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4화 (4/211)
  • #4. 돈을 탐내는 티를 못 내는

    내가 맞이한 철학관의 첫 손님은 아주머니다.

    50대 중반의 나이, 울 어머니보다 좀 연하.

    그리고 그 순간, 또 소리가 들렸다.

    <2,484번째 손님, 이 손님의 사주를 감평하고 고민을 들어준 뒤 복채를 받으십시오. 고민을 해결해 주면 더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러세요?”

    귓가에 메시지가 울리는 건 익숙해지지 않아서 놀랐더니 손님이 묻는다.

    “아, 아뇨. 앉으세요.”

    이 손님 사주를 봐 주는 게 퀘스트가 됐다.

    놀랐는데 미친놈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안 놀란 척했다.

    사주 강화 포인트도, 돈도 벌 겸.

    각 잡고 사주를 보기로 했다.

    일단 아주머니를 한 번 쭉 스캔했다.

    내가 사주 지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눈썰미로 보고 확률을 많이 좁혀 놓고 시작한다.

    군 시절 간부와 선임들이 여친/전여친/썸녀 1, 2/여친 후보 1, 2, 3/여자 지인 1, 2, 3/친구 1, 2, 3, 4, 5 등등. 온갖 사주를 다 보게 시키곤,

    ‘어? 너 그게 맞다고 생각하냐? 똑바로 안 봐? 이충원 병장은 존나 잘 맞췄다며?’

    안 맞으면 갈궈 댔었다.

    선후임을 막론하고 하도 의심들을 해대서 그러다 는 게 눈썰미다.

    지금 첫 손님으로 오신 이 아주머니는 일단 60년대생의, 그러니까 울 엄마 30대일 때쯤 하시던 화장법이 눈에 띈다.

    “사주 보신다고요? 그 선생님 안 계시고?”

    “제잡니다.”

    “제자요? 보실 줄 알아요?”

    아줌마 눈길에 의심이 가득한데.

    왠지 이 한 마디면 의심을 거두고 손님 의자에 앉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이 물려주신 비결은 터득했습니다. 대신 선생님보다 복채는 적게 받아요. 앉으세요.”

    이 철학관 가격표 보니까. 인당 5만 원 받더라고.

    급히 책상에 붙은 A4로 인쇄한 가격표에 매직으로 5를 3으로 바꿨다.

    그 양반의 비결이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곤 생각하지만, 내 실력이 그만큼은 안 되니 적당한 가격이어야겠다.

    그리고 들고 다니는 핸드백.

    색상은 화려한데 어설픈 짜가 명품조차도 아닌 인조 가죽이다.

    여간해선 돈 잘 안 쓴다는 방증이다.

    절약에 민감한 50대 아주머니면, 무엇보다 저렴하다는 말로 저격할 수 있다.

    무당한테 사주 보러 간다던 울 엄마한테 내가 그 반값에 사주 봐 준다고 한 뒤 체득한 경험이다.

    아주머니 손님은 그 말에 나가지 않고 손님 의자에 앉았다.

    “되게 젊으시네요. 몇 살이세요?”

    피부 강화 빨을 받아서 더 어려 보인다. 안티에이징이 따로 없다.

    실험용으로 잘못 써서 포인트 낭비라고 생각했는데, 올린 보람이 조금은 느껴진다.

    “비밀입니다. 아들뻘 차이는 안 날걸요.”

    “아 생각보다 나이가 많으신 건가 봐요?”

    “아뇨, 누나라고 해도 될 정도로 피부가 좋으셔서요. 관리 잘하신 40대 초반 같으신데, 그럼 어머니 아니에요.”

    참고로 나는 울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산불 관리원 어르신들한테도 형님 하는 사람이다.

    사주 보며 사람 상대하다 느낀 건데, 아부는 득이 안 되는 경우가 드물다.

    하물며 사주 보러 오신 손님이면 왕처럼 모셔야지.

    “호호호 아이고 참, 총각이 말 잘하네.”

    “사주 받겠습니다. 생년월일 태어나신 시각까지 말씀해 주세요.”

    사주를 받아 풀이하지만, 눈썰미로 미리 답을 좁힌다.

    일단 사람의 행색을 본다.

    사주를 보러 왔다?

    그 시점부터 잘나가는 인생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그냥 살면서 잘나가는 인생인 사람은 애당초 드물다.

