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68화 (68/211)
  • #68. 자존감 낮은 이의 샌드백

    석영인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아, 아닙니다. 저는 정말이지.”

    “싫다는 짓을 하라고 강요하고, 주입하고, 나무라는 건 애정도 집착도 아니고 괴롭힘이라고 하는 겁니다. 잔소리도 아니고 괴롭힘이요.”

    “그러하다면….”

    뭔 소리 할지 뻔해서 선수쳤다.

    “죽는다 소리 또 하지 마시고요. 제가 보니 민혁이는 엄마부터 정상이 되어야 바로 설 사람 같네요.”

    “아….”

    어머니운이 0레벨 수준이더니 이런 경우도 있군.

    그저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신분에서 나오는 자격지심에 갇혀 엄마 구실을 못한다.

    이런 부모도 부모라고 효도하라는 게 정론이고, 그게 아들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설양훈이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나.

    이러면 반드시 모자 갈등이 있고 다시금 그 틈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들만 문제인 줄 알았더니 역시나 엄마도 문제였다.

    “그럼 잘되셔야죠. 우선 엄마가 첩이 아니고 두 번째 부인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자식에게 주는 안정감이 대단합니다.”

    “예….”

    말만 예 하지 마시고, 라고 하고 싶은데 그래도 남의 집 엄마니 갈구긴 그렇다.

    그냥 모르는 아줌마면 꾸짖기라도 했을 건데.

    “그리고 그 영감 외로움 탑니다. 저한테 통화 걸고 한 시간 떠들 때도 있어요.”

    “그래도 제가 어떻게 감히….”

    “안 되시죠? 어렵죠?”

    “예 솔직히 말씀조차 붙이기 어려운 분입니다.”

    “그게 안 되는 이유는 자존감이 개미 눈물만큼도 없는 데다가, 그 양반과 화제를 맞출 만한 지식적 기반도 없어서 그래요.”

    “저는 그저, 요즘 아이들 말로는 파트너에 불과했어서….”

    말을 계속 흐리는 화술부터가 나는 자신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 양반이 그 나이에 또 젊은 여자를 구태여 찾자면 찾겠지마는 되게 체면치레하는 양반입니다. 그리고 굳이 여자가 필요하지도 않겠고요. 지금이 기회에요.”

    설양훈보다 27살이 어리다.

    설양훈도 그 이하를 찾으면 너무 양심이 없는 것이고.

    그 영감도 그 정도는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석영인은 외모는 50대 왕년의 탑스타 같고 말투도 사근사근 기품 있다.

    거기다 아마 대단한 상대를 앞두고는 개기지도 못하므로 남자 쪽이 잔소리 들을 일이 일절 없다.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못 하겠다고 한다.

    참 이렇게 자존감 없는 사람들 뭐 정해 주기가 힘들다.

    “어머니는 그렇다면 우선 신념과 사상을 갖추시면 됩니다.”

    “제가 이 나이에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54세면 만으로 52세인데, 인생 빨리 놓아 버리네.

    제3의 방안인 공부와 사상, 신념을 갖추는 게 정답이다.

    그게 있으면 그런 면에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고 있는 나이 든 노인네 설양훈도 사람을 좀 다시 볼 건데.

    “치열하게 살 고민을 안 하셨네요. 어디선가는 돈은 들어오니까.”

    “…죄송합니다.”

    아들한테 버스 탈 생각만 했지.

    신랄하게 까고 싶은데 이런 샌드백은 두드리고 싶은 맛이 안 난다.

    그러다 진짜 죽을 수도 있고.

    “그게 왜 저한테 죄송합니까.”

    “그래도 죄송합니다.”

    “교양을 갖추시면 외로움 타는 노인네도 좀 쉽게 마음을 열고 오래 대화도 하고 그럴 텐데. 뭐 맨날 자네 민혁이 덕에 고생이 많네 하면서 봉투만 주고 가죠?”

    “예….”

    저 업계에서 이 나이에 꾸준히 용돈이라도 들어오고 아들이라도 있다는 건 상위권이라.

    그 나이에 치열하게 다시 배우고 공부하라는 말은 먹히지 않는다.

