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미인의 가슴앓이.
설은겸은 동생이 둘 있었다.
“아홉 살이오?”
고교 졸업하는 여동생 한 명, 초등학생인 남동생 한 명이다.
설양훈에게 장손 드립 친 게 민망해질 정도의 나이다.
차남 쪽에는 설은겸보다 한 살 어린 나이이자 나이로는 장손인 사촌 남동생이 있다고 한다.
차남이 폐출되었다지만 모를 일이다.
차남이 밉다고 손자가 미운 것은 아닐지도 모르니까.
영조가 그런 적 있지 않은가.
“귀엽죠? 공~룡.”
잠깐 남동생 자랑 좀 들어줬다.
한 3~4세쯤 공룡놀이 하는 동영상을 틀어 준다.
“안쓰러운데요.”
아홉 살 남동생이면 진짜로 아빠도 모르고 크겠네.
“안 그러게, 제가 잘 돌볼 겁니다.”
“일반 가정이면 전형적 팔불출 누나겠지만, 나중 일은 알 수가 없을 텐데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도와주셔야죠.”
“그렇다고 저한테 매달린다고 되는 일은 아닌데요.”
“선생님은 할아버지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진짜 울 할아버지 쇠심줄 옹고집이에요.”
“그러면요.”
진짜 계룡도 설은겸의 사주를 봤다면, 건설 물려주란 소린 안 했을 것이다.
화장품, 쇼핑 쪽을 사업 영역을 확장해서 먹으면 모를까.
그래서 설민혁 주려는 주류 쪽으로 역으로 들어가려는 모양인데.
주류도 사실….
그리고 내가 진짜 회장을 조종할 수준이 되려면 사주강화술이 어디 보자.
부하운이 레벨 8 정도가 되거나.
종교운이 레벨 8인데, 이건 효과를 보는 것 같지만.
친구운과 지지자운이 레벨 7~8 정도여도 가능하고.
만만한 노인네가 아닌데.
사주강화술을 통한 운세 뚫기를 하려면 자아운이 낮은 사람한테나 가능하다.
“네, 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설민혁을 도와 승계자로 만든 다음 지분을 받으세요.”
설은겸은 아연실색한다.
“네에?”
“설양훈 회장의 의중은 설민혁입니다. 결국 그 의중대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설민혁을 도와 그한테서 많은 걸 받아 내세요. 그리고 훗날을 노리는 게 정석입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나요?”
“고모들이 이겨 먹으면 가능한데, 그건 고모들과 그 남편들 자식들에게 가겠지.”
“으 고모들도 좀 별로인걸요.”
승자로 보이는 자의 등 뒤에서 버스를 타고 나중에 칼을 꽂는 전략을 쓰면 가능할 건데.
그거 외엔 방법이 없어 보인다.
내가 회장을 부하로 부리거나 설민혁을 조지면 가능하겠는데.
설민혁을 굳이 조져야 할 정도로 설은겸한테 뭐 받은 거 없고.
원래 될 놈 미는 게 보상은 적어도, 판돈 쉽게 먹는다.
회장을 부리려면 사주강화술이 모자라고.
그리고 회장을 부릴 정도면 나한테 그 돈 다 내놔 하지 뭐 하러 이딴 상속 분쟁에서 줄을 타냐.
“저는 설민혁을 가르칠 자신은 있지만 설은겸을 밀 자신은 없습니다. 그치만….”
“그치만?”
“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갖고 있던 지분? 주식 등은 다 누가 갖고 있나요?”
“엄마도 좀 갖고 있고, 셋 다 가지고 있어요. 근데 막내가 제일 많죠. 할아버지가 더 떼 주셨거든요.”
그럼 그 어린 손자가 대권이었던가.
걔가 나이 한 서른 먹을 때까지 회장이 살긴 진짜 어렵긴 하겠다.
설은겸은 결국 그 동생을 이끌어 주는 수렴청정, 섭정의 위치 그 이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근데 욕심이 그게 아닐 테니까.
지 하고 싶은 그대로 해야 되는 사주는 욕심이 정말 많은데.
욕심이 많은 건 나쁘지 않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겨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은 드물다.
어디까지 욕심이 터지는지 봐야겠다.
