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7화 (7/211)

#7. 정은이가 임실 치즈를 옮김

하지가 지나고 본격적인 여름철인 지금.

작업실 겸 사업장에서 크게 고민 중이었다.

“아무래도 정수기가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명승 선생님의 철학관을 작업실로 쓴 지 한 달째.

월 매출이 나쁘지 않았다.

320만 원 정도.

본디 자영업에서 매출이 이따위인 장사면 원래 접는 게 맞지만.

하루 1~2시간 일하고 번 돈에.

나머지 시간은 글을 적거나 유유자적하게 활용할 수 있다.

요식업처럼 재료비가 드는 것도 아니고.

월세는 명승 선생님이 미리 납부해서 상관없고.

공과금은 윗 가정집 아주머니가 내신다.

월세에 다 포함된 계약이란다.

오히려 명승 선생님이 철학관을 비우고 면벽수련을 가셨는데.

그때도 돈을 받았다고 미안해하신다.

그런데 장사하다 보니 투자가 아예 필요가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 여름에 정수기. 필요하다.

작업실에는 오래된 냉장고와 선풍기가 있었다.

선풍기는 외려 오래된 선풍기라 날도 크고 해서 시원한데.

손님 오면 손님 쪽에 쐬게 해 드려야 해서, 덥다.

“집처럼 웃통 까고 사주 볼 수도 없고.”

손님들이 주로 아줌마들이지만 겨털 내놓고 사주 보는 건 좀.

에어컨과 정수기 투자가 필요하다.

김순옥 여사발 소문이 소문을 거쳐.

차츰 손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김순옥과 11명의 김순옥 친구 아줌마들이.

다른 아줌마들을 끌고 오고.

김순옥 아줌마의 소개도 계속 이어지고.

그 다른 아줌마가 또 다른 아줌마 끌고 와서.

100여 명의 사주를 봤다.

사주 강화술 경험치인 사주 수집은 어느덧 2,900명째다.

얌전히 글이나 쓰려고 했던 작업실인데, 사주 강화술에 도움이 되니 거절도 안 하고 닥치고 받았다.

“작업실로 쓰려 했더니 영업장이 되어 버렸네.”

그래도 산불 관리 요원 그 무거운 등짐펌프 메고 산 타는 것보다.

사무 상담직처럼 한 3~40분 이야기 듣고 말하고서 돈 몇만 원씩 받는 거, 솔직히 꿀이다.

4월에 산불 관리 요원 할 때보다 땀 덜 나고 고생 덜 한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장사 점차 흥할 거 같으면 투자는 해야 하지 않나 고민 중이다.

“아니, 물 한 잔도 안 줘요?”

“아, 아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그걸 생각을 못 했어요.”

“물값은 빼 줘요.”

“정말 죄송합니다. 거스름돈이 딱히 없어서. 잠시만요. 제가 바로 바꿔다 드릴게요.”

라고 했더니 물값으로 만 원 빼고 가는 얌체 진상 아줌마. 봤다.

군대서 무상으로 갈굼을 먹으면서 사주 보던 입장에서 2만 원이라도 돈은 냈으니.

이 정도 진상은 진상 축에도 못 끼지만.

그런 진상 아줌마도 교훈을 남긴 게 있으니, 음료 제공이다.

“물 정도는 제공하는 게 맞겠다.”

결국 냉장고에 시원하게 생수 넣어 두고 따라서 대접하는 식으로 대응을 했는데, 그걸 의심하는 아줌마도 있었다.

“그거 마시던 물 아니에요?”

내가 마실 물, 손님이 마실 물 구분은 당연히 있었는데.

그걸 의심하는 사주부터 까탈스러운 아줌마가 있었다.

뭔가 자영업물 쓸 때 빌런으로 쓰기 좋은 캐릭터들이 줄줄이 계신다.

“그래도 그거 의심하는 사람들 있으니까, 거 뭐 생수 배달시켜서 500 페트를 하나씩 제공하자.”

