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2화 (2/211)
  • #2. 나무를 지키고 운을 받음

    팔자는 고쳐지지 않는다.

    사주와 팔자는 뜻이 같은 말이다. 4×2와 8의 차이다.

    이건 태어날 때 정해진 거라서 불변이다.

    노오력으로 고쳐?

    정론인데, 고쳐지진 않는다.

    내가 공부가 깊진 않으나 군에서 약 500여 명을 임상으로 봤다.

    공익, 면제나 일선 부대에서 볼 수 없는 백 있는 신의 아들 몇을 표본에서 빼야 하지만.

    20대 남성 집단만 500명. 통계학적으로 충분한 표본이다.

    보면 유감스럽게도 노력하는 놈보다 운 좋은 놈이 더 잘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운7기3?

    뻥이다. 운9기1 정도 된다.

    심지어 운 좋은 놈이 성공의 모델을 겪어라도 봐서 그런지 노력도 잘함.

    ‘애들일 때, 교육 환경. 그리고, 결혼과 교우 관계.’

    다만 어릴 적부터 교육으로 다잡거나, 서로 다른 팔자의 두 사람을 운명공동체로 묶어 버리면 변동이 있다.

    교육의 정도를 결정하는 ‘수저론’과 ‘결혼해서 팔자 편다’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팔자 고치려면 노력하면 되죠’라는 or 노력하면 팔자 고칠 수 있다는 긍정적 명리학자와 역술인들 잘 안 믿는다.

    그 사람들 뒤에서 비웃을걸 ‘노력 안 하겠지만.’ 하면서.

    고로 명승 선생의 지론은 솔깃하다.

    비결이 시사하는 주제 때문이다.

    ‘사주는 타고난 운이기에 고칠 수 없다. 근데 억울하지 않은가. 그런 운명의 레일 위에 섰다는 것이?’

    “억울하지.”

    비결은 그 질문에 답을 제시했다.

    ‘그럼 가진 운을 강화하면 어떨까?’

    “고친다는 아니고 강화한다는 말이니까. 그 뭐 타고난 무기는 그대로인데 그걸 레벨업을 시킨다는 뜻인데. 그건 말이 돼.”

    근데 어떻게?

    사주 강화술 관련해 방법은 알겠는데, 도구가 없다.

    마지막 저자의 말로는 이미 얻었다는데.

    비결에는 행할 방법이 없었다.

    폰비결이냐.

    “명승 선생님, 어디 계신가요. 건강하세요?”

    산불 관리원 기간에 계속 운장산을 올라갔으므로.

    비결의 마지막 말이 뭔 소린지 해석해 줄 명승 선생을 찾았는데.

    그 양반은 왠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 * *

    “오늘까지 고생들 많이 해 주셨구요. 구청에서 마련한 회식 자리 있으니까. 많이들 드시고 가셔요. 그리고, 겨울철 산불 예방 기간하고. 식목일 전전주에 뽑으니까. 지금 오셨던 분들 계속 금연 유지해 주시고 다시 한번 지원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산불 관리원 알바가 끝났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어이, 막내도 고생했다.”

    “아닙니다. 형님들.”

    아버지보다 연세 자신 양반들 있는데 그냥 호형호제했다.

    나이 든 양반들 생각보다 형형 하면 좋아하드라.

    “다음 봄엔 오지 말고 취업혀라이.”

    “사주 그거 몇 푼이나 벌겠냐.”

    사주 같은 거 해선 돈 못 번다고 걱정들이 심하시다.

    책도 쓴다고 대꾸하고 싶긴 했는데, ‘책 써 봐야 몇 푼이나 벌겠냐. 취업혀라’ 라고 말할 것 같아서 관뒀다.

    맞다. 둘 다 돈은 될지 몰라도 영속적으로 벌긴 힘든 일들이다.

    어쩌면 진짜 산불 관리원을 이런 경력으로만 뽑는다면 지원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순간 이런 말이 들렸다.

    공공기관 임시 취업을 마쳐, 물운/비겁운이 상승했습니다.

    나무운/식상운이 상승했습니다.

    흙운/관운이 상승했습니다.

    “네?”

    “뭔 소리 들었냐?”

    “아, 아뇨.”

    형님들 목소리는 아니었다.

    “설마…….”

    고개를 갸웃했고, 혹시 몰라 허공에 손가락을 뻗어 보기도 했다.

