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0화 (10/211)

#10. 바다로 태어나면 여름이 성수기

옛날 만화 톰과 제리를 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새끼 오리가 알에서 깨자마자 고양이인 톰을 보고 엄마로 인지하는 것이다.

톰은 새끼 오리를 맛있게 먹으려 할 뿐이지만.

새끼 오리는 그런 톰을 엄마로 충실히 따른다.

고양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생쥐 제리는 그런 새끼 오리를 만류하고 구해내려 하지만 먹히질 않는다.

그래도 그건 만화니까.

톰이 나중엔 새끼 오리의 애정에 감격하면서 눈물을 쭉 쏟지만.

현실엔 그런 거 없다.

그리고 보통, 사주쟁이로서의 나는 그 제리의 입장에서.

만류는 하는데 씨알도 안 먹히는 경우를 매우 자주 본다.

‘그렇게 사셔야죠. 뭐 어쩌겠어요. 좋은 면모 있잖아요. 착할 땐 착하다면서요.’

하도 보다 보니 나도 어느 선에선 포기한다.

들어먹어야 뭐라 하지.

손수건을 오픈마켓에서 세트로 여러 장 샀는데.

매우 잘한 듯싶다.

“비염 있는 사주니까, 고만 울어요. 코 질질 나온다.”

“어우어워 그건 또 어떻게 알아요.”

“그건 사주에 쓰여 있음.”

사주에도 쓰여 있고, 울 때 비성으로도 알 것 같다.

패에에에엥.

코 야무지게 푸는 것 봐.

아마 저래도 미모를 봐서 지적하는 사람이 없고.

여자들도 푼수데기 같아서 적이 많지 않을 거다.

내숭이 없다는 뜻이거든.

문제는 적이 없으므로 본인의 인생에 너무 과한 확신이 있다.

“아 죄송해요.”

죄송한 줄은 아네.

“한이 있으면 이야기하고, 아 ‘어떻게 하면 붙잡을 수 있을까요?’ 란 질문 안 받습니다. 그거 묻고 싶으면 직접 붙들고 데려오십쇼.”

“아냐아냐 저 잊어보려고요.”

“그짓말.”

“네…….”

사연툴로 무장했을 테니 그 정도는 청취해 주기로 했다.

눈 맞추고 고개 꼬박꼬박 끄덕이면서 맞장구.

맞장구 스킬은 여자들 사주 봐 주다 보면 저절로 는다.

“뭐 어떻게 까였길래 그러는데요?”

예지수의 사연은 듣다 보면 흔한 이별과 집착이다.

사주를 보다 보면 사연을 많이 듣는데.

온갖 충격적인 사연이 다 있다.

어디서 인터넷 소위 조작글 혹은 막장 드라마를 보고 이입해서 자신의 인생을 거짓으로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기에 비하면 예지수의 사연은 충격적이지도 않다.

자신을 사랑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여인으로 만드는 구성력이 대단하다.

온갖 사랑 노래가 내 얘기 같은?

“그래서 또 그렇게 만나고 있다?”

“네.”

스물한 살짜리가 고작 한 명 만나보고 무슨 사랑 다 알았고, 앓았다며 이야기한다.

근데 사연은 막장이다.

사랑이 섞였는데, 막장 드라마 감성이다.

“그러면 뭐 계속 이용당하겠네요. 부디 그 사람을 보는 주관만큼은 확고히 다지길 바랍니다.”

“전 혼자 살아야 하나요…….”

“음 이건 내기해도 좋은데, 살면서 분명히 또 겪을 겁니다. 지금 말도 거짓말이거든요. 아마 새 사랑의 조짐이 찾아왔을걸요?”

“어…… 그건 아닌데.”

“이건 그저 짐작인데, 돈까지 내면서 사주 보려는 사람들은 인생의 끝 컴컴한 암흑 속에서는 사주를 안 봅니다. 그럴 새가 없어요.”

“그래요? 그럼?”

“그 암흑이 끝나는 새벽녘부터 이게 정말 끝날지 물어보러 오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 새벽의 직전이고 침체된 이유가 그 독한 연애였다면 아마 새 사랑이 깃들거나 희망의 끈을 본 거겠죠?”

“말 잘하신다. 저 누굴 만나야 좋을까요?”

