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연하 킬러
강현숙 여사의 딸은 구면이다.
“어…… 맞죠?”
맞냐고 묻는데 많은 걸 함축한 듯하다.
김연주, 공무원이다.
2년 전에 주민문화센터 행정 사무 대체로 3개월 정도 일했는데.
그때 뭐 직책도 모르는 신규발령자로.
‘나보다 한 살 많은데, 쟨 공무원이네’ 하고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업무상 연관될 일은 딱히 없고.
그냥 출근하면 인사하고 다과 같은 거 먹으면 뒤치다꺼리 같이 하는 정도였는데.
좀 적응하는 게 보이더니.
막판엔 날 자연스럽게 부려 먹어서 부려졌다.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갑자기 눈 뒤집어 까고 미친 척할 수는 없어서 평범하게 맞이했다.
2년 전이라 누군지 얼굴은 보니 알지만 이름은 까먹어서.
강현숙 씨 딸 이름 듣고도 전혀 눈치를 못 챘다.
거긴 딱 주임 분 이름만 기억난다.
“일 잘하셔서 사무일 하실 줄 알았는데.”
저 말을 들으니 문화센터에서 일할 때 생각난다.
이분과는 일할 때 곤란했던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신규임용 및 발령으로 어리바리한 건 나랑 같은데.
나는 행정병 경력과 행정 사무 공기관 알바를 한 경력이 있어 업무 이해도가 높은 편이었고.
군대에서도 까라면 깠는데, 이 돈을 주는데 안 깔 게 뭐냐 싶어.
시키는 일 못 한다고 한 적은 없다.
반면 통칭 ‘위를 거스르는 팔자’로 통칭되는 김연주 씨는.
신입이 범하는 실수.
꾸중에는 핑계로 일관.
혼낸 주임이 기분 나쁘니까, 지시도 건성으로 이행 등.
그냥 주변인으로 보기에도 갈등이 있어 보였고.
그럴 때마다 담당 주임이 날 빗대어 비교하며.
‘알바인 나보다 못하다’
고 신입 길들이기를 꾸준히 했다.
사실 눈앞의 김연주 씨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주임 양반이 잘못도 크다.
앞으로 발령 전까지 최소 몇 년은 같이 일할 사람인데.
고작 두 달 하고 관둘 알바를 빗대서 비교질을 해 댔으니.
신분 보장되는 두 사람 간에 갈등의 골은 풀리지가 않을 것이다.
“의자에 앉아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사무 아니겠습니까. 앉으시죠.”
그나마 다행인 건.
존중은 받게 제도나 규범은 좋은 말로 되어 있으나.
당시 내가 공무원들 뒤치다꺼리하는 비정규 계약직인바.
이 여자가 그런 갈굼을 해소할 방법으로 날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으려는 것을 처세로 극복해서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마법에 걸린 누나 대하듯이 시키는 대로 다 하고.
명백히 아랫사람인 양 행세한 데다.
주임 뒷담화 하는 거 다 받아 주고 맞장구 잘 쳐 줬다.
그 주임 양반 뭣같은 건 나도 마찬가지이긴 했으니.
그러자 알바 끝날 즈음엔 김연주가 더 친근하게 굴고, 아쉬워했었다.
물론 비위 맞추기가 좀 별로라 친교를 이어 나가진 않았다.
내가 친하게 느끼거나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무료로 사주를 봐 줬을 텐데.
그러지도 않은 걸 보면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던 게 맞다.
“와 이렇게 대답하니까, 말을 못 놓겠네……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좀 어색한 게 없지야 않았지만.
손님을 어색해하면 장사는 어찌하나.
“그, 내가 밥 사 준다니까 왜 안 나왔어요?”
“어, 그건 지금 남자친구가 훨씬 더 좋으신 분임을 그때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죠.”
그냥 보기만 해도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이성을 추구한다 미루어 짐작했다.
여성이 위를 거스르는 팔자면 연하의 남성과 잘 맞는 면모가 있다.
남편이고 애인이고 졸병으로 부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니까.
위를 거스르는 건 직장 생활에서 충분히 봤으니까. 판단이 쉽다.
“그냥 밥인데요? 일 고생했다고 사 준다는 걸.”
“그렇다고 제가 그냥 밥만 먹을 수가 있었겠나요?”
“어이구. 그러셨어요?”
김연주는 혀를 내두른다.
그럼에도 기분 나쁜 말투는 아니었다.
