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59화 (59/211)
  • #59. 회장에게 보내는 선물

    설은겸을 보니 문득 생각난 사람이 있어서 노래를 읊었다.

    이게 되네?

    “자 손은 이렇게.”

    “이, 이렇게요?”

    “어 볼 옆에 주먹 쥐고 딱 붙여서, 네 잘했어요.”

    시켜 보길 잘했다.

    “뭐, 뭐 하시는 건데요!?”

    특) 복종은 그 사람의 자아운과 종교운, 활동운에 달렸습니다.

    천을, 천덕, 월덕이 보좌하는 경우에도 회피 가능합니다.

    아 9레벨 갖고는 안 되는 정신 장벽이구나.

    설은겸은 몇 가지 따라 하다가 기겁한다.

    안 먹히길 시작하는 걸 알아서 수습에 들어갔다.

    “자 이제 안 울 수 있죠? 아, 야야야.”

    제대로 꼬집어 비트네. 아픔.

    “이런 걸 왜 시키시는 거예요?!”

    “자, 감정을 돌리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슬픔과 우울이었죠. 그것을 아주 훌륭하게 저한테 분노로 토로하셨어요. 이제 울고 싶진 않죠?”

    “아? 어….”

    울 용기를 준다고 해 놓고 말 돌리기인데 그럴싸한가 보다.

    “슬픔을 다른 감정의 발산으로 훌륭히 해소한 겁니다. 어때요? 이제 부끄럽지도 않고 후련하죠?”

    “어, 음…. 아. 그렇네요?”

    쌉소리다.

    종교운 9레벨의 ‘용화미륵천부경’ 효과 보려고 몰아간 건데.

    정신적인 능력이 나름 강력한지 먹히지 않는다.

    “근데 샤샤샤 무지 귀엽네요.”

    “그거 어디까지 하시나 보게 그냥 따라 한 건데요?”

    “오 저한테는 그런 거 보여 주시는 거네요?”

    설은겸은 볼을 한 번 손을 대더니 내가 못 보게 얼굴을 휙 돌린다.

    “그, 그건 뭐 기본이죠. 원래 그런 일을 하려고 했으니까!”

    “눈물도 그냥 보여 주면 되잖아요. 왜 그랬어요?”

    “이거요?”

    설은겸은 고개를 돌렸는데 한쪽 눈에서 바로 또르르 눈물이 떨어진다.

    “오.”

    연극영화과 뻘로 간 건 아니구만.

    “이거랑, 어에엫헹엥 으허허헣. 이게 같진 않거든요?”

    확실히 그렇네, 얼굴 막 안 썼으면 좋겠다.

    눈물 또르르 할 때는 추함이고 뭐고 작용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아무튼 그런 감정을 대도 부끄러울 거 같지 않은 초월적 존재를 사람들은 갈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찾아와 보곤 하죠. 없을 거라 생각은 하지만 있었으면 좋겠다 하면서요.”

    “왜 또 바로 진지해지세요?”

    “그럼 장난 계속 걸까요?”

    “음, 아뇨. 이게 좀 더 전문성 있어 보이시네요?”

    그렇다니까, 폼을 좀 더 잡았다.

    “이분은 어찌 됐건 인류의 해결책을 제시는 해 준 분이니까요.”

    “어떤 해결책을 줬을까요. 세계사만 봐도 그렇지 않던걸요. 오히려 분쟁을….”

    아마 수사나 한 명 계시고 있을 듯한 빈 성당이라지만.

    십자가 앞에서 까는 건 패기가 넘친다.

    “지키기 어려운 해결책을 주시긴 했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아아.”

    “그리고 그게 됐으면 지금 이런 세상 아니겠죠.”

    “사랑이라…. 그게 정말 해결책일까요?”

    “해결이 되긴 될 겁니다. 사랑이 안 되는 거지.”

    “왜 안 될까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저기 매달려 계신 분밖에 없었을걸요.”

    파고 들어가야 하고 확실해야 하는 성격이 있네.