“굳이 따지자면 님의 존경을 얻을 만한 남자이지만, 이성적 매력은 대단치 않은 사람을 만나면 좋죠. 그 두 가지 다 충족한 사람을 원하는 거야 좋습니다만, 그런 남자는 언제나 그만한 값을 합니다.”

“맞아요.”

그 값을 좀 많이 치른 느낌이긴 한데.

지가 찍은 픽은 무조건 옳다고 여기므로 그렇다.

“그런데 언제나 그 두 가지 모두 갖춘 최적의 남자를 미모로 사로잡으나 뭔가의 요인으로 놓치죠.”

“저 정말 그렇게 미친년일까요?”

“첩 위치도 감수하며 만났담서?”

“맞네요. 으아아아악.”

예지수는 갑자기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외쳤다.

“왜 그래요.”

“벼, 별 얘길 다 했어.”

참고로 예지수의 사연은 거의 야설이었다.

거기다 묘사력이 쓸데없이 좋다.

몇몇, 그러니까 여자를 매번 갈아치우는 아주 잘나가는 20대 젊은 나쁜 남자들의 사주 표본과 그들의 경험담에 의하면.

이렇게 버린 여자가 미치도록 매달리면 대응이 대체로 같다.

‘이래도 안 떨어져 나가네?’ 하며 수위를 올려 가는 것이다.

그걸 예지수 본인은 ‘나는 자유주의자다’라며 받아들인 것 같고.

그러며 다소 이상한 세계에 눈을 뜬 것도 같다.

나 말고 누가 들어도 ‘미친년아’ 했을 거다.

“아줌마들은 남편, 음, 저도 말해도 됩니까?”

“어, 네. 뭔데요?”

“아줌마들은 남편 세우는 거 어떻게 하느냐고까지 묻습디다.”

“헐, 성희롱 아녜요?”

“고객님들한테 불쾌한 티를 내면 영업은 어떻게 하나요.”

“저도 했는데…….”

“까먹었어요. 뭐랬는데요?”

난 모른 척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심각한 얼굴, 우는 얼굴에서 드디어 피식하며 웃는다.

“고맙습니다.”

“뭘요. 못 들은 건데.”

예지수는 한참 몸을 배배 꼬고 고민했다.

부끄러움을 느낄 시간 충분히 주려고 그냥 주시만 하고 있었다.

“저 이 말 하면 욕먹을 거 같은데,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느낌이 딱 혼나려고 하는 소리 같다.

잠깐, 그러면 그 ‘희망’이 설마…….

“설마 그 전 남친이 같이 술 먹자는데 만날까요 같은 거? 아님 뭐 그 전 남친 이혼할 각 날카롭다는 거?”

예지수의 증언대로라면 그리 진지하게 믿지도 않는 교회 청년부를 고등학생 시절부터 5년간 나가게 한 원동력인 교회 오빠로.

10살 연상이었고 결혼했다고 한다.

그리고 명확히 사랑한다 말은 없는데 보고 싶다며 만나자고 하는데.

자신은 거부를 못 하고 밀회를 이어오고 있다고.

“어, 어, 어 그, 너무 귀신 같다.”

“저도 한마디 더 할게요.”

“뭔데요? 욕하셔도 돼요. 들을 만한 거 같아요.”

“손님 맞을래요?”

“네?”

요새 애들은 이 드립을 몰라…….

* * *

예지수에겐 복채를 손수건값까지 받았다.

인생 뭐 아무리 얘기해 줘도 지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봐야 직성도 풀리고.

마지막에 그 원흉의 지독한 연애 지적 다 해 줬어도 만나 본단다.

이럼 뭐, 내 손을 떠났다.

사람은 세 번 당해도 극복을 못 한다.

사람은 세 번 당해도 극복을 못 한다.

복채는 페이로 받았다.

“페이 계좌 이체 편하네.”

돈이 많았던 적이 없어서 인터넷 뱅킹 같은 걸 잘 안 썼는데.

그 대머리 같은 놈 클릭하니까. 돈이 입금된단다.

한편.

[또래 여성의 이성적 고민을 해결하고 그녀의 인연의 붉은 실을 되살려주어 불에 깃든 재성운이 오릅니다. 여름 보너스로 크게 올라 재성운의 운과 불 관련 운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개를 뜻하는 흙 운이 소량 상승하였습니다.]

“재성운 또 올랐다.”

여름 특수 기간은 재성운이 잘 오른다. 1.5배래.

하지 전후를 기점으로 세상이 밝고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 차는데.

