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36화 (36/211)
  • #36. 사주 대신 정론

    목토시로 간신히 기선을 잡았다.

    손님하고 무슨 샅바 싸움하듯 기선을 잡냐 하겠지만.

    남자 손님들은 의심이 많고 7이 맞으면 3의 틀린 걸로 70점이 아니라.

    내 평가를 40점으로 깎으니까.

    압도해야 한다.

    그리고 노인은 본디 사주를 한 번만 본 적이 없고.

    노인이 사주를 보러 왔다면 인생이 사주대로 흘러갔기 때문인 바.

    사주의 약점을 파악할 가능성이 높다.

    노인은 웃으며 인정했다.

    “그렇죠. 혹시나 찬바람에 든 감기가,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라 두려웠던 게 맞습니다.”

    원래 이런 건 쿨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더 고단수다.

    이걸 마치 말싸움과 입씨름처럼 생각은 했지만.

    정말 승부를 보는 건 아니니까.

    여기선 동조를 해 줘야겠다.

    “하지만 슬픔이 있으시다. 뭐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슬프다고 다 죽으려 드는 건 아니지만, 때때로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때가 있으니까. 말이죠. 뭐 그러면서도 밥을 먹고 그러는 게 사람 아닙니까.”

    “슬픔이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문득문득 슬픔이란 게 몰려오지요.”

    “노년에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이란 게 있으신 분들은, 그분들보다 연소자인 가족을 잃은 경우가 많더군요.”

    “……!”

    노인은 방금 전보다 더 격동했다.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공략할 곳이 없던 노인의 빈틈이 열린다.

    딱히 대답하지 않고 표정도 그대로였지만.

    눈은 슬퍼진다.

    “사주 듣겠습니다. 제가 뭐 오래 사는 방법까진 모르겠지만.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그냥 병을 안고 칼을 안 대야 하는 타이밍 정도는 잡을 줄 압니다.”

    “듣던 대로 몹시 재미있는 분이셨군요. 사주 실력보다 아부 실력이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거 누가 말했는지 알겠네요.

    사주를 받아 들고 보니 노인은 자그마치 80세였다.

    어 이건 좀 놀랍다.

    “가짜 사주 아니에요?”

    “젊어 보인다는 말은 많이 듣습니다. 젊게 살아야지요. 예.”

    “과연 돈이 굉장히 많은 사주이시군요. 드넓은 평원의 천년 고목으로 이 땅의 수많은 풀들이 고목이 뿌릴 열매와 낙엽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짐작하신 바에는 놀랐습니다. 제 허리를 보고 돈이 많다고 하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신왕재왕이네.

    힘세고 강한 일꾼인데, 수만 평의 기름진 논밭이 있고.

    그 기름진 논밭의 작물을 죄다 수확할 수 있는 팔자.

    사주에는 등급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최고 나은 팔자로 본다.

    보통은 사람이 지 멋대로만 살면 돈과는 거리가 멀다.

    돈은 그 사람이 찍어 내는 게 아니라, 남이 주는 것인데.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지갑을 열게 하기가 어렵거든.

    “이건 재물운이 땅에 내려서, 돈이 많은 정도가 아니겠는데요. 근데 이건 일을 많이 해야 되는데. 허리는.”

    근데 신왕재왕은.

    내 멋대로 살아도 되는데, 돈도 많아.

    시류가 취향과 맞는, 택한 가는 길이 돈길인 사람.

    시류를 탈 필요가 없이 시류를 만들어 내는 사람.

    웹소설 업계에서 봐도 볼 수 있는 몇몇 작가가 이 사주이리라. 추정된다.

    “말은 안 했지만 그것도 놀랐습니다. 시술받은 겁니다.”

    “아하…. 그럴 만도요. 사주 보니 다른 허리 쓸 일도 참 많으셨겠습니다.”

    원래 100퍼인 양 확언을 하면 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낮은 퍼센테이지의 확률인 다른 예시를 한두 개씩은 들먹이는데.