    성격이 할배 닮았다.

    “나가죠. 온풍기 안 틀어서 허벅지 시린데.”

    설은겸과 성당을 나왔다.

    안 그래도 사랑 대담이라서 뭐 할 말이 딱히 없었는데.

    용건 슬슬 말해 주지 않을래?

    민망하다.

    “사랑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저는 연애운이 어땠을까요? 사주 볼 때 그건 안 여쭤본 것 같네요.”

    줘 팰 수 있는 소재를 주네.

    굳이 이야기 할 이유 없다 생각해서 말 안 하고 있었는데.

    “연애를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라서 어렵습니다.”

    “예?”

    “그렇다고요.”

    그 한마디 하고 말았다.

    그런데 설은겸은 더 파고 들어온다.

    “무슨 말씀이세요?”

    “더 알고 싶으세요?”

    “그럼요. 물론이죠. 딱 그 말만 하고 그치시면 어떡해요.”

    그건 뭐 좀 유서 깊은 절단신공이라.

    “말씀 안 듣는 게 좋을텐데.”

    “왜요? 저한테 뭐 문제라도 있나요? 사주가 문제인가요.”

    “아니 그런 것보다….”

    자꾸 뜸을 들였다.

    이건 좀 건방지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이라서.

    “어떤?”

    “저는 지인의 사주를 꽤 잘 봅니다.”

    지인, 친구 등이 내게 사주를 보면 그 지인의 인생을 거의 끝까지 털어 버리는 게 가능하다.

    내가 쥔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설은겸은 이미 사주를 알고 인생도 아는 사이.

    관찰과 행동으로 상당한 결론이 도출되는데 심지어 좀 은밀한 것까지 추측이 가능하다.

    “잘 보면 좋은 거 아니에요?”

    “어쨌건 남이 말하기 싫은 것들을 끄집어내서 이거 맞죠? 한다면 기분이 좋을까요?”

    “이미 그렇게 하셔 놓고는.”

    “뭘 더 캐내면 만족하실까요?”

    싱글싱글 웃으며 으름장을 놨더니 멈춘다.

    설은겸 아버지 죽음을 캐치한 게 나로서도 역대급 눈치였는데.

    그걸 아니까, 섣불리 덤비진 못할 것이다.

    설은겸의 연애운 이야기를 하면 아마 한 시간은 혼을 낼 것 같다.

    미모에 반비례한 솔로 시절이 연애 고자임을 증명하며.

    이를 트집 잡아 공격하면 울릴 수도 있다.

    “……어.”

    “우선 용건부터 들읍시다. 연애가 중요한 것도 꼭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설마 벌써 시집가래요?”

    “그렇기는 해요…. 그치만 날이, 어 그러니까.”

    카페에 앉아 음료를 시키고 앉았다.

    연인들이 많긴 많았다.

    “그런 분위기에 휘말리는 사람이었다면 부추겨서라도 누군가 만났겠죠.”

    “그렇긴 한데, 분위기를 안 타진 않아요.”

    그게 참 평범한 겨울철 하루에 불과한데 분위기가 조성되니까.

    그래야 한다 싶은 게 있긴 한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로 몰아보려는 게 보였고 눈치 깠는데.

    진짜 선생님처럼 따른다면, 학창 시절 어른 선생님을 따르는 느낌.

    그 정도 이상으로는 보지 않는다.

    이건 상대의 연애운, 연애력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남자운 LV1이나 될까.

    “그럼 무슨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나요.”

    “저 할아버지가 일을 두 개 중 하나 맡으라고 하셔서요.”

    “어떤 일이죠?”

    “스코틀랜드 글렌모데아 증류소 인수팀에 들어가 보라고 하셨어요.”

    설양훈은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증류소를 인수하려 하고 있었다.

    주세가 무거워서 아무리 한국인들의 소비력이 선진국 국민들의 격에 맞다 해도 고가 위스키 시장이 가능성이 있을까 의문이긴 한데.

