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64화 (64/211)

#64. 세딸아빠의 사윗감

강의가 끝나고 수이한테 말 걸려 다가갔는데 후다닥 달아난다.

이 하이틴 로맨스스러운 상황은 뭐야.

“푸훕.”

소녀보살이 비웃는다.

“도망쳐 버리네.”

“우리 신당으로 출근할 거다. 너도 임시 이전 띄우고, 이리로 와서 사주 봐라.”

“아 진짜? 어떻게 한 거야?”

소녀보살 신통하네.

“무척 간단했다.”

“뭔데, 어떻게?”

“영민이 보자고 했어.”

아 고양이….

요물이구만, 급 키우고 싶네.

그러고 보니 <사육>도 잘하면 사주 강화 레벨 주는 거 같고.

여자는 소녀보살이 훨씬 더 잘 유혹하는군.

“네가 입점하면 볼 수 있다. 뜻대로 해라.”

“안 그래도 주차장 문제 때문에 가긴 가야겠어. 한옥이 바닥만 뜨시고 문풍지 때문에 외풍 겁나 들어올 줄 알았는데, 뜨끈하더라.”

“방도 나눠져 있으니 안 마주치려면 안 마주칠 수 있겠지.”

“마주치고 싶은데.”

“어색한 거 보는 거 혹은 눈 맞는 거 보는 거 꿀잼일 거 같군. 문풍지 콕.”

그게 대체 어느 시절 시추에이션이야.

진짜 조선 시대 귀신이 쓰이고 나갔나.

“선생님, 선생님. 아.”

송희영 씨는 소녀보살을 보더니 멈칫한다.

소녀보살은 인상을 굳히며 송희영 씨에게 한마디 남기고 돌아간다.

“학력 차별 반대.”

딱히 공채의 차이를 학력이 가른 건 아니지마는.

소녀보살은 그리 생각하는 모양.

송희영 씨는 당황하다 소녀보살이 지나친 뒤에야 말했다.

“아무튼 선생님.”

“네.”

“저희 강좌가 이제 2개월 조금 남았잖아요.”

“그쵸.”

“혹시 재계약을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재계약이오? 아 잠시만, 그 문화과로 가서 말씀 나누시면 안 될까요?”

“아 그래요.”

수업 마친 시간이라 학생인 어르신들이 나오고 있어 송희영 씨를 따라서 공무원들 일하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응접 의자에 앉았는데 문화예술과 다른 담당 하고 있는 김연주도 보인다.

인사 한번 해 줬다.

다행히 아직도 안 관뒀다, 시집간다 만다 얘기는 들은 거 같은데.

“국장님이 더 해 보자고 하셨어요. 이렇게 많이 오신 건 처음이라고.”

“원래는 그냥 마친다고 안 하셨나요?”

구청 사주 강의는 딱 6개월만 하고 끝내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원래는 잘되면 더 하려고 했는데.

시작한 지 몇 주 만에 시위자가 붙어서 시끄럽게 구니까.

없던 이야기가 됐다.

공직 사회가 그렇잖은가, 시끄러우면 끊어 버리기.

송희영 씨가 지난달에 나한테 연장을 안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알려 줬다.

처음엔 아쉬웠지마는.

아마 대전을 갈 거 같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는데.

이걸 더 하자네.

“저희 구민 강의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신 적이 없는걸요. 지금 문화예술과부터 청장님까지 신이 나서.”

“어, 근데 저 아마…. 3월에 취업을 할 거 같아서.”

“아 정말요? 그러면 저희가…. 어 저녁 이후로 시간을 맞출까요?”

진짜 아쉽나 보네.

그러면 아마 관리자인 송희영 씨가 일주일에 이틀은 초과 근무해야 한다는 건데.

많이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다른 도시로 가니까, 어려울 거 같아요.”

“앗, 아아. 아이 어떡하죠?”

“없애자고 주도하셨던 분들 엿 먹으면 되죠. 안 먹을 거 같지만.”

누군진 모르는 시의원 하나가 깽판에 생트집을 잡아서 연장 못 한다더마는.

알아보고 투표로는 심판할 계획이다.

* * *

헬기는 아쉽지만 시상식에는 안 갔다.

그냥 헬기 타고 시상하는 것이었으면 갔을 텐데, 가서 할 게 사주 보기면 급 안 하고 싶어져서 참석 안 했다.

대리 수상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시상식이 있다는 시간에 강화술 메시지가 온다.

