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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604화 (604/615)

604화 출병(出兵) (3)

묘한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케빈은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여유로운 걸음으로 몬스터들을 향했다.

캬악!

크르르륵.

몬스터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처음에는 포식자의 존재감에 본능적으로 물러났다면, 지금은 두 눈이 새빨갛게 물들며 강렬한 적의를 표출했다.

절대자로부터 부여받은 단 하나의 목적. 인간들의 파멸을 갈구했다.

건방진 인간이 홀로 다가오는 모습에, 몬스터들은 더는 참지 못하고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

캬아악!

타타타탓.

장관이었다.

검게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며, 케빈은 담담한 얼굴로 그것을 맞닥트렸다.

번뜩.

퍽.

가장 먼저 맞닥트린 몬스터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A등급의 단단한 외피가 갈기갈기 찢겨 나갔고, 뒤이어 들이닥친 몬스터들도 사지에서 피를 뿜어냈다.

푸확.

간결한 검술이었다.

케빈은 맞닥트리는 상대를 차례로 베어 버리며, 그대로 몬스터들로 득실거리는 공간에 녹아들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만큼의 몬스터와 케빈이 뒤엉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케빈을 중심으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간결하게 승부가 갈렸다.

캬악!

훅.

공격을 흘려보냈다.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이빨을 들이밀고 발톱을 휘둘러도, 케빈은 그것들을 정확히 간파해 내며 공격의 의미를 상실시켰다.

정석적인 움직임이었다. 공격의 무효, 그리고 반격. 과거에는 거칠게 파고들며 적들의 혼란을 유발했다면, 지금의 케빈에게는 굳이 그렇게 행동할 이유가 없었다.

본인을 중심으로 주변 전부.

손아귀에 있었다.

수많은 몬스터가 동시다발적으로 어떤 공격을 시도하는지가 전부 보였고, 그렇기에 아슬아슬한 그림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A등급? B등급? 그따위 것들은 무의미했다. 케빈을 상대로는 한낱 몬스터에 불과했으며, 잔잔한 파도와도 같은 오라에 몬스터들의 사지가 찢겨 나갔다.

이전과는 달랐다.

30년 전의 그.

케빈은 귀혼마공에 잠식되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이성을 상실했고, 그것을 가까스로 통제하며 본인의 무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지난 30년간 차곡차곡 쌓아 온 세월. 매일 실전과 같은 훈련을 진행하면서, 케빈은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귀혼마공이 극성으로 발현되어 미쳐가는 날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 정신력이 한계를 뚫고 미지의 경계에 도달했다.

최초였다.

귀혼마공의 창시자조차 도달하지 못한, 애초에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단계.

‘일체의 단계.’

귀혼마공을 통제했다.

머릿속을 시끄럽게 울려 대던 목소리가, 전 감각에 녹아들어 몬스터들의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앞에서 득달같이 달려드는 몬스터, 사각을 노리는 몬스터, 땅을 파고들어 기습적으로 공격하려는 몬스터. 그들의 존재와 대응 방식이 0.1초 단위로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고요했다.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케빈은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추었다.

그때였다.

“조심하십시오!”

바로 뒤.

강민호가 소리쳤다.

케빈의 무력에 감탄하던 그는, 눈을 부릅뜨게 만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인간이여, 죽어라!]

차원의 경계를 뚫고.

S등급의 몬스터.

단일 무력으로는 최강이라고 불리는, 데스 나이트(Death Knight)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일련의 상황.

강민호는 넋을 잃었다.

드미트리의 악귀 케빈.

그가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세바스찬이 그동안 떠들어 댄 내용대로라면, 로만 드미트리의 최측근인 크리스와 케빈은 일반적이지 않은 존재였다.

혼자서 영지 하나를 초토화하고도 남을 존재들.

그래서 그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처음에 케빈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는 감탄보다는 당혹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40대 중반의 사내.

익히 알고 있는 정보와는 달랐다.

케빈은 아무리 많아도 20대 초중반일 텐데, 눈앞의 사내는 최소 20년 이상 세월의 차이가 있었다.

의구심이 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케빈을 상징하는 붉은 머리칼에 스스로를 케빈이라고 밝혔지만, 전투가 벌어지기 전만 하더라도 강민호는 의구심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은 확실했다.

