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무당집에 간 역술인
인터넷 방송 등을 켜서 유도해 주었다.
“개그를 치는 거죠. 웃음으로 장벽을 허물고 들어가면 웃는 낯에 침을 못 뱉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사람이 웃으면서는 피곤하다 말이 잘 안 나옵니다.”
사주로 뭐 안 되니까 심리학적으로 접근했는데.
손님, 강천율은 웃으면서도 문득 회의감이 온 듯하다.
“근데 제가 꼭 이렇게 해야겠습니까. 아무리 명분이다 뭐다 하지만, 굳이 빌빌거리느니 안 하고 말겠습니다.”
아저씨 거 존심 있으시네.
“회사 장기자랑 같은 것에서는 끼가 있으실 텐데요. 시키는 건 하실 분이라 보는데.”
“그걸 좋아서 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긴 이제 시킬 나이죠.”
40살을 눈앞에 두고도 누군가한테 빌빌 기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안 하시겠다면 제가 다른 방법으로 개선을 꾀해 보죠. 저도 여복 없으신 분이 들이대게 만들기 되게 난감하네요.”
“무슨 방법이 또 있습니까?”
0렙짜리가 기어이 아쉬운 소리 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대운과 년도 덕에 2~3렙은 되시는 마나님을 설득하는 게 낫겠다.
“공짜로 사주 봐 준다고 할 테니 부인을 한번 모시죠. 선생님. 제가 반대로 마나님이 먼저 선생님께 다가서게끔 해 보겠습니다.”
“예에?”
“남편에게 좀 더 잘하게끔 유도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제 사주는 남성분들보다 여성분들이 더 찰떡같이 믿고 따르거든요. 반대로 남편에게 잘해 줬다는 명분을 쌓으라고 조언해 줄 참입니다.”
“그러면 됩니까.”
“자신 있습니다.”
아저씨 표정이 미묘하다.
본인이 그래도 부인한테 굽히기 싫다니까.
내가 부인 설득해 준다 했더만.
표정이 아까보다 더 안 좋다.
여복 없는 남자에게 붙어 있는 여자는…….
“탐탁진 않네요.”
“뭐 때문에 그러십니까.”
“집사람이 그렇게, 빌게끔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그냥 그 사람. 그렇게 나한텐 쩨쩨하지만 도도하게 굴다, 간혹 티 안 내면서 잘해 주는 게 이쁩니다.”
그 말을 한 강천율 씨를 보며 그냥 피식 웃으며 아무 말도 안 했다.
한참 부끄러워 봐라.
“큿.”
“흠, 흠.”
이 양반 부인한테 애착 오지게 가지고 있구먼.
삐졌을 뿐이지.
여복 없던 남자한테 들어 온 여자면 남자가 엄청나게 관리한다.
금쪽같이 하나 딱 들어온 데다 꽁꽁 감춰 둘 수 있는 물건도 아닌. 두 발 달린 사람이니 불안감이 가득 있다.
거기다 내심 고맙기까지 하지.
아마 이 운세면, 결혼하던 36세 대운까지 모솔이었을 듯.
2D와 결혼한 내 친구들 몇몇과 관상도 흡사하다.
여인은 이런 남자의 진면목을 알면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마는.
좋아하는 경우도 많아서 뭐라 할 만한 판단은 못 된다.
그래도 남자가 사회성이 높고 겁도 많은 사람이라, 일생에 큰 무리수는 안 둘 테니.
집착으로 생기는 문제는 없지 싶다.
“그런 얘긴 마나님 앞에서 하셔야지. 엉뚱한 데서 하고 계시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될 거 같은데요?”
“그렇습니까?”
“예, 부인 분이 비는 것보다는 낫다며요? 그럼 본인이 하셔야죠. 방법은 지금 하신 말씀 그대로 하는 게 좋겠네요.”
“어떻게?”
“지금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주 보는 도사님이 부인 부르라고, 혼내 준다고 했는데 그러지 말라고 제가 굽히겠다고 했다, 라고요.”
“예, 뭐, 그래요. 집사람이 혼나는 것보단 제가 한 번 더 핀잔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어, 그리고요.”
“왜 그러십니까.”
“둘째 이야기를 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거 작년에.”
“그래도 그거만 한 명분이 없습니다.”
“사주가 그렇답니까?”
