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9화 (19/211)
  • #19. 비급을 또 얻음

    “예 혹시 제가 강연을 들으러 가도 되나요?”

    [어, 네. 못 오실 이유는 없죠.]

    구민 강좌 동양 철학 특강. 1주 차 강연 날이었다.

    이형탁 교수라는 정신의학과 의사 양반이 보는 사주가 어떤지 듣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3주 차, 특강 강연을 맡을 명승철학원 원장으로 초빙되어서 이미 이름이 박힌 상태이고.

    이게 그냥 특강이 아니라.

    향후 6개월간 구청 구민 강좌 강사 자리를 두고 벌이는 공채의 근거 자료라.

    내가 강의를 들어도 되나 싶다.

    그래서 주관하시는 공무원분께 연락을 드렸는데 상관없단다.

    구민이긴 하니까.

    부적절하단 생각은 들었지만 가보고는 싶었다.

    “건강운 근거 어떻게 찾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의사 양반한테 배우는 시간이면 건강운에 대해서는 확실히 배울 것 같다.

    건강운은 소위 가드 불가 기술, 꽃놀이패다.

    젊은 사람들한텐 ‘젊은데 아프면 되겠습니까?’로 때우는 게 가능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안 아픈 데가 없으므로 어디가 아프다고 해도 다 맞는다.

    근데 그게 의미 있나.

    다른 건 몰라도 사람 아픈 건 핀포인트로 기똥차게 맞췄으면 좋겠다.

    다른 운세들은 인문학과 사회학, 개똥철학으로 사람을 납득시켜서 행동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운은 과학에 기댄 의학을 바탕으로 하는데, 내가 건강운을 사주로 잘 맞히기는 해도 그걸 타인에게 납득시킬 의학적 근거가 없다.

    ‘그, 조심하세요. 오장육부의 오장이 고립 혹은 공격받거나 그래서…….’

    건강운을 납득시키는 것에서부터는, 아예 무협 쓰다 얻은 기의 흐름 단전론, 혈맥론까지 들먹이면서 사기를 쳐야 했다.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 프로그램이나 아침 방송의 건강 프로그램을 보고 주워들은 것들이나.

    그놈의 영국 연구진들이 ‘옜다 기삿거리로 쓰니라.’ 하면서 발표한 연구 결과 같은 거.

    죄다 근거가 빈약하다.

    결과적으로 그냥 찝찝하게 ‘조심하세요.’ 한마디 말곤 해 줄 게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 진료하는 의사 선생한테 들은 과학적 근거와 사주가 합치되는 이야기 몇 개 들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사주가 과학적이라곤 안 하겠지만, 과학 조금 끼얹어서 사람들을 건강에 유념하게 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나.

    * * *

    결국 고민하다 1강인 구민 강좌를 나가 보았다.

    어떻게 동원을 했는진 모르지만 30여 명의 사람이 구민회관 문화 사업부에 옹기종기 모여서 강의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대 100석 정도인데, 다 차지는 않았다.

    약 1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서로 같이 모여 앉아 수다 떨고 있었는데.

    저거 다른 구민 강좌 받으시는 어머니들 동원인 걸로 안다.

    그 외에는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이 주로 있었고 어머니들보다 연령대 많아 보이는 할머니들도 듬성듬성 있다.

    강의 듣는 이들 중에는 내가 무척 어린 축에 속했는데.

    나보다 어려 보이는 작은 체구의 여학생을 한 명 발견했다.

    어려 보이는데 눈 화장이 매우 깊고 주변에서 그 짙은 인공 화장품 향이 난다.

    ‘화장을 무슨 프로레슬러들 강해 보이려고 하는 페이스 페인팅처럼 했네.’

    눈 화장이 좌우로 용솟음치듯이 생겨 놔서, 인상이 무섭다.

    청중들 스캔이 끝나고 얼마 안 가, 이번 강의를 맡은 이형탁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정신의학과 전문의 이형탁입니다. 오늘 저는…….”

    목소리가 차분하고 안정적이시다.

    정말 정신이 아파서 가는 환자분들께 편안하게 와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목소리와 말투.