손님이 붐비는 것도 아니고 해서, 물을 500mL 생수로 바꿔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커피 한 잔이라도 두고 장사하면 좋을 거 같은데.”

“아, 커피요?”

며칠 전엔 최초로 대기 손님이 두 분 생겨서 기다리셨는데, 커피를 요구하셨다.

“믹스 커피와 커피포트 정도는 둘 수 있는데, 이걸 또 위생 의심할까 봐 걱정이네.”

결국 딜레마에 빠졌다.

아예 영업장으로 만들든지 아니면 이대로 작업실로 쓰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

그래 봤자 손님도 하루에 서너 명꼴인데 굳이 개조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냥 콱 여름엔 장사를 접어 버릴까?

그렇게 장사 고민하던 도중에, 평소에 잘 오지 않던 전화가 걸려 왔다.

“뭔 전화여. 어?”

지역 번호로 된 전화였다.

요새 집전화들이 없어서 지역 번호 전화면 공기관일 가능성이 높다.

산불 관리 사무 요원 1년 계약직 뽑던데 그거 해 보라는 전화인가?

문자 왔던데.

그쪽은 얼추 아는 전화번호들인데 좀 달랐다.

“에이 설마.”

몇 주 전에 지원했던 스토리 공모전이 기억났다.

나는 ‘그게 될까?’ 싶어서 결과가 언제 나오는지도 관심 껐다.

동네에 이런 미친놈 삽니다. 피해 가쇼.

이런 정도 어필하는 수준이었는데.

혹시 몰라서 바로 컴퓨터 켜고, 홈페이지 들어가면서 전화를 받았다.

공고 나왔네. 당선작 발표.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전 콘텐츠 코리아 전북재단 스토리팀 주임, 엄대한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느낌이 좋다. 아마 됐나 보다.

[이번에 작가님께서 응모해 주신 지역 음식 문화 스토리 공모 대전에서 ‘불편한 정은씨’…… 풉. 아, 죄송합니다. ‘불편한 정은씨’와 ‘4대 고장 변강쇠 선발 대회’가 은상을 수상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웃기죠? 웃기려고 쓴 거 맞습니다.

당선된 게 저도 웃겨요.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저희가 이메일로 앞으로 향후 일정 및 스토리 작업을 하실 일정을 소개해 드릴 건데요. 읽어 보시고 시상식이랑 워크숍에도 꼭 참석해 주십사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예, 정말 감사합니다.”

무미건조하게 대답했지만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좌우지간, 은상. 공돈 50만 원이 생긴 것이다.

“웬일이랴?”

공고에 은상 탔다고 떠 있다.

내 거 말고 뭐가 당선됐는지를 한번 훑었다.

“이야 제목부터 좋은 게 되긴 다 되네.”

10 작품이 수상했는데, 앞서 본 제목 좋아 보이던 것들이 진짜로 대상, 금상들을 받았다.

아쉽지만 장려상이 아닌 게 어딘가.

메일을 보니 콘텐츠 코리아 재단에서 시상식과 워크숍도 예정되어 있었다.

좀 신이 나서 춤사위가 절로 나왔는데, 궁금한 게 있었다.

“그 명예, 관운 포인트 안 오르나? 아, 아직 이걸론 덜 차나 본데.”

* * *

며칠 뒤, 수상자 워크숍에 참석하러 콘텐츠 코리아 전북재단에 갔다.

시상식은 그 뒤였다.

“너무 일찍 왔나.”

콘텐츠 코리아에 들어가니 그냥 평범한 사무실처럼 생겼고.

사람들 다 자기들 일 하면서 관심도 딱히 없었다.

여직원 한 분이 일어서서 다가와 물었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아, 그 스토리 공모전 워크숍 참석하러요.”

“아, 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옙.”

영업도 하고 사주도 보면서 좀 뻔뻔한 편이라.

