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너의 이름은
암이라는 이야기 듣고 깜짝 놀랐다.
“아 정말 그러셨어요? 지금은요? 괜찮으세요?”
“초기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 무사히 마치셨습니다.”
“아이고 정말 천만다행이네요. 잘됐다.”
아들이 있는 서울에서 떼어 내는 시술 받고 정양하다 오늘 내려오셨고 같이 온 아드님이 이리로 온 모양이다.
“선생님 이것.”
“아뇨, 아뇨, 주지 마세요. 이런 거 괜찮습니다.”
이희자 어머님 아들 분이 봉투를 내미시길래 기겁하며 거절했다.
한데 이어진 그분 말씀에 안 받을 수 없었다.
“복채라고 반드시 전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암 보험이 많으셔서 좋아하세요.”
할매요….
“아니 보험이 많으면 얼마나 있길래요?”
어머니가 전화 보험 상담원한테 속아서 암 보험을 세 개나 들어 놨다는군.
초기라서 크게 위험은 없으며 수술도 무사히 마치셨고.
보험금은 세 곳에서 모두 수령받는다니 무척 행복하신 모양이다.
이희자 어머님 아들분, 쑥스러워하며 대답한다.
“간만에 저도 용돈 받았네요. 어머니한테.”
“그럼 받을게요. 부자 되셨겠다. 효도하셔야겠네요.”
그 어머님 노년 대운에 뜬금없이 재물운 들어오더만, 이런 걸로 터지네.
그때, 구청 산림과 쪽에서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나왔는데.
저 아저씨들 구면이다.
나도 알아보고 저 아저씨들도 날 알아본다.
“어이, 쟈 봄 때 그 막내 아녀.”
“아따 막내야.”
“아, 형님들.”
“너 또 산 올라가냐?”
“저 양복 쫙 빼입고 왔구만 저거 입고 뭔 산을 올라 가겄어.”
돈 있어서 맞춤 정장 샀다.
“야, 야 인자 너 뭐 공무원 됐냐? 선생처럼 하고 왔네.”
아이고 정신없어.
아재들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속사포다.
산불 방호원 중 최연소였던 데다 사주 기술 있어서 저 양반들한테 인기가 많았었다.
“아, 아 저기 잠시만요. 여기.”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이희자 어머님 아들분 안 가고 기다리고 계신다.
말씀 나누던 도중에 죄송하지만, 기다리시겠다니까.
“아 저 여기 구민 강좌 나가요.”
“강좌? 공부는 편하게 입고 와서 해야지 않겄냐.”
“아 뭐 거 데이트 하는갑제. 쟈도 장가 가야제.”
“그게, 제가 강의를….”
“산불 방호원 분들이시죠? 여기 사주 강좌하시는 선생님이신데….”
옆에서 지켜보던 송희영님이 내 대신 대답하신다.
이희자 어머님 위암을 맞췄다는 것까지.
어, 거 나는 그냥 위 건강 조심하라고 했을 뿐인데….
“진짜여?”
“아따, 위암을 맞춰 부렀디야.”
“쟈가? 하이고, 그 박형 짝부랄인 것도 맞추드만.”
그건 성 기능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라고 했지, 짝부랄이라고 안 했는데요.
그냥 박씨 아저씨 캐릭터가 짝부랄이라서 놀리는 거다.
“하이고 선생 되어 부렀네.”
“쟈는 그래도 뭐라도 될 줄은 알았어.”
“아야 난중에 보자잉.”
건조한 계절이라 산불 방호원 또 뽑더니 마주쳤네.
방호원 형님들이 빠져나간 후, 이희자 씨 아드님이 말했다.
“저희가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이 어떻게.”
“지금 됩니다.”
암 보험 3콤보면 밥 정도는 얻어먹어도 될 성 싶어 따라나섰다.
나가면서 담배 태우시는 산불 방호원 형님들하고 인사를 한 번 더 나눴는데.
아직도 내 얘기 중이다.
<명성>
당신은 이름을 떨치기 시작합니다.
명성은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관성운과 비겁운에 계속해서 포인트를 공급하나, 관성운의 고난/책무에도 포인트를 적립시킵니다.
명성은 양면성이 있었다.
별것을 하지 않아도 인생을 좋게 바꾸어 주지만.
반대로 인생에 제약을 걸기도 하는 것이다.
