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46화 (46/211)
  • #46. 연간회원권을 받다.

    부담이 큰 질문이다.

    설양훈 회장이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역술인의 미신적 안목에 판단을 일임하지는 않을 거라 본다만.

    그래도 누군가의 인생을 내 한마디로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도 있어서.

    몹시 조심스럽다.

    “계룡은 밀었다고 했죠? 저는 알겠더라고요. 왜 밀었는지.”

    “그런가요?”

    “나머지 한 분은?”

    “정신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사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정신적?

    정신과랑 사주 같이하시는 분 한 명 아는데.

    이름이 그 사람밖에 생각 안 난다.

    “아 혹시, 이형탁 교수?”

    “아, 알고 계시는군요?”

    대전의 사주명리학 관련 명사 중 아는 이는 이형탁 교수 그 양반뿐이다.

    다음에 올 일 있으면 온 김에 한번 인사나 드리러 가야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건 진짜 문제 아닐까요.”

    “그렇지만 선생의 판단을 듣고 싶군요.”

    이런 건, 내 의견 없이 진솔하게 말하는 게 나았다.

    “일단 제가 본 바로는 그릇은 크고 돈 벌 기질은 있으나, 겁이 많았습니다.”

    “…겁이 많았다고요?”

    설 회장은 크게 놀란다. 이렇게 놀라는 거 첨 봄.

    “아 되게 놀라시네요?”

    “처음 듣는 평가입니다. 패악질을 하는 꼴을 보면 그렇지 않은데.”

    “엄마랑 싸우고 3년을 찾아가지 않은 건 안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못 찾아간 겁니다. 나쁜 말을 뱉어 스크래치를 내놓고 그게 미안하고 엄마가 안 받아 줄까 두려워서요. 겁쟁이입니다.”

    “겁쟁이라, 성질만 고약한 줄 알았더니.”

    망나니보다 겁쟁이를 더 싫어하는구먼.

    망나니는 뭐 남자답다 싶은 거고, 겁쟁이는 찌질해 보이는 이미지가 있긴 하지.

    “제가 몇 대 때렸는데 저는 평가대로라면 함 치고받고 싸울 줄 알았거든요? 근데 때리는 대로 다 맞아요.”

    “아, 어. 허. 참.”

    부모가 미워 죽겠다면서 가출도 안 하고 집에 붙어 있는.

    고3 히스테리 수험생, 중2병 소녀 생각이 난다.

    “회장님도 문제가 있으신 겁니다. 자식을 아는 이는 아비만 한 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건 어디서 들은 말입니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충녕을 세자로 세울 것을 청하다. 요.”

    “그런 것도 읽나요?”

    만화만 봤죠.

    아 근데 전주가 원래 국립번역원, 전주사고실록 원본. 이성계 어진 이런 거 갖고 있어서.

    현장학습 같은 걸로 많이들 가르쳐.

    “그래도 그릇은 커 보입니다.”

    “겁쟁이가 그릇이 크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거 겁쟁이 하나로 되게 평가가 하락한 거 같아. 좀 미안하네.

    할배가 그 단어 하나에 무지하게 신경 쓴다.

    실드를 쳐 주긴 해야겠다.

    “최소 뒷일은 생각하는 데다 이성이 감성을 억누른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패악질도 계산된 것일 가능성을 높게 봅니다.”

    “그걸 계산해서 한다구요?”

    “아 성욕은 좀 주체 안 되는 거 같아 보이긴 하는데, 평생 안 갑니다. 나이들면 유순해지죠. 그리고 운동 안 하고 술 좋아해서 어차피 팍 꺾여요.”

    심지어 약하더라.

    내가 전투력이 좋다고는 못 하겠는데, 나한테 손님 맞을래요? 당할 정도면 말 다 했다.

    “왜 그런다고 보십니까.”

    “저는 고도의 처신으로 보고 있거든요. 마치 나는 정치적인 관심이 하나도 없어, 그저 술과 여자면 되는 놈이야. 라고 말하는 거 같은.”

    “허어?”

    “보통 그런 거 정치적으로 야망이 있는 사람이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야망이 있는 놈입니까?”

