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70화 (70/211)

#70. 늙은이의 고집을 꺾다

“그…. 명예회장에서 명예 떼고 일 다시 하시려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보통 죽은 권력자가 추앙되면 그 자식이 영향을 받는데 설은겸은 너무 어리거든요. 여긴 아들을 추앙하면…. 그 위상을 아버지가 제일 많이 받을 거 같은데요?”

가문을 띄우는 일.

그러면 가문의 후손들이 영향력을 받아야 하는데 후손들이 너무 어리다.

결국 나이 든 상왕이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하하하하하하.”

설양훈은 기분 좋은 듯이 웃는다.

이거 내가 제법 의표를 찌르거나 그놈 참 재롱 잘 떠네 싶을 때 나오는 웃음이다.

“맞아요. 일단 내 손에 다시 쥐어야겠습니다.”

“오, 멋있으세요.”

우선 설양훈의 의지가 가득 드러난 말에는 박수를 쳤다.

“그래야 내 뜻대로 물려줍니다. 지금은 변수가 있어요.”

설양훈 만나면서 들은 말인데, 회사에서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설씨가가 맞는데.

현재 돈을 움직이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은 장남의 사람들인 주요 임원진들과 전문 경영인이라고.

장남이 회장일 때보다 실적이 못한 것은 사실인데.

설양훈이 회장일 때보다 못한 것은 또 아니고 돈은 벌고 있으니.

명예회장인 설양훈의 의지가 꽤 개입되기는 하나, 다 시행되지는 않는 선에서 권력 구도가 이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힘을 갖고 있으면 가문의 일에 외부인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다. 이거군요.”

“그런 셈이지요.”

“그건 좀 그렇네요, 가업인데 어르신 가문의 가장의 결정과 위신을 자기들 멋대로 결정하게 놔둘 수는 없죠.”

사실 실질적으로 회사 운영하는 양반들의 의견이 좀 더 옳다고 생각한다.

외부인의 눈으로 이득을 먼저 판단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

이 이야기를 하니 설양훈이 놀란다.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마치 저희 집안의 가신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저도 보통 젊은이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리라 봤는데.”

“근데 현실적으로 보면 그 사람들이 스카이피아를 먹을 만한 돈이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현실이라.”

“보는 눈은 객관적이고 비판을 가하긴 할 건데, 그 객관성이 아주 좋은 이상향에만 맞춰져 있습니다. 이상을 실현하면 물론 아주 좋죠. 문제는 그게 안 되잖아요.”

“선생도 비슷하게 객관적인데 현실적이기까지 하네요. 하지만 그 친구들은 물어보지도 않고 언론에다가 누가 물려받을 거 같다. 등등을 흘리면서 의중을 흐리고 기정사실화하고 있어요.”

이들을 제압 혹은 숙청하고 친정 체제를 구축한다는 복안인 듯하다.

한마디로 상왕의 복위.

“돌아가신 아드님을 띄우는 건 그러면, 위상이 이어지기도 할 것이거니와 충성파를 남기시려는 의도가 있나 봐요.”

“사전 작업이지요.”

“와, 어른들이 제대로 머리 쓰는 걸 바로 옆에서 본 거 같아서 감탄이 나오네요.”

“별말씀을.”

“흐음.”

하지만 노장의 출사표가 멋있긴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침음하며 고민하자 설양훈이 묻는다.

“왜 그러시는지.”

“의도는 알겠습니다만 걱정되네요.”

“어떤 게 걱정되시나요.”

아이는 아이답고, 청년은 청년다우며, 장년은 장년답고, 중년은 중년답고, 노인은 노인다운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봐서.

이건 운명학이 그렇게 가르친다.

80대 노인의 경영 참여 의지가 잘될 것이라 여겨지진 않는다.

노인 분들이 소일거리라도 하려고 공공 근로에 줄 서고 계시지만.

회사 경영은 그 차원이 다른 일이다.

거기다 내가 해서 회사를 발전시키겠다가 아니라, 내가 해서 우리 개인 가문이 잘되게 안배하겠다.

대의명분부터가 잘못이지 않나 싶다.

“아, 그 이 동네 야구가 생각나서요, 나이 든 명장들이 속속들이 복귀했지만 명장에게 기대한 성적은 내지 못하고 젊은 선수들만 불태우다 그들의 화려한 커리어에 그저 오명을 남겼어요. 그게 자꾸 불안합니다.”

그냥 쉬세요. 라는 말을 많이 돌려서 말했다.

대전 야구단은 만년 꼴찌 이미지 탈출을 위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우승 커리어가 많은 내로라하는 두 나이 든 명장을 연이어 선임했고.

