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601화 (601/615)

601화 마지막 재앙 (7)

로만 드미트리가 사라진 이후.

대한제국은 혈전(血戰)을 벌였다.

새카맣게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대한제국을 위하여!”

“공격하라!”

지난 49일.

아니, 그 이상의 시간.

그동안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며 스스로를 단련해 왔던 사람들이, 폭발적인 힘을 분출하며 몬스터들을 도륙했다.

사방에서 끔찍한 괴성이 들렀다.

몬스터들의 살이 갈라지고 머리가 베이며 피를 흩뿌렸고, 서로의 공간을 촘촘하게 형성하며 몬스터들이 파고들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단단했다.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강력한 방어 체계를 형성했지만, 문제는 상대의 숫자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크악!”

콰드드득.

병사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몬스터 십수 마리를 처리한 그는, A등급의 웨어 울프(Werewolf)가 들이미는 이빨을 피하지 못했다.

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방에서 발생하는 현상이었고, 거대한 댐에 조그마한 구멍이 생기듯이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 위로는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날개를 펼쳤다.

다른 나라들은 한 종류의 S등급 몬스터가 나타났다면, 대한제국의 하늘에는 드래곤들이 종류별로 모습을 드러냈다.

[파이어 브레스.]

[포이즌 브레스.]

화악!

콰콰콰콰콰콰콱!

지상을 휩쓸었다.

거대한 마력이 사람들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대한제국의 마법사 집단 백일이 힘을 발휘했다.

“그레이트 실드.”

“그레이트 실드.”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엄청난 격돌이 일어났다.

브레스가 작렬할 때마다 마법사들이 힘겨운 기색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포기했다가는 그 순간 대한제국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바로 옆에서 동료 마법사가 피를 토하며 쓰러져도, 미리 대기하고 있던 예비 병력이 그 자리를 메우며 방어 마법을 발현했다.

팽팽한 접전.

죽고 죽이는 싸움에서, 몇몇 인간들이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섬전.’

파파파파팟.

직할대의 수장.

이태성이 몬스터들로 득실거리는 공간을 파고들었다.

절정에 오른 그의 검술이 A등급의 몬스터들을 도륙했고, 순간적으로 날아올라 레드 드래곤의 몸체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오라가 일렁이는 검을 목에 쑤셔 박았다.

레드 드래곤이 발악하며 이태성을 어떻게든 떨어트리려고 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일의 장윤태가 방해 마법을 펼쳤다.

“블라인드(blind).”

시야를 가렸다.

어둠의 마력이 레드 드래곤의 눈에 스며들었고, 레드 드래곤은 단번에 그 마력을 파훼해 버렸다.

하지만.

단 1초면 충분했다.

이태성은 급소에 재차 검을 쑤셔 넣었고, 곧바로 레드 드래곤의 마력에 튕겨 나가 지상으로 추락했다.

“플라이.”

장윤태가 이태성을 받아 주었다.

김판석에게 마법을 전수받은 그는 흑마법사로 성장했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 중 하나였다.

이태성이 떨어지는 위치로 몰려드는 몬스터들. 장윤태가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

“리바이벌(revival).”

마법 스크롤이었다.

김판석이 기록한 마법을, 장윤태가 마력을 불어 넣어 반감되는 효력으로 발휘했다.

바닥에서 일어나는 망자들.

그들이 몬스터들과 부닥쳤다.

망자들이 짓밟히고 찢겨 나갔고, 겨우 한 마리의 레드 드래곤을 처리한 것 정도로는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또 다른 위험이 대한제국의 수도를 휩쓸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동료가 죽어도, 몬스터들이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도. 악에 받쳐서 어떻게든 대항하는 이태성과 장윤태처럼, 반드시 버티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로만 드미트리.

그를 믿었다.

지금의 대한제국을 만들어 낸 그가, 모든 위험 요소를 정리하고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들의 뒤.

믿음은 김준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조금 전에 백의의 마법사가 추가로 절대자를 쓰러트렸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현재 절대자는 아홉이 아닌 열둘로 파악되었지만,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가 처리한 절대자까지 포함해서 벌써 셋을 죽였다. 버텨라. 계속해서 들려오는 승전보가 우리가 유리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버티고 버텨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절대자들은 인류를 핍박했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의 대리인.

