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5화 (15/211)

#15. 불륜을 잡는 선동

군에서 사주 봐줬던 상근예비역 후임이 있었는데, 양다리 중이었다.

여자가 양옆으로 끼면 수명이 작살나는 걸로 읽힌 사주였다.

양다리 맞히니까 되게 신기해했다.

‘와, 둘 다 절 너무 좋아합니다.’

부럽기도 하고 X같기도 해서.

‘야 인마 빨리 정리해라. 명 준다.’ 라며 부대에서 마주칠 때마다 잔소릴 했다.

그 친구, 반박 대사가 명대사였다.

‘아이, 섹스를 많이 해서 기력이 빠져 죽는 거면 그래도 좋슴다.’

미친놈이…….

물론 나도 진지하게 사주를 믿어서가 아니라, 양다리 개새끼로 캐릭터를 씌우고 놀리며 친한 척을 한 것에 가까웠다만.

그럼에도 반년간 양다리를 지속하다 한 명을 그제야 정리했는데.

얼마 뒤 정리한 전 여친과 현 여친 모두가 임신했다.

“그래서요?”

막장 드라마 사연 같아서인지 몰입도가 좋아 예지수는 울음을 그치고 듣는다.

“어떻게 됐을 거 같아요?”

“모르겠어요.”

“자살했어요.”

“누가요?”

“임신한 애들 말고 임신시킨 놈.”

죽을지도 모른다고 예고했던 내가 관리 책임자인 본부중대장과 함께 경찰서 가서 조사도 받고 왔다.

헌병대는 아예 가혹행위로 엮으려고 들더라.

진짜 죽을 줄 알았나.

그 때문에 반 사기꾼, 그냥 사주 견습생 정도였던 내 위상이 미친 듯이 상승해.

병장쯤 달고는 시킬 선임이 몇 없으니 사주 잘 안 보고.

간부들이 봐 달라는 것도 능글맞게 ‘아 뽀글이 갖곤 안 되지 말입니다.’ 하며 편해졌다가.

피똥 쌌다.

말 그대로 운명을 그대로 맞춘 것이라, 내가 허황된 명성을 얻었다.

갑자기 이 일을 왜 얘기하냐면.

선동엔 그럴싸한 사례가 필요하니까.

그것도 겪어 본 일로.

“어. 축복이지 않았을까요. 왜.”

“그 친구 사주랑 그 스타킹맨 사주가 글자 하나 빼고 다 똑같아요. 아니 오히려 더 위험성이 큽니다.”

“세상에…….”

에피소드 자체는 있던 이야기지만, 사주가 흡사하다는 건 뻥이다.

일단 그렇게 사주가 같지 않다.

태어난 연도부터 다른데 글자가 한 개만 다를 수가 있겠나.

참고로 유사한 느낌의 사주 약 50여 명을 알지만.

죽은 사람은 저 친구 혼자다.

2%도 상당한 치사율이긴 한데, 과학적 근거는 일절 없다.

하나의 예시를 들어 다 맞는 것인 양 호도하는 것이다.

“그 양반 팔자는 여자가 너무 많이 들어오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 욕정은 많아서 다 챙기려 드는데. 욕정에 뒤따르는 배경이 부실해서요. 특히 많은 여자를 만남으로써 본인의 이념적 기반이 죄다 파괴되는 결과를 맞는데, 그 이념적 기반이 삶의 거의 전부인 남자라 그게 파괴되면 생이 길지 않습니다.”

뻥 치고 있어 내 혀가 길다.

자기중심적이라 다 지 말에 맞게 해석해 ‘맞다 맞다’한 것이고.

지금은 부정하고 싶겠지만.

그동안 내가 한 말이 다 맞아서 긴가민가할 것이다.

본인이 원했으니 동정하진 않겠다.

이게 나은 길이기도 하고.

“사람이 죽는 길을 님이 부채질하는 듯해서 겁납니다. 안 그런 사람이랬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한테 막말과 폭언 들었잖아요. 사람이 너무 궁지에 몰린 증거죠. 그런 사람한테 자꾸 힘들게 굴면? 더 낭떠러지로 모는 결과를 초래할 겁니다.”

