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21화 (21/211)

#21. 제자였다

<제자>

당신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인물은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듯, 때로는 제자이나 때로는 부하이기도 하며, 때로는 자식과도 같습니다.

당신이 제자를 얻는다면 당신은 연령과 상관없이 사람을 부리는 기술. 부하/통솔운에 가해진 레벨 제한이 일부 해제됩니다(부하 통솔운 –2에서 –1로).

제자를 들여 교육하면 당신의 인성운에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군사부일체라.

집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식은 학교에서도 선생님에게 말씀 잘 듣고, 더 나아가 국가와 체계에 크게 반항하지 않는 인물이 되더라.

이건 군에서 본 남자들 표본이 좀 있다.

군 생활 잘하고, 효자이며, 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던 친구들.

그러니까, ‘순응하는 인간상이 되어라.’라는 유교 통치 이념을 잘 말해 주는 단어로…….

‘나한테 그럼 좋지.’

교육은 공부보다 인성운 포인트가 2배 더 빨리 오르는데.

교육을 듣는 사람이 많을수록 배율이 올라가 최대 5배까지의 효율을 보여 준다.

괜히 그 고작 6개월 강사 자리 두고 강의 계획서 짜서 소녀보살 이겨 보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사주 강화술 메커니즘으로 강사나 교사가 되어 강의를 하면.

주거운을 올려서 건물주가 되는(?) 결과를 자아내는 것이다.

물론 사주 강화술 못 쓰면 운이 난사되어서 공부/학위, 종교/신념, 기예, 어머니운.

이런 게 랜덤으로 오르겠지만.

공부 잘하는 자식을 둔 엄마는 장수.

이건 말 되는 거 같기도. 자식이 자랑스러워서?

“저한테요?”

별로 당혹스럽거나 놀라진 않았다.

나는 고수를 찾아가서 사주를 묻다가 발리면 듣고 배우겠다면서 설교를 들었다.

그 상황에서는 가르침을 청합니다, 로 수습하는 게 가장 덜 추하다.

날 발랐다고 열 받아서 고수 말꼬투리 잡고 물고 늘어져 봐야 진상 짓이지.

발렸으면, ‘와 저 발라버리셨네요. 역시 대단하세요. 저 배우고 싶어요.’로 대해야 맞다.

“임상은 결과고, 이론은 가설이잖아요. 저 이렇게 결과부터 내어 주는 분은 처음 봐요.”

그 대사 맘에 드는데.

“보통 이론만 맞다고 우기는 사람들 있죠. 사람은 이렇게 사는데, 사주 이론상 그렇게 살 사람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

“네, 그거요. 그거. 아니, 부인운이 없는 남자 사주고 대운도 미력한데 부인 있고 자식 있어요. 심지어 자식이 대학생이야. 20년을 같이 살았어. 그러면 부인운이 없다고 말하면 안 되지 않아요?”

속사포로 쏟아내는 거 보소.

어딘가는 말하고 싶었던 한이 엿보인다.

저런 거 누구한테 말하겠냐.

아는 거 많으면 들어 줄 사람 필요한데.

그만큼 아는 사람이 흔친 않고.

그러다 보니 그나마 취미가 분류별로 모이는 인터넷에 몰두하고 방구석에 처박히지.

“어) 근데 부인운이 없는 남자가 결혼을 한다면 의외로 혼인 유지력이 좋습니다.”

말마따나 사주의 임상과 이론이 다르다.

그중 하나가 이성운 없는 남녀가 얼추 해로하는 것이다.

나도 그거 젊은 세대는 몰라도 중장년은 사회가 결혼으로 어떻게든 몰아넣어서 그런 거 아닌가 했는데.

산불 관리원 형님들. 그리고 아줌마들과 사주 강화술을 보면서 답을 얻었다.

생각보다 쉽더라.

“왜……요? 그래도 보통은 정말 장가를 못 가지 않아요? 이혼하거나.”

“거기부턴 망측한 단어를 써야 하는데. 사주 주시죠. 몇 살인지 알아나 보게. 미성년자면 어, 안녕히 가세요. 살펴 가십시오.”