김준혁은 전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지휘관의 존재가 사기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뿐만 아니라 적절하게 진법을 활용했다.

49일 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였다.

인천 전체의 진법화. 만약 이와 같은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강군이라고 할지라도 지금보다 피해가 더 막심했을 것이다.

희망이 살아났다.

절망적인 광경을 바라보고도, 절대자를 처리했다는 보고가 들어올 때마다 버텨 낼 원동력을 얻었다.

그리고 그때.

“아등바등 발악하는구나.”

볼피르가 대한제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볼피르는 핵심을 파악했다.

다른 나라들을 무너트리는 것보다, 대한제국의 멸망이 인류 전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대한제국에 나타났다.

끝까지 투쟁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볼피르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너희를 인정한다. 이 세상이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너희의 투쟁심은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다.”

슥.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고는.

“그러나 그뿐이다.”

권능을 발현했다.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인류 전체를 쓸어버리겠다는 듯이 거대한 해일이 밀려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계에 도달했던 사람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몬스터들의 공격과 더불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인천의 건물들이 무너지며 가장 중요한 진법이 파훼되었다.

쿠르르르르릉.

의도적이었다.

볼피르는 건물이 만들어 내는 인위적인 힘에, 인간들에게 유리한 요소를 앗아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의식 너머.

브라칸의 소식이 들렸다.

개의치 않았다.

처음에는 절대자가 당했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다가 죽는 녀석들은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겨우 한둘이 더 죽었을 뿐이다. 자신을 비롯해 절대자들이 남아 있는 이상, 단 하나의 존재로도 인류를 파멸시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천이 죽음으로 물들었다.

사방에서 인간들의 비명이 들렸고, 그 끔찍한 소리를 음미하며 볼피르가 한발 물러났다.

“곧 다시 돌아오도록 하지.”

게릴라 작전.

역할에 충실했다.

단 한 번의 권능으로 인천을 쓸어버린 그는, 곧바로 차원 너머로 사라지며 이번에는 대한제국의 부산으로 향했다.

대한제국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요량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차원의 경계를 타고 넘어온다고 한들, 그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참담한 광경밖에 없을 것이다.

차원의 경계는.

절대자들의 세상이다.

작정하고 경계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로만 드미트리가 그것을 따라붙을 방법은 없었다.

볼피르가 사라진 자리.

김준혁은 넋을 잃었다.

답이 없었다.

진법은 파괴되었고, 그동안 처리한 것보다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대한제국의 방어 체계는 처음만큼 견고하지 않았으며, 일부는 체력적인 소모에 힘든 기색마저 보이고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버틸까?

3시간?

2시간?

아니, 1시간도 장담할 수 없다.

사실 그동안 진실을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악착같은 발악은 승리와는 전혀 무관한, 그저 죽기 직전의 발악일 뿐이라는 사실을. 생존의 키는 사람들에게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볼피르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볼피르가 대한제국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사람들은 한 발자국씩 벼랑 끝으로 밀려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역겨움을 삼켰다.

본인의 역할을 떠올렸다.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했던 로만 드미트리의 약속처럼, 자신도 무력하게 무너지고 싶지는 않았다.

앞으로 나섰다.

목소리를 높여, 다시 한번 기운을 북돋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A구역 쉘터가 무너졌습니다!”

“B구역 쉘터도 위험합니다!”

빗발치는 연락에 힘을 잃고 말았다.

* * *

하나의 문제는.

곧 열의 문제로 번졌다.

외성의 방비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내부에 존재하는 쉘터들도 하나씩 위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쿠릉.

쿠르르르르릉.

성벽이 무너졌다.

진법은 이미 효력을 다했고, 무너진 성벽 너머로 몬스터들이 득달같이 밀려들었다.

이미 A구역의 쉘터를 지키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상당 부분 죽은 상태였고, 폐허가 되어 버린 공간에서 살아남은 몇몇 인간들이 악착같이 길을 막아섰다.

그래야만 했다. 본인들이 무너지는 순간 민간인들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생각에, 절대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었다.

퍽.

크에에엑.

“하악, 하악.”

벌써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강민호는 피로 흠뻑 물든 얼굴로,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날 것처럼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한계다.’

성벽이 무너진 지도 오래전.