내 팔자의 뜨거운 기운인 불은 재물과 여자, 아버지를 말한다.

그 사주의 시스템상, 여름에 여복도 재물도 거두기 쉽다.

바다로 태어나서 여름이 성수기이긴 하다.

<여자 운 LV3> 계절 운 강화 + LV1

사내의 무리에 익숙한 당신은 여성을 본디 다른 생명체 수준으로 인식하고 어려워하지만 이제 당신은 여성과도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로 오르는 활동 – 이성교제, 맞선, 이성과의 대화, 성관계.

특) 본 운세는 비겁운의 친구운이 LV3 이상이어야 제대로 활성화되며 도화살을 가졌다면 짧고 불타는 사랑과 연애도 가능하곤 합니다.

사주 강화술에는 계절 강화가 있었다.

봄엔 나무운 여름엔 불운 가을엔 쇠운, 겨울엔 물운이 보너스를 받아서.

강화를 안 해도 그냥 올라 있다.

일시적으로 오르는 것이므로 계절이 지나면 사라진다.

원래 내 운은.

<여자 운 LV2>

이성과의 교류가 없이 가문이나 중매쟁이가 이어 준 여인과 사주단자만 맞추고 결혼합니다.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가는 데는 궁합과 상대와 그대의 관운과 자식운, 정규 재물운에 달렸습니다.

특) 도화살을 가졌다면 상대는 그래도 처음엔 이성적 관심을 보이는 편이므로 신혼만큼은 행복할 것입니다.

특) 역마살을 가졌다면 당신은 외국인 신부와 중매로 결혼할 가능성이 더욱 높습니다.

딱 이 정도였다.

한 마디로 응우옌 양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결혼이나 가능한 운세.

아직 젊은데 어머니가 어디 베트남 처자랑 결혼해서 사는 것도 나쁘잖더라 바람 넣더라고.

이성은 여자운 들어오는 연도나 계절에 만난 적이 없진 않은데.

드문드문하고 경험이 많진 않은 것도 사실이다.

“어따가 투자하냐. 흠.”

아버지운은 연속 강화 불가라 못 올리고.

정규재물, 유동재물, 여자, 놀이운의 재성운 탭이 운들.

심장 기능, 시력 강화, 발기 기능, 혈액 순환, 운동 능력 강화, 이목구비 강화 등. 건강운을 올릴 수 있다.

“이목구비 강화는 뭐야…….”

건강운이 심혈관 질환 등을 막아 주는 좋은 것들인데, 젊어서 레벨이 높다.

이건 무서우니 나중에라도 무조건 찍을 예정이다.

이번엔 여자 운에 투자해볼까 싶었다.

주거운 11렙을 찍으려면 필수 테크트리가 있다.

목/식상운의 은행잔고(재물창고)운이 LV7 필요하고.

화/재성운의 유동(횡재), 정규재물운(급여, 근로소득)이 각기 LV6씩 필요하다.

그리고 유동재물운을 LV6 이상 찍으려면 화/재성운의 여자운도 LV5는 필요하다.

토/관성운의 자식운도 LV3은 필요한데 이건 5레벨로 그냥 타고나서 상관없다.

말을 매어 두고 부인과 자식을 들이며 재물을 쌓아 놓을 공간이 필요해야 큰 주거를 갈망한다는 이론이다.

“아줌마들하고 친구 먹으니까, 장사가 돈을 벌어다 주긴 해. 흠.”

재물이 있으면 마누라가 집을 안 나가는 게 사주명리학의 통설이다.

결혼정보업체의 월 천 남자의 이혼율이 0%에 가까운 통계가 뒷받침까지 한다.

반대로 여자가 들어와서 재물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산업별로 차이가 있어 확언은 못 하지만, 점술 쪽은 여성이 더 향유하니까.

여자가 들어와 재물이 들어온다, 에 부합하는 업종이다.

여자운 높이면 연애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그런 게 아예 없다곤 안 하겠다만.

철학관 주 고객들이 여자분들이다 보니 더 소문나서 많이 왔으면 좋겠다 싶어 올린다.

연애도 뭐 중요하지. 20대 저문다.

“여자운 강화.”

여름이 지나면 여자운이 다시 레벨2로 떨어진다.

고로 일단 현재 여름빨로 강화된 레벨 유지되라고.

여자운을 3렙으로 올렸다.