    “그게 아예 없진 않겠지만. 저는 그 친구가 뭔가 대단한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겁쟁이로 봤어요.”

    “아, 정치적으로 위험해서 몸을 사린다고요? 그놈이오?”

    “근데 그걸 할 줄 아는 놈이니까. 생각보다 그릇은 크다고 봤고요.”

    설 회장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왜 그러고 있을까요? 누가?”

    “회장님이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회장의 딸들일 것이라 생각은 한다.

    지역지인 한밭신문에서 ‘자매의 삼파전?’이라고 기사 봤음.

    차남은 이 할배와 형을 줄줄이 감방 집어넣으려다가 역공 맞고 간 거라서

    아마 누구도 생각을 안 하고 있을 테고.

    회장의 의중과는 달리 세간은 세 자매를 꼽고 있고.

    그들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흐음. 그래도 확실히 젊은 선생을 보내 놓으니 의외의 면모를 많이 듣는군요. 특히 제 엄마를 찾아간 건 정말. 놀랍습니다.”

    “어, 게임을 같이 하시면 막내하고 친해지시지 않을까요?”

    당연히 택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선생이 그 못난 놈 사람 만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요? 사주쟁이가 사람을 어떻게 만듭니까.”

    “작가시고, 교육 쪽 자격이.”

    “빤히 알고 계시네요.”

    이건 김병용 짓일 거다.

    군인 신분을 이용해 신상을 예전에 다 털었어.

    “제가 보기엔 그놈은 선생이 필요합니다. 누가 어떻게 저렇게 이렇게 해라고 해야 할 잔소리꾼이오.”

    “아비에게도 불손하고 어미에게도 불손한 놈은 왕이고 스승이고 불손합니다. 골친데요. 그리고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집니다. 속은 몰라도 막내 아드님은 너무 검은 쪽이라.”

    “선생이 우유라면 그놈이 회색은 되겠지요.”

    “제가 이미 잿물 수준이라.”

    “그래도 선생만 한 사람이 없지요. 말씀을 듣자면 그놈은 보좌가 필요한 놈입니다.”

    “서울대 나온 변호사를 붙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런 친구들은 그놈을 때릴 수가 없지요. 비선이시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오히려 있는 겁니다.”

    그 말은 이해가 된다.

    설민혁의 정서나 위치가 밑바닥의 그것과 가까워서.

    밑바닥 위치에서 정서적 공감을 가할 사람은 필요하긴 하다.

    “저는 그래도 커리어가 믿을 구석이 하나도 없는 놈입니다. 신임을 받기엔 스스로가 불안하니, 신뢰를 주셔야 합니다.”

    “저도 정확한 근거로 말하기를 좋아하지마는 이건 그냥 느낌상.”

    “무슨 느낌일까요?”

    “독일 유학 시절의 일이지요. 신을 믿지 않는 편인데, 그곳에서 외로이 지낼 때 유독 한 성당의 신부께서 제게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왠지, 선생은 그때의 그 신부님이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나더군요.”

    아 종교운 LV8?

    돈, 지위, 혈통, 학력이 없이도 주임 신부, 대형 교회 목사, 주지급 신임을 얻는 운세.

    설 회장의 저 말에 원래대로라면 납득이 안 갔겠지만.

    이건 어쩌면 사주강화술을 얻은 숙명일 수도 있겠다 싶다.

    종교운 8레벨은 이 나이엔 독보적인 운세다.

    내 나이쯤 신학 공부한 초임 목사, 신부, 스님은 7레벨이거든.

    종교나 사상, 신념을 빼곤 말할 수 없는 이유 없는 신뢰감.

    그게 저 운세의 근간이다.

    그래도 내가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자 회장이 말했다.

    “아무래도 민혁이가 마음에 썩 들진 않으신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선생이 저를 도와주시지요?”

    “예…?”

    “얼마 안 남은 늙은이가 새로 하는 사업을 좀 도와주십시오.”

    물려주려고 하는 사업이겠지만.

    그게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망나니가 겁을 낼 정도의 뭔가가 오가는 권력 다툼이면.

    어느 한 진영에 서는 것보다는 죽을 늙은 왕의 편에 서는 게 낫다.