* * *
신년이 되었고, 명승철학관은 2차로 폭파됐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주차장은 한옥마을 공영 주차장이나 남부시장 공영 주차장 쓰셔야 할 거 같고요. 예약으로 지금 받고 있거든요.”
특히 그동안 명승철학관에는 흔치 않았던 중형 차량 손님이 늘었다.
운전을 하고 중형 이상을 모는 손님들이 생겼다는 뜻이겠다.
문제는 주차할 공간이 딱 명승철학관 옆으로 돌아가면 골목과 가정집 몇 채가 있는데 거기 골목의 인도를 막는 길이 전부다.
나머지는 차로를 차지하는 불법 주차를 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도 다리 건너 한옥마을이라 예로부터 불법 주차가 많아 자리 없다.
한옥 거리에 차가 들어오는 것도 이상하잖은가.
“예약이면 언제까지 올 수 있나요?”
“그게 저 내년….”
“내년이오? 아이고, 장사 잘되네. 알았어요.”
예약 손님을 돌려보내다가 문득 말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다.
1월인데 내년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작년인 줄 알고.
그리고 이 말은 와전되어….
지역 리뷰 카페에 오르고.
[내년까지 예약이 찼다던데.]
[예약 안 받는 날은 언제예요?]
내년, 즉 1년치 예약이 차 있다로 와전되어.
구름 손님이 비 예약일에 몰리게 하는 폐해를 겪었다.
그 덕에 사람을 돌려보내는 것도 일이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여기 분들까지만 봐 드리고 마칠게요.”
아이들 발 유행은 잦아들어.
성수기도 손님이 가을보다 두 배 늘어난 정도로 유지되어 여유가 있었는데.
이번엔 소문이 양갈래로 났다.
이미 알음알음 소문이 나고 있었는데, ‘위암을 맞췄다’ 소문이 구청 직원들, 구청 공무원 맘들에서 퍼지고.
산불 방호원 형님들 발 소식이 퍼졌다.
나름 준중형 몰고 찾아오는 아저씨들은 형님들 발 입소문 손님이.
예약하고 찾아오시는 분들은 구청 쪽에서 퍼뜨린 소문을 듣고 오신 분들이다.
사주 본 사람 덕에 돈을 많이 벌었다, 인생의 올바른 방향을 잡았다. 이런 건 소문 안 나지만.
사주 본 사람 덕에 목숨을 건졌다는 그 파괴력이…. 어마무시했다.
“어우 죽겄다….”
6시에 문 닫는데 8시까지 영업했다.
손님 응대, 커피 대접 등을 할 직원이 이제는 필요할 거 같다.
12월 순익이 1500이 넘으니 월급 몇백 주고 부릴 셈이다.
500은 설민혁이, 200은 설양훈이 준 거지만 그래도 손에 건지는 게 월 천이 넘는다.
이이이잉, 이이이잉.
마침 전화가 왔다. 김병용이다.
방금 전 거절 문자 하나를 보낸 참이다. 너무 빡세서.
“예.”
[니 안 갈 기가?]
“저 연초가 너무 성수기라 예약이 밀려서 안 될 거 같은데요.”
김병용이 얼마 전 대구를 같이 가자고 했다.
대구에 있는 2작사에서 나랑 김병용, 그리고 초기 정보분석조와 상황장교에게 시상을 한단다.
민간 제보자, 초동 조치자 등에게 주는 상이다.
신고 빌런이기만 해도 주는 상이긴 하나, 상을 받으면 명예운이 직관적으로 오르기도 하니 딱히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근데 지쳐서 안 되겠다. 대리 수상하라 해야겠다.
연말보다 연초가 더 강력한 성수기였는데 심지어 소문까지 났으니.
시상식 날을 하루 빼놓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날 하루는 쉬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1월엔 휴일이 없다.
구민 강좌 나가는 날은 비예약일이니 쉬자면 쉬겠는데.
구민 강좌가 쉬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빡세긴 한데, 돈맛 제대로 보고 있어서 일할란다.
[그래 밀리나?]
“예 그렇게 됐네요.”
[신문서 봤는디, 역술인이 위암 진단, 이거 니지?]
“예에 인터뷰 온답니다.”
충청 대망론 기사의 젊은 역술인 논평이 클릭 수 히트를 치자.
현재현 기자가 아는 지방지 몇 곳에 더 날 소개해 줬는데.
그걸 본 지역지 뉴전북신문이 같은 무협 컨셉의 지역 정치인 품평 기사를 받아 갔다.