    척추 재건 수술과 선천적 유전자를 그래서 언급해 놨더니.

    낮은 확률로 들어맞았다.

    “다른?”

    “이렇게 돈 많으면 반드시 두 집 살림을 합니다.”

    자신감도 넘치고 돈도 많은 남자.

    여자가 끊임이 없는 데다.

    유흥맨 사주에도 부합한다.

    여자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기생 좋아하고.

    “거참. 이거 쑥스럽군요.”

    “거기다 주거 및 부동산운도 밝네요. 이럼 두 집 살림에서 안 그칠….”

    “허허, 그, 대답해야 합니까?”

    웃긴 하지만, 살짝 불편한 모양새다.

    인자한 듯 보이지만 기준치가 있는 양반이군.

    장난이 먹히질 않는 대하기 어려운 어른이다.

    한 꺼풀을 벗겨 놨어도 쉽게 다 패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세 번이나 오게 해서 심통 났나.

    그렇게 찾아올 정도면 이쪽이 더 아쉽다는 말인데.

    쥐고 흔들기가 참 어렵네.

    “아닙니다. 넘어가죠. 연배가 연배신데, 이젠. 설마.”

    “그렇지요. 그래요. 이거 손자뻘인 분한테. 허허.”

    “세월이 그랬으니까요.”

    이러면 40년대생. 68때면 대학생이었기 어렵겠다.

    국외에서 배웠을 가능성을 걸고 말했다.

    “유학 다녀오셨을 거 같고….”

    “예. 그랬지요.”

    “야, 그 시절에 말입니까? 유럽?”

    “서독에 있었습니다.”

    “아, 당케.”

    “하하하하.”

    할배 이건 피식하네.

    “근데 자식은 좀 빨리 보시지 않으셨어요?”

    “그 시절에는 맡겨 두고 유학을 가면 종제가 맡아 주기도 하고 그랬었지요. 요즘이야 아니지마는.”

    “종제면 사촌 동생이죠?”

    “우리 역술인 선생님께서 문학에 꽤 조예가 있으셨나 보군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모르는 단어인데.”

    무협 쓰다 보니 그냥 옛날 단어와 한자 조어를 많이 알죠.

    “사촌 동생도 아이를 맡아 주는군요. 요즘 같으면 그 집 가정을 파탄 낼 거 같은데.”

    “시절이 그랬지요.”

    “한 80년대까지도 그랬습니다.”

    “80년대를 압니까.”

    “고전 만화를 좋아하거든요. 아기공룡둘리에서도 아기를 맡기고 유학 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말마따나 친지한테 젖먹이를 두고 어딜 떠난다는 게.

    요즘엔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지마는.

    그 시절보다 조금 뒷 시절인 아기공룡둘리에서도 희동이로 묘사가 되는 걸 보면.

    있었을 법한 일인 것 같다.

    “어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는지 모르겠는데요.”

    “죽는다 산다를 털어놓은 분인데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까 첩질에는 엄근진 해 놓고는.

    말하기가 좀 그런데.

    과연 고서에서 본 자식 먼저 떠나 보낸 사주다.

    아까 넌지시 던졌을 때 반응 그대로.

    “그때부터 연이 적었습니다. 아마 장남분이오.”

    “…허어.”

    노인은 한참 말이 없다가, 안경을 들어 올렸다.

    사주로 살피자면 다 타고 난 사람이나.

    자식운이 총체적으로 모자라다.

    원인은 신왕재왕.

    신왕재왕이 스스로에겐 아주 좋긴 한데.

    자식한테 영향력이 좋으냐? 면 좀 갸우뚱 싶다.

    좋은 경우야 물론 많다.

    아빠가 돈 많은데, 안 좋은 자식이 어딨나.

    아빠가 뭐라도 물려줄 텐데.

    근데 이분의 자식운은 좋지 않다.

    왜 안 좋으냐.