    “돈 많은 노인이면 피붙이가 아니어도 효도하듯 공경하고 모시는 게 세상 인심입니다. 그래야죠.”

    “제가 선생을 일을 한번 시켜 보고 싶은데, 양주를 특히 위스키를 좀 알아야 해서. 철학관에서 즐겨 마시는 술 냄새가 나더군요. 꽤 즐기시는 것 같던데.”

    “아하하.”

    깨 먹은 게, 냄새 났다고는 못 하겠고 그냥 애주가인 척 퉁 쳤다.

    그거 냄새 아직도 나더라.

    커피로 덧씌우니까. 커피향 양주 냄새 나더라고.

    “아 참 오늘 가실 때엔 로비에서 선생 이름을 말씀을 하세요.”

    “아 제 방 있나요. 전주니까. 그냥 막차 타고 가도 되는데.”

    “이 호텔 연간 회원권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예에?”

    “전주에서 왔으니 늦었으면 쉬다 내일 가세요. 안 그래도 늦은 시각이라. 자. 일 있으면 또 모시겠습니다.”

    회장과의 회견을 끝내고 말 그대로 로비에 가 봤다.

    스카이피아 앤티크 VIP. 연간 이용권.

    전 객실 일월화수목 무료, 성수기 및 주말 월 4회 예약 시 무료.

    호텔 부대 시설 자유 이용.

    4인 가족 동반 투숙 가능.

    …이게 되는, 골드카드를 로비에서 수령했다.

    “…호텔서 살아도 되겠는데?”

    자주 올 건 아닌데 VIP되니까. 신기하네. 뭐 방이 얼마나 좋길래.

    로비에서 수령하고 수이를 찾는데 호텔도 아니고, 호텔 밖.

    족욕 온천탕 쪽에서 쭈그리던 수이가 달려왔다.

    유성온천이라고 저런 게 있다.

    “선생님!”

    “너 밥 먹었냐.”

    “기다렸는데요오.”

    “아이 미안. 늦었네. 밥부터 먹자.”

    그래도 저녁 7시 반. 아주 늦지 않은 적당한 시간이다.

    뷔페에서 온갖 음식 수이와 같이 담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툭 잡는다.

    “아이쿠.”

    “많이 드세요.”

    심 회장이 세상 좋은 할아버지인 양 웃으며 아는 척이다.

    “예 많이 먹겠습니다.”

    “이쪽 아가씨는? 본 것도 같은데.”

    “아, 아아. 허리 곧으신! 안녕하세요.”

    “허리…. 아. 예. 전주 선생과 함께 사시던 그?”

    “아니 그 사는 건 아니고요.”

    “잘 어울리시네요.”

    회장이 으레 웃으며 고개 끄덕이고 간다.

    밥 시간 때는 겹친 모양이나. 뭐 떼서 아마 여기선 못 드실 듯.

    “근데 저 할아버지 정확히 누구세요?”

    “여기 호텔 주인.”

    “허~얼?”

    뭐 더 물을 줄 알았는데, 허~얼 하고 그냥 밥 먹는다.

    단순한 녀석 같으니. 배가 많이 고팠나.

    “스파는 가 봤냐?”

    “그게 뭔지도 몰라요.”

    “어 나도 몰라.”

    대충 뭐 목욕탕, 사우나 같은 거 아닌가.

    그런 걸 끊고 다녀 본 적이 없다 보니 나도 모른다.

    “으아 배부르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

    “아뇨 아뇨 아뇨. 족욕도 잘 하고, 밥도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늦었으니 돌아갈까. 바래다줄게. 서대전역까지.”

    내 말이 뭔가 이상한가 묻는다.

    “바래다 줘요? 같이 안 가요?”

    “난 여기서 함 자 볼라고.”

    “네?”

    “어 호텔 연간 회원권 되는 거 있거든. 평일엔 그냥 투숙 가능하네.”

    “앗. 그, 그래요?”

    “넌 어 택시 잡아 줄 테니까 역까지 같이 가자. 바래다줄게.”

    대학생 땐 여기서 서대전역까지 걸어서도 가는 독종이었는데.

    택시 타도 될 거 같다.