내가 곤궁한 입장인데 잘 넘겼다.
당시 내 여복으로 볼 때는 정말 밥만 먹고 말았을 확률이 높지만.
좌우지간 내게 친분은 느꼈던 모양이다.
“그, 말 놔도 되겠지?”
이미 놨구만.
나는 말 안 놨어도, 저쪽은 예전에 놨었다.
“물론입니다.”
“남친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사주가 아니라 이건 그냥, 얼굴만 봐도 아는 건데요.”
있어 보인다고 해서 손해 본 적이 없으므로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남친 있다 → 애인 있을 것 같이 보인다 → 매력 있다.
로 치환되는 논리가 있으니까.
“내 얼굴 안 보고 맞춘 거잖아?”
물론 내가 사주로 연애 유무 같은 건 꽤 잘 맞히는 편이다.
주된 경력을 욕구 불만이 가득 쌓인 20대 남성들의 호국의 요람에서 쌓아서.
그놈들과 그놈들이 동경하는 여인네들의 사주 패턴이 눈에 익다.
남자가 동경하는 여자이다?
무수한 남자들이 동경하므로 연애 경험이 많다.
“네 뭐 남자가 끊임이 없으니까요.”
“나 연애 자주 쉬어, 혼자일 때도 길고.”
“그럴 때도 썸남 있고요. 좋다고 매달렸었다가 그냥 친구로 남은 남자애들이 맴돌죠. 그런 애들한테 여지 주면 연애하는 거 일도 아니실 텐데요. 뭘.”
어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만화 짤에서 본 이야기인데.
20대 여자에겐 그 나이대에 나오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그 말에 굉장히 동의하는 편이다.
젊은 여자들은 과도한 집순이나 외모가 영 아닌 경우, 사주가 영 아닌 경우를 제한다면.
꿀에 개미가 꼬이듯이 남자가 있다.
본인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는 거지.
“그 위를 거스르는 사주?”
원래 위를 거스른다는 발언에 발끈해서 따지러 온 것 같은데.
그래도 구면이라 조금은 득점을 한 것 같다.
따지러 오는 것을 제압할 방법을 구상해서 세게 나가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듯하다.
“네.”
“내가 거스른다고?”
“그렇지 않았다면 오빠들을 만났겠죠? 연하 킬러잖아요.”
“어, 만나 봤는데?”
“한두 번 정도이거나 오래 간 사람이 없죠.”
김연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기하네.”
자기도 연상 만날 줄 안다, 만나본 적 있다고 반박하고 싶었을 것이나.
그건 가드 불가한 화술로 막을 수 있다.
연하남 킬러여도 연상을 안 만났을 리가 있나.
사회 구조 자체가 남자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연애 및 결혼을 할 수 있는 구조라서.
보통은 여자가 연애하면 연상 만난다.
이것도 그냥 통계청 결혼 조사만 해도 나오는 사회적 현상이자 결과다.
결혼한 100쌍 중 16쌍 정도만 여자가 연상이라는 얘길 들은 적 있다.
고로 연애를 많이 하는 여자면.
그냥 한 5대5의 비율로 연상 연하 섞어서 만나만 봐도 연하를 만난다는 이미지가 붙어 있다.
“왜, 왜 그럴까? 나도 뭐 딱히 연하가 좋아서 만나는 건 아닌데.”
“원래 연하 아니면 안 만나, 이런 사람은 딱히 없어요. 연하가 취향이라 해도 연상이 더 좋고 맘에 들면 만나죠.”
“말 그대로 오빠들을 안 만나는 건 아니거든. 그런데 좀 그게 잘 안 되네.”
“결혼할 생각은 있을 테고.”
“그렇지.”
“애들이 좋아서.”
“응, 응.”
김연주는 이걸 어떻게 알고 있지? 싶은 표정이다.
물론 이것도 가드 불가 기술이다.
일단 사주 보러 오면서 혼자 살아도 되냐고 묻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애들이 싫은 사람들은 타인 앞에서는 의견을 잘 안 밝힌다.
애들이 귀찮고 짜증 날 수야 있지만, 애들이 싫다고 말하는 것은 별개다.
애 싫어요, 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좋을 리가.
“그러나 연하의 남친들은 결혼 생각이 없고.”
“이야기도 못 꺼내지.”
사실 일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이 서약을 받아내면 모두가 행복한데.
김연주가 별로 행복해하지 않겠지.
문제는 관둔다고 해서 행복할 사람도 아니다.