“그럼 엄마와 남동생, 여동생의 현금과 지분을 모아 손아귀에 쥐세요.”
“예?”
“당신은 지금 판에 끼려면 판돈이 있어야 하는데 든든한 시댁을 갖고 있는 세 고모와 할아버지가 뒷배인 설민혁을 이룰 세력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긴… 하죠.”
“체급을 높이세요. 그 어린 동생들이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합니까. 나중에 더 크게 돌려준다고 하고 모아서 참가하세요.”
전형적인 가족 돈, 형제 돈 다 모아서 꼬라박아.
집안 말아먹는 사주와 닮았다.
“그건 뺏는 거 같은걸요?”
“그거조차 이해 못 받을 수준이면 삼촌 고모들 그리고 할아버지랑 싸울 자격 자체가 안 되는 거죠. 가장으로서 가문의 대표로서 그러겠다고 형제들의 공감을 얻어 내 보십시오.”
“으….”
“쉬울 건데.”
“그게 왜, 쉽죠? 그런 적은 없지만 언니가 용돈 훔쳐가고 그런 집이랑 똑같잖아요.”
어린애 티도 못 벗었네.
나름 비장하게 학교도 관두고 이러는 거 같은데.
정신 무장이 안 되어 있다.
“세 남매를 잇는 건 현재 사실상 어머니뿐입니다. 그렇죠?”
“네 그렇겠죠?”
“당신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어릴 적부터 엄마처럼 될 거야. 하면서 살아온 기특한 장녀입니다. 그럼 당신은 아픈 손가락이 아니에요.”
엄마의 못 이룬 꿈을 이루겠다는 딸이면, 엄마가 안 좋게 보기가 더 힘들다.
그리고 아마 저 집은 전형적인 둘째만 천덕꾸러기인 집일 듯.
장녀는 장녀라서, 막내 남동생은 늦둥이라서.
“……좀 그렇긴 하죠.”
“그럼 어린 동생을 위해서 하겠다는 명분이면 충분히 엄마의 동의를 얻어 동생들의 돈을 수중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가족, 사업병 걸린 형제.
투자를 특히 엄마의 지지를 받아서 하니까.
가족 형제를 다 파탄 낸다.
그런 집 있을걸.
형이나 동생한테 돈 자꾸 해 달라고 압박하는 부모 때문에 부모랑도 사실상 연 끊고 사는 집.
실제로도 많이 봤고.
‘아이고 니가 형한테 돈 좀 줘라. 그래도 너네 형이….’
사업병 나서 아는 지인, 형제, 집안 돈 다 끌어 가는 가족.
거기다 노모가 이런 갑갑한 소리 하는 집구석.
근데 그런 사람 중에 약 10퍼가량, 대박 터지는 사람이 없진 않다.
거기다 상속녀잖아.
말아먹어서 인생 조져도 끝이 파탄이진 않을 거다.
운은 저런 망할 집 사업병과 비슷하긴 하나.
레벨이 다르니까.
자기들 딴에야 망하겠지만, 그게 서민들 눈에 망한 걸로 보이지 않겠지.
“그럴 수 있으면 저도 손녀가 큰일을 할 사람이라며 말씀은 드려 보겠습니다.”
엄마와 동생들에게 골고루 상속된 지분을 본인이 뺏다시피 모아서 쥘 수 있을까?
안 그러면 설정환 쪽 가문을 대표하는 대표자 자격 자체가 없다.
“동생들 돈을 걷어 오는 일을 잘했다고 하실까요? 할아버지가?”
“그리 생각하실 분입니다. 겁쟁이와 움츠리는 걸 싫어하십니다.”
“어….”
“제가 회사 일은 잘 모릅니다만 억대의 돈과 공사 대금이 묶이고 바로 결제가 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라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건물은 올라가죠. 그걸 하려면.”
“그렇죠. 투자한다고 납득시키고 일단 받아야죠. 치르는 건 돈을 더 줘 치르더라도.”
“예 투자를 이끌어 올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는 겁니다. 가족에게도 투자를 못 받으면 과연 누구한테 돈을 끌어오겠습니까?”
가족에게 믿음을 못 주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쓸모도 없고.
“그건…. 맞는 말씀이네요.”
“니 돈, 내 돈. 구분하여 옹졸하게 쥐고 있는 생각부터 버려야 할 겁니다.”
