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41화 (41/211)
  • #41. 사탄이 되었다

    “어서오세요. 아 또 오셨네요.”

    “예, 에스프레소랑 마들렌 진짜 맛있어서요. 그걸로요.”

    “네에.”

    여름 내 오던 단골 카페에 들렀다.

    주거운도 7레벨 됐으니 글 좀 써 볼까 싶어서.

    철학관 문도 닫고 나왔다.

    “접시라도 몇 개 드릴까요.”

    “앞 접시 괜찮아요. 어차피 저 혼자라.”

    “그게 아니라 그냥 접시랑 컵. 몇 개 드릴까 해서.”

    “오 저야 좋죠…. 는 그걸 왜?”

    “장사 이제 그만하려고요.”

    “예…?”

    여름내 이용하던 쿠폰 도장 70개째 스탬프를 찍은 카페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살면서 여기만큼 카페를 많이 다닌 적이 없다.

    장사가 막 그렇게 안 되던 것 같지는 않은데.

    “장사가 잘 안 되셨나요? 여기 사람 많았잖아요.”

    “그럭저럭 매출은 나왔고 돈도 모아서 나가요.”

    카페 사장님은 50대에 긴 장발을 기른.

    부활의 김태원을 닮은 듯한 아저씨로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느낌이 예술가의 느낌이 있었다.

    골수 크리스천으로 사주는 봐 달라고 한 적 없었다.

    근데 장사가 잘됐는데 왜 나가지?

    “아, 건물주랑 문제가 있었나 보네요. 아프진 않으신 거 같고.”

    슬슬 아플 나이이긴 한데, 아파 보이진 않는다.

    그냥 말라서 좀 연약해 보이기는 하다마는.

    옷도 뮤지션처럼 입으시고.

    “그렇게 됐죠.”

    “그 뭐 저 임대인 보호법 그런 게 적용이 안 되나요?”

    “돈을 저한테 주면서 나가라는데, 그건 어쩔 수가 없겠더라고요.”

    “왜 굳이 그랬을까요?”

    “아마 더 좋은 게 들어오겠죠? 재개발이 된다는 소문도 돌고.”

    으응?

    재개발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 근처 가게 두어 곳이 더 문을 닫은 듯했다.

    한옥마을과 대학교의 중간쯤에 위치해서.

    나름 유동 인구가 오긴 하지만.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게 장점인 동네였는데.

    “이 가게 커피 되게 좋아했는데.”

    “에스프레소 맛을 아시는 분이셨는데.”

    어느새 소상공인이 되어 버려 무척 애석한 마음이 든다.

    “그냥 딴 데로 가셔서 장사하심 안 돼요? 종종 갈게요.”

    “이젠 다른 걸 해 볼까 해서요.”

    “아이고. 진짜 아쉽네요.”

    커피 알못이긴 한데 여기 건 진짜 맛있었다.

    아쉽구만.

    사장님도 뭔가 히피 뽕 맞은 사람같이 힙해서 웃겼고.

    내가 아쉬워하자 사장님이 커피 원두를 좀 내온다.

    “제가 생두랑도 좀 드리고 어떻게 배합하는지는 알려 드릴게요.”

    “사장님 그러면 기계랑은 다 처분하시는 건가요?”

    “그래야겠죠?”

    “기계가 있으면 이 맛 낼 수 있나요?”

    “기계가 다는 아니지만. 내리긴 좀 편하죠?”

    중고 커피 머신을 사기로 했다.

    주거운 7렙과 함께 이제, 돈 더 벌 거니까?

    철학관 앞 카페가 망하면 음료를 마실 곳이 한정적이다.

    여기보다 살짝 멀지만 그나마 가까운 곳이 다리 하나를 건너서.

    흑임자 등 전통 다과를 갈아서 만든 유명 빙수 겸 카페인데.

    “커피가 비싸.”

    그게 아니면 편의점이다.

    고로 좀 본격적으로 명승철학관에서 커피를 제공해 볼까 싶다.

    근데 그러면 일반음식점 뭐 그런 걸 받아야 할 거 같기도 하고.

    커피도 혹시 뭐 문제 될 수 있으니까.

    보건증인가 위생 교육인가 받아야겠다.

    카페 사장님이 장사 접기 직전까지 커피를 좀 배웠다.

    그리고 폐업 날. 커피 머신을 인수 받았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제빵도 가르쳐 드렸음 좋았을텐데.”