    그런 마음가짐 따위 교정해 줄 이유야 없지만.

    자존감을 높이면서 가까운 사람을 안 괴롭히게 만들 방법 한 가지는 안다.

    “그러면 진짜로 쉬운 방법 하나 알려 드릴게요. 뭐 결혼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요. 일단 어머니 그 쥐꼬리만 한 자존감 올리는 방법이오.”

    “예 말씀해 주세요.”

    “신문이라도 보면서 정치 시사에 관심이라도 가지세요.”

    “정치를… 말인가요?”

    “예.”

    “그걸 왜…?”

    표정이 뭐지? 싶으신 모양이다.

    “생뚱맞죠?”

    “예, 그렇게 하면 제가 뭐라도 되나요.”

    “정치 담론은 이 나라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들을 깔아 뭉개면서 비웃을 수 있는 일로…. 지적 허영심을 제공하거든요.”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공부하세요, 종교라도 믿으세요가 진단법이지만.

    그것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여성이 원천적인 육체 노동을 수단으로 삼아 왔다면 젊을 적의 수익이 공부를 해서 얻을 평생 수익을 능가하므로 의지가 없다.

    그러면 남은 수단 중 하나가 정치 담론에 올라타는 것이다.

    “남한테 쉽게 잔소리 지적 이런 거 못 하시죠?”

    “그렇…지요.”

    “못 할 수밖에 없습니다. 까시는 순간 어머니 신분이나 직업에 대한 지적이 날아와 꽂힐 테니까요.”

    “예….”

    “그게 안 되면 그 스트레스가 자신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이미 파괴된 모습이시네요.”

    “아 그런가요? 그렇지요 선생님.”

    자격지심이 넘쳐 아무도 깔 수 없는 존재.

    남을 지적하는 순간 신분을 저당 잡혀 ‘천한 년’, ‘몸 파는 년’, ‘첩년’ 주제에 가 날아와 폭격처럼 꽂힐 신분.

    그럼 까면 그대로 ‘첩년 자식’이라고 반사당할 아들밖에 깔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들에게 강한 연대 의식을 느끼며 통제하고픈 욕망이 같이 숨어 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정당하게 잔소리할 수 있는 존재는 그래도 자기가 낳아 키워 약점도 알고 있고, 길러 줬다는 명분도 사랑한다는 명분도 쥔 자식뿐입니다.”

    “하지 말라고 지금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요?”

    “예 그러면 자식이랑 사이가 좋아지려야 좋아질 수가 없잖아요. 자식도 사람인데.”

    “그래도 어긋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걸요.”

    “그거 제가 잔소리할 테니까, 다 큰 애기다 하고 보듬으세요. 하고 다니는 게 먹고 싶음 먹고, 자고 싶음 자고, 싸고 싶음 싸고 딱 애잖아요?”

    “그런가요.”

    헛웃음이지만 석영인 씨는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자존감, 자아운도 참 중요하다.

    그게 없으면 사람이 밖에서 보면 참 괜찮은 사람인데 자기 비하가 강하고.

    내면에서 뭔가가 크게 어긋나 있다.

    그리고 기왕 어긋날 것이면, 주변 사람이 아니라….

    “그러면, 세상에 까야만 되는 사람들을 까세요.”

    “그렇게 까면 좋아지나요?”

    “괜찮아지죠, 어머니가 어딜 까느냐에 따라 어머니는 그저 전직 화류업 종사자가 아닌 애국자나 민주주의 보루가 되실 거라서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 정치 과몰입이 많다.

    거국적인 목표를 지향한다는 뽕.

    그리고 세상에 위세를 떨치는 자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얻는 우월감.

    거기다 그 정서를 공유하는 자들과의 연대.

    어설프게 자존감을 높인다고 공부해라 친구 사귀어라 이러느니.

    그냥 대의 찾는 정치의 담론에 태워 버리는 게 편하다.

    “본인을 위한, 아들을 위한 일이 아닌 모두를 위하는 일이다 생각하시고 소신, 아니 소신이 아니라 그냥 맘에 드는 쪽 하나 골라서 해 보세요. 까는 게 싫다면 그냥 옳다 싶은 곳에 가서 같이 활동하세요.”