    클릭 되냐. 나타나나?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이 세상이 누가 고의로 만든 게임 속 세상이어도 좋으니까.

    창 하나 나타나면 좋겠는데 말야.

    * * *

    그리고 집에서 쫓겨났다.

    28살 돈 못 버는 백수, 집에서 컴퓨터만 두드리고 있으면 닥칠 일이라 그러려니 했다.

    맘들은 약해서 밤에 몰래 기어들어 가면 밥은 주심.

    지금도 그냥 말씀대로 부모님 지원받고 노량진 가면 욕도 안 먹고 용돈도 타서 쓸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마음껏 쓰고도 남들만큼 벌어서 산다는 꿈만 버리면 말이다.

    원래 부모님은 내가 글을 쓰는 일을 응원하셨다.

    그런데 야설 한 번 써서 책으로 냈다가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주의환기’ 조치를 한 경고장을 보내 왔고, 두 양반 다 옛날 사람이라 국가 기관 경고장을 보고 까무러치셨다.

    그 뒤로 집에서 글 쓰면 그놈의 야설 쓰냐고 매번 등짝 맞는다.

    결국 쫓겨난 김에 명승 선생 찾아 사주 강화술에 대한 질문도 할 겸.

    작업실로 써 보기도 할 겸.

    명승철학관으로 향했다.

    원래 산불 감시원 기간 동안 명승 선생님을 만나면 사주 강화술이라는 게 존재하는 건지, 쓸 수 있는 건지 묻고 싶었다.

    그게 없으면 그냥 이놈의 책은.

    ‘노력하면 팔자가 고쳐지진 않지만, 원래 타고난 운이 레벨업처럼 올라요!’

    에 불과하다.

    누가 몰라?

    문제는 노력이 아니라, ‘노력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확실하냐?’가 문제다.

    사람은 목적이 있고 그게 실현 가능성이 있으면 노력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그걸 끝까지 노력하면 업적이 있고 보상까지 있다?

    그럼 대부분 열심히 노력한다.

    근데 인생은 게임이 아니라서 노력해도 뭔가 얻는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안 하는 거다.

    노력 안 해도 그냥 되는 사람들 있거든.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들 있거든.

    그걸 보면 개억울하지. 노력하고 싶겠나.

    명승비결에 적힌 사주 강화술은 해답을 줬다.

    사주 관련해서 일정 경험치가 쌓인 사람은 이 비술을 쓸 수 있고, 그 비술로 노력을 통해 인생의 운을 확정적으로 올릴 수 있단다.

    “솔까 개 허무맹랑한 소리긴 한데. 믿고는 싶네.”

    사실 믿고 싶어서 믿는 거지, 믿어지는 건 아니다.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갖고 싶은 운을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표적인 노력인 공부를 한다고, 원하는 시험에 붙을 수 있지 않다.

    근데 그게 된다니까, 솔깃하긴 진심 솔깃하다.

    작가인 나한테는 독자의 숫자를 말하는 ‘지지자 운’하고 방구석에서 창작만 해도 재물 남들 먹고 살 만큼 버는 ‘주거운’이 잘 오르고 또 올리고 싶다.

    이게 지금 없는 운은 아닌데 둘 다 어설퍼서 이러고 사니까.

    된다면 ‘수명운’도 만렙에 ‘여자운’도 강화하면 좋긴 하겠다.

    “되겠냐. 에효. 문어꼬치 냄새 하나는 좋아요.”

    망상을 하다가 현실로 돌아오자 괜히 주변 환경을 비꼬는 게, 나도 심사가 꼬였다.

    한옥마을에서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베드타운에 위치한 2층짜리 작은 주상 복합 건물.

    그 1층에 명승철학관이 있었다.

    “여긴가.”

    건물이 오래되어서 카드키도 아니고, 선팅지는 다 떨어져서 너덜거렸다.

    겉면에 사주, 운세, 궁합, 관상, 풍수, 성명이라 적혀 있었다.

    “이거 뭐 청소부터 해야 하면 작업실이 그 작업이 아닌…….”

    하지만 들어가 보니 낡은 외관과는 달리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온갖 책들이 꽂힌 책장 앞에는 책상과 대통령이나 앉을 법한 의자와 있었고, 책상 맞은편에는 좋은 소파가 자리하고 있었다.