어딜 가나 행복할 사람이 아닌데 행복을 찾으려 드니까.
결론은 그 불행을 덤터기 쓰고도 견딜 호구 새끼가 필요하다.
대신 이 여자의 불행의 근원처럼 몰릴 남자이므로 스트레스가 많은바 명이 짧으니.
김연주의 독수공방 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젊어야 하고.
사랑 못 받고 자라 자존감이 낮고 그로 인해 연애를 잘 못하나 성욕은 넘치는 남자 정도면 좋다.
매번 갈굼 먹고 핀잔 듣고 자존감 다 털리는데.
자존감이 애초에 낮아 면역이 좀 되고.
잠자리에선 일발 역전이 가능한, 그런 놈이어야 오래 붙어살고 자식도 많이 둔다.
“남친한테 용돈 준 적 있겠네요. 지갑에 현금 몰래 넣어 놓거나.”
“어, 어어어. 응!”
그걸 아마 본인도 은연중 아니까, 연하를 위주로 만날 가능성이 높고.
그 친구들이 변변치 않을 것이다.
“잔소리는 많지만 기는 죽이지 않는 연애 패턴인데.”
그런 행동이 오히려 더 기를 죽이는 경우가 많고.
문제는 만만한 상대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는 경우가 잦은 건데.
사람이 정말 군자가 아닌 이상 다 조금씩은 그런 면이 있지만.
김연주는 심하다.
물론 이런 건 손님이니까. 자체 필터링.
좋은 점도 있으니 누군가는 만나겠지.
손님을 맘속으로 욕만 하는 것 같지만.
남자가 좋아할 좋은 점을 꼽자면 많다.
이런 건 얘기해 줘야지. 칭찬이니.
“외모가 아리땁고 대단히 능동적이며, 싫은 건 티 나고, 좋아하는 건 좋아해서. 그놈의 밀당이나 속 모를 여자의 언어 같은 게 없죠. 직관적이고 기회가 열려 있는 여성인바 여자를 어려워하는 연애 경험이 일천한 젊은 남자애들이 계속 유입됩니다.”
심지어 그런 남자애들 귀엽다고 잘해 주고. 술도 잘 먹어 주고. 상담도 잘 들어 주고. 밥도 사 먹이고.
“그렇게 연애 상담 해 주다가 연하 만난 적 있다, 없다?”
“있, 죠!”
“잔소리 물론 많지만 칭찬도 잘해서 이런 분을 만나면 싸울 때도 많지만 연애가 재밌을 겁니다.”
“응 그런 거 같아.”
‘잔소리는 많지만’을 의도적으로 듣지 않았는지, 김연주는 무척 좋아한다.
연하 킬러인 여인네들 사주가 주로 그렇다.
연애 경험이 많은데 주로 연하남을 만나는 여자는 한 여섯 명 정도 사주 본 것 같은데.
보통 저렇더라고.
그 외의 연하남 만나는 여자들은 그냥 그 남자이기 때문이었지.
연하라서 만나는 경우는 아니었다.
김연주 씨 같은 경우는 기왕지사 연하인 게 낫다는 게 차이다.
“챙김을 받기보단 챙겨주는 쪽인 이타심이 있는 사주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윗사람에겐 독립적인 모습을 보여서 트러블이 있을 수 있긴 하지만 아랫사람에 대한 보살핌은 섬세하죠.”
“응, 것도 맞는 거 같아.”
위를 거스르는 사주를 고급지게 말했다.
윗사람은 그래서 싸가지 없게 보는 거고, 아랫사람은 아랫사람이니 참는 거고.
아랫사람은 참으니까, 지 말 따라오는 줄 알고 잘해 주고.
그 갈굼과 잘해줌의 차이에서 조련되는 연하남들이 주된 사냥감이다.
“너 진짜 신기하다. 내가 막 그런 얘기까진 안 한 거 같은데.”
그럼에도 연애 패턴을 맞춰서 신뢰도는 쌓은 듯하다.
본론을 꺼낼 때였다.
“좌우지간 요는 관두고 싶은데 사주 상 관둬도 잘될 거냐. 그게 묻고 싶으신 거잖아요?”
“응 그렇지.”
“잘될 사주이긴 한데, 세상이 좋지 않습니다. 개인의 사주가 아무리 잘나 봐야, 타고난 수저나 국운,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기 힘들죠. 저는 안 권하고 싶네요. 버티세요.”
“잘될 사주이긴 한 거잖아.”