    정치에 대해 별로 아는 바 없던 어머님들이 나이 들고 갑자기 이상한 메시지를 긁어서 자식들에게 보내기 시작한다면.

    그건 나이 먹어 쓰일 곳이 없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책일지도 모른다.

    하나 가족들한테 패악질 하는 것보다는 상대 정파에 패악질하는 게 낫다.

    가족은 그러라고 있는 존재 아니고 정치인은 그러라고 있는 존재다.

    정치가는 억울하면 그 사람들도 차마 못 깔 정치 하면 되잖은가.

    “어머님도 아들이랑 얼굴 붉히면서 그러시긴 싫잖아요. 그러다 또 응 엄마 안 봐. 하면서 직업 관련해서 까고 다니고 그러면 마음 아프실 테고.”

    “으, 으으음.”

    “뭐 좀 이상하다 싶으면 스포츠는 어떨까요. 대전에 야구단이 하나 있는데.”

    그게 아니면 스포츠 과몰입 등으로 해소가 가능하다.

    뽕맛으로 따지면 승부가 매일 있으니 더 괜찮은 편이지만.

    이겨야 뽕맛을 얻는데 대전을 기반으로 한 야구단은….

    “아 괜찮아요.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아요.”

    어머님도 거르신다.

    “정치는 그래도 좀 들으신 게 있죠?”

    “네 있네요.”

    “자 이 사람들 개새끼, 해 보세요. 다요.”

    “해도 되나요?”

    “뭐 어때요. 여기고 저기고 다 욕하면 됩니다. 그렇게 어디든 욕해도 되고, 그러다 더 욕하고 싶은 쪽이 생기면 같이 욕하셔도 되고요.”

    스마트폰은 잘 쓰시네.

    그것도 흔히 보기 어려운 접는 걸로 쓰신다.

    그러면 어느 쪽이건 열성으로 투입시킬 여건은 마련된 것이다.

    “자 누구누구 개새끼 해 보세요.”

    “그 개새….”

    “더 크게요. 그래서 그 더러운 감정이 전달이 되겠습니까? 이놈도 저놈도요.”

    목소리를 높여 가던 석영인 씨를 좀 더 부추겼다.

    “자 조금 더 크게.”

    “개, 개새….”

    “뭔 일 있…나요?”

    소녀보살이 떠들러 본다.

    뭔 아줌마가 사주 보러 와서 온갖 정치인을 죄다 욕을 하고 있으니 황당하긴 했겠지.

    “아, 아아….”

    석영인 씨는 급 다시 위축된다.

    “개운법. 나가 주실래요?”

    “흐…으응.”

    소녀보살 눈빛이 ‘뭐야 이 미친.’이었지만 그래도 간섭하진 않고 문지방을 닫아 줬다.

    “계속 하셔도 됩니다.”

    “계속 하나요?”

    “그래야 좀 나아진다면요?”

    “네. 이 나쁜.”

    개까지는 차마 못 써도 욕은 잘한다.

    초췌하고 위축되어 있던 석영인 씨 표정에는 점차 미소가 어린다.

    “그 좀 후련하시죠?”

    “…그게, 그렇네요?”

    “그러면 됐습니다. 자식 말고. 세상에 맘에 안 드는 사람들, 특히 억울한 사람 말고 샌드백인 사람들 맘껏 까세요.”

    “정말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요?”

    “얼마나 빠져드냐에 따라 달라요.”

    게임이나 주식, 투자 같은 잡기나 경제적 수단으로 모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게임은 하실지 모르겠고.

    투자는 자존감과 몰두할 거 찾으라고 보냈다가 인생 더 말아먹는 경우가 흔해서 안 된다.

    “아셨죠. 잔소리 더 하시지 마시고. 혹시 그리하고 싶으시다. 첩의 아들이 대접 못 받는 세상을 만든 위정자들 때문이다 생각하세요.”

    “예.”

    “그러고도 아들이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가득 보일 겁니다. 그럴 땐 저한테 말씀하세요. 아들한테 먼저 말하지 말고요.”