“이건, 그 사주가 아니라요. 요새 맘카페에 올라온 리뷰 보고 찾아온 맘들이 하는 말인데.”
“아, 예.”
사주에도 근거는 있지마는, 현실적인 사례를 예시로 들면 더 쉽게 납득한다.
“아드님이 딱 그 나이대가 왠지 아이가 혼자면 외로울 거 같고, 늘그막에 낳으면 육아 전쟁을 또 치러야 하니 한 번에 다 치를까도 싶고 아기는 귀여워서 더 갖고 싶은 나이라고 하더군요. 울기만 하던 때를 벗어나서. 한참 사랑스러운 피드백을 보여줄 때라고.”
“그렇죠. 지금이 딱 그렇습니다.”
이 양반이 자식 생각하며 짓는 웃음은 영업용이 아닌 것 같다.
바로 그날 밤이었다.
“뭐여, 샹. 밤중에 웬 알람. 야간 알림 다 껐는데.”
사주 강화술 말고는 알림 꺼 뒀는데, 메시지가 중복으로 와 있다.
<가정 수호>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성공은 아니므로 포인트가 전부 지급되지는 않습니다.
“성공했네. 그 아저씨.”
포인트가 좀 적게 들어온 건 서운하긴 한데, 잘 됐으니 됐다.
부인이 자식을 갖고 싶어 몸이 동해야만 부인을 여복으로 칠 수 있는 비운의 남자니까.
아마 시즌제 드라마처럼 널뛰기로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긴 섹스리스의 기간, 어쩌다 찾아온 봄날 같은 전간기.
이런 인생이지 않을까.
그러면 지금 당장은 화해해서 좋은 시간 가질지 몰라도.
불씨는 계속 남아서 트러블이 있을 테니. 완벽하진 않겠지.
그래도 정욕은 영원할지 모르나 정력은 영원하지 않으니.
그게 꺾일 때쯤은 번뇌 없고 남녀로 볼 필요 없이 친구처럼 오순도순 살 수 있을 것이다.
* * *
명승철학관으로 출근하려면 한옥마을을 거쳐야 한다.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서인지 한옥마을은 사람으로 북적이는데.
한복을 입은 커플들이 줄을 이어 다닌다.
오전에 출근할 땐 좀 덜 그러지만 퇴근할 때는 그놈의 문어꼬치 및 닭꼬치 소스가 흘러 끈적거리는 바닥을 밟아야 하는 번화가 말고, 살짝 우회해서 명승철학관으로 간다.
우회로에는 그나마 집값이 싸서 음식점 같은 거는 입점을 안 한, 한옥 숙박 정도만 하는 한옥이 몇 채 있다.
여기 어딘가가 소녀보살의 신당이다.
문득 어딘가 싶어 리뷰대로 한번 찾아보니 별다른 걸 써 붙이지 않은 옛 한옥이 하나 잡힌다.
“으리으리허네. 주거운 8에서 10레벨은 되는가 봐.”
사람들이 왜 자꾸 무당과 역술인을 착각하나 싶어, 전역 직후 신점을 세 번 정도 보러 갔었다.
점술과 예언 업종에 어떤 차이가 있나 궁금했었다.
두 번의 신점을 본 경험은 ‘에라이 사기꾼들아’ 였지만.
세 번째의 경험이 너무 압도적이라서 기억이 난다.
‘사주나 하고 그놈의 주역으로 동전이나 던지지 왜 왔어. 궁금하니?’
‘너 남자애들 얼굴만 봐서 관상은 못 보잖아. 그치?’
‘너 이런 소재로 소설 쓰는 애구나. 재밌는 애가 왔네. 그래 이야깃거리라도 하나 줄까?’
‘죽는다 말했다고 죽는 거 아니다. 죄책감 갖지 마. 어디 돈도 없는 애가 여자를 양옆에 끼려고 했을까. 우스운 일이지. 넌 살리려고 노력했어.’
앞선 신당들은 내 사주를 요구했는데.
세 번째에 찾은 신당은 그냥 내가 들어가자마자 면상도 안 보고 맞췄다.
무당이 얼굴을 안 보여주고 다른 방에서 말하더라.
정말 용한 무당은, 사주나 얼굴조차 필요로 하지 않았다.
최소 사람의 행색과 대사, 이어 사주가 필요한 나로서는.
이게 당최 뭔 트릭일까 아무리 의심을 해 봐도 답이 없었다.