“오, 오오. 소름 돋아요. 저 이거 없으면 진짜 완전 껍데기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원래 돈 벌던 아빠 돌아가신 집안은 차 팔고 집 작은 데로 이사 가고 하면서 세간살이 다 줄인다.
외식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이 집도 뭐 비슷하긴 하려나 사람 사는 건 흡사하니까.
상속세도 비싸게 물었다는구만, 워낙 예기치 못하게 돌아가셔서.
“아버지운은 재물과 연관이 있는데, 아버지운이 비었잖습니까. 바깥일을 하실 양반이 비었다는 뜻으로 그러면 그 남은 재물이라도 움켜쥐려고 하는 게 본능입니다. 확장보다는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지죠.”
“아. 맞아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근데 아버지는 기업을 키운 인물 아닙니까. 아버지와 비슷한 공격적인, 확장적인 모습을 보여 주세요.”
“보통 자식에겐 다른 리더십을 원하지 않을까요?”
나름 예리한 지적이네.
자식이 완전 빼닮은 2탄인 경우가 생각보다 역사에 많지 않다.
“그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훌륭한 리더십을 보이시다가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거고 뭣보다 리더십의 공백기가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리더십을 싫어하셨던 분들이 있다 해도 점차 기억이 희석이 될 때입니다.”
“와, 말씀 진짜 잘하시네요.”
“지분 모아서 야망 보여 주세요. 그럼 그 다음 반응은 제가 한번 다음에 뵐 때 회장님 떠보겠습니다.”
“그래도 아홉 살 동생의 몫인데 그걸….”
“열두 살 많은 오빠가 있다 생각하고 돈 버는 오빠한테 오빠 나 옷 좀 사 줘…요. 접근한다 생각하면 무슨 무리가 있겠습니까? 동생에게 못 할 이유도 없습니다. 나이 차 적은 동생도 아니고.”
“애긴데.”
“구슬리기는 더욱 쉽죠.”
도덕적인 뭔가를 빼면, 제일 빼앗기 쉬운 상대다.
“어….”
“그래서 더 미안한 거겠지만, 진짜로 그 이상으로 돌려주면 상관없는 일입니다. 하고 싶다면 끌어다 배팅하세요.”
이런 투자, 가계를 멍들게 합니다.
“꼭 그래야만 해요?”
야망은 많으면서 머뭇거리길래 좀 갈궜다.
머뭇거릴 사안이긴 하지만, 그걸 머뭇거리면 의지가 없는 거지.
“안 그럼 어쩌시게요. 막연하게 할아버지 눈에 잘 들어야지. 할아버지한테 영향력 있는 사람한테 잘 보여야지, 이거밖에 없잖아요. 하시는 주류 사업에 좀 안다고 참견하는 거 말고 뭔데요. 지금 하시는 게? 술 먹기?”
좀 갈궜더니 설은겸은 아파 한다.
“으, 너무 후벼 파세요. 근데 다 맞는 말이라.”
설은겸은 가슴에 손을 올리고 이를 악문다.
이 집구석 내력 있나.
근데 흉통은 위장병일 가능성이 높은 편이고.
심장 관련이어도 여자들은 발병이 폐경 이후가 높으니 그건 아니겠지.
아 한데 꽤 예쁘네. 이거 가슴앓이가 아름다웠다는 게 서시였나?
“양배추 즙 드세요.”
“에?”
“그 나이에 무슨 벌써 속쓰림이야. 신경성 위장병 있나 보네. 에휴 나라도 적당히 갈궈야지.”
뭔 스물두 살 애가 벌써부터 윗병이 나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는 하는 모양이네.
“그, 가슴이 아픈데요?”
“술 먹다 취해서 자니까. 먹다 남은 안주가 소화되고 술 때문에 위산 역류해서 역류성 식도염이 생깁니다.”
“그런 거예요?”
“술도 할배가 주류 사업 한다니까. 급하게 뛰어든 티가 나네 배우려고 적당히 마시고 술 먹어도 한 몇 시간은 깨어 있다 주무십쇼.”
“혹시 위병이 있는 사주인가요.”
“예 그렇기도 합니다.”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
가만, 얘네 아빠가 급사한 원인이 그건데.