    너무 고강한 자아와 수많은 여자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자식들에게 엄마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도 있고.

    아버지가 너무 강한 사람이라,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래요. 그건 정말 한이 됩니다.”

    그냥 들은 사례만 봐도.

    젖먹이 맡겨 두고 유학 갔다잖은가.

    애보다 성공이 우선이었던 나쁜 아빠지.

    “말씀 계속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그러시죠. 추태를 부렸군요.”

    할배는 감정 컨트롤 능력이 좋다.

    목이 살짝 멨는데도 목소리 톤이 차분하다.

    “그럼 어르신은 여기. 유산, 유류분 배분 문제 때문에 오신 겁니다.”

    이 노인은 이제야 좀 감정이 동했는지. 감탄해한다.

    “…하, 이렇게 젊은 분이 꽤 예리하시군요.”

    “노인 분들의 주된 고민이니까요.”

    “정말 그렇습니까?”

    탐구하는 버릇은 안 버리셨네.

    “건강운에 관심들은 많으시지만, 왜들 그러시는지 내가 더 오래 살고 싶다를 어필하는 걸 꺼려 하십니다. 어르신도 그러셨고.”

    “실질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부양해야 하는 젊은이들 앞에서 그리 말하기 체면이 상하는 게 있지요.”

    “그 나이에 돈을 고민하는 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분명 있죠. 근데 그런 분들을 보면 측은하더군요.”

    돈 욕심이 그 나이에도 있는 사람들을 몇 봤다.

    그치만 말마따나 측은하다.

    그거 싸매고 가겠나.

    “그렇죠. 싸서 가져갈 거는 아니니까.”

    “노인분들은 보통은 죄다 자식 이야기, 자식이 낳을 아기 사주 정도를 보러 옵니다. 선생님께서도 어르신들이 사주 보며 갖는 보편적인 관심사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됐군요.”

    “자식운이 자식은 꽤 둘 것이나, 죄다 무용한 바. 남길 것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계시다 봤습니다.”

    “허허.”

    “심지어 정통성 있는 장남을 잃었다면 더더욱요.”

    노인은 눈을 살짝 질끈 감고 뜨더니 말했다.

    “제가 아는 분과도 비슷하게 말씀하시는군요. 솔직히 놀랍습니다. 제가 그분을 꽤 신뢰하는 편인데. 이 정도로 말씀하시면 저도 마냥 애송이라 본 게 부끄러워지네요.”

    질문이 예리하고 허점을 파고드는 게.

    사주 보러 가는 단골이 있거나.

    혹은 직접 사주를 좀 익혔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한테 물어보고 나한테 온 모양이다.

    “그러면 아마 그분이 찍은 자식이 마음에 안 드신 거 같네요.”

    “…허,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노인은 크게 웃으며 내게 박수를 쳤다.

    정곡인가 보죠?

    “이야, 혹시 김병용이한테 제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아니지. 김병용이한테도 말한 얘기가 아닌데.”

    이제야 커밍아웃 하시는구만.

    “그 양반이 술과 골프 좋아하는 어르신 한 분 소개시켜 준다며 좀 배워 놓으라는 이야긴 들었습니다. 어쩌다가 아셨습니까.”

    “제 장남과 친구였습니다.”

    “아.”

    까마득하구먼. 연령대가. 너무 멀다.

    김병용 그 양반도 내 앞에서는 한참 어른 행세하는데.

    이 할배면 어른 중의 어른이네.

    “혹시 신문이나 방송에서라도 절 보신 적이 없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아는 부자, 아니 인지는 하는 부자. 이재용 씨나 뭐 물의 일으킨 항공 기업 가문 이런 사람들 외엔 모릅니다.”

    “그래요?”

    “저 같은 소상공인에겐 까마득히 멀거든요. 알아봤자고요. 그리고 모르는 쪽이 더 믿음이 가지 않으십니까?”

    “확실히 그렇군요.”