    그리고 사주와 관련하여 내과적, 그리고 정신의학적으로 본 소견 등등. 전문적인 지식들이 많았다.

    그래서 강의한 지 10분 만에 다들 존다.

    나는 재밌는데. 나만 재밌나.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면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강의인데, 대중성과 괴리가 너무 큰 그런 강의다.

    심화반을 기초반에 가르치는 느낌이랄까.

    “질문 있습니다.”

    다들 집중을 안 해서 나라도 질문을 던졌다.

    “네. 말씀해보세요.”

    교수 양반은 어차피 강의를 제대로 듣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중간에 말을 끊고 기회를 준다.

    “선생님, 그러면 정신적으로 우울감에 빠지기 쉬운 사주인 사람들과 실제 우울증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동일하다는 유의미한 임상이 있으셨던 건가요?”

    학창 시절 성심성의껏 수업이나 강의를 듣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선생님이나 교수님을 만만하게 보고 딴짓하는 강의면 일부러 열심히 듣곤 했다.

    “우울감에 빠지기 쉬운 사주는 아니지만 자살 고위험군이면서 실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신 분들의 경우는 대다수가 사주가 좋지 않았습니다.”

    담담하게 PPT에 눈을 내리깐 중년의 의사 양반은 이제야 눈빛이 빛난다.

    “좋은 사주이나 우울증은 걸릴 수 있다고 보는 경우는 병은 앓더라도 죽지는 않았다, 이 말씀이신가요?”

    “개인적 경험으로는 분명히 조금 더 비중이 높았습니다만, 유의미한 결과로는 여기지 않았습니다. 논문을 쓸 정도의 데이터는 아니었습니다.”

    적당히 말 돌리는 재주가 있으시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유의미하게 뭔가가 보이는 것 같은데.

    의학적으로 보면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개인의 생각과 증거를 분리하는 화법이다.

    ‘내 생각인데 진리까지는 아니야.’ 하고 보험을 드는 느낌?

    “논문을 받아 주지도 않았을 거 같은데요.”

    “그렇기도 하지요.”

    어차피 잘 안 듣는 다른 강의자들과 노인분들 대신, 내가 주로 질문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들었다.

    “성욕은 전적으로 신체의 기능 때문에 생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정신과 선생님이시고 사주도 보신다니까. 정력에는 정신기가 모여야 한다고 오행철학에서 말하는데, 과연 정신력도 정력에 포함되는지 선생님께 여쭙고 싶네요.”

    여기에 살짝 자극적인 이야기도 나오게 유도 질문을 하니 조금씩 휴대폰을 보던 손들을 놓는다.

    강의가 아주 재밌어진 건 아니지만, 다른 이들의 질문도 나오는 등 강의 자체가 활성화됐다.

    <열정적인 학생>

    강의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당신은 배우고 익힘에 충실했습니다. 학문운이 포함된 인성운이 10포인트 오릅니다.

    강의에 열성적으로 참석하니, 저게 뜨며 공부 20시간 치 포인트를 벌었다.

    공부해라.

    이 간단한 이치를 학창 시절은 다 흘려보내고서야 깨닫는다.

    대학원이라도 끼얹어야 하나.

    앞으로 방송은 EBS만 틀어 놓기로 작정했다.

    * * *

    강의가 끝나자 먼저 가서 악수를 청했다.

    “되게 재밌었습니다. 선생님. 유익했네요.”

    “역술인이시죠?”

    역술인 직종을 부캐처럼 갖고 있어서 약간 머뭇거렸지만, 순순히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몇 가지 더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개인적으로 연락할 방법이 있을까요.”

    이형탁 교수는 흔쾌히 명함을 내주었다.

    “무척 젊어 보이시는데 독학을 하시거나 신내림을 받으셨습니까? 아니면 어디 이름난 거사께 수료를 받으신 건지.”

    “명승 선생님이라고 명성이 대단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분한테 개인적으로 사사를 받았습니다.”

    “아, 명승 그분한테요?”

    “아시나요? 유명하시네.”

    “알다마다요. 한때 저랑 동업했었습니다.”

    “아, 진짜요?”

    “그래 어째, 비결은 완성을 지었답니까?”

    “아……. 비결……이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이형탁 교수는 알고 있었다.

