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52화 (52/211)

#52. 철학관이 터지고 있다

누가 해 보자고 했냐고 한 말에 소녀는 대단히 당황한다.

“어, 그, 그게요. 저기, 어, 아닌데요.”

반응부터가 뻥이구먼.

“뻥 치시네, 캐스팅 어디서 됐는데요. 서울 갔었어?”

“아, 아니오.”

“여기서 받았죠?”

“네, 네, 네 그랬어요.”

“엔터 사업은 본사 죄다 서울에 있는데 오디션 같은 걸 보러 가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다고요?”

엔터 사업은 본사 죄다 서울에 있을걸?

무슨 전주까지 내려와서 캐스팅을 하나, 말이 돼?

엔터 사업 하나도 모르지마는 굳이 여기까지 오진 않을 것이고.

지방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는 오디션이나 그런 건 열겠지.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 캐스팅한 사람, 학생 칭찬 많이 하죠.”

“어, 네.”

“막 교우 관계 그런 거 상담도 해 주고?”

애들이 인정에 목말라 있다는 걸 이용한 사람들이 있다.

인정을 해 주면 아이들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걸 악용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면서 혹시 얼굴이나 문신 사진 같은 거 보내고 그러진 않나.”

“보내…요.”

참말로, 이거 사연이 대전서 오픈톡으로 사주 봐 드렸던 룸 누나랑 너무 똑같아서 할 말이 없다.

청소년 때도 돈 벌 수 있을 법한 일을 뭐 같이 해 보자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 사람이 가족과 학교보다 자길 더 인정해 준다 생각이 들 때.

“그 어디 회사라는데요?”

“되게 유명한….”

들어보니 나도 얼추 들어 본 듯한 회사 이름인데.

직접 전화를 걸어 봤다.

“네 수고하십니다. 아 다름이 아니오라, 혹시 예 이런 이름의 매니저가 있나요. 그리고 요즘도 길거리 캐스팅 같은 걸 해요? 아 안 하죠. 네, 네 알겠습니다. 없대.”

“…어.”

당연히 그 회사 직원 아닐 거라 생각하고 연락했다.

뻔한 사칭이잖아.

보이스피싱이 괜히 서울중앙지검 검사라고 문자 보내는 거 아니다.

권위 있어 보이잖아.

“전화도 안 해 봤어?”

“통화가 무제한이 아니라서.”

궁색한 변명이긴 한데 청소년 요금제 중에 아주 싼 건 그럴 수도 있어 더 캐묻진 않았다.

정확히는 말에 혹해서 아닐 거라는 자기 마음속 의심에 물을 끼얹은 거겠지.

“그러면 그 뭐 사진빨이 잘 받나, 영상빨이 잘 받나 하면서 그 학생한테 뭐 보내 달라고 안 해요?”

“해…네요?”

해네요는 뭐야? 당황했나 보네.

“그 뭐 혹시 옷 살짝 풀고 그런 사진, 영상?”

“교복 입은 거….”

“야 이 그거 변태잖아.”

저기서 조금만 더 가면…. 끔찍할 뻔했군.

“아, 그쵸? 이상했어.”

“그래서 그 오빠 마음에 들어요?”

“아, 아뇨. 아저씬데요.”

“몇 살 아저씨.”

“그 스물다섯 살.”

그 나이에 아저씨 소리 들으려면 면상의 상태가….

“뭐 어떤 놈입니까. 얼굴 사진 보냈으면 좀 보여 줘 봐요. 그놈 거.”

“그게요.”

“그 아무한테도 보여 주지 말라고 그랬겠지요. 알겠습니다만. 보여 주세요.”

학생은 주섬주섬 휴대폰의 이미지 사진을 보냈다.

연예인 매니저의 이미지를 시궁창에 처박을 것 같은 면상이었다.

왠지 아는 지인이 알 것 같기도.

내가 먼저 연락한 적도 없고 아주 긴밀해지긴 좀 꺼려지는데 그래도 한번 전화해 봤다.

[아, 형 안 그래도 전화 드릴라고 했슴다.]

“오랜만이다. 사주 물어볼라고?”

[아이 그걸로만 그러겠슴까? 한잔하고 음악홀 풀코스 함 모셔야지요.]

지역 향토 사단에서 복무했고.

그 덕에 부대 상근 중에는 같은 지역민들만 있었다.