두 명장 모두 거기서 그들의 길이 다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만 그 뒤에 온 나름 젊은 감독의 성패도 좋지는 않습니다.”

설양훈은 그걸 다 본 모양이고, 보살이셨네.

꽤 많이 돌려 말했는데 알아 들으신 모양.

“젊은 장수가 실패했다고 노장의 실패가 덮어지는 건 아니죠, 늙은 장수나 젊은 장수나 패배하는 순간 패장입니다.”

“겁을 주시네요?”

영감이 살짝 기분 나쁜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나.

여기서 듣기 좋은 소리만 하면 의미가 없다.

돈 많이 주니까 쓴소리를 해야 할 때도 아부하면 말하는 자를 왜 쓰나.

“늙은 장수의 길은 끊기면 뒤가 없습니다. 그게 걱정됩니다.”

“뒤를 불태울 각오로 임한다면 어떻습니까?”

“필사즉생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진짜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의 이야기고, 막다른 길에 다다르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수를 충분히 쓰실 수 있으실 텐데.”

“다른 수라?”

“그리고 위로부터의 강제적 변혁인 친위 쿠데타 느낌도 납니다.”

“표현이 강하군요.”

설양훈이 약간씩 불쾌함을 드러낸다.

물론 아이구 불쾌하십니까, 하며 수그릴 생각은 없다.

“변혁은 아래에서 그 뜻이 모일 때 시도하는 게 좋습니다.”

“단언하여 말하지요 이번 일은 반대해도, 설사 실패해도 할 생각이며 실패한다 한들 불리할 점은 없습니다.”

“사람으로서 이루는 일은 다 하신 거군요.”

“선생에게는 하늘의 일을 묻고, 이 일에 대한 조력을 구할 뿐입니다. 어떻습니까.”

영감의 사주대로 해 달라?

마땅히 성공한다고 본다.

회사의 실소유주가 회사 제 맘대로 굴리겠다는데 이걸 막을 사람들은 현실적인 힘들이 없다.

그치만 그 나이에 열심히 일하지 않고, 은퇴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단언컨대 얼마 남지도 않은 삶을 진짜로 불태울 것이다.

본인도 아마 알 것인데, 뭔가에 씐 양 이러네.

다만 아들의 사람인 경영진들에 대한 불만은 이전부터 느껴지고 있긴 하였다.

“사주로 보면 괜찮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괜찮다고 말할 겁니다. 노년에 운이 아예 없는 건 아니세요.”

“그러면….”

사주로 개인의 운세를 판단해 성패를 점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사주 같은 점술에 녹아 있는 건 결국 수천 년을 산 사람들이 깨달은 선현의 가르침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방법이오.”

하지만 운명학에는 결국 세상 사는 처세법이 담겨 있다.

그 처세술과 격언을 느끼지 못하고 개인의 영달만 쫓는 식으로 운명을 감별하면 그 감별이 맞지도 않는다.

“저는 그래서 어르신 개인의 영달과는 달리, 그 이야길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사주명리학이나 근간인 주역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정도를 벗어난 비상한 일입니다.”

“개인에겐 적용할 사례일지도 모르지만, 대승적 차원으로 보면 아니다?”

“예.”

“더 말씀해 보십시오.”

“사람은 세대별로 해야 할 일이 다른데요. 주역으로 볼 때 10대 이하, 20, 30, 40, 50, 60이상으로 저는 가릅니다.”

“여론조사 세대 나누는 것 같군요.”

“그리고 이 여섯 계층이 해야 할 일은 각기 다릅니다. 배움, 사랑, 수양, 전진, 관리, 깨달음. 그리고 지금은 어르신이 칼을 뽑아 든 상황이란 말이죠.”

“그렇지요.”

“20대가 칼을 뽑으면 그건 척결을 말합니다. 혼란은 있을지언정 세상의 썩은 도리는 한번 뽑아냅니다. 그리고 50대가 칼을 뽑으면 그건 세상의 안정을 말합니다.”

“일리 있습니다.”

“그런데 60대 이상이 칼을 뽑으면 주역에서 이르기를, 운이 박합니다.”

사실 그 박하다는 게 그 박복하다 할 때 박복의 그 한자 박은 아닌데, 한번 속여 봤다.

영감이 주역을 읽었고 한자 다 생각나면 이건 내가 혼날 거라.

아 깜박했습니다 죄송요. 어르신이 저보다 더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로 넘길 셈이다.

노인네 기억력으로 보나, 교양으로나 한 번은 읽었겠으나.

그것까지 똑똑히 기억하진 않겠지 기대하면서.

“복이 박하다?”

다행히 눈치채지 못했거나, 그런 걸 굳이 지적 안 하고 넘어가는 모양.