‘얘 봐라. CCTV로 얼굴 미리 보고 관상 본다고 의심하고 있네. 그래서 네 맘이 편해지니? 그럼 그렇게 생각해.’
의심하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맞혀 소름 돋았다.
글의 소재를 보지도 않고 맞추는 것이나.
상근 후임이 자살했던 일을 맞추는 것 등은.
도대체 어떻게 짐작하고 찍어야 가능하냐.
독심술이나 추리로 찍었어도 이 정도면 존경한다.
‘갔던 곳들은 다 사주를 요구하던데요. 거긴 왜 그랬을까요?’
경외심에 저절로 공손히 앉아 말하니.
‘가여운 애들이 그냥 잡신이나 잠깐 들었거나, 신기가 빠져서 그래. 신이라는 게 계속 우리 곁에 있진 않더라. 사람도 평생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을 만나기 드문데, 신이라고 아니겠니.’
그 이후로는 무당이 사주, 얼굴 등의 근거를 요구하지 않고도 사람의 신상을 맞춘다면 신력이 있는 걸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다.
그리고 신력으로 보는 신점이 아니라.
무당이 사주팔자를 통해 운명을 추론하면 무당으로는 안 본다.
그냥 역술인이지.
‘나도 언제고 그렇게 될 수 있으니까, 너무 그러진 마.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배운 게 이 짓이니, 주역도 따라 하고 사주도 따라 해 보는 거야. 그냥 사주 배운 귀신이 쓰였겠거니 해. 그러면 그럴 수 있어.’
그래도 그 무당이 말한 대로 양해해 주려고는 한다.
작두 안 타고, 굿이나 부적으로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으면 말이다.
점술업을 해야 하는 특성상, 이해한다.
가방에 넣은 팸플릿을 다시 꺼내 보았다.
‘사주의 기초, 오행의 신비.’ 2강 소녀보살.
“이게 무속을 설명해 주는 강의면 듣겠는데.”
소녀보살의 강의는 진짜 경쟁자 같은 데다가.
별로 듣고 싶은 주제가 아니라서 나갈 생각이 없다.
그때 한복을 입은 한 소녀가 지나쳤다.
한옥마을엔 한복 입은 사람들이 무척 많으니까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지나치면서 울리는 방울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거기다 칼?
장군 옷 빌려주는 데서 같이 주는 레플리카겠지?
방울을 딸랑거리며 칼을 찬 한복의 소녀라니.
이건 뭔가 한옥마을이어도 좀 있을 법한 캐릭터가 아니다.
“뭐여.”
내가 쳐다보는 걸 알았는지 지나치던 소녀도 내게 눈을 흘긴다.
그리고 칼과 방울.
나는 한국기행 애청자로 이 소녀의 컨셉을 알 것 같다.
칼 찬 선비, 남명 조식이다.
그 양반은 참 힙하게 성성자라는 방울을 몸에 달고, 경의검이라는 칼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방울이 울릴 때마다 스스로의 과오를 반성했다나.
“남명 조식 선생 코스튬 플레이는 희한하네.”
그 순간 한참 지나쳐서 체구가 작음을 알 수 있던 여인이 멈추고 이쪽을 휙 쳐다본다.
물론 들으라고 한 소리다.
코스튬 플레이를 했으면 무슨 캐릭터인지는 알아봐 주는 게 좋지 않나 싶어서.
그뿐 아니라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으로는.
저 사람 아무리 봐도 코스튬 플레이라기보다는 무속인스러운데.
작은 체구하며, 가는 방향 하며.
미루어 짐작하기로는 나이 지긋이 드신 아주머니가 목소리만 앳되게 장사하는 집이라고 여겼는데.
* * *
“선생님!”
오후 다섯 시 넘어 슬슬 마무리 지으려는데 수이가 찾아왔다.
“아, 네 어서 오세요. 영업은 이제 끝내려던 참인데.”
“진짜 궁금한 게 있어서 왔거든요.”
“아, 그래요.”
“근데 왜 자꾸 존댓말 써요?”
“교생일 때도 존댓말 썼는데요.”
학생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라며 존댓말 쓰랬다.
다만 학생들이 교생 따위는 동등한 인격체로 안 보더라.
거의 신입 쏘가리처럼 취급하더군.
“존중하는 느낌보다 거리 두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럼 뭐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하시던가요.”