잘될 사주인 것만 들었나 보네.
“실패 없는 사주는 없고, 확정적으로 잘되는 사주도 없습니다. 그걸 알면 저부터가 재벌이 됐겠죠. 보통 사주의 성공 확률이 10퍼센트라면 잘될 사주는 30퍼 정도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확정된 성공이 아닙니다.”
‘사주 강화술 없으면 그러지 마라’ 가, 사주 강화술의 교훈이다.
30퍼 가능성이 있다면 최소 3번은 도전할 수 있는 놈이 성공한다.
그 뒤 인생 강화 실패 확률에 따른 인생의 책임은 본인이 진다.
“아니, 내가 뭐 사업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교대에 재입학한다거나 다른 고시를 치는 건, 더 뜯어말리고 싶은데요.”
“어, 그걸 어떻게……. 내가 그 얘기 했었나?”
나도 기억은 안 나는데 왠지 그런 말 하긴 했을 듯.
그치만 본인이 기억 못 하는 걸 예전에 들었다고 말해 줄 이유 없다.
이런 건 내 신비한 사주명리학 비술의 힘으로 맞췄다고 해야지.
“아뇨. 위를 거스르는 사주인데 공부 잘하고 공직에 관심이 많으면 위를 상대 안 하는 공직자를 갈망하거든요. 사회 복지사나 교사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왜 안 되는데?”
“공부 또 하게요? 그 윗선이 아니라 엄마 잔소리가 더 심할 듯.”
“인정.”
“그리고 그건 신문 사회면만 읽어봐도 알죠. 교대 티오가 바스러질 거라는 건 눈에 선하지 않아요?”
“아 근데 너무 싫어 정말. 이대로는 죽을 거 같아.”
뒷담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듣기로는 그 윗선이 천하의 쳐 죽일 사람이긴 한데.
김연주의 감정에 찬 뒷담에서 허점이 보인다.
말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지 싶은데, 그걸 굳이 실드 쳐 줄 이유는 없었다.
내 고객 아니거든.
사주 감평을 빙자한 시집가라 잔소리에, 상사 뒷담이 마무리될 즈음.
김연주가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너 재밌다.”
“감사합니다.”
“일단 그러니까. 남자친구랑, 그 사람 사주 가져와 보라는 거지?”
“제 결론은 육아 휴직인데요.”
“야, 결혼부터 해야지.”
아주 진솔하게 말하자면 김연주 사주와 유사한 여인들의 임상 결과를 보면 결혼 생활도 별로 평탄하진 않다.
사주 뭐 다 미신에 구라뻥이니까. 안 맞겠지.
잘 되시겠지.
한 번 역으로 극복했으니까, 그것도 극복하겠지.
신뢰는 안 하지만 내가 이 사람 잘 될 거라 안 믿으면 잘될 거라 말하는 진정성이 없으니까. 믿어 본다.
김연주를 보내고 나니 메시지가 들린다.
[관아의 아전과 친밀한 관계를 쌓았습니다.
관직과 관련된 관성운에 운세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그래선가. 김연주의 사주를 본 이후, 4명의 공무원 손님을 맞았다.
* * *
“이건 어떻게든 나랏밥 먹는 사주 같은데……. 공무원이시죠?”
“어머, 네 맞아요.”
중년 아줌마가 주로 찾던 철학관에 요즘 3~40대들의 방문이 유의미하게 늘었는데.
이들 중 공부 좀 했다 하면 여지없이 공무원, 공기업 다니더라.
김연주가 소문을 좀 내 준 모양.
이번에 맞이한 아주머니는 똑단발과 테가 진한 안경을 쓴 40대 초반의 공무원으로.
김연주의 직장 동료였다.
놀랍게도 나이 차가 열 살이 넘음에도 임용 동기라고.
“그 다른 걸 하다가 붙으신 거 같은데요. 만학에 합격운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한 마디로 이 동료분의 신뢰를 획득했다.
시험운이 30대 후반에나 있더라고.
“명승 선생님 제자시라고 들었는데, 정말이신 거 같네요.”
“아, 예 그렇습니다.”
명승 선생님이야 몇 년 전 장사를 접고 은거해서 그렇지만.
지역에서도 꽤 유명한 술사였다. 찾는 분들이 종종 있더라.
“이거 한번 봐 주시겠어요?”
명승 선생님 이야기를 꺼내던 공무원 손님이 백에서 클리어 파일을 꺼낸다.
설마 보험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