“이게 산에 올라 정상을 밟았으나, 그 길이 끊기는 운세로 삼국지에 나오는 촉을 정벌한 등애란 장수가 받은 점괘와 상황이 같습니다. 그 당시 등애의 나이도 70이 넘었습니다.”

“아 들어 본 것도 같습니다. 어땠지요?”

“뜻을 이루겠으나 길이 다하니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는 점괘를 받아 불쾌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촉을 정벌했지만, 역적으로 몰려 부하들에게 살해됐습니다.”

이것도 약 파는 중이다.

좋아하는 삼국지에 ‘점괘’까지 나온 대목이라 흥미로워서 좀 파 봤는데.

등애가 받은 점괘가 뭔지 적어 준 매체를 못 찾았다.

그냥 산 위에 오른 노인이 다리가 후들거려 내려오지 못하고 뜻이 다하는 운세의 사례가 그거 아닐까 싶어.

내가 가져다 붙인 거다.

“세상에 소인과 퇴폐, 패배주의가 만연하는데 60 넘은 노인만이 세상에 대한 열정이 가득 살아 있는, 맛이 간 형상으로 세상을 살아온 노련함에 빼든 칼로 뭔가를 할 수야 있지만 그 칼을 오래 휘두를 힘이 없고 이내 길이 다합니다.”

“정치적으로 뭔가 있었을 법한 이야기로군요?”

노인 혼자 군자라 세상 모두가 그 노인을 노망난 영감 취급을 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로 노인 혼자 소인이라 추물인 늙은이가 자리 차지하고 떽떽거리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경우든 그 노인의 운명은 파국이다.

“그런데 그게 그저 자기 과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룩한 게 많은 노인이 자기 과신이 심해 사람들을 이끌고 산에 오르지만 늙은 몸이 이를 감당치 못하고 깜박하는 정신이 길을 까먹으니 젊은 사람들이 이 나이든 리더를 불신하며 심하면 그 산중에 버립니다.”

“으음.”

이번엔 표정이 정말 불쾌한 듯 보인다.

그치만 여기선 말을 거두는 게 더 머저리 같으니 그냥 한다.

“고로 노인이 칼을 빼어 들 때는 최소 아래로부터의 호응이 있어야 하며 그 호응은 50대쯤의 관리자가 아닌 이들을 치고 올라올 40대가 주류여야 합니다.”

“20대는 어떻습니까?”

30대를 물어볼 법도 한데 왜 갑자기 거기까지 내려가냐면 듣고 말하는 내가 20대이기 때문이려나?

“노인과 젊은이는 만나면 그저 꿈만 꿉니다. 가져 보지 못한 머나먼 일과, 가져 봤으나 잊혀진 일에 대한 몽상을 논할 뿐입니다.”

“세대론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젊게 사는 이는 젊고, 늙게 사는 이는 늙어 있는 것이지요.”

걸렸다. 이 노인네.

“어, 그래서 30살 중반 이상의 신입 사원을 잘 뽑으시나요? 아니, 뽑으셨나요?”

“…후, 하하하하하.”

나이 든 신입 사원 안 뽑는 문화는 기업에 만연할 텐데, 그런 문화를 조성할 인물이면서 세대론에 공감을 안 하면 내로남불이다.

기업인들도 알 것 아니겠는가. 신입, 중간 관리자, 관리자에 어울리는 연배가 있다는 걸.

사주강화술 부하운에도 적혀 있다.

30대, 40대가 되어야 사람의 부하운은 완벽히 개화된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 나이 들어도 배움의 시기가 올 수도 있고, 젊어도 관리할 수 있죠. 그런데 보편적인 그 세대의 정서는 아닙니다. 사랑하고 자식 낳을 20대의 역할이 3~40대까지 올라가기도 했고요. 그럼 자손과 수하를 관리할 연령도 높아지겠죠. 이미 높아졌고요. 60대까지.”

“신체 상태가 50대면 관리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80대는 최소 50대의 역할을 수행하기엔 멉니다. 그러니 저는 현재는 운이 박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설양훈은 턱을 괴고 생각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본인은 80대여도 50대처럼 할 수 있다고 우겼지만 30대는 조금만 나이 먹어도 활용하지 않은 내로남불에서.

그 명분이 다했으므로 나한테 지적받을 일만 남았다.

“허 이렇게 맹렬한 반대를 들을 줄이야.”

“그게 개인의 운을 뛰어넘는 세상의 섭립니다.”

설양훈은 그 말을 듣고는 한참을 이마를 검지 손가락으로 누르며 대답이 없었다.

“노래를 하나 부르고 싶군요.”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요?”