    그 양반 의지가 워낙에 강하다니까는.

    그게 설은겸에게 넘어온 모양이다.

    “오 축하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일을 시켜 보려는 모양이군요.”

    “그런데 한 가지 제안을 더 주셨거든요.”

    “무슨 제안인가요?”

    “광고 모델을 해 보라고 하셨어요.”

    “어울리네요.”

    “전 뭘 해야 할까요?”

    “둘 다 안 된답니까?”

    “하나만 하라시는데요….”

    둘 다 못 할 이유가 없는 일인데 퀘를 주는 쪽의 의도가 그거라면….

    전형적인 시험이다.

    “시험이네요.”

    “그렇게 보이시죠 선사님도?”

    “예.”

    “그건 그냥 개인적 판단이세요, 아니면 사주로 보시는 거예요?”

    “굳이 사주로 보자면…. 흠,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하고 싶은 일 하세요.”

    “해야만 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너무 답이 뻔히 보이니까. 함정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뭔가 이건 당연히 안 고르겠지 싶은.”

    거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영감탱이가 날 향해 내는 문제 같다는 느낌도 든다.

    내가 설은겸 만나는 거 알고 있잖아.

    “그러면 해야만 하는 일을 하십시오.”

    “역시.”

    대놓고 역배를 유도하는 듯한 질문.

    그러면 그냥 의도를 만족 못 시켰다 해도 정배를 고르는 게 낫다고 봤다.

    “잔인하게 말씀드리자면 연예인 미련은 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왜…요?”

    가망이 없다고 보지는 않는데, 단념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

    저 질문은 ‘너 딴따라로 살래.’, ‘회사 일 해 볼래.’의 질문이고.

    설은겸도 답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걸 굳이 물어볼 정도면 아직 미련이 있다는 이야기다.

    “할아버지가 좋은 말로 말씀하셨겠지만, 은겸 양이 여전히 개인적인 일에 미련을 못 놓고 있다는 걸 간파하신 겁니다.”

    “그럴까요?”

    “그리고 저한테 와서 물어볼 것도 예상하신 것 같네요.”

    사주상.

    설은겸의 사주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잘된다.

    이건 어느 사주가를 붙여도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주로 사람 판별하는 나한테 묻는다면 후자를 유도한 것으로도 읽힌다.

    손녀딸 험한 일 시키고 싶지 않은 것도 할배 마음일 것이고.

    근데 사주 대신 정론 드립을 쳤던 나한테라면?

    “으, 음….”

    설은겸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것 같다.

    “둘 다 하고 싶어 죽겠나 보군요.”

    “네…. 기업에서의 위치와 대중적 인지도를 다 얻을 수 있는 방법 아닐까요? 제가 뭐 그렇게 바쁜 사람도 아니고.”

    “그리고 나이가 어리니까 비상하게 떠오를 방법이기도 하고, 커리어도 필요한 거죠.”

    “네, 정리 감사해요.”

    그나저나 영감이 은근슬쩍 날 재네.

    여기서 뜻대로 비위 맞춰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마는.

    심오하게 짜인 2지선다의 덫인 것 같으면….

    그냥 후퇴하거나 막무가내로 돌파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럼 하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이거면 됩니다.”

    “어떤?”

    “이건 필살기입니다. 그대로 따라 하시면 돼요.”

    “네….”

    “아잉 할아버지이이이 나 둘 다 하고 시퍼요오오. 할아버지이이이. 이렇게 하면 됩니다.”

    “네에?!”

    “하세요. 이건 90퍼의 확률로 먹힙니다.”

    생떼,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는 안 먹히기가 더 어려운 비술이다.

    이걸 저 나이 먹고 쓰기가 어려워서 문제지만.

    오히려 저 나이에 쓰면 효과가 더 좋다.

    애교로 받아들이기 때문.

    “안 먹히면요?”

    “안 먹히면 그거 제가 그 영감님 앞에서 은겸 씨 대신 하겠습니다.”