상근 후임 하나가 여자 둘을 임신시키고 죽은 뒤.

상근들의 사주 러브콜이 쏟아졌고, 친분을 좀 쌓았는데.

그중에 논두렁들이 몇 있었다.

뭐 말로는 좀 유명한 형님 모신다는데, 알고 싶진 않고.

‘에휴 너 어머니 일찍 여의어서 그랬구나.’

그중에 사주로 어머니 유무를 맞추고 동정해 준 놈이 있었는데 그놈이 날 꽤 열심히 따랐다.

많이 안 배운 놈이라 사주로 농락하기도 쉬웠고.

물론 나는 좀 그쪽이 좀 법의 경계를 넘어 방탕해서 동생이어도 안 놀고 싶어 매번 대전이라고 약속은 미뤘는데.

지금은 전주다.

“다름이 아니라, 뭔 여중생한테 매니저라고 캐스팅하겠다면서 집적대는 이상한 놈이 하나 있거든. 사진도 있고 명함이랑 있는데 너 혹시 아는 앤가 해서.”

[아 보내 주십쇼. 확인해 보고 바로 전화드리겠슴다.]

“어 고맙다.”

사진을 받아 전송했다.

그러자 얼마 안 가, 다시 답신이 왔다.

이건 들으라고 스피커폰으로 켜 놨다.

[아 이 개새끼, 유명합니다. 교복 입은 애들 명함 주면서 매니저라 하고 X먹고 다니는 놈.]

말이 참 곱다.

그 말을 들은 학생이 ‘히익.’ 할 정도니.

효과는 있는 듯싶다.

나 교생 때도 학교에 이런 놈팽이가 여학생들 접근해서 연락처 얻고 다닌다는 소리 들었건만.

이런 놈이 아직도 있었네.

“매니저 아니지?”

[X같은 새끼지 말임다. 그 일찐 존만 한 애들 줘 패 가면서 그 여자애들 몇 상납시키라 시키다가.]

나이도 얼마 안 먹은 놈으로.

졸업한 학교 쪽에서 후배들을 알음알음 타고 내려가서는.

걔들하고 어울리는 일진 여자애들을 상납받는다는 쓰레기였는데.

그걸로 한 번 입건 된 뒤에 매니저 행세하며 평범한 여자애들한테 그런다고 한다.

“이 자식 고소하면 뭐 별일 없겠나?”

[아 그 병신입니다. 학교에 경찰관 몇 돌아다니니까. 쫄아서 학교가 아니라 애들 돌아다니는 데서 그러고 있슴다. 그래도 불안하면 제가 대신 조져 드림까?]

애들 노리는 것부터가 병신일 거라 생각은 들어 크게 겁은 안 냈지만.

애한테 보복하려 들면 골치 아프니까.

“어 뭐 그러진 말고 신고만?”

[신고 넣어 드리겠슴다. 하는 짓이 저래서 저쪽 식구들이 반기지도 않슴다.]

얜 그 식구들이 어케 가르치길래 아직도 다나까를 쓰냐.

“어 고마워.”

[에이 고마울 게 뭐 있습니까. 담에 궁합이나 봐 주십쇼. 풀코스로다가.]

“그냥 밥이나 먹자 임마.”

좀 부담스럽다.

사는 세계가 워낙에 달라서.

넌 그래도 심성은 착하다. 그냥 엄마가 안 계셔서 그 울분 푼다.

이런 덕담을 해 놔서는….

잘 따르는 건 고맙긴 한데.

스피커폰으로 다 듣게 했지만 통화를 마치고 한마디 했다.

“그렇다네요?”

“어….”

왠지 모르겠지만 이 소녀는 또르르 눈물을 흘렸다.

꿈이 깨어져서인지, 속아서 분해서인지는 혹시나 맘에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내버려 뒀다.

일반적으로 소녀들 호감 살 외모는 아니다.

근데 인터넷에서 본 이상하게 미인들 잘 만나는 양아치 스타일이라.

설마 뭐 좋아서 그랬겠거니…. 는 모르겠네.

의외로 저런 스타일이 미인도 잘 만나고 여자도 많더라고.

“왜 저 이렇게 바볼까요.”

“아닌데. 공부 잘하는데.”

“이런 거에 속아서… 엄마랑 싸우고.”

어허이….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태도는 타인의 귀감은 얻지만.