    노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말씀을 드리지요. 저는 대전, 충남 지역에서는 좀 유명한 지역 건설사를 운영을 하다 관둔 지 좀 되었습니다.”

    “일을 안 놓으실 사주 같은데요. 시술을 받았으면 의자에 앉아 보고 받을 일이 늘은 것 같고. 시술은 5~6년 쯤이신 듯합니다.”

    “예 그랬지요. 큰애가 워낙 빼어나 맡기고 쉬며 여생을 보내고자 했습니다만. 모든 걸 남겼던 제 큰아이가. 그만. 제 곁을 떠났습니다.”

    “유감입니다.”

    “이곳은 유독 술 향기가 짙게 나는군요.”

    술 땡기시는 갑네.

    “그리고, 남은 자식 중에 그 아이만 한 자식이 없습니다.”

    “자식운이 본디 좋진 않으십니다.”

    “그렇지요. 젊었을 적엔 그런 이야기 듣고 흘렸는데, 이제야 와닿습니다.”

    젊은이들한테 자식운과 건강운만큼 듣자니 무용한 게 없긴 하지.

    나이 들어야 깨닫는다. 자식운의 중요성은.

    “이룬 사업을 물려줄 만한 이가 없다. 이거겠죠?”

    “한 놈은 형의 자리를 노리려 정치꾼들하고 놀더니 아비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지금은 큰집에 가 있고. 한 놈은, 허. 막내인데.”

    “혹시, 첩이거나 후처 자식입니까.”

    두 번째로 놀란다.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이건 다른 분도 확언은 못 하던 것인데.”

    “그냥 일생에 여자가 너무 많았는데요. 그리고 신체가 왕성하니 그냥 쳐다만 보며 아끼시거나 그러진 않았을 테니. 뻔합니다.”

    50대 초중반쯤에 뜬금 자식운 있더라.

    그 나이에 본처면 아마 임신이 어려울 것이고.

    여자도 좋아하고 유흥도 좋아하니 뭐.

    “계룡에서는, 막내가 저와 가장 닮았다고. 막내에게 물려주는 게 낫다고 합니다만.”

    “사주 주시면 그것도 풀어 드리겠습니다.”

    “그 아인 사주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글러 먹은 것 같아 고민이 큽니다.”

    “드라마에서 본 듯한 사연이군요.”

    “원치 않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자식들의 역량을 내가 언제까지 보고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주 보는 사람이.

    ‘막내한테 물려주세요.’ 라고 했는데, 그 막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다.

    한데 뾰족한 수도 없는 모양.

    거 전문 경영인 체계로 가던가.

    혹은 100세 인생 노리고 하나 더 놓으시죠.

    하고는 싶으나.

    손님의 소망이 그게 아니겠고 주제넘은 이야기겠다.

    “그럼 그 도사분이 하는 말이 진실일 수 있습니다. 듣기에 싫은 옳은 말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아마 저도 사주를 보면 비슷하게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네요.”

    “으음.”

    내가 ‘계룡’ 쪽 도사를 편들자. 살짝 심기가 상한 듯 보였다.

    그 양반이 사주로는 다 맞는 것 같은데 승계에서 이견이 있으니까.

    다른 역술인 찾던 거 같은데.

    거기서 천거된 게 큰아들 친구로 긴밀히 지내던 김병용의 지인인 나였던 듯하다.

    아마 그렇다면 내가 사주로 봐도 비슷한 결론을 내릴 거 같은데.

    이럴 땐 사주를 빼고 정석으로 가자.

    “그러니 사주가 아니라 정론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정론이라?”

    “대통은 장자로부터 장손으로 내려가는 것이므로 손자한테 가게끔 하면 됩니다.”

    이 영감님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손주들이라, 한데. 나이들이 아직 어려서.”

    “그래서 언제까지 살지, 언제 죽을지 알고 싶으셨던 거 아닙니까?”

    노인은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아무 말 못 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허, 그 말이 맞는 듯 합니다. 선생은 저도 모르는 제 마음을 보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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