    “그 친구가 저랑 잠시 사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십 년 전쯤인데.”

    “아, 예.”

    “리니지 하다가 뭐 이름이 싸울아비 장검인가. 9싸울을 젤? 데이? 뭐 그런 걸 잘못 발라서 날렸다더니,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면서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더군요.”

    “아, 아하하.”

    리니지는 초등학생 때 엄마 주민번호로 생성한 3일 계정으로 해 본 이후로 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만.

    명승 선생이 리니지깨나 해 본 양반인 건 알겠다.

    “황당해서 그 칼 이름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인생도 강화가 되는 것을…….’ 이라고 하면서 회사를 무단으로 퇴사했지요.”

    “그래도 게임이라도 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니 다행이네요.”

    그럴 거 같더라.

    이형탁과 만난 뒤, 강화술을 가진 또 다른 제자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명승 선생 관련해서 검색을 좀 해 보았다.

    사주 강화술 책은 명승 선생이 직접 붓으로 쓴 것 같은 글씨가 일품이지만.

    현대식 인쇄기술의 힘을 빌려 제본된 저서로 존재했다.

    필름만 있으면 이걸 쫘르르 뽑아내지 못할 이유도 없다.

    필름이 없어도 복사기 좀 굴리면 만들어 내는 거, 일도 아니다.

    프로그램도 복제 및 업그레이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CN 애들이 증명해 냈고.

    명승, 이형탁.

    두 이름을 동시에 검색했더니 2000년대 초반쯤에 기사가 있다.

    “운세 사이트도 만들고 책도 같이 냈어?”

    명승과 이형탁은 같이 언론에 기사도 났던 사람들이었다.

    옛 신문에서 그 자취를 찾을 수 있었다.

    “한자 거 오지게 써 놨네.”

    무슨 한자 신문인가 싶지만, 사주와 역학) 관련하여 쓴 기사에는 한자어가 많다.

    무협을 쓰던 내게 한자어는…….

    진절머리 남.

    기사를 대충 훑어보자니 한국 IT 산업 1세대 역군이던 명승이 사주를 배우고 동업한다, 뭐 이런 이야기다.

    그 동업자가 이형탁이고.

    그 이상은 뭘 찾을 수 없었다.

    “친분이 있는 사이이긴 했나 본데.”

    기사는 이형탁 선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방송 출연 경력만도 3회더라.

    이형탁 선생은 개인 방송에 올린 자신의 사견이 몇 편 있어서.

    궁금해서 눌러봤다.

    조회수가 처참하다.

    궁금해서 일일이 클릭해서 봤다.

    30명 남짓한 강연학생들을 죄다 재우거나 다른 걸 보게 만든 수면신공이 어디서 왔는지 알 법한 잠 오는 톤의 목소리다.

    이 양반은 환자가 수면제 처방을 받을 필요가 없겠는걸.

    낮은 조회수에 지쳐서인지 1년 전을 끝으로 영상이 없고 영상의 개수는 9개가 끝이다.

    나는 꽤 유익하게 봤다.

    “이 아저씨 강연에선 사렸구먼.”

    영상은 내가 볼 때는 그럴싸하다 싶지만.

    사주 모르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유사의학자, 돌팔이 소리 들을 만하다.

    아니 심지어 사주 좀 아는 사람이라 해도 사주 돌팔이라고 할 거 같음.

    고서에서 뭉뚱그리는 ‘미친놈 사주.’를 정신의학에 접목해서 이게 오히려 신빙성은 있을 거 같지만.

    사주 입문서들의 논지를 너무 뒤엎어서 욕깨나 먹을 듯.

    댓글도 9개 영상 통틀어 하나도 없길래 달았다.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어서 동병상련의 정 같은 게 느껴진다.

    영상을 보니까, 이분이 굳이 차 타고 한 시간 넘는 거리 내려와서 주 2회 강의를 하고 싶어도.

    못 할 것 같다.

    나는 강의 평가 흥미도 말곤 만점 드렸는데.

    내용이 좋아도 재미가 없으면 점수가 낮은 게 세상 이치인바.

    점수가 좋지는 않을 듯.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구청 구민 강좌의 강사 자리를 두고 경쟁할 사람은 아마 2강을 맡은 이.

