 거라서 해볼 만한데요?”
“하아 이거야 원…·.”
반박을 못 하시네.
김장생은 말빨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사기꾼은 말실수급이었다.
세간의 인식은 ‘응 니들 다 사기꾼’인데, 거기서 자기들끼리 사기꾼을 가려내려는 게 보여 헛웃음이 나온다.
사기꾼 트라우마가 있는 모양이고.
그럴수록 학문에 더 집착했을 것이다.
“남이 들어주지 않는 지식은 별 쓸모가 없는 겁니다. 거기다 오늘 동종 업자인 저조차도 설득을 못하셨고요.”
“어디 두고 봅시다.”
반박 한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으름장만 놓는 게, 좀 안타깝다.
화술이 제거된 술사로 편인도식이 있어 보인다.
측은한 눈으로 살피며 대답했다.
“기대하던 만남인데 아쉽네요. 잘 마셨습니다.”
기차 시간 더 늦기 전에 나왔다.
그래도 바깥에서 안이 보이는 카페였는데.
계룡선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씹고는 부수어 뱉는다.
그 나이에 이는 좋아 보인다.
* * *
대전 빵집에서 빵과 조각 케이크를 몇 개 사서 귀환했다.
일단 집보다 소녀보살 신당을 먼저 갔다.
“출장이라더니 이 시간에 여긴 왜 왔냐.”
다만 늦은 모양, 수이는 퇴근했네.
먹고 싶다고 하던 거 사다 주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군.
겨울철이라 그냥 밖에 내놔도 괜찮겠지만 오래된 빵이 맛있진 않을 텐데.
“어, 이거 받아라. 빵인데.”
“나 주는 거냐?”
이 녀석도 주긴 할 생각이었지만.
먹을 복이 있는 녀석에게 그냥 다 주는 게 낫겠다.
“집주인인데 월세도 안 받고 자리 내주는 거 고마워서.”
“흐응, 나한테만?”
“영민이도 주던가.”
“야심한 밤에 여자 혼자 있는 집에 찾아와 케이크를 내밀다니.”
“영민이 있잖아.”
“고양이 빼고.”
언제는 사람 취급하더니.
“그럼 자고 가도 돼?”
“같은 방 쓸 생각?”
“그래야지.”
“물 받아야겠군.”
소녀보살은 티키타카로 잘 받아넘겨서 자연스럽게 마무리된다.
외로움을 타는 팔자라 오는 드립마다 다 받아넘겨야 한다 싶은 강박이 느껴지고.
거기다 자극적인 언행으로 관심을 끌려는 것까지 느껴진다.
안 그러면 누가 말을 걸어 주지도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이 녀석한테 묻고 싶었던 게 있었다.
“너 명승 선생님이 모욕을 당하면 어떡할래?”
소녀보살은 대답 없이 먹던 빵을 내게 내민 뒤, 내당에 들어가 경의검을 낑낑대며 꺼내 와 후들거리는 팔로 들고 말한다.
“죽인다.”
저거 저래서 사람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