    책장 위에는 사진과 사인들이 있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해서 누군가가 청소를 해 두고 갔음을 짐작했다.

    “깔끔한데? TV도 럭키금성에서 나온 거 볼 줄 알았더니.”

    인테리어는 80년대 럭키금성 TV 같은 게 있을 법한 인테리어인데, TV는 평면형 TV였다.

    “허, 현주 컴퓨터? 이건 또 언제 적 컴퓨터냐.”

    컴퓨터도 한 대 있었는데, 자그마치 현주 컴퓨터다.

    십수 년 전에 울 집에 있던 데스크탑도 이런 브랜드였는데.

    뒷문이 있길래 열어 보니 주방과 침대가 하나 있었고, 주방에도 연결된 뒷문이 있어서 확인해 보니 화장실과 계단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이곳도 깔끔하다.

    “선생님 오셨어요? 선생님!”

    그 계단을 잠깐 올라가 보고 있는데, 그곳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뛰어 내려왔다.

    아주머니는 보고 놀란 듯 물었다.

    “아니 누구세요?”

    “어, 아, 그. 명승 선생님 제자입니다.”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리 말하라고 했으니까.

    “아, 아아아아. 명승 선생님 제자분이셔요? 아이고 그 양반 이제야 찾았네. 찾았어. 그나저나 선생님은?”

    “모르겠는데요.”

    “아니 그럼 어디 가셨대? 월세 2년 치 다 미리 몰아 내셨는데.”

    “직접요?”

    “송금.”

    자연인 같아 보였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선생님 스마트폰도 못 쓰던데 송금은 하시네.”

    “제자면 사주도 보겠네요. 제 사주는 어때요?”

    실전과 같은 훈련은 받아서 사주를 어떻게 적용하는지는 알지만, 왜인지 다는 모른다.

    현상을 알고 응용해서 잘 써먹는데, 왜 그 현상이 빚어지는지는 모르는 그런 처지였다.

    명승 선생의 비결이 그걸 좀 해소해 줘서 이젠 전문가 흉내를 내려면 낼 수도 있긴 한데, 왠지 돈 안 내고 보려 할 것 같다.

    그리고 사주도 모른다. 생년월일시를 말해 주셔야지요.

    그냥 대충 눈치로 말했다.

    “살림이 요즘 좀 빠듯하실 거 같은데요.”

    “어머 그래요오? 왜에?”

    지금 사주 없이 맞히고 있다. ‘월세 2년 치’란 말에서 힌트 얻어서.

    이게 명승 선생이 달마다 납부하기 귀찮아 그랬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달라는 사람이 저렇게 맞춰 달라고 하지 않겠나?

    그럼 월세 받을 돈 전세로 받는 거니, 돈이 모자랐겠지?

    “남편이 사고 쳐서 그랬겠죠?”

    “어머머머 제자 맞으시네요. 아휴. 이분도 용하시네.”

    휴.

    일단 돈타령하는 아줌마들 돈 왜 없냐고 물으면, 남편 탓이라고 하면 거의 다 맞음.

    아저씨들은 가격 1짜리 물건을 2주고 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에피소드 하나 꼬투리 잡히면 살림의 주적이 되더라.

    “그래요, 잘해 봐요. 많이 벌어서 오래 장사하고.”

    건물주 아주머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장사해도 괜찮긴 하겠네. 된다면.”

    이 철학관을 쓴다면 글 작업실을 목적으로 활용할 것 같은데.

    말마따나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용돈벌이 겸 사주를 봐 줘도 괜찮겠다 싶다.

    역술인 정도는 겸업으로 해도 괜찮다. 남의 사연을 듣는 일이라 꽤 도움이 되니까.

    명승철학관에는 낡은 액자 사진이 눈에 띈다.

    명승 선생으로 보이는 남자와 악수하는 중년 남자는 지역의 꽤 알려진 정치인이다.

    중년 여배우와 지역 출신의 아이돌 가수도 있었다.

    명승 선생은 꽤 급이 높은 역술인이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고수라 할 만하다.

    나름 비법이 있는 업장이자 분타였고.

    월세를 2년 치를 몰아 낼 정도면 돈도 있는 양반이다.

    “그 무슨 맛집 물려받은 제자 같은 기분인데. 이런 업장이면 영업 좀 해 볼 만도.”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 사인과 방송 탄 사진, 신문 스크랩.