로만 드미트리의 계획이 완벽하게 이행되었다면, 로만 드미트리를 처음 만났을 때 ‘소년’이라고 표현되었던 케빈이 이 자리에 있어야 했다.

이윽고.

전투가 벌어졌다.

홀로 몬스터들을 도륙하는 케빈의 모습에, 의구심과는 별개로 강민호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

넋을 잃었다.

상대는 한두 마리가 아니다.

시야를 빼곡하게 메우는, 최소 수만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상황에도 케빈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살인 기계라도 되는 것처럼 차례로 도륙해 버렸다.

그 간결한 움직임에, 압도적인 무력에, 강민호는 단 하나의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도 이 사람이 드미트리의 악귀인지는 확신할 수 없어. 40대 중반의 나이와 너무나도 간결한 움직임은 드미트리의 악귀를 표현하는 말들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선(死線)을 넘어온 사람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저토록 평안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콰득.

몬스터의 머리를 짓밟았다.

분수처럼 뿜어내는 피가 몸을 흠뻑 물들여도, 마치 로만 드미트리처럼 흔들림은 보이지 않았다.

경외심이 들었다.

끝이 없는 몬스터들을 상대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 치열한 싸움의 끝에 본인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지녔다는 사실이. 왠지 드미트리의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가질 수 없는 저 자신감은, 로만 드미트리에게서 보았던 것과 매우 비슷했다.

그때였다.

트드드드득.

공간이 뒤틀렸다.

칠흑 같은 오라가 피어오르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은 바로 S등급의 데스 나이트였다.

‘데스 나이트?!’

위험했다.

데스 나이트.

생전의 경지에 따라 A등급도 존재하지만, 지금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데스 나이트는 파멸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S등급의 데스 나이트가 확실했다.

단일 무력으로는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그래서 반드시 정면 대결을 피하라고 말하는 그 존재가 어둠의 마력이 들끓는 검을 뽑았다.

스릉.

위험했다.

강민호가 소리쳤다.

“조심하십시오!”

걱정이 앞섰다.

만약 케빈이 당한다면.

이곳은 끝이었다.

자신을 포함해 딸이 살아남을 수 없기에, 상대가 진짜 드미트리의 악귀든 아니든 제발 데스 나이트에게 패배하는 광경은 바라지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강민호도 앞으로 뛰쳐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그때.

번뜩.

팟.

강민호는 보았다.

하늘에 둥실 떠오르는 머리.

단 일격에, 데스 나이트의 머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 * *

정말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처음에는 의문을, 이어서는 감탄과 경악을, 마지막에는 현실을 믿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후두둑.

핏물이 비처럼 떨어졌다.

A구역 쉘터를 공격했던 수많은 몬스터가, 기어코 케빈이라는 단 한 명에게 모조리 도륙당했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눈동자가 흔들렸다.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믿어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목격했기에.

케빈이 다른 누군가의 도움도 받지 않고 모조리 도륙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드미트리의 악귀가 왜 적들에게 공포의 대명사라 불렸는지 알 것 같았다.

저런 존재를 적으로 두었다면 로만 드미트리와는 다른 공포감이 있었을 것이다. 차갑게 내려앉는 눈빛은, 단 한 마리의 생존도 허락하지 않았다.

케빈이 다가왔다.

붉은 머리칼만큼이나 피로 흠뻑 물든 얼굴로, 강민호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는 어디에 계십니까?”

“……지금 절대자들을 추격하고 계십니다. 이 혼란을 끝내려면, 그들을 모두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황제 폐하께 합류할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황제 폐하를 따라, 절대자들을 전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오만한 발언이었다.

절대자는 생명체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이건만,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겠다는 케빈의 발언에는 망설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30년 전에 마계 정벌에도 참여했던 케빈이다.

절대자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들었지만, 그것이 그를 뒤로 물러나게 만들지는 못했다.

강민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케빈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기에, 그로서는 한 가지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죄송스러운 부탁입니다만, 황제 폐하를 따라나서기 전에 대한제국을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곳 말고도 지금 대한제국은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조금 전.

통신이 끊겼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통신 기기가 파괴된 것인데, 그 전에 A구역 쉘터를 도와주지도 못할 만큼 위험하다는 사실을 들었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강민호로서는 절대자를 처리하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알면서도, 대한제국의 안위를 위해 용기를 내야만 했다.