    “소녀보살……. 무당이신가.”

    왠지 연배는 지극하신 분이 목소리만 아기 목소리 낼 거 같은 느낌인 닉네임이다.

    이력을 한번 살펴보았다.

    “아, 한옥마을에서 장사해?”

    젠트리피케이션을 직격타로 맞은 한옥마을은 음식점은 물론이거니와 쟁쟁한 프랜차이즈들도 몇 개월 버티기 힘든 임대료를 자랑한다.

    돈 벌기 쉽지 않은 영세업자인 점술 업종은 전통문화 거리에 관광지다 보니 한옥마을에 여럿 입점해 있지만.

    그 대다수가 가건물에 천막 정도, 심하면 길거리 노상처럼 봐 주는 술사들이다.

    아무래도 거기서 임대료 물면서 장사는 못 한다.

    2강을 맡은 소녀보살은 거기서 아예 신당을 차린 모양이다.

    이분이 오히려 제대로 된 경쟁자 같네.

    돈 잘 버는 재주 있는 사람은 사람 자체가 만만치 않다.

    * * *

    이형탁 교수의 강의를 보고 난 뒤 여전한 궁금증이 남아.

    근무시간 끝이 날 때쯤 전화를 걸었다.

    “그 개인 영상 올리신 걸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선생님. 실례가 안 된다면 몇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아, 그 댓글 아이디 숭유억불?]

    7개월 전 업로드가 마지막인 영상인데, 그거 조회수나 댓글을 신경 쓰고 계셨던 말인가.

    “예, 저 맞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 참, 제가 책을 한 권 보내드릴까 하는데.]

    “아, 책이오? 무슨?”

    [제가 2007년쯤에 냈던 책인데, 구독, 좋아요, 댓글 이벤트입니다. 당첨되셨습니다.]

    목소리가 조금만 더 그렇게 발랄했었으면 영상이 조금 더 잘나갔을 거 같아요. 선생님.

    “아, 무척이나 감사하죠. 오히려 제가 책을 구해서 보고 싶었는데.”

    [절판되어 찾기 어려울 겁니다. 주소 문자로 남겨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이형탁 교수는 자신이 출간한 ‘사주와 정신의학 보고서’라는 책을 갑자기 나한테 보내준다고 한다.

    문득 군에서 사주로 조리돌림 당하던 때가 생각나네.

    재방송으로 송출되던 무한도전에서 정신 감정을 받던 연예인이 복채 몇 푼 꺼낼 거라는 말을 듣고, 정신과 쪽 진단을 몇 개 외워서 선임들을 죄다 인격 장애로 만들어 버린 적이 있다.

    이건 솔직히 내가 뭣도 아닌데 야매 돌팔이짓 한 거지만.

    복채는커녕 나한테 욕만 박아서 미안하진 않다.

    욕이라도 하지 말든가. 2시에 깨워서 취사장에서 사주풀이를 시키지 말든가.

    왜 다 이상한 놈이냐는 선임들의 의심도 당연히 샀는데.

    ‘군대에서 안 미치는 놈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답하니 다들 납득하더라.

    그렇게 이형탁 교수의 07년 출간작, 사주와 정신의학 보고서를 일독했다.

    100명 데이터에 80명이 그런 사주였다 등, 표본은 적지만 데이터에 기반한 책이라서 매우 흥미롭다.

    아, 근데 의학 용어……. 와 이건 빡세다. 한자에 영어를 섞었어.

    이분 명승 선생님 친구 맞네.

    그러고 나니 휴대폰 사주 강화술 앱이 알림을 보내왔다.

    [사주와 정신의학 보고서를 일독하고 얻었습니다. 종교/신념/도덕 운의 레벨이 이로 인해 1레벨이 추가됩니다.]

    “……이것도 비급이야?”

    <종교/신념/도덕운> LV7 (사주 강화술 +3, 사주와 정신의학 보고서 +1)

    그리고 오늘부터 나는 목사, 스님, 신부, 이맘에 준하는 종교, 사상, 도덕적 권위가 있대.

    이거 이대로 오르면 인생 테크트리가 교주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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