    그 생각에 맞게 사주에 재물운이 없진 않으나 박한 편이었다.

    ‘직업은…… 가만있자.’

    50대 아주머니면 일하시는 분들이 소수니까. 주부로 가정한다.

    좀 제대로 배웠다는 어머니들이 드물다.

    그런 분들은 사주에서 포착이 가능하고 행색도 티가 난다.

    주부로 가정하고 사주를 살핀다.

    남편운이 강하고 힘이 있다?

    집안일만 하고 사셔도 괜찮은 주부님. 주된 고민은 자식 앞길.

    남편운이 약하다?

    파트타임이나 알바 뛰시는 주부님. 주된 고민은 자식 앞길 + 자기 건강.

    자아운과 활동운이 강하다?

    뭐라도 일하시는 주부님. 주된 고민은 돈과 이직.

    그리고 용태를 살핀다.

    ‘화장이 범상치 않고, 사주가 손기술과 작은 쇠에 길이 있다. 그런데 배움이 없으니…….’

    배움이 없단 말은 욕 같지만, 나이 드신 분들에겐 눈물샘 쥐어짜는 코드라서 간혹 말을 꺼낸다.

    화장한 용태가 범상치 않다는 말은 뺐다.

    “사주가 손기술과 작은 쇠에 길이 있네요. 그런데 배움의 운이 좀 약한 편입니다.”

    “예, 그래요. 못 배웠죠.”

    살짝 씁쓸해하는 표정이 읽힌다.

    역시 안 좋은 말은 초장에 해야 한다.

    “봄철의 초목으로 태어난 여성입니다. 그런데 너른 들판도 숲도 아니라 그냥 화단에서 태어났습니다. 한데 주인이 잡초도 딱히 뽑아주질 않고 더 뿌리 뻗으려 해도 콘크리트 도로가 앞에 있습니다.”

    글쟁이 짓을 하면서 사주를 보면 시너지가 나는 게 있다.

    사주의 소설적 구성이다.

    물상에 비유해 풀어 내면서 은근 은유를 많이 넣어, 틀려도 멱살잡이 안 당하게끔 장치를 깐다.

    “나무로 태어났다고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좁은 땅에서 자라난 다른 풀들이 밉습니다. 얘들은 좀 꺼져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친구들이 죽으면 거름이 되겠지만 태어난 시기가 춘분을 넘어, 해는 중천에 있군요. 광합성이 잘 되어서 같이 쑥쑥 잘 자랍니다. 지력도 햇살도 빼앗아 먹죠.”

    “네, 네.”

    “고로 이 여성은 주변의 다른 초목들을 파헤쳐 줄 괭이와 호미를 기뻐하고, 한편으로 그나마 광합성이라도 해 줄 수 있는 햇살을 바라봅니다. 한 떨기 해바라기꽃 같네요.”

    “꽃이요?”

    “네, 꽃이십니다. 음기를 가진 나무로 태어나면 꽃나무에요. 정말 잡초 속에 한 떨기 꽃 같은 팔자세요.”

    “호호호호. 그거 듣긴 좋네요.”

    꽃은 가져다 붙였다.

    사주에 을목으로 태어난 여성이면 닥치고 꽃이라고 한다.

    남자도 꽃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박 상병님.

    이러면 웃김.

    “한마디로 기술에 예술적 감각을 섞은 일. 미용, 재단을 하시는 분 같은데요. 어.”

    “어머,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

    “그래요?”

    “아, 사주 다른 데서도 보고 왔거든요. 그게 있어요?”

    사주야 뭐 근간은 같으니까.

    다 비슷한 책 보고 배우고.

    다만 그 책들이 죄다 고서인지라 현대엔 해결이 안 되는 것들이 많아,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그런데 권위 있는 학자가 딱히 없어서 정립도 안 됐다.

    권위 있는 학자래 봐야. ‘응 미신 추종자 대빵.’ 취급일 테고.

    고로 믿을 건 임상뿐이다.

    많이 본 놈이 많이 안다.

    아니면 그렇게 많이 본 사람 밑에서 도제식으로 비법 배우든가.

    “머리에 신경 쓰신 걸 보면, 음. 미용실 하시겠네요.”

    “예, 맞아요.”

    미용사일 줄 알았다.

    요즘 여자들 같으면야 직업의 폭이 넓어져서 맞히려면 골치 아프지만, 60년대생은 그렇지 않다.

