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43화 (43/211)
  • #43. 어쩌다 책략가

    “서대전, 서대전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대전에 왔다.

    하루치 매상 두 배에 교통비까지 출장비 준다는데 안 올 수야 있겠나.

    교통비 세이브를 위해 KTX 대신 무궁화 타고 왔다.

    논산 근처 개태사에서 철로가 춤을 춰서.

    KTX가 제 속도를 못 내 KTX가 무궁화보다 고작 10여 분 빠르다.

    대학 시절 내내 교생 때나 방학 때 말곤 여기 살았다.

    뚜벅이로 지하철 타고 유성온천까지 갔는데.

    지금은 놀랍게도 기사님이 기다리고 있다.

    “명승철학관 도사님?”

    “아, 네 안녕하세요.”

    “타시죠.”

    차 잘 모르는데 좋아 보인다.

    “이쪽으로.”

    “태워다 주시니 감사한데. 지하철 타고 가도 되는데.”

    오늘의 목적지는 유성온천역 근처 호텔로.

    대학교 있어서 자주 가고 또 그 근처 자취방에 산 적이 있어.

    지리를 꿰고 있어 지하철로 가도 됐는데 픽업이 왔다.

    아 지하철 로고송 ‘튀김소보로 얼큰칼국수 대전 대전에서 만나요.’ 이 노래 좋은데 아쉽구먼.

    “귀한 손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그냥 출장 비즈니습니다.”

    “타세요.”

    “그 여기 뭐 사장님 자리 아닌가요. 조수석 탈게요.”

    “그런 걸 신경 쓰시는 분은 아니지만 그러시죠.”

    돈 많이 주는 돈줄이니 처신 좀 신경 썼다.

    그냥 아버지 같은 기사님 뒤에서 상전처럼 타는 것도 좀 별로고.

    “야 저거 다 지어졌네요. 집으로 소환될 때만 해도 비어 있드만.”

    “아, 저희 스카이피아 겁니다.”

    “우와.”

    서대전역 코스트코 근처에도 건물이 들어섰는데 그것도 여기 거라고 한다.

    그때 오셨던 할배의 이름은 설양훈.

    천지인 건설이란 건설사 명예회장으로.

    아파트 브랜드인 스카이피아로 더 유명한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건설사다.

    본디 그냥 지역 중견 건설사였으나 세종시와 관련된 수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대기업 이름을 단 건설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어 현재는 유명 브랜드인 스카이피아로 건설사를 따로 분리하고 다른 영역에 손대는 범천지인 그룹을 따로 출범시켰다.

    주식하는 양반들 토론방에서 본 이야기다.

    ‘이 양반도 무협 좀 본 양반 아니려나.’

    천지인이면 삼재인데 삼재검법은 무공의 기본 아닌가.

    한번 떠보기나 해야겠다.

    “아 여기였구나.”

    대전 유성구에서 살았는데 목적지가 첨 듣는 호텔 이름이라, 뭐지? 했었다.

    유성은 과거의 온천 호텔들을 사들여 신축하는 붐이 불어서.

    대형 신축 호텔이 주변 오래된 안마방, 마사지 업소, 모텔과 함께 있는 음악홀 등을 깡그리 밀고 세워지고 있었었는데.

    거기가 여기였다.

    설양훈 씨 소유의 호텔.

    ‘대전이면 생각나는 호텔을 만들겠습니다.’

    하면서 옥외 광고판 걸어 놓더만.

    외관 좋네.

    “3층에 회의실 있습니다. 그리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내부도 뭔가 돈 있어도 오기엔 엄두가 안 날 것 같은 그런 호텔이다.

    유흥업소 몇 개 우직하게 밀고 만들더니 주차장이나 부지도 넓고.

    군 복지단이 운영하는 계룡스파텔 잡으려고 지었나.

    “휘유.”

    할배 홈그라운드가 주는 위압감이 좀 세네.

    뭔가 다른 세계 같은 느낌.

    근데 그렇게 위축되어서 들어가면 먹잇감이 된다.

    사람을 현혹시켜서 먹잇감을 만들면 만들었지.

    내가 사냥감이 되면 안 된다.

    원래 돈과 권력을 쥔 놈 머리 위에 있는 게 미래를 쥔 놈이다.

    아 뭐 그렇다고 내가 미래를 척척박사로 맞추는 건 아니지만.