“네……. 무서웠어요.”

사람의 상태를 말하니 예지수도 거기엔 동의한다.

이건 사주를 안 봐도 알만한 상태다.

자살 위험군 같지 않나.

‘죽이고 자기도 죽는다.’ 메시지도 남아 있지 않은가.

막판엔 잘 안 하던 반말로 임팩트를 줬다.

“왜 지금 그 사람 보고 싶고 그 본부인 싫다는 네 생각만 하냐. 힘들어하는 그 느그 오빠 생각은 안 하고.”

이제야 눈이 휘둥그레지는 거 보니.

과연 제 생각만 했나 보다.

물론 내가 그런 놈 편들어 주고 싶진 않은데.

“그러게요. 그랬어요. 맞네요. 힘들 텐데, 나 때문에 그렇게 몰린 건데. 그렇게 힘들어진 건데…….”

와, 이걸 이제 인정하네.

예지수는 떨리고 눈물에 젖은 손으로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머뭇거리지만 확실히 한 자, 한 자 메시지를 전한다.

‘사랑하니까, 너를 위해 떠나는 거야.’

발라드 노래 가사로 하는 이별 자기합리화.

명분 하나 뽀대나지 않는가.

비극적인 명분을 충족하므로 여전히 사랑하나 너를 위한 일이라는 심리적 만족감을 준다.

<가정 수호>

당신은 혼인 파탄의 위기에 처한 가정을 구하고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부모를 결속시켜 주었습니다. 사회의 기본 집단을 지켜내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였으므로 관성운과 인성운 관련 사주 강화 포인트가 증가합니다.

<갱생>

자신도 타인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던 철부지가 드디어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타인을 교화시켰으므로 비겁운, 인성운, 관성운 관련 사주 강화 포인트가 대폭 증가합니다.

관성운 관련 레벨 일부와 흙 관련 속성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비겁운 관련 레벨 일부와 물 관련 속성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인성운 관련 레벨 일부와 쇠 관련 속성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포인트가 레벨 하나를 채울 정도로 올랐다.

이게 느그 남친 뒈진디야. 구라 한 마디면 되는 거였단 말인가.

* * *

“에어컨 사야겠다.”

자영업은 투자더라.

명승철학관은 혹서기 휴가 및 리모델링을 명분으로 영업을 쉬려고 했었다.

일단 나는 더워도 창문 열고 웃통 까고 3단 선풍기 바람 직격으로 쐬면 있을 만한데.

그건 내가 작업실으로 쓸 때 이야기고, 명승철학관은 영업장이다.

요즘 세상에 에어컨이 없는 영업장이 말이 되나.

그래서 영업을 쉬겠다고 문을 안 열고 ‘여름이라 쉽니다’ 붙였는데.

손님의 연령대가 주로 김순옥 여사발 어머니들이거나 할머니들이신 바.

기어이 발품을 팔아 오시는 분들이 계셨다.

“있구만 왜 영업을 안 한다고 혀? 장사하는 거 맞어?”

후덥지근한데 창문을 닫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건물 뒤쪽 창문으로 슬쩍 쳐다보면 컴퓨터와 책상 앞에 내가 보인다.

그걸 보고 세 번 오셨던 할매가 ‘장사할 자세가 안 됐다.’ 라며 혼내더라.

역술인인데 손님한테 혼나고 앉았다.

고로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결국 방법을 강구한 것이 인근의 카페로 모시는 것이다.

음료값이 한 6~9천 원씩 더 들기는 하는데, 에어컨 없는 철학관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그런 영업 방식이 소문나자 손님이 크게 줄지는 않았다.

“쉴랬는데 못 쉬겄구먼.”

결국 사주 강화술에 환장해서 영업을 개시했고.

수익률을 위해 내 음료는 무조건 아메리카노만 시켰는데.

덕분에 오줌만 하루 수십 차례 누는 이뇨 현상에 시달려서.

지금은 그거보다 저렴하고 용량 자체는 적어서 오줌 덜 나올 것 같은 이미지인 에스프레소만 마시고 있다.

조금만 더 카페 사장하고 얼굴 트면 손님용 음료 하나만 시켜도 될 거 같다.