“이런…. 제 말을 다 빼앗아 가네요?”

이번엔 기분 나쁜 투가 아니다.

약간 불쾌한 듯 티를 내면서 상대를 쫄게 만들어 원하는 답을 끌어내는 화술이 있는 거 같은데 그걸 쓰지 않는다.

“그래도 가족을 위해서 가장이 바로 서야 하고, 가정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노인네 쉬시라고 고급지게 설득했더만 그래도 난 해야 한다. 이거네.

“무협지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김용 것부터 해서 조금 읽은 적은 있지요.”

“무협지에서도 무림맹주와 원로원 고수는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랬던 것도 같고.”

“어르신은 초절정의 노고수니까, 벌써 모습을 드러내시면 안 됩니다. 위기의 상황에 노구를 이끌고 이놈들 갈! 하면서 문파를 구원할 은거 고수가 왜 시시콜콜한 행정을 맡아 하시려고 하십니까.”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은거 고수가 되었네요.”

‘은거 고수가 문파 살림함.’ 이거 이상하잖아.

클리셰 비틀기야 되겠지만 그게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코드는 아니다.

“직접 하지 마십시오. 이루실 거 같은데, 힘드실 것 같습니다. 정통성이 빠방한 창업 1세대이신데 오래 사셔야죠.”

“그렇겠습니까?”

“저는 그깟 일보다 어르신의 남은 명이 즐거웁고 스트레스 덜 받고 더 오래 누리셨으면 합니다.”

“이거야 원 못난 딸년에게도 못 들은 효도 받는 기분이 드네요.”

딸들이 그 전문 경영인과 임원진들이 자기들 앞길 방해한다고 교체를 요구하긴 한 모양인데.

영감의 의중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그 감정은 내가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는 분노 말이다.

“나이 든 노인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날 날이 길지 않은 친구를 보는 느낌이라서요.”

“만날 날이 길지 않은 친구라…. 허.”

설양훈은 거기서 한참 말을 잇지 못한다.

낯부끄런 소리를 한 것 같아 먼저 말을 해 수습했다.

“그냥 단골 고객이라고 하면 좀 정 없잖아요.”

“확실히 그렇군요.”

“그럼 옆집의 인자하고, 사탕 한 움큼 챙겨 주는 이야기꾼 할아버지라고 할게요.”

어린이들에게 옛날이야기 해 주는 할아버지라는 감성이 요새도 있는진 모르겠지만 저 영감의 세대 땐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선생이 주로 하고 있지요, 나는 듣고 있고. 말솜씨가 좋아서.”

“과찬이십니다.”

나는 이 영감 안 믿는다.

딱 나처럼 의미 없는 좋은 말을 진심 없이 날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근데 보상 하나는 후해서 따를 생각.

“좋습니다, 선생의 말씀이 워낙에 재미가 있어 한번 따라 보겠습니다.”

“주제넘게 더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방법은 아실 거라 생각이 듭니다.”

40대쯤의 치고 올라가는 중간 관리자를 비상하게 키워 꼭두각시로 삼으면 되지 싶다.

그걸 왜 굳이 전면에서 욕을 먹으면서 다하려 드나, 훈수만 둬도 되는 비선이 이리 편한데.

“그렇다면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올까 싶군요.”

“혼자 가십니까?”

“손녀가 이야길 꺼내더군요.”

오 내 말대로 했네.

스코틀랜드에서 사진 보내오는 설은겸과 이야기하다 권했던 말이다.

- 아무래도 한 번 더 오긴 와야겠어요.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 그렇게 좋으면 할아버지 한번 모시고 다녀오는 게 어때요.

- 아 할아버지랑요?

- 젊었을 적 사셨던 곳이라 가 보고 싶어하실 겁니다. 나이 드신 할아버지 수발해 손녀가 다녀왔다. 기삿거리에요 그거.

이건 설민혁한테도 얘기해 봤다.

손녀보다는 무뚝뚝하고 사이 나쁜 아들과 함께인 게 그림은 더 좋으니까.

- 내가 그 영감이랑 여행을 왜 와? 여자 데리고 올 건데.

이 물건은 텄다.

“아 좋죠, 그 나이 든 연예인들도 충분히 다니지 않습니까. 잘 다녀오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도 같이 가시겠습니까?”

“예? 그 손녀분이랑 가실 거… 아닙니까?”

“노인과 어린 손녀인데 그래도 장정이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달과 오로라가 함께 어린 밤하늘 아래 야간열차에서 책을 읽고 싶네요.”

노인네가 눈 능글 맞게 뜨며 뜬금없이 뭔 감성 돋는 소리인가 했는데.

오로라와 야간열차 빼면 달빛 아래 책 읽는 노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