그리고 구청 강의 나가는 할머니의 위암을 맞춘 역술인의 소문이 나자.
이젠 아예 인터뷰를 하잔다.
[니 이렇게까지 잘 보드나? 그 아가리만 좀 잘 터는 줄 알았드만.]
“아니 그냥, 위 내시경 받으시라고만 했습니다. 어르신들한테는 누구한테나 그리 말하는데. 그게….”
이게 내 공로라고 생각은 안 한다.
이희자 어머님의 사주는 그냥 사주 좀 아는 사람 누구나 ‘아 위 안 좋겠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주다.
그 정도도 못하면 사주 보면 안 될 사람이고.
이런 걸로 뜨는 건 그저 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주강화술이던가.
국민건강검진에서 필수화하는 내시경을 받으라고 했고.
그냥 한국인에게 흔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의한 위염만 나와도 내가 하는 말은 들어맞은 건데.
‘생식기능을 관장하는 운이 사주에 두 개 있으신데, 그중 하나가 온갖 놈들한테 개 처맞듯 맞고 있는데요.’
국민건강검진에서 굳이 측정 안 하고, 인구의 소수만이 갖고 있는 짝부랄을 암시한 게 더 신기하지 않나?
아, 기사로 쓰진 못하겠네.
[그라믄 헬기 타고 가까?]
“예? 헬기요?”
[헬기 타믄 후딱 가지.]
기차 비행기 이런 거 타는 거 좋아해서 좀 솔깃하다.
헬기는 안 타 봤다.
헬기 레펠이 교육훈련계획서엔 잡혀 있는 걸 봤는데 막상 하지는 않는 부대였다.
“어 헬기는 좀 끌리네요. 근데 군용 헬기 타도 됩니까? 민간인이?”
[사단장이야. 안 될 게 머 인나.]
사단장이야는 좀 멋있네, 감투가 좋긴 좋아.
“근데 포스타 있는 상급 부대에 헬기를 타고 가도 됩니까? 계급도 안 되면서.”
[그 행님 나랑 친하다. 개안타.]
별의별 사람이 다 아버지고 형님이고 아들이네 이 양반은.
“며칠 남았으니까, 가겠다 싶으면 연락드릴게요.”
[내 군 생활에서 인생을 터득한 도사라꼬 몇 번을 말해 놨는지 아나. 이건 명백한 군의 자랑이다.]
“아, 예, 예….”
군의 부조리가 만든 거겠지만.
최소한 남자 사주 보는 데는 무척 도움이 된 건 부정하지 않겠다.
[가능함 함 온나.]
“전역한다면서 아직도 뭐 누구 사주 봐 주고 그러면서 잘 보여야 할 분 있습니까?”
[같이 전역하고 나 돕는다는 친구들이 좀 있거든, 갸들을 니가 함 보고 판단을 해 줬으면 싶어가.]
“거 참 쫄보처럼 왜 그러십니까. 사람을 있는 대로 포용을 하는 게 정치인이지 안 맞는다고 뱉고 그러면 됩니까? 거기서 그릇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야가 요새 정치 평론 좀 하드마는 목소리에 힘이 빡 들어갔네. 암튼 가능하믄 오그라. 니 자랑을 억수로 해 놨다. 안보관 투철한 군 전문 역술인.]
말을 뜯어 놓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 * *
이튿날은 영업 시간 전에 뉴전북신문 기자와 만났다.
이렇게 사람이 몰려오면 인터뷰도 거절할까 했는데, 이것도 미리 약속을 잡은 거라 깨기 어렵고.
다른 지역까지 가서 뭘 해야 하는 건 아니라 오시라 했다.
“아이고 또 뵙습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이야, 정말 대단하시네요. 선생님의 스승께서도 사람 한 분 구하시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명승 선생님이 전주를 넘어 북쪽으로는 계룡에 남쪽으로는 지리산에까지 적수가 없다 평가를 받은 시초는.
구청의 공무원 분의 큰 질환 몇 개를 맞춘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그리고 그 인터뷰 역시도 이 뉴전북신문에서 딴 적이 있다.
“이번에 절 인터뷰하는 목적이, 그…. 지역의 젊은 소상공인을 소개하고 뭐 그런 거라고 하셨나요?”
“예 왜 사주를 하게 되셨는지, 뭐 선생님께서 가진 사주에 대한 비전이라거나 생각 그런 걸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자 우선 왜 이 길을 택하셨는지.”