이런 처음 하는 일, 처음 가는 장소에 크게 긴장은 안 하는데.

“그 어떤 작품 쓰셨던 작가님이시죠?”

“그…… 고추장 영웅 김말…….”

작품명에선 좀 머뭇거렸다.

무슨 소설 쓰셨냐는 질문에 ‘저, 정력왕 김창남.’이라고 대답했던 그 이후로 최초로 쪽팔린다.

하여간 제목은 폼 나게 쓰긴 해야 해…….

사람 관찰하는 게 요즘 일이다 보니 미세한 표정 변화도 감지할 수 있다.

입꼬리 올라갔다. 분명.

“아, 아아아. 네. 여기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직원분을 따라가 보니, 사무실 한편에 따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프레젠테이션용 화이트보드와 학교에서나 봤던 빔프로젝터가 있고, 그 앞엔 ㄷ자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나 말고도 사람들이 여럿 있다.

수상자는 10명인데도 모인 사람은 그 이상이었다. 팀도 있어 보였고.

무엇보다도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앉아 있었다.

‘취업용 스펙도 쌓을 겸 어디 대학교 같은 데에서 줄줄이 낸 모양이네.’

사람들이 대충 모이고 문자로 안내받았던 워크숍 예정 시간이 되자, 오피스룩의 화장 진한 아주머니 한 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전북대학교 전통문화예술학과 교수, 유명심입니다. 우선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지역 음식 문화 스토리 공모전 및 스토리 사업을 맡고 진행하게 됐어요.”

요즘 아줌마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데, 확실히 50대 이상의 주부인 아줌마들과 일하는 아줌마들은 관상에서부터 차이가 존재한다.

관상은 그냥 점복학의 일종이다 보니 주워들은 정도지만, 유명심 교수는 일단 예전의 나 정도 되는 50대 여성치고는 큰 키에, 인상이 강하다.

보통 이런 인상의 아줌마는 뭐가 됐든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오늘 대상 수상자분은 안 오셨지만, 이렇게 지역의 문인분들이 모이는 일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작품에 대한 것들, 스토리에 대해 서로 감평하는 시간 등을 갖기 위해서 우선은 한번 자기소개들을 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게 어떨까요.”

그걸 굳이 해야 하나 싶지만, 이미 각오는 하고 왔다.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성인 남성은 둘이고 나머지는 아주머니들이거나 대학생 정도의 나이대인 여성들이다.

글 관련 업종은 확실히 여자들이 더 많다.

“지역 독립영화관 하고 있는 김창엽입니다.”

“전주방송 라디오 작가 현상진입니다.”

“노미영입니다. 시랑 소설 쓰고 있어요.”

“아 노미영 작가님?”

사회를 맡은 교수 양반과 라디오 작가 양반이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화장기 없고 비쩍 마른 작가에게 관심을 갖는다.

“와 노미영 시인.”

여대생들로 보이는 무리들도 놀란 모양새다.

듣자니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구로도 꽤 이름 있는 작가인 듯싶다.

난 누군지 모른다.

만화와 웹소설 좋아한다. 순문학이나 시? 잘 안 읽어.

심심할 때 주역 읽는다. 잠룡은 물용이다.

“대학교 2학년 국문학과 이효민입니다. 이번에 금상을 탄…….”

내가 그다지 문학적인 소양은 없지만.

출품작들이 전체적으로 순문학 쪽 삘이 확 났었고.

이런 자리일 줄 예상도 했다.

그런데 정은씨 이딴 걸 뽑은 쪽이 좀 더 웃기긴 하네.

“은상을 탄 예지수입니다. 지정환 신부의 하와이안 피자를 썼습니다.”

내가 이런 건 감이 좋다.

금상작은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로 노미영 작가가 쓴 글이다.

대상작은 ‘비빔밥 색의 이야기’로 대상값 하는지 안 나왔다.