    사주강화술로 확정적 미래를 맞을 수 있으니까.

    돈 많은 놈들한테 사냥당해 꼬우면 재성운 쌓아서 사업하면 된다.

    “실례합니다.”

    “아아, 오셨구먼 가 보세요.”

    “네 회장님.”

    비서로 보이는 호텔 유니폼의 여직원이 나간다.

    별로 안 놀랐지만 놀란 척은 해 줬다.

    “와 진짜 회장님이셨어.”

    “앉으세요. 식사는 하고 오셨습니까?”

    “아, 안 먹었습니다.”

    “그러면 식사라도 먼저 같이하실까.”

    “엄청 바쁘고 막 그러시지 않나요.”

    “명예회장이라서 그냥 놉니다. 일이 막 열심히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에요.”

    범천지인, 스카이피아 그룹은 회장 자리가 공석이다.

    설양훈의 장남인 설정환이 40대부터 회장직을 물려받아 회사를 경영했고.

    세종시, 천안 도시 개발 등에 사업을 따내어 참여했다.

    설정환은 그렇게 지방 중견 건설사를 시총 50위권에 올려놓은 경영의 귀재였으나.

    급성 심근경색으로 50대의 나이에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지금은 회장 직접 경영 체제가 아닌, 계열사 사장들이 현상 유지를 하는 상태라고.

    “괜찮습니다. 그냥 갈 때 부추빵이나 사 가면서 먹죠 뭐.”

    “아니, 그러면. 음.”

    설양훈은 전화로 어딘가에 지시했다.

    “조리부에 도시락 하나 해서 올려 보내 달라고 해. 젊은 친구들 좋아할 만한 걸로 응 그래.”

    “아 제 거?”

    “드셔 봐야지요. 몸값이 얼마짜리 주방장을 데려왔는데.”

    쉐프라고 안 하고 주방장이라니까. 좀 피식한다.

    주방장은 맞지.

    “부르신 이유가…?”

    “알고 오시지 않았을까. 기대해도 됩니까?”

    처음부터 시험에 들게 하시면 어떡하나.

    “사주 보려고 부르셨겠다 그 이상의 대답을 못 드리겠는데요. 이거 길 가는 할아버지 부축해 드렸는데 사실 그날 면접 가는 회사 회장님이었다. 사연 같아서 어안이 벙벙합니다.”

    “아주 뭐 딴 세계 사는 사람 같으신가 본데, 뭐 돈은 있으니 좀 더 대접을 받는 쪽에서 살기야 했지마는.”

    “그럼 계층이 다른 겁니다. 떠받드는 사람과 받들어지는 사람은 다르거든요.”

    “그 대접이 이 나이엔 재미가 없지요. 빌빌 기는 놈들 그 꼬라지가 너무 선합니다. 한데 우리 전주에서 온 사주 선생은 수염 잡아당기는 손자 같은 느낌과 바둑의 호적수 같은 느낌이 다 있어요.”

    “건방진 거군요.”

    “패기가 있고 사려가 깊다고 봅니다. 질 생각이 없는 듯한 태도하며, 잘 질 거 같지 않은 통찰과 지성이 있죠.”

    좋게 봐 주긴 했을 테니, 돈도 주고 또 부르기도 했겠지만 칭찬이 과하네.

    칭찬을 잘 안 믿는다.

    내가 칭찬을 좀 난사하는 경향이 있어서.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이런 저런 이유야 있지만. 선생을 부른 건.”

    “예.”

    “그냥 그날 사주 본 게 꽤 재밌어서 그럽니다. 오래된 학문을 배워서 그런지 선생은 늙은이와 젊은이의 모습이 함께 있더군요.”

    재밌었다니 그건 기분이 좋다.

    본업은 재미 주기 위한 직종인데.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이거라도 재밌으면 좋지 뭐.

    “근데 그런다고 사업 관련 상담을 저한테 하시진 않으실 테고.”

    “사업 상담입니다.”

    “예?”

    뭐 내가 아는 분야여야 때려 맞추기라도 하는데.

    사주강화술 앱 보면서 해야겠다.

    사업 상담도 사주 보면 흔히 들을 수 있다.

    공무원 등 안정된 직장인들은 인생의 운이 그 직장의 운세에 업혀 가는 거라. 아무래도 상관 없을 이야기지만.