<수상>

상은 당신의 명예를 아주 직관적으로 올립니다.

상을 주는 기관과 시상자의 위치에 따라 관성운이 더 지급됩니다.

관성운 1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관성운의 명예운에 50포인트가 적립됩니다.

명예운이 오릅니다!

<명예운 LV5>

당신은 군급 지역사회나 당신의 직군에서의 자랑거리가 되거나 자랑거리가 될 만한 상을 수상받습니다.

인구 2~3만 군급에서는 내가 명사가 된다네?

왜 자꾸 군수 테크가 밟히는 거 같지?

바로 그날 저녁.

대리 수상자인 김병용이 상장과 상품, 감사패를 전달한다기에 만나러 나갔다.

막걸리집에서.

몇 만 원에 주전자 한 사발을 주고, 안주를 수십 개 까는 횟집 스타일의 술집들인데.

양조주가 증류주보다 빨리 취하고 배불러서 좋아하지 않는다.

“거길 혼자 먹고 있을 리는 없겠고, 누굴 소개할 모양인데.”

김병용은 2월 초, 계룡대로 잠시 영전되어 중장 계급을 달지만.

3월에 바로 군문을 나설 예정이다.

중장 임기를 6개월이라도 채우려면 채울 수야 있지마는 본인이 그럴 생각이 없었다.

6월 재보궐이므로 100일 전 사퇴해야 한다고.

일단은 전북 떠난다니까 일이 박 터지지만 안 만날 수도 없었다.

“어째 삼남 지방을 다 돌린답니까?”

“수도권은 경기 북부 아니믄 군인 출신을 썩 내켜 하지 않는다고 하드라.”

공천 지역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경남 진주시 갑, 충남 논산 계룡 금산, 그리고 경쟁자가 득시글한 전북 남원 임실 순창에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음, 짬내 나죠.”

“이 자슥이.”

경남 진주는 김병용의 본적은 아니지만 유년 시절 고향이고 의지만 있으면 전략 공천으로 갈 건데, 당선 확률이 매우 낮고.

충남 논산 계룡은 군 인사 프리미엄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전북 남원 임실 순창은 연고라곤 군 복무뿐이 없어 지역을 장악한 당내 주자들에게 밀리지만 경선만 이긴다면 당선권으로 여겨졌다.

“내 많이 좋아졌지?”

이 양반 사투리 교정한다는데, 잘 모르겠다.

“조금씩 섞는 건 정겨운데 왜 교정하라고 할까요.”

“서울놈들이 깍쟁이다.”

조용히 막걸리 먹고 있는 청년들이 누군지 물었다.

“여기 이 친구들은 누구죠? 운전병이랑 부관? 이분은 머리가 좀 긴데.”

“아 이 자슥들은 뭐 이리 패기가 없나. 인사들 하지는.”

같은 자리 합석한 사람들인데, 김병용이랑 인사하고 말 나누는 동안 한마디도 안 하고 저러고 있었다.

인사부터 시키지 이 양반도 참 뭐가 그리 반갑다고 오자마자 속사포로.

김병용은 말없이 술만 먹고 있는 두 젊은이들 어깨를 툭 쳤다.

한 명은 관등성명 대려다 마는 거 보니, 군인이거나 군 출신이고.

한 명은 그냥 어색해하는데 머리가 길고 안경을 쓴 백면서생이다.

“요즘 애들은 쑥스럼쟁이다. 나 때는 그 술집에서 첨 봐도 형 동생 하고 다음 날 연락하고 한 잔 더 할 정도로 의기가 있고.”

그냥 과하게 넉살이 좋았던 거 같은데.

“그건 장군님 때 얘기죠. 안녕하세요. 저는 그 명승철학관이라고 역술원 운영하고요. 사주 봅니다.”

되게 쑥스럼 많이 타길래 내가 먼저 말 걸었다.

사주 보다 보니 넉살은 좀 늘어서 이게 된다.

“야는 전역한 RT인데, 내 좋게 봐 가지고 불렀다. 도와준다 카드라. 인사해라.”

“안녕하십니까. 송지훈이라고 합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야는 그 병사 출신인데 너 맹키로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낸다.”

“최철승입니다.”

“서울대 나왔다. 서울대 출신.”

“오오. 공부 잘하셨나 봐요.”

“아 아니에요. 저보다 똑똑한 사람들 많아서.”