    손기술과 작은 쇠기가 있고 배움이 없으면 보통,

    음식 잘하는 아줌마.

    혹은 미용사, 재단사다.

    화장에서 미루어 보듯, 꾸밈에 신경을 쓰고.

    특히 머리에 힘이 빡 들어가 있다.

    돈 있는 양반들이면 그냥 미용실 자주 다니는 사모님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닌데.

    길거리에 나다니는 사람들 중 10명 중 9명은 돈 별로 없는 그냥 서민이고, 돈 있는 사모님 운세로 볼 여지는 택도 없다.

    이렇듯 90% 확률로 높여둔 뒤 사주로 분류하면 맞긴 맞는다.

    옷에 힘이 들어갔으면 재단사인갑다 할 텐데, 그게 아니니까 미용사다.

    “여기 이뻐머리방 알아요? 거기 하고 있어요. 젊으신 분인데 용하네.”

    미용사 아주머니 신이 나셨는지, 어디서 머리방하고 어쩌고 다 말씀하신다.

    휴.

    일단 첨 보는 역술인이 자기 신상을 맞히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

    죄송하다며 복채 돌려드려야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어 그리고 계속 말씀드릴게요.”

    “예, 예. 어떤 사준가요?”

    자아운, 지지자운이 나랑 비슷한 레벨 정도로 보인다.

    재능과 친화력을 동경하여 지지자는 모여드는데 후원금을 내고 싶지는 않은.

    미용사가 이런 사주면, 용례가 둘 정도 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음. 굉장히 북적거리는 미용실이에요. 아주머니들이 많이 올 거 같아요.”

    “예, 예.”

    “이건 그 김순옥 님, 예 순옥 님이 기본적으로 주변 어머니들의 말도 잘 들어주고, 응대도 잘해 주고. 편하게 해 줘요. 그래서. 정말 인기가 많으셔요. 순옥 님 미용실이.”

    “오호호 그렇죠?”

    “근데…….”

    “네, 네, 근데? 뭐가요?”

    살짝 뜸 들였다. 긴장감 높이는 스킬이다.

    사주풀이에도 절단신공이 필요하다.

    60초 후에 뵙겠습니다.

    효과가 좋다.

    이걸 소설에 써먹어야 하는데, 이런 데 쓰고 앉았네.

    “그 비싼 머리, 파마 매직 손님이 거의 없을 거 같네요. 그러니까, 동네 반상회장 마냥 많은 동네 친구들이 몰려들고 미용실에 웃음이 넘치고 대화가 넘치는데, 정작 머리하시는 아주머니가 안 계세요.”

    “어, 아니 그게…… 그렇네요.”

    “딱 그 아주머니들이 머리 빡빡 밀어도 되는 아들 보내서 커트만 시키고, 아저씨들이랑 운동하다 같이 나와서 커트시키면서 앞에 두고 흉보면서 커피 먹고 수다 떨다 가시고.”

    김순옥 어머님은 표정이 심각해지셨다.

    “아니, 그게 사주에 나와요?”

    안 나오죠.

    미용실 풍경을 묘사한 사주 고서가 있다면 그것도 신기하겠다.

    무료 서비스는 보겠는데, 유료 서비스는 안 구매하고 싶은 인생.

    ……을 미용실에 대비해보면 그렇더라고요.

    “믹스 커피, 종이컵 그거 몇 푼 안 해서 냅뒀는데 아메리카노 없냐 하고. 결산해 보니까, 머리도 안 깎는 아줌마들이 먹어 대는 커피값도 커트 손님 몇 명은 더 받아야 수지맞고.”

    “어머머머머머.”

    울 엄마 친구분 사주랑 유사하다.

    내가 어릴 적에 머리 자주 깎던.

    그냥 동네 미용실이면 다 그런갑다 싶은데.

    아니다. 말도 잘하고 솜씨도 좋아서 건물도 산 아줌마도 있댄다.

    “동네 미용실이면 원래 그렇죠. 근데, 심하세요. 왜냐면 노력에 비해 돈을 못 버는 사주거든요.”

    돈 안 되는 동성 동료만 가득 있다.

    그런데 원래 대부분의 서민은 돈이 별로 없는 게 현실이라.

    이 경우는…….