    “어, 저만 가요?”

    “그럼 뭐 하루 자고 가게? 나야 좋음.”

    “으에에, 뭐가 좋은데요?”

    “내일 빵도 먹고 오전에 스파란 데도 함 가 보고.”

    “아, 그러네요. 어어. 흐으으으으음. 그것만 목적이라고요?”

    수이가 수상쩍은 눈초리로 째려본다.

    난 이런 의심받고 그러면 그냥 터뜨리는 경향이 있어서.

    “당연히 아니지. 다른 것도 목적이야.”

    “다른 거?”

    은근히 은유로 이야기하고 싶긴 한데.

    내가 그런 거 싫어한다.

    까이려면 확실히 까이는 게 낫다.

    로비라서 그래도 너무 대놓고 말하기 그래서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물론 단어는 그냥 대놓고.

    수이가 날 때린다.

    “에에, 미쳤어요?”

    “뭘 미쳐? 난 이미 지속적인 이성적 관심 보였다. 안 내키고 그런 거 싫음 나가자, 차 늦겠다.”

    물론 당연히 빌드 업 없이 이따위로 밀면 먹힐 리가 없다.

    아마 이러니까 좀 많이 열려 있는 분들한테 세컨만 되지 않았을까.

    고쳐야 되는데 쉽지가 않다.

    이성 교제 성공의 모델이 그것뿐이 없어서.

    욕망은 강한데 이성에 겁이 많을 때 이런 패턴이 있다.

    “정말 그러실거예요? 선생님인데?”

    “뭔 상관, 교사 아닌데.”

    “그 방만 그냥 같이 쓰는 거는?”

    “내가 싫은데? 가자, 더 늦으면 막차 밀려.”

    “무서운데요. 이 밤중에.”

    “내가 택시 태워서 역까진 따라갈 거고, 전주역 가면 부모님이 차 끌고 와서 대기하실 거 같은데, 귀한 자식이라.”

    남학교 다녔는데 집에 오던 길의 여고 앞은 야간 자율 학습 끝나면 부모들 차량이 주차장 마냥.

    운동장을 채우더라고.

    내 동생도 그랬고.

    “그럼 있을게요.”

    “그래 언능 ㄱ…. 응?”

    가의 기역 자가 언급되다가 입으로 말려 들어갔다.

    “예? 저기요?”

    “이, 있어도 돼요. 친구 집에서 자고 간다고 할게요.”

    어 잠시, 생각이 멎는다.

    지이이잉.

    그리고 사주강화술, 이 호감도 알리미가 진짜라고 알려 줬다.

    * * *

    906호 스위트….

    울렁이면서 엘베 타고 올라가고 있는데 수이가 내 손을 꼭 붙들었다.

    어우 미치겠네.

    진심이긴 했는데, 당연히 까일 거라 예상해서.

    그냥 나 이런 놈이니까 이런 거 싫으면 더는 다가오지 마라. 식으로 쓰는 헛짓인데 왜 헛짓이냐면 90퍼는 패망한단 말이지.

    방문 앞 VIP 골드카드를 대면 카드 키 없이도 열리는 구조였는데.

    그 앞에 서자 수이가 다급히 말했다.

    “수, 술 마실까요? 우리.”

    “그러자, 일단 좀 마시면서 생각하자.”

    술이고 뭐고 일단 목이 타서 앞장서서 호텔 바로 내려갔다.

    시간 좀 필요하다.

    호텔 바에는 머리는 하얗게 샜는데 안면에 주름은 덜한 겉늙어 보이는 아저씨 바텐더가 우릴 맞이해 줬다.

    “메뉴를 잘 모르시면 어떤 기호가 있다, 무슨 맛을 드시고 싶다, 차갑게 등등 말씀해 주시면 그냥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취, 취할 수 있는 맛있는 거요.”

    수이가 그냥 닥치고 외치자, 나도 외쳤다.

    “아 저는 딸기맛 음료 같은?”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라는 칵테일을 바텐더가 내민다.

    긴장해서 아무 말 안 하는데, 수이가 그걸 한 모금 마시더니.

    그제야 침묵을 깨고 말한다.