“미성년자 아닌데요?”

“공부를 아주 열심히는 안 했네요. 취미에 빠져서. 북대생이거나 그래도 시험운은 대박 났다 싶음 교대생이실 듯.”

“뭐야……. 무서워. 혹시 저 아세요?”

이제 8월 말이니 2학기 시작했을 텐데.

지방 도시에 대학생이 있으면 인서울권 대학은 못 갔다고 판단하는 게 정석 아뇨?

사람들은 내 찍기가 맞기 시작하면 점차로 내가 사주가 아닌 독심술로 ‘누구나 들으면 맞고, 사주가 아닌 논리적으로 유추할 수도 있는 것’ 들을, 내 능력에 더해서 판단하더라.

이 친구는 그런 눈치는 깔 줄 알았건만.

“고등학교 남녀공학 나왔으면 알 수도 있고.”

“어? 저 졸업한 학교도 아세요? 어어?”

이 손님, 갑자기 과도하게 놀란다.

왜 놀라는지를 사고로 추론해 보니.

날 진짜로 아나?

내가 3년 전에 갔다 왔으니까. 어. 음.

“어어어어어어어?”

이 손님 괴성을 지른다.

반 아이들은 어렴풋이 다 기억난다. 근데 이 친구는 아닌데?

다만 교생이 대기하는 대기실이 점심시간에만 운용하는 교내 방송실이라서.

방송실을 찾아오는 방송반 학생들과.

그 방송반 애들과 함께 방송실을 아지트 삼아 수다 떨러 오던 애들이 있었다.

이 손님은 갑자기 날 빤히 쳐다보더니 휴대폰을 뒤진다.

“어, 음?”

나도 기억이 날 듯 말 듯 해 휴대폰 뒤졌다. 3년 전 사진.

처음엔 방송실에서 조용히 대기하며 수업 시연할 것 체크하고 반 애들 모의고사 채점 등만 했었으나.

이것들이 대기실 말고는 있을 곳도 없는데 휴대폰 핫스팟 켜서 뺏어 가고 내 폰으로 게임해서 휴대폰도 못 보게 만드는 등.

애들 등쌀에 결국 대화 주도권을 쥐기로 생각했다.

질문이 죄다 발칙한데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쥐어박을 수도 없고.

2픽 인생이던 연애 이야기는 몹시 부적절해서.

사주 썰 털었더니…….

맛집 됐다.

“사주 보던 교생 쌤 맞죠? 그쵸? 그걸로 진로 상담 하셨잖아요.”

동네 장사라 그런지 지인을 꽤 본다.

내 연락처까지 아는 지인은 드물지만 한 다리 건너는 정도의 지인은 계속 걸린다.

확실히 얼굴까지 아는 지인은 지금까진 김연주 씨.

그리고 김순옥 라인인 친구 어머니.

이어 연락처까지 아는, 현재까진 끝판왕인 막내 이모.

새 동거남과 궁합 보러 함께 와서 엄마한테 서로 안 이르는 조건으로 여기서 일하는 건 불문에 부치기로 했지만.

아무튼. 그래, 어.

“즐거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어딜 가세요?!”

옛 학생한테 사기를 칠 순 없잖아요.

듣는 분들이야 맞다 맞다 해 주지만 내 양심에 손을 얹으면 반은 사긴데.

와, 나이 먼저 물어보길 잘했네.

여자운 없는 남자가 결혼을 오래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섹스란 단어는 말을 해야 한다.

그 드립을 얘한테 쳤으면 와, 어후. 고개 못 들었다.

“맞죠? 선생님, 선생님. 저 기억 안 나세요?”

“예, 지금 보니 기억나네요. 갑니다.”

얼굴은 흐릿해서 맞는지 모르겠는데. 알지. 타로 본다던 애.

그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으니 재수 안 했으면 지금은 대학교 2학년이겠네.

감이 그 감이 아니었나 봐.

왠지 얠 보고 학생인가가 자꾸 떠올랐는데, 그랬나 보다.

기억나는 걸 인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붙들렸다.