    “그러게요. 마들렌 맛있었는데.”

    “마들렌은 대전 가면 빵집 하나 있으니까 거기 거 사다 드세요.”

    거기 뭐 맛있지만 요즘은 거기서 배운 제자들이 전주에도 개업하고 팔더라.

    “건승하시길 빕니다.”

    “예 사장님도요.”

    “앞길을 사주라도 한번 봐 드릴까 싶은데.”

    “괜찮습니다. 제 인생을 규정하고 살고 싶진 않아서요.”

    커피 머신을 거의 폐업 전문 수거 업체 가격 그 이하로 주셔서.

    고마워 사주라도 부역하려는데 끝까지 거절하신다.

    원래는 그냥 주려고 하시길래.

    화들짝 놀라서 중고 가격 알아보고.

    계속 그 가격에 값을 치른다고 했다.

    근데 파는 사람 본인이 후려치기 하더라.

    “참, 하하핫, 그러게요.”

    “알면 뭔 재미로 살겠어요?”

    공연히 웃음이 나오네.

    사실 저게 맞다.

    사주 보는 내 입장에서도 봐도 그렇다.

    “예, 뭐 사람이 그 정도 주관이 있으면 이딴 운명학 필요 없죠. 멋지시네요. 일생에 후회는 없을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여행 가실 거죠?”

    “보면 참 비상하세요. 말씀들이 하나같이 다 맞으시고. 장사하다 들으면 솔깃한 이야기가 많던데.”

    솔깃한 이야기가 많던데, 그래도 저는 안 들을랍니다.

    …겠지요. 뭐.

    “그 유럽으로 가실 거 같으시네요.”

    “예 베드로가 생을 마무리 지은 곳으로, 야고보의 시신이 지나친 곳으로 가 보려 합니다.”

    “로마부터 순례길 가시려나 보네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그렇지요. 자 아디오스!”

    아는 스페인어 해 보려다 말았다.

    올라, 아미고, 아스타라 비스타 정도는 아는데.

    괜히 더 외국 말로 말 걸라.

    “감사합니다. 살펴 가세요.”

    좀 이상하지만 유쾌해서 멋은 있는 양반이다.

    얼추 관찰만 해도 저 양반 사주는 알 거 같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안 듣고 싶다는데 뭐.

    자아운이 무척 강해 모든 걸 긍정할 수 있는 사람.

    삶에 후회가 없고 확신이 있는 사람.

    “사주 필요 없지 그럼.”

    이런 걸 안 봐도 행복에 확신이 있는 삶이 세상에 없어 그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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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를 배우니 기예운이 올랐다.

    기예운이 높으면 일생에 섭렵하는 분야가 많다.

    교활한 토끼가 세 굴을 파는 운이라 보는데.

    기술과 자격증이 이거 저거 있으니.

    망해도 도전할 분야가 많은 삶의 기반 운세 중 하나다.

    명승철학관에 커피 머신을 설치했다.

    설치하면서 자리랑 책상을 좀 재배치했다.

    현주 컴퓨터와 모니터는 옆으로 치우고.

    “이제 좀 테이크 아웃 카페 같나?”

    +205만 원 때문에 지난달 매출이 최초로 600을 돌파했다.

    여름철 매출이 200 이하로 좀 박았다가.

    가을 되며 맘카페 리뷰 올라오더니 점차 매상이 늘어난다.

    요즘엔 입시철이 오다 보니 4~50대 부모들의 방문이 잦고.

    직원이 없으니까.

    공과금, 세금 떼고 나면 죄다 순이익인데.

    슬슬 사람 구실 할 정도로는 버는 듯싶다.

    강연료도 70만 원 정도 들어올 것이고.

    그리고 연말부터 설까지는 전통의 성수기라.

    나름 기대하고 있다.

    연말에 꽤 벌면, 인스타도 파고 하면서 좀 젊은 여성층에 본격적으로 영업해 볼 생각.

    인데….

    가만, 명승철학관은 안전하려나?

    건물주들이 돈을 주면서 내쫓는다는데.

    * * *

    “야, 이 후랴들놈아.”

    구청 출근 중인데.

    김홍로 할배가 사주명리학 강좌 폐강을 요구하는 1인 시위자에게 구수한 쌍욕을 박고 있었다.

    저 친구 또 왔네.