    “우와 이게 술이에요? 진짜 아이스티 맛 나요.”

    …라고 말하고 20분 뒤.

    카운터에 그대로 엎드린 채 뻗었다.

    귀 빨간 거 봐.

    “도수를 말씀드리면 오히려 술을 잘 드신다고들 착각을 하시네요.”

    바텐더 양반이 바꿔서 먹으라고 권하더라.

    레이디킬러 칵테일이라는 이야길 곁들이면서.

    근데 오히려 수이가 지가 취하고 싶다면서 벌컥벌컥.

    그리고 이 모양.

    진짜로 보내 버렸네.

    17도 정도 되고 양은 500ml.

    소주 한 병 이상을 원샷 한 격이란다.

    “혹시 바텐더면 얼굴만 봐도 주량이 나오고 그러진 않아요?”

    “그렇진 않지만 여성분들이 많이는 못 드시는 편이죠.”

    “아 후, 일단 잘 마셨습니다. 계산은 이걸로 된다던데.”

    “아, 아아. 예. 오늘 이 카드 가진 분이 꽤 오네.”

    연간 회원권 골드카드에 바 음료 이용도 가능해서 내밀어 계산한 뒤.

    수이를 부축해 방에 데려가 침대에다 눕혀 놨다.

    어우 마음은 편하다. 하반신 말고는 안녕을 되찾았어.

    방이 겁나 좋은데, 느낄 새도 없이 얌전히 내버려 두고 바로 나왔다.

    괜한 오해 사기 싫다.

    “아. 다시 오셨네요?”

    한참 잔 닦고 있던 바텐더 양반이 반갑게 맞아 준다.

    “언제까지 영업하시죠?”

    “손님이 가실 때까지 있습니다.”

    어 나랑 비슷한 마인드네, 문 닫는 시간 손님이면 끝까지 말 들어주는 편인데.

    “어 하긴 이 근처 가까운데 사실 거 같아요.”

    “아? 그건 어떻게 아시죠?”

    “차가 없으실 거 같으니까?”

    바텐더가 음주 운전하면 연예인급 기삿거리이긴 할 듯.

    “그렇지요. 안 마신다 안 마신다 해도 어떻게든 술이 들어가긴 하니까요. 그런데 여자 친구분 그렇게 두고 오셔도 괜찮습니까?”

    “연인 미만인 상태라, 그리고 만취했는데 곁에 있긴 그렇죠. 술이나 마시려고요.”

    “골드카드는 와인 몇 개 제외하곤 모두 가능하십니다. 칵테일? 아니면 글라스?”

    “그 조니신발 파란띠 21년 그거 있나요.”

    “샷으로 드릴까요. 아니면 온더락?”

    모르는 용어투성이일세.

    “샷은 뭔가요. 탕? 골프?”

    “푸흣.”

    호텔 바 시티뷰. 테이블 자리에 혼자 있던 여자 하나가 피식 웃는다.

    그게 웃…겨?

    젊고 아리따우며 치장에 단 게 많았다.

    특히 옆머리가 길고 곧아 일부러 한 머리 같은 느낌이 든다.

    볼을 살짝 찌르고 가리는 스타일?

    이 근방은 전통적 유흥의 메카로 종사자들을 종종 목격하는 편인데.

    유성온천역의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밴에서 내리는 아가씨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신부 화장스러운 화장이 없었다.

    다만 쉬는 날에는 최대한 티를 안 내게 자연스럽게 다니는 게 분들이라, 일반화할 순 없다.

    이 근방 살았어서 오픈톡 사주 알바로 종종 본 표본이라.

    바에 손님은 스카이라운지에서 도시 뷰 보고 있던 저 여자와 나뿐이었는데.

    저 여자가 카운터 쪽으로 온다.

    “처음 오세요?”

    앳되어 보이는데, 어른 티를 잔뜩 냈다.

    향수도 은은해서 코를 찌르지 않고.

    애 티를 내고 와서 어른의 음료 먹고 뻗은 분과 달리.

    지금 보니 대단한 언밸런스가 느껴진다.

    너무 동안이라 애환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지.

    나이가 어린데 술 먹고 분위기 잡는 흉내를 배운 건지는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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