    음. 솔직히 사주가 아니라 머리랑 화장만 봐도 알겠다.

    “제가 보기에 김순옥 여사님한테 오시는 손님들이 여사님이 해 주시는 스타일링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머리 딴 데서 하고 온 티 나고 그러는데, 별말씀 안 하시죠? 서운한 티도 장난스럽게 얘기해서 편하게 해 주고.”

    “예, 예에.”

    말은 안 했는데. 김순옥 님의 머리를 보니 그냥 느낌이 온다.

    50대 아주머니 스타일링도 아니다.

    지방 도시라 동네가 고령화되는지, 스타일이 7~80대 이상 할머니들의 파마 느낌에 머물러 있다.

    한마디로 노티 난다.

    신경은 많이 썼는데, 신경 많이 쓴 노티가 난다.

    “토라진 척 여기서 파마 염색 안 할 거면 오지 마! 막 소리 지르고 그러실 겁니다. 그거 진심인데, 표현이 좋으세요. 듣는 다른 아주머니들은 그냥 귀엽다고 꺄르르 웃고 말고, 김순옥 님은 진심 토라졌지만, 그 아주머니가 뭐 먹으라고 갖다주고 한 것에 괜히 풀려서.”

    “어 맞아요. 아니 정말 어떻게 아셨대?”

    이건 그냥 다른 미용실에서 커트 대기하면서 여성 잡지 보다가 목격한 사연대로 읊는 건데.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나 보지?

    보면 사람 사는 게 크게 다를 리도 없다.

    “아, 맞아요?”

    “다 있던 일이에요. 어떡하죠?”

    뭘 어떡해?

    아마 김순옥 님도 내심 짐작하던 일일 것이다.

    그걸 제삼자인 사주쟁이가 말하니까 뜬금 심각해진 거겠지.

    근데 아주 심각한 일은 아니잖아.

    사주로 본 추측이지만 바로 가게가 넘어간다거나 집안이 망한다거나 하는 그런 촌각을 다툴 사연을 갖고 계신 것 같지는 않다.

    돈을 좀 못 벌 뿐.

    근데 주변에 자신을 혹은 자신의 재주에 공감해 주는 무리를 얻는 것도 일생에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나름 5렙짜리 업적이다.

    “아니 뭐, 그게 나쁘단 건 아닌데.”

    “안 나빠요?”

    그게 강화되면 돈도 좀 벌어요.

    일시 강화로 축의금 부조금 받을 일 있으면 큰돈 얻기도 합니다.

    “돈은 좀 안 되죠.”

    “그게 문제 아닌가요?”

    “그건 문제 맞죠. 돈 안 되는 거.”

    “그러면 돈을 벌 방법은 뭐가 있겠어요? 도사님?”

    “음…….”

    “솔직히 그 말씀이 다 맞네요. 여편네들 찾아와서 웃고 떠들고 이거 순옥이 생각나서 사 왔다며 먹을 거 갖다주고, 재밌게 놀다들 가고 대신 막 손님 머리도 감겨 주고 머리카락도 쓸어 주고 그러긴 하는데, 머리들을 안 해요.”

    “앞머리만 좀 손봐 달라 그러고?”

    “네, 네. 돈 안 내고.”

    “그건 근데, 먼저 에이 됐어. 뭔 돈이야. 하셔서 버릇을 잘못 들이신 거 아닐까…….”

    “그 말도 맞네요. 어휴.”

    전형적인 좋은 사회적 이미지 구축을 위해서 돈을 탐내는 티를 못 내는 사람이다.

    “사실 성격상 내쫓을 수도 없어요. 모질게도 못 대하고.”

    “그렇죠! 그래 놓고 머리는 딴 데서 하고 오면 솔직히 천불이 나요.”

    “좋습니다. 제가 잠시, 어떻게 행동하면 재물을 더 받는 전략일지 개운법을 계산해 드리죠.”

    말은 침착하게 넘겼는데, 고민할 시간이 좀 필요했다.

    계산은 개뿔, 사주에 수학이 없는 건 아닌데, 계산까진 필요 없다.

    그냥 답 보인다.

    ‘읍내 간다고 멋 한껏 낸 할머니 파마세요……. 그걸 치장했다고 느끼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못 내겠다.

    꽃이며 뭐며 영업하는 입장에서 빌드업 다 쌓아 왔는데, 막판에 노티 난다 그러면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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