지금까지 버틴 것도 대단했다.

강민호는 성벽이 무너지자마자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성으로부터 절망적인 소식을 들었다.

[이곳의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곳이나.

이곳이나.

상황은 똑같았다.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가는 상황에, 병력을 빼돌려 어딘가를 도와주는 것은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참 거지 같은 상황이었다. 강민호도 그동안 절망을 훈련해 왔지만, 아무리 단단히 대비한다고 할지라도 훈련은 결국 훈련일 뿐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

절망에 빠진 병사들.

이게 현실이었다.

훈련으로는 완벽하게 대비할 수 없는 잔인한 현실에, 다들 이 자리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는 방법이 없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가 절대자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천의 주요 거점도 아니고 쉘터를 구하겠다고 도움을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이다. 결국에는 이곳의 병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겠지.’

꽈악.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지난 조동섭 사건.

자신은 운 좋게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그때의 일을 인간의 승리라고 말했지만, 강민호는 어느 순간부터 마음 한편에 죽음을 받아들였다.

아바타도 감당하지 못했던 순간. 마지막 재앙이 찾아온다면 그때는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받아들였다.

죽을 것이다.

다행히 며칠 더 살 수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딸의 곁을 지키다 죽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선천지기를 발휘한다.’

콰르르르르르릉.

생명력을 끌어 올렸다.

어차피 버린 목숨.

후회는 없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몬스터들에, 강민호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나갔다.

“크아아아!”

번뜩.

푸확!

몬스터의 머리를 날렸다.

곧바로 치고 들어오는 몬스터의 사지를 연속해서 찢어발겼고, 바로 옆에서 위험을 맞이한 병사를 도와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고개를 젖혀야만 했다. 몬스터의 날카로운 발톱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자, 강민호는 이를 악물며 그의 머리를 찍어 버렸다.

퍽!

검이 얼굴을 관통했다.

진득하게 딸려 오는 피를 신경질적으로 털어 내며, 강민호는 또다시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맞닥트렸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시뻘겋게 물들어 십수 마리를 죽이면, 반드시 그 대가로 한두 개의 상처가 몸에 생겨났다. 고통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몬스터의 시체가 쌓여 갈수록, 숨을 내쉴 때마다 비릿한 맛이 진해질수록. 강민호는 자신의 몸이 점점 느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팟.

방금도 팔뚝이 베였다.

강민호는 팔을 내어 주고 몬스터의 머리를 날렸지만, 이제 더는 뜻처럼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한계였다.

선천지기마저도 거의 소진되어갔다.

만약 우물이 말라 버린다면,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이제 끝인가.’

아득했다.

이 싸움의 끝.

과연 인간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신은 죽을지라도, 로만 드미트리가 약속을 지켜 딸만큼은 지켜 주기를 바랐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강민호는 죽어 가면서도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다.

아내를 잃었던 그때의 슬픔을 다시 겪을 바에, 더는 누군가를 잃으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우웩.”

피를 토해 냈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마지막까지 몬스터들을 막아서기 위해 힘겹게 검을 들어 올린 그는, 순간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몬스터들 사이로.

한 인간이 걸어오고 있었다.

* * *

이상했다.

나이는 한 40대 중반?

길게 기른 적발을 뒤로 묶은 사내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몬스터들 사이를 걸어왔다.

몬스터들이 길을 열었다.

정확히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내에게서 풍기는 피 냄새에, 그들도 일순간이나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피어(fear).

본능에 각인된 공포였다.

우뚝.

사내가 걸음을 멈추었다.

강민호가 눈앞의 존재를 올려다보자, 사내는 묘한 감정이 들끓는 음성으로 그에게 물었다.

“묻겠습니다. 당신은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의 사람입니까?”

의구심이 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온몸에서 전율이 일어났고, 강민호는 본능적으로 진실을 말했다.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드미트리 제국도 이번 전쟁에 참전하겠습니다.”

드미트리!

모두가 갈구했던 그 이름!

강민호가 눈을 부릅떴다.

드미트리의 일원이라면, 40대 중반의 저 사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스릉.

사내가 검을 뽑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 오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그가 말을 툭 내뱉었다.

“제 이름은 케빈입니다.”

익숙한 이름.

강민호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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