“커피는 자연스럽게 마시자고 해 놓고선.”
“손님한테 어, 어, 저, 저, 저, 저기 커피 한잔 하, 하실래요. 헉. 죄송합니다. 제가 긴장을 많이 해서……. 이러면 비호감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네요?”
“순전히 영업용이니까. 불필요한 오해 마시길 바랍니다.”
“저 오늘 어디 갔다 왔게요?”
그냥도 알겠다.
“구청 주민 문화 센터.”
“와, 진짜 선생님은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오늘 2강 소녀보살 양반 강의하는 날이고, 내가 팸플릿 줬고, 그런 거 아니면 어디 잘 안 나가니까.”
“그분도 사주 진짜 잘 보더라고요.”
“이 근처에 그 양반 업장 있습니다. 가서 비법 물어보세요.”
“아 근데, 듣는 분들한테 어딜 졸아! 누가 휴대폰 보래. 이러면서 막 호통쳐서 좀 별로였어요.”
실력은 있는 양반인가 싶은데, 그건 실수하셨네.
이건 사주 실력이 아니라 강의하는 날의 인기로 뽑는 거니깐.
강의 스킬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선생님. 신점이랑 사주는 정확히 뭔 차이예요? 보신 적 있어요?”
“어,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아주머니가 찾아왔을 때.”
“네.”
“제대로 된 사주는 남편이 바람피우고 있다는 걸 맞추지만, 제대로 된 신점은 네년 남편 지금 어디 모텔 몇 호에서 어떤 년이랑 재미 보고 있다. 이걸 맞춥니다.”
“어, 우와.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녜요?”
“대신 자아의 반절을 귀나 신한테 아웃소싱해야 해서. 권하진 않죠.”
“아, 아웃소싱이 뭔데……요?”
“뉴스도 보고 시사 공부도 좀 하심이 좋겠네요.”
놀리면 원망하는 표정으로 노려보는 거 재밌다.
지금은 내가 놀릴만한 약점이 마땅찮으니 입만 삐죽 나온다.
“한번 가 보실래요. 소녀보살 신당?”
“거기도 장사 마칠 때쯤 된 것 같고 나는 굳이 안 궁금한디요.”
“그, 제가 가 보고 싶은데, 무서워서요. 제가 복비는 내 드릴게요.”
“무당도 사람인데 무서울 것까지야.”
“강의할 때 무서웠어요. 잡아 먹힐 거 같더라고요.”
“복비 더하기 오늘 저녁밥이면. 같이 가죠.”
“네!”
아마 헛걸음할 가능성이 크다.
그 정도로 장사 잘되면 무조건 예약제고 몇 달은 밀려 있다.
대면 업종이 인기 많으면 닥치고 예약이지.
경쟁 업장에 손님인 척 찾아가는 게 께름칙하나.
어차피 소녀보살은 코빼기도 못 볼 거 같아 상관없다.
밥은 얻어먹을 수 있겠네. 개꿀.
그렇게 수이와 함께 낮에 왔던 소녀보살 신당 한옥에 도착했다.
“들어가요.”
“네, 넷.”
진짜 무섭긴 했는지 무슨 유령의 집 들어가는 것처럼 반응한다.
“예약 안 하셨지요.”
“예.”
나이 지긋해 보이는 어머님 한 분이 유치원처럼 색동저고리를 입고 접수처에서 막는다.
한옥이라 사랑채 문 열고 이쪽으로 오란다.
“보살님 오늘은 강연과 예약이 있어 안 계십니다.”
“아, 그래요?”
그럴 줄 알았다.
“다만 제가 보살님께 사사하고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봐 드려도 되겠습니까? 복채는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그렇다는데요. 괜찮겠어요?”
수이는 대답은 없고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하며 내 팔을 꽉 잡는다.
그나저나 신딸이나 되는 모양인데 자신 있나?
신력은 오히려 그동안 신력으로 장사해서 돈도 좀 만지고 유명세에 기가 살아나서 신력이 되레 떨어진 신엄마보다는.
갓 신내림 받은 초보 무당들이 더 강한 경우가 있다.
주시는 대로 받겠다는, 가격 정찰제가 아닌 게 더 무섭긴 한데.
국룰 아니까. 상관없다.
“예, 그러죠.”
“두 분은 애인 아니시지요?”
오, 기선제압을 바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