“뭐…. 먹고살 게 이 길뿐이 없어서…. 라고 말하면 기사 쓰기 난감하겠죠?”
“그냥 말씀하셔도 됩니다. 젊으신걸요?”
이걸 왜 젊다고 포장하나.
먹고살 길 없어서 직장 찾고 직장 못 찾으면 별수 없이 자영업이지.
“그럼 진짜로 그렇게 적어 주셔도 됩니다. 사실 이 길을 걷는 것을 권장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예 다음으론 선생님이 하고 계신 일, 즉 사주에 대해서 좀 간결하게 설명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태어난 생년월일시에 들어 있는 다섯 가지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섯 가지 복이라 하신다면 뭐가 있을까요? 재물, 명예?”
“그런 것도 있지만 저는 타고나면서 가질 수 있는 가족, 그리고 살아가면서 얻는 가족, 그리고 스스로를 말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빠운이 강력하다. 돈을 잘 버는 집안.
엄마운이 강력하다. 엄마가 잡 들여 제대로 공부시킨 자식.
나의 운이 강력하다. 그 강한 자존감에 사람을 매료시키는 인물.
배우자의 운이 강력하다. 이성조차 설득시키고 납득시킬 재간꾼.
자식운이 강력하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삶의 목표가 남은 사람.
이렇게 말하니 기자 양반이 리액션이 좋다.
“왠지 다 납득이 갑니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간다. 이야.”
나이 자신 양반이라 자식은 있나 보군.
“저게 다 있으면 복인 거고, 없으면 다른 게 좀 더 강한 것이 삶이지요. 아버지가 강하면 어머니 대신 교육에 적극적인 바 더 남성적인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 되고.”
“아하 예, 이게 사주만의 뭔가가 아니고 그런 인문적 개연성이 있는 거였군요.”
“부모운이 모자란 사람이면 받는 사랑보단 주는 사랑에 익숙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족을 위해서 정말 힘들게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일해서 만든 가족인 자식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저러하다.
다만 받는 사랑이 없어서 줄 줄도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나.
이어 말할 반대인 경우와 대조가 되라고 일부러 저리 말했다.
“부모운이 강한 사람이면 부모가 제공하는 울타리가 높고 크고 받는 사랑에 익숙하여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가족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죠.”
시집 장가 안 가고 부모 곁에 사는 캥거루족이 저러하다.
“저걸 기준으로 조금 세분화해서 판별합니다.”
물론 저런 신념이 있긴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가족 이야기를 하면 감성을 자극하니까.
사람들이 동조해서 틀려도 맞다고 여길 가능성이 높아 자주 쓴다.
인터뷰를 마치고, 정리하는 차에 기자가 물었다.
“그러면 선생님 기사는 그냥 실명으로 내겠습니다?”
“어, 아뇨.”
“그러면? 혹시 호가 있으신가요?”
유명 역술인들은 죄다 호가 있다.
제산, 자강, 도계.
대전한밭신문의 충청 대망론 인터뷰와 기고문은 이런 걸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전주거사’ 혹은 명승철학관 관장, 정도로 퉁치는 게 가능했으니까.
명승 선생도 본명은 명승헌 씨다.
좀 귀찮아 지은 티가 나긴 하지마는 명승 거사라는 호가 있는 것이다.
호를 댄다는 게 건방지기는 하는데.
나는 아직도 사주의 증명력을 신뢰하진 않는다.
진리여야 믿는데, 진리까지는 아니다.
그 옛 학문이 시사하는 인간에 대한 통찰 능력 정도라고 본다.
“어 지금 지어도 되나요?”
“지금요?”
문득, 날 사주로 이끌어 준 역술인의 검 주인공 놈이 떠올랐다.
많은 이의 마음 속에 남아 살아가길 바랐지만.
작가인 내 글 놀림의 실패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기지 못한 그놈.
그놈의 정체성도 역술인이었다. 검객을 더했을 뿐.
그건 못난 저자인 나라도 이어줘야 할 이름이지 않을까.
“명관 거사, 명관 선생이라고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명승 선생님과 비슷한 느낌도 드네요?”
“스승도 신념과 사상을 주는 어버이 아니겠습니까?”
두 가지를 그대로 이을 생각이다.
명승 선생도, 결국 빚을 보지 못했던 내 졸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