얘는 자기 흉통의 원인을 왜 몰라?
아버지가 그걸로 돌아가셨으면 가족력 생각해서 엄청 무섭지 않나?
젊어도?
나도 아버지가 스탠트 박으셔서 불안함에 흉통을 진단받으러 갔다가 받은 진단이 위염이었다.
그래서 사주강화술로도 심혈관 레벨은 나이 들면 무조건 10렙 이상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근데?
“아버지가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근데 왜 아가씨는 병원 안 갔어요? 가슴 통증 안 무서워요? 심장인데? 병명 안 알고 싶어요? 이게 오늘만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
“아.”
“아버지 사인이 그러면….”
눈빛이 순간 변하더니 설은겸은 지금까지 당당하게 눈 맞추고 이야기하다 내 눈빛을 피한다.
그리고 바로 말을 끊는다.
“어. 어. 저기, 죄송해요. 그건 안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요?”
“진짜로요. 그 부탁드릴게요. 헤. 정말요.”
웃으면서 배시시 부탁하네.
서시의 찡그림에 포사의 웃음 같기도 하고.
더는 파면 안 될 거 같아서 냅뒀다.
“알겠습니다.”
순순히 단념하자 설은겸은 무척 좋아했다.
“근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우와, 야…. 이래서 그런 거 보시는구나.”
“감탄사 고만 하세요. 부끄러우니까.”
“선사님 할아버지한테도요. 안 돼요? 아무한테도요. 오늘 얘기 말씀하시면 안 돼요.”
설은겸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면서 ‘쉿’ 했다.
“그런 거라면야.”
“약속?”
“예, 손님이 발설하지 말란 건 말 안 합니다.”
“선사님 그럼 제가 선사님 뵙고 싶으면 계룡으로 찾아뵈면 될까요? 아 근데 할아버지랑 마주치면 안 되는데.”
“저랑 더 마주치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네.”
영광이구만.
“왜요?”
“명쾌해졌어요. 뭘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저 선사님? 할아버지나 설민혁 씨랑 연락 계속하고 계세요?”
“네 그렇습니다만. 으잉!?”
왤케 남의 손을 막 잡냐. 얘.
다른 건 맞대 본 적 있어도 손 맞댄 적은 별로 없어서 흠칫한다.
“같이 가요.”
“어딜?!”
카페 바로 아래층에 휴대폰 대리점 있었다.
얼떨결에 끌려가 들어갔는데, 설은겸이 대뜸 말한다.
“이분 휴대폰 하나 해 주세요. 비싼 걸로, 최신형 일시불로요.”
“저기요?”
행동력이 너무 다급해서 일단 진정시켰다.
“네에?”
“복채라고 생각한다면 받겠지만 그래도 자급제로 가시죠. 남은 돈으로 주식이나 한 주 더 사세요.”
“아뇨. 이걸로 맞춰요. 거기선 안 팔잖아요.”
아 기종 다른 거?
대전엔 그런 곳이 없기는 하나, 그것도 전자 제품 종합 매장 가면 해 주긴 할 텐데.
거 꼭 써 볼까, 써 볼까 하면서 안 사게 되는 사과 쪽 물건이다.
“그냥 연락하셔도 되는데요. 휴대폰이 두 대나 필요하진 않은데.”
“아, 뇨. 제가 꺼려지거든요. 연락 드리고 싶은데 쓰실 수 있죠?”
“배워 봐야죠.”
준다는 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뭔가 이 성급한 추진력 하나는 맘에 들고.
“그리고 어디로 가면 되나요? 혹시 뭐 계룡에 따로?”
“집은 전주에 있습니다만.”
“아하, 거기로 갈까요?”
“사업장이 있는데, 거긴 회장님하고 설민혁 씨 둘 다 아니까. 뭐 뒷문으로 들어오시던가. 아니면 이렇게 단독으로 부르시면 됩니다.”
“연락드릴게요. 받아 주세요. 꼭이요? 네?”
“안 받으면 본 번호로 연락 주십시오. 손님 가리지는 않으니까. 말했잖아요. 야망 그냥 드러내도 돼요.”
설은겸은 헤헤 웃으며 답했지만 눈빛은 긴장하고 있었다.
“모르는 일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