로만 드미트리도.

그것을 바랄 것이다.

대한제국의 안위를 강조했던 만큼, 강민호는 케빈의 도움이 간절했다.

그런데.

“드미트리의 참전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케빈이 웃었다.

이 세상 사람들.

그들은 아직 몰랐다.

드미트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불안하게 흔들리는 강민호의 눈빛을 바라보며, 케빈은 확고하고 명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한제국의 위험은 곧 제거될 것입니다.”

* * *

강민호의 예상대로였다.

대한제국의 위기.

김준혁은 절망에 빠졌다.

그동안 준비해 왔던 만큼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아직 4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대한제국은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절대자들의 힘은 대단했다. 수천 개의 게이트를 생성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성벽을 무너트리는 파괴적인 마력에, 김준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완벽한 승리는 없었다.

지금부터는 처절하게 싸울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죽더라도, 로만 드미트리가 절대자들을 모조리 도륙할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울 것이다.

그 끝에 로만 드미트리가 승리를 쟁취해 낸다면.

자신은 살아남지 못할지라도, 누군가는 그 평화를 누리게 되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김준혁은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쳤다.

쓰러지지 말고 적들에게 대항하라며 사기를 북돋웠다.

그런 상황에.

김준혁은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시장님! 차원의 통로를 확보했습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절대자들이 수많은 게이트를 생성하면서, 백일의 마법사들이 4시간보다 일찍 통로를 확보했다.

그와 동시에.

김준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광경을 목격했다.

화악.

트드드드득.

차원의 통로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엄청난 진동이 울렸다.

몬스터들과 뒤얽히며 싸우던 사람들이, 일순간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볼 정도였다.

이윽고.

“전국, 돌격하라!”

“돌격하라!”

“와아아아아!”

차원 너머로.

엄청난 숫자의 대군(大軍)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선두에는 크리스가 있었으며, 크리스가 적진을 파고들며 몬스터들을 도륙하자 드미트리의 병사들도 뒤이어 들이닥쳤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해일과도 같았다.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해일이 그대로 지상을 쓸어버리는 것처럼,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무력하게 쓸려 나갔다.

“죽어!”

“황제 폐하를 위하여!”

적의가 넘실거렸다.

몬스터들이 시뻘건 눈빛을 드러내며 반격했지만,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그것을 막아 내며 급소에 무기를 찔러 넣었다.

그건 일반적인 병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A등급에 해당하는 몬스터들이 거칠게 달려들어도, 병사들은 차분하게 막아 내더니 기어코 상대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푸확!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가 마력을 발현하자,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무언가’를 발동시켰다.

“철벽(鐵壁) 대형을 형성하라!”

“철벽 대형을 형성하라!”

번뜩.

쿠르르르르르릉.

아티팩트가 빛을 발했다.

갑작스럽게 거대한 철벽이 형성되었고, 그것이 성벽을 쌓듯 촘촘하게 공간을 메웠다.

그러고는 그 위로.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마법이 작렬했다.

몬스터들의 마법을 철벽으로 막아 내더니, 그것이 순간 신기루처럼 흩어지며 다시 한번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지난 30년간의 변화는 케빈과 같은 주요 인물들만의 성과가 아니었다.

마법 문명.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는 일반적인 병사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드미트리의 세상은 강력한 마법의 힘을 얻었다.

콰앙!

마법이 작렬할 때면.

어김없이 철벽 대형으로 대응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반격에 나서며,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몬스터의 공격을 피해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

퍽!

“죽어!”

눈이 팽팽 돌았다.

대한제국의 병사들.

아니, 김준혁조차 놀라서 넋을 잃었다.

사람들은 드미트리의 합류로 기대한 그림이 있었다.

드미트리의 섬광 크리스, 드미트리의 악귀 케빈, 드미트리 제일의 마법사 펠릭스 등 익히 들어 왔던 이름들이 활약해서 도와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들의 존재감은 도드라지지 않았다. 크리스도 지휘관의 역할을 도맡으며, 병사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압도적으로 전장을 쓸어버렸다.

어느 특별한 한두 인물의 활약이 아니라, 드미트리 전체가 본인들의 존재감을 압도적으로 표출했다.

“……이게 드미트리의 저력이란 말인가.”

소름이 돋았다.

드미트리의 참전.

그것은 어쩌면, 생각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