생전 안 하던 카페 음료 무상 쿠폰을 팠는데 이틀 만에 채웠거든.

오늘도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셔서 카페로 모셔서 말씀 나누는 중이다.

“제가 이번에 물려받아서, 리모델링 중이라 에어컨이 아직 없어요. 어머님 시원한 데로 모시려고요.”

“커피는 뭐가 맛있는디?”

“달달한 거 좋아하세요?”

울 부모님만 봐도 알겠는데.

나이 들면 당이더라.

특히 어르신들은 커피를 잘 몰라서 달달한 거 추천해 드리면 좋아들 하시는 편이라.

카라멜 마끼아또 같은 거 드셔 보시는 게 어떠냐 생각하고 있었다.

“아녀 당이 높아가꼬 안 묵을랴. 그 뭐냐. 뭐 무슨 노로 끝나는 거.”

“어, 아메리카노요?”

요즘은 할매들도 다방 커피 말고 아메리카노 잘 묵대.

하도 방송 같은 데서 프림 커피를 때려 대서 그런가.

아무튼 메뉴 중 아메리카노는 반갑다.

아예 안 시킬 테니 복비에서 빼 달라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면 2인 1음료로 자리 차지하는 사태가 벌어지므로 난감하고.

뭔가 기교를 한껏 부린 음료들은 내 수익률을 악화시킨다.

“아니 그 프라푸치노. 그거 맛있드만.”

눈앞에서 퇴계 이황 선생이 두루미를 타고 날아가신다. 신선인 줄.

“아, 예 그 어떤 프라푸치노로요? 그게 하나만 있는 게 아닌데.”

“응. 그, 린 ,티 프라푸치노.”

어머님이 저보다 카페 메뉴를 더 잘 아시는군요.

매번 아메리카노만 먹었는데.

그러지 말고 나도 저런 메뉴 좀 기억해 둬야겠다. 맛있나.

“어머님, 근데 그것도 당이 꽤 많을 텐데요.”

“녹차잖여. 녹차는 괜찮여.”

녹차가 뭐 당 배출이라도 해 준대요?

그럴싸한데?

사주 감평하다 농담처럼 하동이나 보성서 오셨습니까? 물었는데.

진짜란다. 하동댁이시래.

* * *

여름에 여인네가 꼬여서 그런지, 재성운이 가파르게 올랐다.

덕분에 어언 레벨 두 개를 더 찍을 수 있었다.

여름은 안 그래도 재성운에 보너스가 있는 구간이라 더 잘 오른다.

<영업방식을 전환하여 비수기, 휴지기를 극복했습니다. 유동재물운 관련 업적이므로 재성운에 포인트가 누적됩니다.>

<부친의 뜻에 따라 학문에 힘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운 관련 업적이므로 재성운에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혈연이 아닌 이성과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여자운 관련 업적이므로 재성운에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재성운의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하룻밤은 누가 보면 오해하겠다.

아무튼 이렇게 오르더니 레벨업도 가능해졌다.

근로소득운, 횡재운, 여자운, 아버지운 모두 1~3렙의 쪼렙이라, 이 포인트면 뭐든 찍을 수 있다.

일단 근로소득운 LV2를 찍어 두었다.

에어컨 사려고 고민하던 찰나라 찍은 ‘사고 싶은 물건 싸게 삼’이다.

찍으니까.

‘여름 한참 남았다. 입추 지나도 덥다. 여름이 더 싸다.’

하는 전자제품매장 직원 양반과의 성수기 논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설득당할 뻔했는데 근로소득운 2레벨 되니까, 올봄에 에어컨 더 싸게 팔던 그 전자 제품 매장 전단지를 발견했다.

개선 버전이라고 박박 우기던데, 그 말은 맞았지만 일반적인 개선 버전이라고 해도 가격 차이가 좀.

그리고 야반도주한 여자 피신처 마련해 주니까 재성운 관련 포인트가 오르더니, 이번에 또 찍을 수 있게 됐다.

정규재물운은 중복 제한으로 못 찍고.

여자운, 아버지운, 유동재물운 레벨업이 가능해졌다.

“결과적으로 연애나 썸을 유지하면 재성운 관련해서 포인트를 계속 얻어 간다 이건데…….”