제목만 봐도 될 거 같다 싶은 건 여지없이 됐다.

제목의 중요성을 말해 주는 건가.

이게 사주 보다가 생긴 눈썰미 덕분인 건지, 소설 제목 고민하다 보니 좋아진 건지는 모르겠다.

죄다 문학계, 특히 순수문학 쪽 전공이거나 혹은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장르 업계에서 일하는 것에 꿀린다는 생각은 딱히 안 하지만.

문예로서 트인 저들의 실력에는 나름 경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순수하게 칭찬하고 질투 안 하며 사심 안 품는다.

다 나보다 잘 쓰니까.

딱 하나.

성애 관련 묘사가 찐한 순문학 소설은 트집 좀 잡는다.

성애 관련 묘사는 솔직히 억울하다.

누군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야이 음란물 생산자놈아. 너 죽을래? 경고장 보내는데.

저런 소설들은 ‘아아, 이런 성애에 담긴 탁월한 인간 심리 묘사. 문학적…….’ 뭐 이런 시선인 거 같으니까.

꼴리는 건 같던데 왜?

다만 나는 순문학 쓰는 양반들 경외하는데, 역으로 그런 양반들에게 비난을 당해 본 적 있어서 이런 자리에선 책 쓴 티는 안 낼 셈이었다.

“불편한 정은씨 썼습니다. 평생 사주, 운세, 궁합 봅니다.”

그래도 무직이나 취준생이라고 말하는 게 더 쪽팔려서, 사주로 둘러댔다.

아줌마들 사주 봐 주면서 요즘 자신감도 부쩍 붙었고.

유명심 교수가 놀랍다는 듯 묻는다.

“역술인이셔요?”

그런 티 안 나게 입고 다니죠?

역술인 점쟁이의 스테레오 타입이 있는 모양이다.

개량 한복/색동 한복/두루마기.

“1인 평생 사주 3만 원, 2인 사주 및 궁합 5만 원입니다. 감사합니다. 한옥마을 전주천 건너 명승철학관 운영 중입니다.”

맨 처음 소개한 독립영화관 관장님과 유명심 교수는 명함 나눠 주던데, 나도 하나 파야 하나.

이어서 앞서 날 이쪽으로 인도한 콘텐츠 코리아 직원이 A4용지를 나눠 주었다.

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한 요약 및 평가와 평가한 이들의 명단이 있다.

죄다 신문사 신춘문예는 기본으로 등단한 어디 문학 교수, 어디 문학 교사, 국어 교사이신 분들이다.

가만…….

<고추장 영웅 김말석.>

농민의 분출되는 한은 맵다. 사람의 의지를 분쇄하는 국가의 폭력 물대포에 대조되는 의지와 신념과 한을 버무리는 맛의 이야기.

<4대 고장 변강쇠 선발 대회>

음식은 어쩌면 섹스와 같다. 맛있는 섹스와 음식으로서 닿는 오르가슴의 이야기.

<불편한 정은씨>

갈망하는 맛은 70년 분단과 단절의 역사마저 잇는 것이 아닐까. 옥류관 평양냉면을 이을 상징이 되길 기대한다.

이게 뭔 소린데?

권위 있다는 문학 관련 교수와 지역의 작가 양반들이 달아 놓은 내 스토리 평들을 보니 미칠 지경이다.

이게 바로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소리인가.

저 이러려고 쓴 글이 아닌데요…….

작가들이 조용히 읽는데, 갑자기.

“푸하하하하하. 아, 죄송해요.”

“재밌는 작품이 하나 있죠?”

글들을 읽던 작가 양반들 중에 최소 피식하거나.

여학생 하나는 아예 빵 터져서 웃는 부분이 있었다.

유명심 교수는 굳이 날 보면서 재밌는 거 하나 있단다.

웃기기라도 해서 다행이다. 그게 어디냐.

첫 워크숍을 끝내고 홀로 돌아가려는 찰나였다.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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