“왜 자꾸 가려고 그래요? 저 그때 왜 아이디 안 줬어요? 그때 연락처 안 준 거 미안해서 그래요?”

“예에 학생들이랑 개인적으로 연락들 하지 말래서요.”

여자애들한텐 다 안 줬다.

남학생들하곤 게임 아이디를 주고받아서 연락된다.

며칠 전에도 군대 간다고 연락하더라.

[형 나 입대함.]

[사주 배워 가라.]

[그럼 좋아?]

[응 ㅎㅎ.]

생각해 보니 쪽팔리긴 한데.

자아운 LV8(대운 강화+2) 핵뻔뻔, 정신승리가 발동되어서인가.

좀 바로 수습된다.

머스마들이랑은 아직도 게임하고 저러면서 잘 노는데 뭐가 문제?

여기가 뭐 학교도 아니고 내 신분은 프리랜서 겸 자영업자고.

얘가 뭐 이젠 미성년자도 아니고.

백종원 그 양반은 15살 연하랑 살고(?).

내가 뭐 들이댔냐. 그리고 들이댄다고 넘어오냐.

“이거, 이거요.”

교생 끝날 때 같이 찍은 사진이 있긴 있네.

반 애들끼리 찍은 뒤, 방송반에서 반상회 여는 애들과도 몇 장 찍은 사진 중 하나인 듯하다.

이때 얼굴 보니 기억 확실히 난다.

이목구비는 지금과 큰 변화가 없지만, 체형이 가냘파졌고. 언제나 하던 똥머리 묶음이 아니다.

이 정도 포인트는 주긴 줬네.

‘크면 젖살이 빠진다.’란 말.

그냥 학생들 입시 스트레스에 외모 스트레스까지 받지 말라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얘는 이 변화가 최근이라면 입을 옷이 없는 것도 이해가 간다.

어디서 본 것 같지만 못 알아볼 만했다.

지금도 목 늘어난 반팔 티가 헐렁거린다.

“그래도 머리는 감고 다니시네, 맨날 저녁에 감는다고 뻥치더만.”

“감거든요! 아니 감았거든요? 아가씨 사주라더니?”

“조선 시대 아가씨는 가체 내려놓기 힘들어서 단옷날에나 창포물에 감았을 테고, 유럽 아가씨는 석회수라 머리 감으면 돼지털처럼 뻑뻑하고 머리카락에 석회 묻어 나와서 더 안 감지.”

“헤, 저랑 키 이만해서 비슷하셨었는데?”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생인 줄 알았는데.

점술학 관련 대담으로 내가 한번 반 농락을 하자.

얘가 갑자기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면서 까불었다.

그래도 내가 선생이고 연구한 바가 많아 일방적으로 발라 버렸지만.

그러면 꼭 유치하게 지 키가 나랑 비슷하다면서 ‘키 별로 안 크시네요.’ 하더군.

애들이라 이해한다.

애들이 좀 더 직관적이고 대놓고 까더라고. 썩을 놈들.

지금도 그 성격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일어나서 이마 위에 손 올리고 키 측정하는 기계처럼 뗐다 대길래. 같이 일어나 줬다.

하지만 당황한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어, 키가…… 컸어요? 키가 커요?”

감사합니다. 명승 선생님. 이 은혜는 훗날 뭐 수상할 일 있다면 영광을 돌리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깔창 3형제.”

“3형제?”

“세 개 넣었습니다.”

“아, 키 무지 신경 쓰시는구나.”

“여자친구 만들려면 신경 써야죠.”

“그래도 여자친구는 꽤 만나지 않아요? 인기 많으셨는데.”

사주 맛집이라 그랬지. 애들도 눈 있다.

“이제 사주도 좀 배우셨다니까. 제 사주 풀어 보면 아시겠죠. 생년월일시 정도는 알려 드리겠습니다.”

“근데 왜 자꾸 존댓말 쓰세요?”

“학생한테도 존댓말 썼는데요. 하물며 어른이고 손님인걸.”

“제 이름은 기억해요? 선생님이 되게 잘 지은 이름이라고 했는데.”

“수이. 윤수이.”

“우와.”