    자영업 등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그 결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면이 분명 있는데.

    이미 하는 분들 말고는 내가 신규 진입을 닥치고 반대하고.

    그게 정론으로 5년 폐업률 80퍼센트로 적중하니 자영업 망무새짓 해도 된다만.

    이건 투자 여력이 있는 사람의 고민이다.

    “그런 건 경영진의 자문을 들으셔야지, 무슨 사주쟁이를 불러서 그러십니까. 혹시 경영진이 반대하는 일이면 그냥 하지 마세요. 아니면 뭐 그 나이에 개인 사업 다시 하시게요?”

    뭐 하나 ‘맞아 떨어지는 거 있어라.’ 하고.

    여러 사례를 속사포처럼 말했다.

    “예 경영진이 딱히 훈수를 둘 수 없는 개인 사업을 하나 출자를 해서 해 보려고 합니다. 어차피 제 가산이라. 결정도 저 말고는 내릴 사람이 없고요.”

    “사업 오래 같이하신 참모진들이면 의견 정도야 들으실 수 있잖아요.”

    “죽든가, 병실에 누웠든가, 머리가 회까닥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그분들한테.”

    80살이면 주변인들은 그럴 만도 한 나이다.

    70대 즈음의 할매 연예인들이 방송 나와 그러더라.

    그 나이 되니, 만날 오빠들이 다 죽었든가 몸져 누워서 연하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하하. 나이가 나이니까.”

    “엄청 부려 먹으셨구나. 혼자 건강하신 거 보니.”

    “그 말도 맞아서 미안하긴 합니다. 내가 일을 좀 더 했어야 했는데.”

    “그 밑의 경영진들은요?”

    “절 무시하지요.”

    “무시한다고요?”

    “제 큰아들의 보좌들입니다. 지금도 제 사업을 그나마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한데 절 빨리 가 버렸으면 하는 천덕꾸러기 그 이상으로 안 보는 듯 해서.”

    “와 이런 얘긴 첨 듣네요. 회장이면 막 권력 겁나 세고.”

    “큰아들놈이, 너무 빼어나서 말이지요.”

    회사가 2세대 경영진으로 교체되어서 안 친하단다.

    근데 그 2세대들이 능력들이 충만해서 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

    갈아엎으려면 엎을 수야 있다지만.

    장남을 따른, 인물들이라 놔두고 있다고.

    “각설하고 주류 사업을 한번 해 볼까 합니다.”

    “주류 사업이라….”

    “선생은 운기를 봐 주시면 됩니다.”

    취미가 있으니까 하는 것이려나? 근데 생뚱맞긴 하네.

    물불이 저 양반한테 좋긴 좋다.

    술은 속이 타는 듯한 뜨거운 물로 해석하니까.

    ‘물불’의 속성에 부합하는 편.

    “이런 거야 그 다른 술사분들도 볼 수 있으실 텐데요.”

    “저는 사람에게 물어 결론이 나지 않는 일일 때마다 선생 같은 술사들을 찾습니다. 그리고 술사 세 사람의 의견을 들어 결정을 하지요. 두 명한테는 이미 물어봤으니 우리 전주 선생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거 아마 그 ‘계룡’이겠지?

    이 집구석 막내가 괜찮다고 말하던.

    “그거, 혹시 막내아들 주시려고 시작하시려는 거 아니세요?”

    설양훈은 잠시 말이 없다가 실실대며 웃었다.

    “이야 정말이지. 이게 젊은 술사라서 비상한 건지.”

    “진짠가 보네요?”

    “도대체 어떻게 짐작하시는 겁니까? 이건 내가 볼 때 사주도 관상도 아닌데 이게 참 신기하군요.”

    이건 재벌물 기웃대 볼까? 하고 드라마도 좀 보고 그래 보니까.

    ‘죽을 날 세고 있는 나이 든 회장이 사업 확장을 왜 하나?’하면.

    내가 보기엔 개연성이 그거밖에 없어서 한 소리다.

    사주로 개연성을 부여한다면 정말 죽기 전에 그 사업을 꼭 해 보고 싶었다는 꿈이 있었다.

    이 정도로 보겠는데.

    이 나이에 꿈에 미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대통령 병이라는 게 있긴 하니까, 뭐 그럴 수도 있긴 한데.