재성운은 내 목표인 주거운 LV11에 테크트리로 필요한데.

문제는 주거운 테크트리 완성을 위해 쌓아야 할 재성운의 운세들은 ‘근로소득운’, ‘아버지운’을 빼면 죄다 주거운이 포함된 인성운의 포인트를 깎는다.

즉 재물 관련 운세를 너무 올리면 주거 관련 운세의 레벨이 다운된다.

탐재파인貪財疤人

재물을 탐하면 인격을 파탄 낸다는 이론인데.

사주뿐만 아니라 그냥 세상사의 이치더라.

사람들은 돈, 돈, 돈 하며 돈 밝히는 사람이나.

재물만 많은 부자들을 그리 좋게 보질 않더라고.

‘부인이 들어오면 주거운이 깎인다.’

재성운의 여자운도 일정 이상 높아지면 주거운과 충돌한다.

색시를 들이면 내 공간을 공유하므로 주거가 좁아지는 효과를 낳는다.

“재워 보니 알겠더라.”

색시를 여럿 들이려면 공간이 넓어야 색시들을 떼어 놓을 수 있으므로, 여자운 고레벨은 주거운이 높아야만 강화가 가능하다.

주거운 없이 여자운만 가득 타고난 여자운 고레벨 사람들은, 색시들을 싸우지 않게 만들 매력의 도화살, 중재력을 높이는 학문/공부운, 종교운이나 지지자운 화술운 등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

그러지 않을 경우, 여난에 휩싸여 패가망신한다더라.

물론 더하는 작용이 더 크기 때문에 같은 경험치의 레벨이면 한 3레벨 올릴 때 1레벨 떨어지는 정도이지만, 좌우지간 그 페널티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테크트리가 이렇다.

여자운 LV5 – 근로소득, 횡재운 LV6 활성화.

근로소득, 횡재운 중 하나가 LV6 – 재물창고 LV7 활성화.

재물창고 LV7에서 LV2까지 레벨을 토해내면.

주거운 LV11 활성화.

그러므로 지금은 더 큰 주거운을 찍기 위해 추진력을 얻듯이 무릎을 꿇을 때다.

여자와 돈이 좋아서 찍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맞음.

가정 수호와 갱생으로 얻은 사주 강화술 포인트 어디다 투자하냐.

흐뭇하게 프로그램 돌리고 있을 때, 철학관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어,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나 왔어.”

29살인 김연주와 43살 송희영. 동기인 공무원분들의 재방문이었다.

온다고 이미 전화가 와 있었다.

사주 관련해서 안부를 몇 번 여쭌 다음. 용건을 들었다.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특강이오?”

“네 저희가 일전에 말씀해 주신대로 공공성이 보장되지 않는 계획에 보완을 좀 했고, 지원하신다는 분들도 두 분을 모셨거든요.”

“아, 네.”

“그래서 구민 강좌 프로그램을 처음엔 특강의 형식으로 3번, 주민분들을 모셔서 해 볼 예정이에요.”

“좀 근사해졌네요?”

내가 공공성 없다고 깠던 구민센터 문화 강좌.

사주명리학 강의 강사 선발이 공개 경쟁 체제로 바뀌었다.

지역의 혹은 지역민 출신의 역술인 및 점술가 3인을 선정하고.

이들에게 추석 전에 특강을 맡긴다.

이 특강을 들은 주민들은 강의가 끝난 후 강의 평가서를 받아들고.

위 3번의 개별적 특강의 평가를 한단다.

“여기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으신 분께 점술학 강연을 맡겨 볼 예정이에요.”

구민이 직접 평가해서 평점이 높은 강사를 구민 강좌 강의의 강사로 6개월간 채용할 예정이라고.

페이도 꽤 올라서 일주일 2강에 월 80 정도 받는다.

“아, 강의 평가 항목에 ‘이 강좌가 필요하신가요’ 도 있는 거네요. 좋네요.”

내가 우려하던 항목도 구민들의 평가로 좌우된다.

구청 문화 회관에서 사주 같은 거 강의해도 되겠냐는 질문을 구민들에게 하는 것이다.