사주 본다고 주변에 알려져 억지 작명을 몇 차례 수행한 적 있다.

그러다 아는 집 딸 이름을 ‘수이’라고 지어 줬는데.

그 이름을 얘도 쓰고 있더라.

안 흔한 듯하고, 영어 이름으로 써도 괜찮을 성싶어 지은 건데.

나 같은 생각을 한 작명인이 있었구나 싶어.

이름을 칭찬했었다.

“그런데 왜 기억 못 했어요?”

“건장했는데, 날씬해져서 동일인이라곤 생각을 못 했죠. 어디서 본 거 같다 싶긴 했습니다.”

“20킬로 빠졌어요.”

“밤잠 안 자고 아침밥 낮에 밥 안 먹나 보네. 부모님이 딱히 뭐라고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운동도 좀 했거든요?”

“잘했네요, 미모가 폈다.”

칭찬으로 쌓은 빌드업 있으니 아예 폐기하긴 뭐하고.

그때보단 확실히 나으니 칭찬해 줬다.

이젠 칭찬을 좀 칭찬으로 받는 것 같은 느낌이다.

“흐응. 저 그럼 이제 사주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별로 권하진 않는데요.”

“왜요?”

군대에서 이런 나이쯤의 청년들 사주 상담을 아주 많이 했지만, 자영업을 권한 적은 없다.

확률이 낮으니까.

사람은 본디 혼자서는 스스로의 운명을 지탱하기 힘드니.

나라나 직장의 운명과 공동체가 되는 게.

평범한 사람들에겐 최선은 아니지만 분명한 대안이고.

또 보편적이니까. 다들 취업에 목매고 일자리에 목매는 거 아니겠나.

그게 아니면 더 가시밭길밖에 남는 게 없으니까.

“서비스직입니다. 그리고 남들의 죽을 수 없어 사는 사연을 듣는 게 일이죠. 그 사연을 들으면 몰입해서 공감해야 하고, 또 그 공감을 못 하는 이는 인생을 털어놓는 손님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데. 죽네 마네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하루 종일 공감하면 어느새 그들과 같이 우울해집니다.”

“아.”

“그래서 젊은 나이에 진입하는 건 권하지 않아요. 나이 든 분들의 인생을 공감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니까. 뭐 타로 정도는 주로 젊은 소녀들이 사랑의 고민을 품고 찾아올 테니까 귀엽기라도 하겠습니다만.”

“선생님은 몇 살인데요? 나이 안 많지 않나?”

너도 젊으면서 뭔 꼰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 인가 보군.

내가 뿌린 씨앗인 건 맞다.

반 친구를 두고 한 운명 유추력 대결에서 추론 능력으로 압도해서.

내가 그 추론 능력에 쓴 사주를 동경하게 한 듯하다.

내가 동경하라고 한 적은 없는데. 좌우지간 그리됐나 보다.

그거 내가 한 게 아니라, 그 대상인 학생 놈이 교생 쌤이 잘 보냐 수이가 잘 보냐면서 쌈을 붙인 것이다만.

뭐 근데…….

어차피 강의하려고 강의 계획서 짜고 연습하고 있지 않았나.

내 인생도 아니고, 하고 싶다면 해 봐야지.

어디까지 아나 좀 볼까?

“그럼 이 사주를 보고,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인지 5분 안에 맞추시면 그렇게 하죠.”

“아, 재밌겠다. 좋아요.”

이건 내 사주다.

이미 교사, 혹은 역술인으로 인지시킨 상태고.

본업을 추측하긴 어렵지 싶다.

그 당시 중학생 때 교복을 입은 여고생 캐릭터가 꽉 끼는 옷에 힘겨워하는 표지의 책을 썼기 때문에, 작가의 정체성은 철저히 감췄다.

지금도 교생 때 인맥인 8살 어린 친구 놈들은 모른다.

사주로도 작가라는 직업을 집어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공직자, 종교인, 역술인 등의 적성을 읽어내기가 쉽다.

수이는 만세력 어플로 사주를 찍는다. 그리고 나를 흘겨보더니 대답한다.

“어 일단, 변태예요.”

실력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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