    “그러면 가능할까요?”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만…. 욕은 들어드립니다. 제 욕 말고.”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기분을 좋게 해서 내 말을 잘 듣게 하려는 술수 중 하나다.

    위정자들을 깐다고 아들을 안 까고 싶어지는 건 아니거든.

    분노나 억눌린 스트레스, 그리고 관심사를 그쪽으로 해소시켜 자식에게 향할 관심을 다소 깎는 것이다.

    그 스트레스가 해소된 느낌을 날 보며 받았다면.

    내가 시키는 말을 꽤 잘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겠습니다. 그럼 제가 복채를.”

    봉투를 꺼내실 땐 후련함과 미소가 어려 있었다.

    웃음으로 돌려보내는 것 같아 마음도 편하다.

    “아, 저 나가셔서 사랑방 있거든요. 접수처? 수이 씨 복채 받아요.”

    “네에.”

    여기는 현재 명승철학관X소녀보살 콜라보레이션 진행 중인 소녀보살 신당으로 수금 및 접수 예약 업무를 수이에게 맡기고 있다.

    수이와 대화 자체를 안 하는 건 아니다.

    내가 그 정도로 넉살이 없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한 며칠 알바하면서 수이도 많이 괜찮아졌다.

    단지 강단에 있으면 나랑 눈이 완전히 마주칠 수 있으니까.

    시선을 피하는 것뿐이다.

    지금도 눈 안 마주치고 대화하는 건 가능하다.

    “아 이 아가씨한테 드리면 되는 건가요?”

    “예.”

    “선생님한테 개인적으로는 드릴 수 없을까요.”

    “아 물론 가능하십니다.”

    “뭔가…. 무척 재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전까지 살펴 가십시오.”

    설민혁이 어머니고 어른이시니 모셔다 드리려는데 한사코 나오지 말란다.

    원래 이렇게 잔뜩 혼낸 아주머니 손님들이면 서비스를 좀 열심히 한다.

    그거라도 해야 재방문하시지.

    아무튼 인사하고 보냈는데 옆에 있던 수이가 이상하다.

    “너 왜 그래 얼굴이 왤케 붉어?”

    “…화장실 갈 거예요.”

    그런 것치곤 바지를 허리 위로 끌어당긴다.

    보통은 풀 준비를 하고 가지 않나.

    미루어 짐작하기론 ‘대전’을 듣고 ‘내 얼굴을 보면 몸이 이상했었던’ 원인이 되살아 난 건 아니었을까 싶은데.

    * * *

    밀려 드는 예약 손님 덕에 휴일을 정했다.

    거기다 예약을 휴일에는 안 받는 식으로 주 5일제를 확보했다.

    그래서 1월 말부터는 시간이 된다.

    그 1월 말에 설양훈의 초대가 있었다.

    [오세요, 설 선물도 하나 드리고 부탁할 일도 있습니다.]

    “설은 아직 좀 남지 않았나요.”

    [설 때 아주 바쁘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모셔야지요.]

    “어 아무래도 그렇겠네요.”

    지금도 대성수기이지만 한국사람들은 설을 더 새해의 시작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명절 대목이라 그때가 장사가 더 잘된다고.

    설마 민혁이 어머니를 정치 투사로 만들었다고 부르는 건 아니겠지.

    그냥 관심사를 돌리고 사회적 담론에 들은 게 많으면 그런 거 좋아하는 설양훈이랑 이야기라도 더 하겠다 싶은 것이다.

    설양훈이 가소롭겠지만 이런 쪽에서 대화는 통하는 상대구나 할 것이다.

    “그 어떤 일인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맞추라고 하시지 말고.”

    [하나는 글을 쓰는 일이고, 하나는 사주를 아니 사람을 다루는 일입니다.]

    “제대로 뽑아 먹으시네요.”

    [오시면 말씀드리지요. 2월 예약 열지 않으신 듯한데, 좀 있다가 내려가십시오. 호텔도 이용하시고 아, 여자 친구 데려오셔도 됩니다.]

    명승철학관 웹페이지도 보는 듯한 발언은 대단하다 설은겸이 알려 주나.

    그나저나 글은 짐작이 안 가는데, 반공 격문이라도 쓰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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