공부, 학위운이 7~9레벨은 되겠구만 아니긴.

인사는 나눴는데도 적막하다.

나랑 크게 나이 차가 안 나는 것 같아서 이야길 하자면 하겠는데, 부장님 같은 양반이 혈맥을 딱 막고 있는 느낌.

이러면 대화에서 어쩔 수 없이 김병용을 까면서 웃음을 자아내야겠다.

저 둘은 김병용한테 기가 눌려서 주눅 들어 보인다.

“근데 뭐 남자들을 소개시켜 주십니까? 장군님이 꽁꽁 감춘 막내딸 보여 주시려는 줄 알았는데.”

“이놈 자슥 대가리에 구멍을 내 줘야 카는데, 총이 어딨드라.”

저 서울대 친구가 반응이 좀 있네?

“이거 뭐 혹시 청년 보좌진 팀 같은 거 꾸리려고 부르신 겁니까?”

“그렇지.”

6월 재보궐에 나갈 김병용을 보좌할 젊은이들이었던 모양이다.

선거는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훈수 둘 게 많다 생각이 들어서 한번 해 보겠다고는 했는데.

“아 근데 저 천지인 그룹 상임 고문으로 3월부터 일하기로 해서.”

두 청년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날 본다.

나이대가 나랑 비슷해 보이는데 주된 걱정은 취업이겠고.

김병용을 돕고 그 발판으로 정치 쪽을 넘어가고자 하는 친구들로 여겨지는데.

엄청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여겨질 것이다.

일단 누가 들어도 허풍 같은 진실부터 털어놨다.

“상임 고무우운? 니 뭘했다꼬? 사주밖에 더 봐 드릿나?”

거 사람들이 알아서 내 종교, 사상적 권위만 봐도 돈을 갖다 바친다는데 어떡하나?

“그 양반 손녀랑, 아들을 둘 다 꼬셨거든요.”

“마성의 남자네…. 아 손녀?”

“예 손녀.”

“혹시 정환이 딸 아니가?”

“아 아시나 봐요. 설은겸.”

김병용이 팔을 쭉 뻗어 갑자기 내 멱살을 잡는다.

“이런 썩을 놈의 자슥을 봤나, 내 딸 가진 아빠로서 아버지 없는 틈을 타 딸자식의 외로운 마음을 파고 드는 제비 같은 놈은 용납을 못 하지마는 니니까 봐준다.”

뭐야 이 미친 의식의 흐름 반전은?

근데 옆에 듣고 있던 서울대 출신 공관병 최철승의 표정이 좀 좋지 않다.

아까부터 그쪽 농담에 되게 미묘하게 반응하네?

그걸 캐치했다.

“저기 철승 씨라고 했나요?”

“아, 네.”

“여기 장군님 사윗감 되실 뻔했죠?”

“예? 아, 그게. 저 아니 그게.”

최철승은 엄청나게 당황한다.

공관병+서울대 = 장군님네 자식들 개인 과외 교사.

김병용 = 딸부자.

군부대 공관 = 깡촌.

깡촌 = 멀쩡한 젊은 청년 없음.

공관의 곱상한 딸 +서울대 출신 얼굴 멀끔한 공관병 = 스캔들.

이거 거의 공식 아닌가?

“봐라, 야가 완전 귀신이다.”

맞춘 나보다 김병용이 더 의기양양해한다.

“아니 그게 장군님, 저 진짜 편지만 받았습니다. 메시지만 했고요.”

“댔다. 좋다 하고 걍 만나믄 됐지, 그게 더 밉상인거 모르나.”

그러게 체면치레가 많구만.

나 같으면 딸 데리고 배 끊기는 섬으로 여행 가도 되겠냐고 들이받고 한 대 처맞았을 거 같은데.

아 이게 정상은 아니구나.

“아 안 사귄다니까요?”

“갸 인자 고딩도 아닌데 왜 그나, 아직 남자 친구 없는데 만나라. 뭐 아버지가 된다는데 지가 빼고 있노.”

저렇게 찍어 놓은 젊은이들 영업하는구만.

열심히 등짝 밀어드려라.

그래도 난감해 보여서 구출해 줄 겸 한마디 했다.

“딸이 된다고 해야죠.”

“니 좀 조용히 해라, 갸는 성격이 지 엄마 닮아가 이렇게 휘둘리는 아 아니면 어데 못 보낸다. 나는 못 데리고 살아.”

“풉.”