    공무원들이 무대응으로 일관하기는 하는데.

    작년에 왔던 각설이 마냥 죽지도 않고 또 온다.

    이거 뭐 줘서 쫓아 보낼 수도 없고.

    “아 성님, 적당히 허요.”

    “자네는 부모도 조부모도 없나? 아니 3층이 올라가기 어려워서 교실을 좀 바꾸자는데 그 교실 자체를 없애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할아버님들 그게 아닙니다. 할아버님들이 듣고 계시는 그건,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졸지에 사탄 됐네.

    악마의 음료 배우고 있는데 아예 마귀라고도 하지?

    그래도 3할배가 1인 시위자한테 할배 크러시를 먹이는 건 좀 볼 만하다.

    “총각은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그래야겠소.”

    “매를 덜 맞고 커서 그려!”

    배드캅 굿캅 전략까지 쓰고 계시네.

    사주명리학 강좌 폐강론은.

    용화미륵 파견자 두 명이 출석을 안 하면서 점차 불식되고 있었다.

    일단 목적이 영업인 사람들이 빠지니까.

    실질적으로 목줄을 쥔 공무원들에게서 별말이 안 나온다.

    다들 알더라고.

    뜬금없이 왜 시위 나서서 폐강하라고 저러는지.

    그걸 안 할배 3인방이 목소리 크게 내서 싸워 주셔서.

    교실 다시 바꾸기, 시간 바꾸기 같은 공무원들의 해결책도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지난주 강의 때.

    합창단이 시간대가 뭔 일로 우리 강의보다 일찍 끝났길래.

    영업을 좀 했다.

    저 시위의 원동력이.

    교실 바뀌어서 3층 걸어 올라가기 싫은 사람들이었으니.

    그 근본부터 뒤흔들 계산으로.

    “어 안녕하세요. 혹시 사주명리학 강의 들어 보시지 않으실래요?”

    학생이 모자라 어려운 강사 행세를 좀 하면서 성가대 합창단에 접근했다.

    “어후 우리는 어려워요. 그걸 왜 배워요.”

    “그런 거 안 들어요.”

    아줌마들이 처음에는 깍쟁이처럼 굴었지만.

    그동안 아줌마를 응대한 경험으로 파고 들었다.

    “누나들. 아 어머님들. 사주, 그냥 봐 드려요. 그냥.”

    “그냥요?”

    “무료, 공짜, 재미없으시면 중간에 나가셔도 되고요.”

    “그래요오?”

    “이 강의는 사주 공짜로 봐 줍니다!”

    사주 강의 하면 ‘교보재 사주’가 필요하다.

    사주 들으면서 ‘어머머 맞아요!’ 하면서 간증을 하실 분 말이지.

    그 간증에는 리액션 많은 아주머니들만 한 존재가 없다.

    방송국이 괜히 아줌마들 방청객 쓰는 거 아니더라.

    “아하하 이 선생님 재밌으시네.”

    발랄하게 이 강의는 공짜로 봐 줍니다! 하니까.

    아줌마들이 꺄르르 터진다.

    “한번 가 볼까?”

    “아이 그래도.”

    “아무 상관 없어요. 예수님이 뭐 너희들 잠깐 그런 거 궁금해서 볼 수도 있지 하면서 다 이해해 주세요. 구약에 랍비랑 동방박사 3인도 옛날엔 이런 거 보던 사람이에요. 오세요.”

    성경에 사주 보지 말라는 구절 없거든.

    동방박사 드립까지 섞어 가며 호도하자, 아줌마들도 설득되는 모양.

    “애들도 늦게 온다는데 함 들어나 볼까?”

    “그러자.”

    “이 선생님 재밌대.”

    그렇게 적당한 약팔이로 합창단 아줌마들을 사주 강의에 합류시키자.

    명분도 마땅치 않았던 지지층이 붕괴해.

    1인 시위에 힘을 싣고자 하는 이들이 사라졌다.

    심지어 이 아줌마들과 싸우던 할배들이 ‘아이고 아이고 잘 왔어요’ 하면서.

    대단히 좋아하여 갈등도 나름 봉합됐다.

    다만 최후의 저항군.

    ‘괜찮게 생겼지만 재미없어 보이는 1인 시위자’가.

    숭고하게 박해를 받으며 목소리를 높이는 형국은 해소되지 않았다.

    저 친구를 지지해 줘야 할 아주머니들이.