    “뜨아…. 아니 안 그러셔도 될 거 같은데요.”

    “그럼 본인이 하셔야지.”

    “제가, 그걸 안 한 지가 한 십 몇 년이….”

    “몇 십분밖에 안 됐습니다.”

    “예?”

    “아까 가르쳐 드렸잖아요.”

    아까는 설은겸을 사주강화술 실험용으로 활용한 것인데.

    가져다 붙이는 게 되네.

    그냥 씨익 웃어 줬다. 손 올려 주면서.

    “어, 어어, 어어어.”

    “아까 했잖아요. 그렇게 하면 됩니다. 자 다시 한번 해 볼까요.”

    “그, 그만요. 이상하게 진짜 하게 되잖아요.”

    설양훈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 * *

    이브날 보육원 봉사를 마치고 현 기자와 사진도 찍은 뒤 내려오던 길이었다.

    옆구리 한 대 맞긴 했지만 설민혁은 나름 기분이 좋은 모양새다.

    “아까 그만큼은 내가 부쳐 줄게.”

    “됐다, 너랑 너네 아빠한테 이미 꽤 받았다.”

    “아이 그래도 그거 해서 얼마나 번다고.”

    “진짜 주지 마라.”

    내 돈으로 한 기부가 포인트 주는 거니까. 안 된다.

    “근데 사장님 생각보다 사람 냄새 나네. 이런 데 봉사도 다니고.”

    “술 냄새 나는 사람보단 낫지.”

    “그 이거 아마 당연히 사장님이 안 반길 이야기이긴 할 건데.”

    “그럼 하지 마.”

    하지 말라는데도 기어이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내 가게, 거기를 팔아야 할 것 같아.”

    “그걸 이제? 근데 넌 룸이 있으면서 왜 룸을 다니냐.”

    “아 그건, 가게마다 에이스가 다르기도 하고 우리 가게 애들이랑 하는 건 그 좀 그렇잖아? 대전에 있는 서울 애들 만나다 보면 강남에 있는 지방 애들 보고 싶고 또 그런 거 아니겠어.”

    “미쳤네.”

    “에이스 빼 가기라고 첨엔 욕도 먹었는데, 이젠 뭐 다 얼굴도 알아서 괜찮아.”

    안 물어봤는데.

    영업맨들이나 안 생겨요인 사람들이면 그런갑다. 라도 하겠는데 이놈은 참.

    “뭐 그럴 리 없지만 혹시 사장님이 좀 맡아서 해 보지 않겠어?”

    룸살롱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제안이었다.

    “내가 왜 니 똥을 닦겠니. 가능하면 쥐고 있지 그래?”

    설민혁은 가짜 유언장을 믿는 듯하나.

    설민혁의 수입은 매달 입금되는 용돈과 건물의 관리 사무소로 세를 받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건 실 소유하고 있는 유흥주점이다.

    뭐, 기업을 먹는 판돈으로 걸기엔 약소하다고 보지만.

    망한다면 다시 그 굴로 기어들어 갈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애들이랑 그만 어울리라는 게 그 영감 명령이라서.”

    “친구들 아니냐.”

    “친구들…. 그래 맞지, 친구들이기도 하고 아는 동생들이기도 하고.”

    급을 높여 나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같이 놀던 친구들은 이미 거슬리는 존재가 된 모양.

    자수성가한 흙수저가 상류층이랑 놀고 있는데 시골에서 올라 온 구질구질한 어릴 적 친구가 아는 척할 때의 느낌이다.

    설민혁은 돌아서 나오던 보육원을 본다.

    “오늘 보니까, 애들이 참 그래, 버려졌다는 걸 수긍을 못 하더라. 정말 끝까지 못 하겠지 싶어. 나도 그랬던 거 같고.”

    잡설과 서사가 있지만, 어떤 결론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사람을 잘 버리는 법이 알고 싶다는 거냐?”

    “잘 헤어지는 법, 이라고 하면 안 될까?”

    사주 그대로의 인간이었다. 장사치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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