김병용도 전형적인 행정병 상 좋아하는구만.

학력 좋고 말 잘 들을 거 같은 어수룩한 애들.

“그래서 니는 못 한다고?”

“어, 그 양반이랑 이야길 좀 해 봐야죠. 사기업이니까 돕는 데는 문제가 없겠는데.”

“근데 아들은 누구고? 뭐 손자 아이고? 내는 모르는데, 설윤환이 그 개자슥 말고는.”

“잠깐 나가실랍니까?”

“뭔 일이가?”

데리고 나왔다.

설씨가를 좀 아는 김병용이나 알아 듣지, 일반인인 친구들은 모르는 이야기겠다만.

혹시나 싶어서.

“혼외자 한 명 있습니다. 설 회장님.”

“아 그라나?”

“뭐 조만간 공개하실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그렇지 잘했다. 울 아버진데, 체면 상하시겄다.”

“아버지가 많으시네요.”

“친아버지는 돌아가셨으니, 양아버지 섬겨야지. 안 그럼 내 인자 고아다.”

그거 듣자니 맘 아프네.

“그리고 장군님, 의도는 알겠는데.”

“뭔 의도?”

“저 친구들이 저랑 일을 할까요? 아니 장군님 얼굴 봐서 일이야 같이 하겠지만 절 인정할까요? 지금까지 장군님이 저 친구들을 설득을 혹은 홍보를 해 오지 않았습니까? 제가 참 신통방통하다고.”

“…니 뭐 내한테 도청기 달았나? 그걸 대체 우째 아나?”

그건 도청기가 아니라 그냥 친구들 좀 소개해 준다고 할 때부터 짐작하던 일이다.

고작 역술인을 고학력자들한테 붙이면서, 비상한 인물로 띄워 준다?

안 먹히지.

무당이랑 헷갈리기까지 할 건데.

이상한 사람 데려와서 지들끼리 노가리 까면서 영차영차 한다 싶을 것이다.

고학력자가 아닌 내가 봐도 그리 생각했을 테니까.

“봐라, 야가 완전 귀신이다에서 느낌이 오던데요. 장군님이 워낙 칭찬을 하시니…. 뒷다마까지 할 사람들은 아니었겠지만 사주는 대단히 불신했을걸요?”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좀 그런 눈치이긴 하지, 사주 하는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면 소문 안 좋게 나는 거 아니냐고도 하고.”

“정재계 최상위권까진 몰라도, 수도권 화이트칼라쯤은 될 수 있는 젊은 고학력자들한테는 사주는 개똥 같은 소립니다.”

타고난 게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운명론이 기반인 사주를 믿는 편이겠지만.

‘나는 노력으로 올라갔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사주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물건이다.

숙명이라는 게 있구나 깨달을 때는.

일단 인생이 한번 나락을 탄 사람이거나.

노력의 총량이 같아 보이는데 자기보다 잘된 사람이 눈에 띌 때다.

젊은이들은 아직 출발선이라 그렇지가 않다.

“그건 니 말이 맞네.”

“에이 뭐 별수 없죠. 사주 차력쇼 함 해야지.”

“차력쇼?”

그리고 그런 사주 본다는 나 역시 저들에겐 희한한 사람 그 이상이 안 되고.

희한한 사람 옆에 두고 총애하는 사람도 이미지가 깬다.

특히 역술 쪽 이미지가 대통령 하나 감옥 보내고 더 요사스럽게 변해서.

그러자면 내가 짜지든가.

최소 측근들은 믿게 만드는 수밖에.

그런 면에서 설양훈이 더 현명하다.

사주를 보는 ‘작가’ 캐릭터성을 포착해서 뽑아 먹으니까.

김병용도 차라리 날 ‘반공 소설가’라고 하는 게 더 먹혔을 것이다.

“장군님만 미신충으로 만들 순 없으니까요. 보좌진들한테 팔불출 미신충으로 보여서야 쓰겠습니까. 다 같이 미신충 만들어야지.”

비슷한 연령대와 성별이 주는 공통적인 삶의 고민에서 파고들 수 있는 갖가지 맹점들.

그리고 원래 아예 안 믿는 놈들.

사실 사주 좀 여러 곳에서 본 팔랑귀 아줌마들보다 더 쉽다.

“근데 너도 글고 애들 요새 말 끝마다 충은 왜 쓰는 거고? 그거 충성할 때 충이가?”

“…….”

미신에 충성한다도 말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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