그 평가가 매우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나면, 강의를 아예 하지 않거나 혹은 시, 구청이 아니라 시의 문화 교육 재단에 하청을 줘서 대신 시행하게 한단다.

공무원들이 머리 짜서 만든 공정성 있는 방안 치곤 괜찮다.

“그러면 9월 이때 한 번 강연을 해 주시겠어요?”

“으음.”

고민을 좀 했다.

교육, 갱생 등이 갖는 사주 강화술 포인트가 꽤 많으므로 매우 긍정적이다.

경험치, 보상 다 많은 어렵지도 않은 퀘스트를 왜 거부?

다만 혹시나 세 번 거절하면 뭐라도 뜨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고.

어련히 쟁쟁한 수행 쌓은 이들을 불러 모셨을 건데, 그 사람들하고 비교당하는 게 좀 그렇다.

냉정하게 사주 강화술이 없으면 강의하고 다닐 재주는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게 진리가 아니니까.

“제가 그렇게 공부가 깊진 않습니다……마는.”

그러다가 마음을 바꿔 먹었다.

지금 사주 강화술 창을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 놓은 상태라 눈팅 중인데, 겸양보다 도전이 좀 더 나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뭐 제갈량도 아니고 세 번이나 찾아오겠나.

사주 강화술이 있으면 서류 전형과 면접에 백 번 떨어져도 자신감도 의지도 잃어버린 실업자가 되는 게 아니라.

자아 관련 비겁운, 명예 관련 관성운을 올려 지지자가 몰려들거나 부하가 몰려드는 삶을 살 수 있으니.

기회 있으면 해야 맞다.

“강의라면 해 보고 싶네요. 흥미 있는 일입니다. 자격이나 공부는 많이 모자라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범대 나오셨다면서요. 잘하시겠죠. 교원 자격증이 있으시면 공신력이 있잖아요.”

“예? 그걸 어떻게?”

“너 기간제 했었다며? 아. 교직 이수로?”

김연주는 생각보다 나에 대해 기억하는 게 많다.

저땐 내가 저런 말 했었구만.

작가인 건 숨기고 역술인 정체성은 자각을 안 하던 때니까.

졸업한 학교와 가진 자격증을 토대로 취업준비생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구민 강좌를 수락하자.

송희영 씨가 보내 준 구청 추석 특강, 사주명리학 계획서가 메일로 도착했다.

이 계획서는 일반적인 공문서이지만, 이 강의를 두고 경쟁하는 이들의 경력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 제1강을 맡으신 분의 스펙이 어마어마하다.

“정신의학과 전문의……. 이야. 의사 양반을 모셔왔어?”

의사를 존칭으로 부르려면 의사 선생님이라고 해야 하는데.

입이 이상하게 계속 의사 양반 의사 양반 하네.

왜 이러지. 진짜 어디 진찰 보러 가서는 이러면 안 되는데.

좌우지간 구민 문화 센터 전통 점술 강좌, 강사 중 한 명의 스펙이 보자마자 감탄이 나온다.

정신과 전문의로 소싯적 사주를 익혀 환자 상담에 쓰신다는 걸로 별종이라 소문이 난 양반이란다.

한의학은 근간이 동양의 전통적 오행철학에서 파생된 것인바.

한의사들은 익힌 사람을 종종 봤는데.

그냥 의사가 배운 경우는 못 봤다.

“스펙 지적했더니 피드백이 쩌는데? 어디서 이런 분을 모셔왔대.”

의사 양반이면 배울 만큼 배우신 사람들 아닌가.

지식의 권위에 있어서 토 달기가 어렵다.

물론 전공 말고는 문외한인 분들도 있겠지마는.

취미로 배우는 것도 뭔가 열심히 배워 뒀을 거 같은 느낌?

왜냐, 공부운은 레벨 한 8~9씩 되는 분들이실 테니까. 느낌이 근거도 있다.

나라의 공공 기관에서 미신인 사주를 강연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강연한다니까, 거 할 만하시네 싶을 정도다.

이건 내가 강의 듣고 싶네. 나도 구민이니까. 들을까.

“근데 이런 분이랑 경쟁을 하라고?”

왜 내 기를 죽이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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