계절운으로 일시로 더해져 현재는 4레벨.

<여자 운 LV4> 계절 운 강화 + LV1

도화살이 없거나 사회적 결혼이 아님에도 이성과 이성적 접촉이 있습니다. 여성이 먼저 당신을 마음에 두고 있기도 합니다. 당신은 평균에 수렴하는 이성 교제 횟수를 가지며 이 수준에서는 재물운과 주거운이 받쳐 주지 않으면 결혼은 가능하지 않거나 실패합니다.

특) 도화살은 위의 이성교제 횟수를 보완하며 여성이 당신을 마음에 둘 확률도 상승시킵니다.

“응?”

레벨을 올리자마자 휴대폰 메신저가 날 부른다.

프사인데 뭔 고양이가 말하고 있다.

누군지는 알 거 같았다.

스스로 저요 미친애래.

“미친 캐릭터를 좋아하는 거 같은데…….”

이러다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 이 명대사 꼭 한 번은 할 거 같다.

명승철학관 찾아올 연락처는 줬지만.

메신저 친구 등록은 서로 안 했었는데 저쪽이 한 모양.

이런 나쁜 캐릭터가 부여되면 보통.

그런 캐릭터가 부여됐으니까, 기분이 몹시 나빠서 시위하는 느낌으로.

응 미친년 안 자.

응 미친년 돈 없어.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봤다.

그런데 이걸 좋아하는 게 영 괴이쩍은데, 짐작을 할 뭐가 없어서.

알 수가 없다.

사주에 변태인 건 나오는데, 어떤 변태인진 안 나와.

* * * ⁎

“어 총각 도사님!”

“아, 안녕하세요.”

여름도 되고 머리도 길어서, 김순옥 여사 미용실 와서 머리 밀고 있었다.

공짜로 해 주신다 그랬음.

그러던 중 김순옥 여사 친구분들이 두 분이 들어왔는데.

날 알아본다.

다 아는 분들이구먼.

인사를 하려 해도 고개 숙이는 건 안 되는 자세라 말로만 인사했다.

“언니 미용실에를 다 와?”

“여사님이 빡빡 밀어주신다고 하셔서 왔습니다.”

“왜 빡빡 밀어요. 기르지.”

“여름인데 덥잖아요.”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잘 안 쓴다.

그냥 빡빡 밀거나 그놈의 투블럭 하거나 둘 중 하나.

머리카락이 너무 잘 자라서 귀찮다.

아줌마들이 모이고 저 아줌마들이 전부 내 고객인바, 화제가 사주가 됐다.

“저는요, 물가의 꽃봉오리 여문 연꽃이래요.”

그러다 가장 나이 어린, 40대 후반.

늦은 결혼으로 아직 자식이 여섯 살인 40대 새댁(왜 새댁인진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엄마가 자랑을 하는데.

김순옥 여사와 나머지 한 아주머니가 일제히 의문을 표한다.

“아, 그랬어. 나는 화단의 해바라기꽃이라고.”

“나도 꽃이라고 하던데.”

“아니 그럼 다 꽃이야? 왜 꽃인데?”

“에잉? 사주 총각, 아줌마들만 보면 다 꽃이라고 해?”

“아야.”

김순옥 여사가 묶어 고정한 내 머리를 쥐는 악력이 강해졌다.

눈빛들도 심상치가 않다.

졸지에 아줌마 세 명에게 다 꽃 드립한 이상한 놈 된 거 같은데.

불로 태어난 사람에겐 영롱한 귀한 촛불과 반짝이는 별빛.

물로 태어난 사람에겐 푸르른 바다, 맑은 샘물.

쇠로 태어난 사람에겐 벼린 보석, 첨예한 비수.

나무로 태어난 사람에겐 앞서 말했듯 꽃.

미모와 가장 멀 것 같은 ‘흙’으로 태어난 사람한테도.

작은 화단, 단아한 조선백자, 이슬이 맺힌 정원.

뭐 이런 식으로 다 좋게 말한다.

사주를 토대로 자연 묘사 글짓기를 해 사주 보는 이의 캐릭터를.

영롱한 것처럼 포장하는 기법이다.

이 아부성 발언이 발각된 것 같긴 한데.

“그러면 이뻐머리방이 이름대로 꽃밭이네요.”

더 큰 아부로 덮어씌웠다.

날 몰아세우던 아줌마들 이내 빵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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