    여기가 음식점은 아닌데 괜히 맛있어 보이는 기분이 든다.

    뭘 보고 비급이며 분타를 물려주나 싶지만, 이 정도 맛집이면 산불 관리원만큼은 벌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기분이 든다.

    “그래 뭐, 작업실로 쓰라니까. 쓰자.”

    자리에 노트북을 두고 어댑터를 찾아 연결했다.

    의외로 와이파이도 잡혔다.

    키보드를 같이 들고 다닌다.

    노트북 자판이 내려앉아서 1, 2, 3 ㅂ, ㅈ, ㄷ가 잘 적히지 않았다.

    어디 밖에 나가서 쓰려고 해도 키보드까지 들고 나가야 해서, 나가서 글을 못 썼다.

    여긴 그래도 가능하다.

    밀어 뒀던 의자에 앉아 봤는데.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같이 가져온 키보드를 꺼냈다.

    내 노트북은 자판이 내려앉아서 1, 2, 3 ㅂ, ㅈ, ㄷ가 잘 눌리지 않거든.

    그동안은 어디 나가서 작업하려고 해도 키보드까지 들고 다니기가 불편해서 글을 못 썼다.

    여기에서는 작업도 할 수 있겠네.

    노트북과 키보드를 세팅하고서 밀어 뒀던 의자에 앉아 봤더니,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이야, 왜 좋은 의자 쓰는지 알겠다.”

    작가는 엉덩이 붙이고 일해야 하는 직종이라 의자를 좋은 거 쓰라는 말은 여러 차례 들었는데,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신작 런칭하면 일단 노트북, 그다음은 존나 비싼 의자. 그다음은 새 기계식 키보드.”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가 나왔다.

    의자가 좋으니까. 작업할 맛이 나는데…….

    “아 ㅂㅈㄷ 또 안 써져.”

    컴퓨터 자체 인식이 말썽인지 키보드도 난리다.

    ㅂㅈㄷ를 뽑아 버리려는데, 십수 년 전 현주컴퓨터 데스크탑이 눈에 띄었다.

    명승 선생이 써도 된다고 했다.

    “키보드 선이 돼지 꼬리네.”

    원래는 키보드만 뽑아서 연결하려 했는데, USB 선이 안 맞는다.

    전원을 한번 켜 봤더니, 예상대로 내 구형 노트북보다 더 느리게 가동된다.

    “와, 윈도우 2000. 미치겠다. 고대 유적을 찾은 기분인데.”

    윈도우 2000을 보는 게 과거의 집 컴퓨터 보는 기분이라 헛웃음을 지으며 가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켜졌다. 켜졌어.”

    띵 띠리리링 똥, 똥, 똥.

    지루하게 기다리다 보니까, 반가울 정도다.

    거기다 익숙한 윈도우 가동음까지 함께다.

    윈도우가 되긴 되나 했는데 뜨긴 뜬다.

    “리니지도 있네. 소싯적엔 겜 좀 하셨나 봐.”

    뭔가 사주 안 볼 때는 리니지 켜서 몹 클릭하고 계셨던 거 아닐까.

    바탕화면에서 ‘사주 강화술’이라고 적힌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어?”

    더블 클릭해 보니 컴퓨터가 요동치는 소리가 나더니 실행이 되었는데, 성명과 생년월일시를 적는 창과 커서가 깜박였다.

    주민번호나 개인정보는 아니니까.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적었다.

    내 사주를 속성과 스탯으로 변환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읽거나 해석하기는 성가셨지만, 내겐 나름 기반 지식이 있었고 명승비결을 읽은 터라 더욱 어렵지 않았다.

    [나무를 지켰으므로 목에 깃든 식상운에 추가 포인트가 적용됩니다. 나무운과 식상운 강화가 가능합니다.]

    [동성 동료와 친교를 나눴으므로 비겁운에 추가 포인트가 적용됩니다. 물운과 비겁운 강화가 가능합니다.]

    [지방 관청에 좋은 인상을 심었으나 나무가 보호되어 지력地力을 빼앗으므로 흙에 깃든 관성운에 소량의 포인트만 적립됩니다.]

    지금 강화할 수 있습니다!

    “……클릭하면, 진짜 올라가?”

    그리고 내 사주에 적힌 물/나무/흙 속성의 운에 강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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