    권력은 몰라도 돈은 슬슬 무상할 나이거든.

    “회장님 묘사대로만 들으면 막내 자제분이 시켜 볼 사업이 유흥 아니면 게임 밖에 없겠던데요. 게임은 회장님이 별로 안 좋아하시고 모르시기도 할 테고.”

    “그렇지요. 예.”

    “회장님도 좀 알아서 일정 부분 컨트롤이 가능하고, 그러면서 막내가 먹고살 만큼 재능을 발휘할 분야 즉 유흥에 능했으니 아마 술은 잘 알지 않을까? 싶어 하시는 거 같아요.”

    “바에 있던 여자한테 수천만 원을 가져다 바치던 걸 봤으니 한심하지만 술이야 잘 알겠지요.”

    “그러면 여자를 더 잘 아는 거 같지만….”

    “그걸 팔면, 허….”

    판대.

    막장이란 말로 표현이 안 되는데?

    그거 어떻게 세탁할라고 그런 놈을 기업의 전면에 내세우래.

    “그 회장님이 아빠로서 정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고요. 미안함도 있고, 근데 그 막내 아드님이 회사 일 시키기엔 좀 모자란 사람 같더라고요.”

    “예 그랬지요.”

    “그럼 딴 사업 하나 하게 해 주시려는 거죠. 사람 구실할.”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 게 아니면 마땅히 쓸 곳이 없죠.”

    “그렇다면 사업의 성패가 아니라 그 막내의 사주를 주세요. 그건 그 친구한테 달린 일이니까.”

    그사이 도시락이 도착했다. 군침 돌게 생겼다.

    스테이크에 그릴로 검은 칠이 줄돔처럼 그어진 게 영롱하다.

    “드시고?”

    “아닙니다. 계속 말씀하시죠.”

    스테이크 너무 실해서 맛있어 보이지만, 여기서 먹을 거에 정신 팔린 인간으로 보이고 싶진 않다.

    쥐뿔도 없이 사주 하나로 예까지 왔는데 행색이라도 당당해야지.

    “그 녀석을 한번 직접 보시고 판단을 해 보시겠습니까?”

    “제가요? 제가 이놈은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다. 사람 새끼가 아니다. 이러면 뭐 포기하시게요?”

    “으음.”

    자식을 어떻게 포기하냐 싶지만 권력이 걸리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보기엔 손주가 정 안 되면 차남이 그냥 경제인 특별사면으로 나올 때, 회사 장악하는 걸로 가는 게 나을 성도 싶은데.

    할배 생각엔 염두에도 없다.

    얼마나 괘씸했음 그럴까.

    “원래 안 그러시던 분이신데 많이 약해지신 거 같네요. 혹시 그사이 건강검진 받으셨나.”

    “허, 이건 진짜 비밀입니다.”

    귀에다 손을 올리고 몸을 기울였다. 물론 안 그래도 다 들리겠지만.

    “초기라고는 하는데, 로봇 수술로 떼어낼 수야 있다지만 그래도 느낍니다. 몸이 다해 가는 것을요. 말씀대로 손주들을 기다리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허용될지 두렵네요. 그러니 별수가 없지요. 못난 손가락을 잘라 낼 수가 없습니다.”

    “아….”

    “한번 보고 혼도 내 주시고 사람답게 좀 해 주실 분이 필요하긴 합니다. 나이가 비슷하시니 말도 좀 통하시지 않을지.”

    “제가 뭐라고 그런 걸 합니까. 일개 소상공인인데.”

    “병용이가 이번에 큰 업적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어 그랬다네요.”

    김병용은 특유의 넉살로 설양훈을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따르며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이어 지역 내 암덩어리 같던 사이비 소탕 덕에 명성을 꽤 떨쳤던지.

    꽃 지역구에 내보내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타향 사람이라 영입 인사여도 텃밭에 내보내면 본선이야 몰라도.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낮았는데 그 분위기가 바뀌었대.

    “유명해졌더라고요.”

    자기 동네 향토 사단 사단장 이름 아는 경우 흔치 않잖아.

    근데 인제 들어 본 양 알더라고.

    특히 이해 관계자인 아버지는 이름 알고, 인물이란다.

    “그게 선생이 준 책략이라고 들었습니다.”

    “…책략이오?”

    뭔가 허명의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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