    우리 강의 와서 저 친구 뒷담을 하는 상황까지 치닫긴 했으나.

    최후의 저항군이 너무 벽창호다.

    “강의는 폐강해야 합니다. 구청은 교인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구청은 성경에 그른 말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귀신과 사탄을 섬기는 점성술에 이 나라의 교인들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아 진짜 외골수네.

    귀신 안 섬긴다는 할배들의 설득을.

    들을 생각을 안 한다.

    그러면서 본인은 설교하겠지.

    “이런 썩을 놈이.”

    할배들이 내 속은 긁어 줘서 시원하긴 하나.

    목적을 이루긴 어려워 보인다.

    저런다고 저 교인이 굴복할까?

    아니다. 오히려 보통은 이런 외부의 공격을 시련으로 생각하고.

    꿋꿋이 버텨서 본인의 자존감을 지킬 것이다.

    지금도 보면 알겠지만.

    할배한테 욕먹으면서도 눈 딱 감고.

    “구청은 이러다 교인의 세금으로 작두를 살 것입니까? 무속을 추구할 것입니까? 마귀를 말하는 무당에게 월급을 지급할 것입니까?”

    저러고 있다.

    그리고 할배들이 하는 일이 듣기엔 시원하지만.

    명분을 퍼다 주는 행위다.

    저러다 뭔 일 나면 사주 강의 듣는 저분들이 문제가 된다.

    “어이고오.”

    “들어갑시다. 벽 보고 얘기하는 느낌이오.”

    할배들은 열불 터져 하시다가 구청으로 들어가셨다.

    저러다 할배들이 뒷목을 잡던가, 할배들이 패던가 할 것 같아.

    해결을 봐야지 싶다.

    1인 시위자 옆으로 지나치면서 그냥 얼굴 한번 스윽 봤다.

    젊은 목회자라.

    목사는 반 종신직이라서 은퇴들이 늦어, 새로운 물이 적으니.

    드문 캐릭터.

    도심 아닌 시골의 개척 교회에서나 만날 수 있다.

    내가 강사인지는 아직 모르는 눈치다.

    사주명리학 강의라고 하면 나이 든 어른들이 할 거라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주도 젊은 층 진입이 없는 편이고.

    나이 든 술사의 짬밥이 자아내는 인생 묘사가 더 탁월해서.

    세대교체가 느리다.

    일단 사이비식 전도법으로 접근했다.

    나도 종교운 8레벨로 고위급 성직자에게서나 보이는 뭔가가 있다니까.

    “여자 문제로 고뇌가 많으시겠구먼.”

    “……?!”

    합창반원들이 배반한 이후로 이 시위는 원동력을 잃었다.

    그런데도 이 친구는 왜 이럴까?

    정치 뉴스를 보면 매번 물의를 일으킨 급 낮은 초재선급이 항상 상대 당을 공격하는 데 몹시 적극적이다.

    이걸 역산해서 사람의 행동을 계산하면.

    ‘집단의 대표성을 띠고 투쟁해서 싸운다?’

    ‘그러면 뭔가 그 집단 내부에서 점수 따야 할 게 있었다.’

    ‘왜 점수를 따냐면 켕기는 게 있거나 튀어야 하거나, 물의를 빚었을 가능성 있다.’

    그 물의가 무엇이냐.

    돈 아니면 이성 문제 그리고 감투겠다.

    그 외의 물의를 빚을 일이 뭐가 딱히 더 있을까?

    그 중에서는 일단 여자로 찍었다.

    이상하게 변태 사주에서 많이 본 특징이 있어서.

    “욕망은 강하나 힘이 안 따라 주니, 묘한 집착만 남았구나.”

    “누구시죠?”

    니가 말하던 그 사탄.

    “저요?”

    “예. 뭐 하시는?”

    대답해 주지 않고 내 이야기만 우선했다.

    “결혼은 하셨는데 요즘 부인하고 좀 신통치 않지 않습니까?”

    “그건…. 혹시 그 여기 구청 강의 다니시는 분?”

    경계하네, 뭐 그럴 만도.

    “아뇨 그냥 구청 다니고 있습니다.”

    “부인은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일전에 봤을 때는 반지를 끼고 계셨던 거 같은데. 지금은 안 끼고 계셔서요.”

    “아, 잠시 빼 놨습니다.”

    남자의 약점을 잡으려 할 땐 일단 약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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