그 사람 스스로의 정신 건강에 좋은 게 별로 없다.

그냥 ‘응 내 잘못 아님.’ 이게 되는 뻔뻔한 놈이 정신적으론 더 건강하다.

왕이 ‘이게 다 짐의 부덕의 소치요.’ 이거 하면 신하들은 ‘성군이시다.’ 하며 좋아하겠지만 왕은 성질나지.

그리고 그 정신의 근본이 안정되지 않으면 이 소녀는 그런 일을 또 맞이할 것이다.

“어 그냥, 너무 착해서 그래요.”

“착해요? 제가요?”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니까. 남의 기분을 맞춰 주려고 하다 보니까. 남이 좀 더 기분 좋은 반응을 보려고 다 해 주죠.”

“어… 그런가요?”

“그런 게 은연중에 드러나니까. 얜 만만하겠거니 하고 붙었는데 좋은 말만 해 주고 그러니까. 그 좋은 말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아, 아아. 그랬어요. 맞아요.”

“누가 좋게 얘기해 주는데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거니까. 근데 그 좋게 얘기해 주는 사람이 그저 의도가 새까맣던 것뿐입니다. 그걸 아직 판별할 안목이 아직은 없구요.”

“그런 안목은 어떻게 찾아요?”

괜히 이딴 사주 입문시킬까 봐, 언급은 안 했다.

좋은 말 해 주는 사람 가리는 안목은 사람이 살아 봐야 아는 거다.

“더 크면 알게 될 건데, 혹시 모르겠다 싶으면 그 사람 사주 들고 가져오면 제가 알려 줄게요.”

“제가 사주가 그래요?”

5천 원 복채 치고 되게 많이 열심히 봐 주고 있다만.

사주강화술 앱이 울린 거 보니, 진로 상담으로 포인트 좀 쌓인 듯.

“맑은 물이랬죠?”

“네, 네, 네.”

“그럼 다른 사람들이 보여 주는 반응을 그대로 거울처럼 똑같이 돌려주고 싶은 겁니다.”

“싫은 사람한테도 그걸 못 하는데….”

“맑은 물이라서, 너한테 돌을 던져도 물 튀기는 것밖에 못 해요.”

“오, 와아아. 그래서 그런 아저씨가 붙은 걸까요?”

“뭐 무서워 보이는 아저씨가 하는 말이니까. 안 그럴 거 같은 사람이 좋은 말 하니까, 더 솔깃했던 거죠. 사람이 원래 그래. 괜찮아.”

짝!

아이 깜짝이야.

소녀가 박수를 갑자기 쳐서 화들짝 놀랐다.

“맞아…어, 어어어. 도사님 최고예요. 와아아, 어떻게 이렇게 알아요. 사주 진짜 신기하다.”

애들은 맞으면 너무 잘 믿어서 좀 그렇다.

맹신할 만한 학문은 아니다.

이 친구는 비슷한 표본의 사주를 알아 그 사람들 인생대로 읊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청소년 상담의 형태로 하고 있다.

“근데요. 제가 왜 엄마한텐 안 그랬을까요?”

“그건 그냥 투정이죠. 남의 기분을 맞춰 주긴 하지만, 내 기분도 누군가 맞춰 줬음 싶을 때가 있잖아요.”

“네, 네.”

“그게 엄마는 가족이니까.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부린 거죠. 그럴 수 있어요.”

“아….”

“아직 어리니까. 괜찮습니다. 나중엔 그러지 말아야겠다 하면 됩니다. 가서 엄마 미안해에 하면 돼요.”

“그러면 될까요?”

100퍼 확률로 엄마 맘에 드는 법 하나 있다.

“이제 열심히 공부할게, 까지 하면 덧붙이면 딱 좋아.”

“크흣. 아하하하하하. 그러겠다.”

“그 나중에 정말 내가 연예인이 해 보고 싶다. 그럼, 그 연극영화과 다녔던 언니 연기자였던 엄마 있는 언니 하나 있거든요.”

“어, 네에?”

“거기라도 한번 찾아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 봐요. 진짜로 해야겠다. 생각이 들면, 일단 공부하고. 공부는 진짜 괜찮게 할 거야. 연극영화과 목표로 공부합시다.”

설은겸 네 집구석이 엔터 지분이 좀 있는 걸로 안다.

엄마도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 조금 했었고.

설은겸도 연극영화과 진학해서 공부했으며

아버지가 엔터사를 소유하진 않아도 지분을 꽤 가지고 있기도 했다.

딸을 텔레비전에 출연시키고 싶었던 의지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 보유 주식이다

그 집도 아버지 여읜 뒤로는 그 꿈이 접혔고.

이 친구는 돈이 없으니 그런 뒷바라지가 안 되겠지.

“근데 저 정말 공부만 해도 돼요?”

“내가 보기엔 배우상이야. 아이돌 아니야. 그러니까 연기 가르쳐 주는 학과 목표로 공부합시다. 조금만 멀리 보자, 넌 잘돼.”

“정말요? 믿어도 돼요?”

“아 물론이지, 공부로 잘 안 되면 여 아저씨 한 대 갈겨, 돈 이거 돌려줌.”

“5천 원만 돌려주는 건 재미가 없잖아요?”

“야 이 그걸로 고리대금을 할라 들어? 넌 잘되면 얼마나 가져오나 두고 보자.”

“아하하하하하.”

다시 꺄르르 웃는 모습으로 돌려보냈다.

내 가게에서 들어오는 사람은 심각한 표정이어도.

나갈 때의 사람은 즐거웠으면 한다.

* * *

12월, 철학관 성수기 시작.

점술 수요가 폭증하는 시즌이다.

이건 철학관 하기 전, 무료 사주 할 때만 해도 이러했다.

생전 연락 없던 군에서 만났던 놈들 여럿이 연락을 취해 온다.

사주 좀 봐 달라고.

그리고 명승철학관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 나중에 예약을 하시고 오시면 제가.”

“기다릴 건데요.”

“기다릴 거예요.”

줄 섰다.

그것도 학생들로.

“날이 추운데요.”

“괜찮아요.”

“안 추워요.”

롱패딩 군단 15명 정도가 줄을 서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정아진, 그 양아치한테 잘못 낚일 뻔했던 중학생.

그 친구발, 학생들의 러시가 기말 끝난 날 쏟아져 명승철학관 앞이 북새통이 되었다.

나는 이미 그 전부터 겨울 성수기를 예측하고.

나는 꽤 발 빠르게 수요에 맞게, 패딩류 걸 옷걸이.

몸을 녹일 따스한 음료 제공할 커피 머신.

전기난로.

예약 및 광고용 소셜 네트워크 계정을 팠다.

마침 핸드폰과 번호도 하나 더 생겨서 예약 전문 전화를 받는 건 문제가 아니었으며.

철학관 내에 대기자 3~4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인테리어 및 가구 재배치까지 끝냈다.

…문제는 손님이 너무 많다.

이런 걸 수요 예측 실패라고 하나.

나름 대비할 만큼 했는데 그 대비가 소용이 없으니 좀 억울하네.

“그래도 최대한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괜찮아요. 쟤네랑 안 친해요.”

“사주나 잘 봐 주세요.”

명승철학관엔 골방 옆 창고엔 전기난로가 하나 더 있어서 틀어 놨지만.

손님들이 앉을 자리는 소파 하나에 불과하다.

손님을 최대 4인 이상 수용이 불가능하다.

이 추운 날 보일러도 안 드는 땅바닥에 둘 수도 없고.

“총각!”

“예.”

“이거 안 쓰는 전기장판. 바닥에 깔면 따뜻하려나. 돌바닥인데.”

“아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집주인 아줌마가 버리려던 전기장판을 하나 줬다.

이건 명승철학관 돌바닥에 놓을 예정.

난로 가지고는 차가운 돌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냉기를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얗게 불태웠음에도 불구하고, 몇 분은 되돌려 보내야 했다.

A4용지 가위 빌려서 잘라서 자필로 특별 할인 쿠폰 1만 원 적어서 보냄.

“…빡세네.”

난 본디 한 사람 당 거의 4~50분씩 사주 봐 준다.

사람들 사주가 뭐 인생에 극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고 오는 사람 별로 없다.

그냥 말을 안 해도 자기 인생을 보고 관측하는 역술인한테 뭔가를 털어놓고, 응원받고 싶은 거라.

상담 시간이 길수록 사람들은 ‘좋은 역술인’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장사가 잘되는 건 물론 기쁜 일이기는 하나, 물량이 감당이 안 되네.

처음으로 확장 이전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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