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99화 (599/615)

599화 마지막 재앙 (5)

김판석의 등장.

카르트가 묘한 눈길을 보였다.

절대자들에게는 백의의 마법사 박민우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인물.

로만 드미트리 다음으로 인간을 대표하는 실력자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런 평가가 사실 절대자들의 기준에서는 무의미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

그 힘이 절대자들을 압도할 만큼 강하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다른 인간들이 그와 비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인자와 이인자.

로만 드미트리와 김판석.

둘의 차이는 감히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겨우 김판석 따위가 건방을 떠는 모습은, 카르트로서는 쉽게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설마 혼자서 날 막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감각을 확장시켰다.

혹시라도 시간을 버는 사이에 로만 드미트리가 들이닥칠지도 모르기에, 마력을 끌어 올리며 당장에라도 도망칠 준비를 끝냈다.

당황스럽게도 예상했던 상황과는 달랐다.

의식 너머에서 전달해 오는 말들은, 로만 드미트리가 독일의 상황을 정리하고 잉글랜드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호주의 병사들이 간절한 표정을 보였다.

카르트가 걱정하는 부분처럼, 제발 로만 드미트리가 곧바로 호주를 도와준다고 말하길 바랐다.

하지만.

김판석은 진실을 말했다.

카르트를 올려다보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맞아. 나 혼자서 널 막겠다는 거.”

“하.”

“이런.”

주변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백의의 마법사는 정말 대단한 실력자지만, 같은 인간들조차도 절대자의 상대로는 보지 않았다.

당연했다.

절대자는 신에 버금가는 존재다.

백의의 마법사가 그동안 아무리 활약했다고 한들, 그래도 로만 드미트리만큼 압도적인 결과를 보여 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혼자서 절대자를 상대한다니. 지원을 와 주었다는 사실 자체에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김판석만으로는 본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죽을 것이다.

절망으로 물드는 상황에, 김판석은 사람들의 시선은 개의치 않고 마력을 끌어 올렸다.

“참 개 같단 말이지.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가 무서워서 도망친 주제에, 왜 여기에서는 마치 적수가 존재하지 않는 신인 것처럼 굴고 있지? 야, 이 씨발 새끼야. 비겁하게 도망치지만 말고 나랑 한번 붙자.”

콰릉.

콰르르르르르릉.

마력이 폭발적으로 들끓었다.

9개의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김판석의 마력이 순식간에 주변을 장악했다.

“왜. 쫄리면 또 도망치시든가.”

툭 내뱉은 말.

카르트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 * *

도망칠 이유는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움직임을 파악한 지금, 카르트는 건방진 인간의 도전장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 지금부터 보여 주마. 절대자들이 처음 이 세상에 강림했을 때, 인류가 우리를 신처럼 떠받들어야만 했던 절망적인 현실을.”

슥.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고는.

“어디 버텨 보거라.”

까닥.

퍼엉!

콰콰콰콰콰콰쾅!

갑작스럽게 사방에서 해일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고, 인간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파도가 김판석의 존재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인간은 자연의 위대함에 무릎을 꿇는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감히 대항하지 못하겠지만, 9서클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에게 자연의 의미는 달랐다.

“뻔하네. 아쿠아 퍼니쉬먼트(Aqua Punishment).”

콰앙!

콰콰콰콰콰쾅!

9서클 마법.

김판석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분출되며, 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해일을 일으켰다. 두 해일은 그대로 엄청난 격돌을 일으켰다.

강력한 수압(水壓)이 마치 폭탄이라도 터지는 것 같은 소음을 동반했고, 김판석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후속 마법을 발현했다.

“헬 파이어(Hell Fire).”

화륵.

화르르르르륵.

지옥의 불길이 타올랐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이 해일을 증발시켰고, 그것은 카르트의 존재를 역으로 집어삼키려 했다.

“감히!”

카르트의 눈빛이 사납게 번뜩였다.

두 번의 반격.

아직 자신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김판석의 힘은 절대자들의 권능을 따라 하는 것 같았다.

마법으로 발현한 힘은 절대 절대자들을 넘어설 수 없다.

마법은 일순간 자연의 힘을 빌리는 방식이라면, 절대자들의 권능은 ‘자연’을 통제하고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었다.

고로.

근본이 달랐다.

카르트가 손짓을 한번 휘두르자, 그를 향해 날아들던 지옥의 불길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러고.

“지옥의 불길이란 이런 것이다.”

화륵.

화르르르르륵.

똑같이 불길을 일으켰다.

수많은 차원 중 가장 뜨거운 장소, 세상 자체를 불태운 것으로도 모자라 차원 너머에까지 넘실거리는 불길을 현생에 불러들였다.

그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았다. 카르트의 손길에 불길이 날아들자, 이번에는 김판석의 마력이 모두 분해되는 모습을 보였다.

압도적이었다.

절대자의 존재감.

겨우 9서클 마법에 당할 정도라면, 절대자들은 스스로를 신이라 여길 만큼 과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김판석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번 임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로만 드미트리도 김판석에게 대한제국에 남을 것을 요구했지만, 김판석은 그런 방식으로는 로만 드미트리가 모든 짐을 떠안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로서는 확신했다. 절대자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한들, 로만 드미트리를 맞닥트리는 순간 깊은 절망감에 도망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재앙은 길어질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머릿수를 살릴 절대자를 상대로, 로만 드미트리 외에 그들을 상대할 무기가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나여야만 해.’

자신의 가치.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었다.

로만 드미트리조차도 이번에는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그에게는 이 김판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절대자를 쓰러트려야만 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아닌 자신을 상대로 패배한다면, 절대자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붙어 보자.”

화악.

팽팽팽팽.

9개의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한 개의 의식이 두 개로, 두 개의 의식이 네 개로, 네 개의 의식이 여덟 개로 빠르게 쪼개졌다.

수많은 의식.

폭발적인 마력.

그리고 단 한 번의 마법.

다가오는 불길을 바라보며, 김판석은 자신의 전력을 표출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Meteor Strike).”

콰릉.

콰르르르르르르릉.

강력한 한 방.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다.

먹구름 너머로 나타난 거대한 운석이, 지옥의 불길과 함께 절대자의 존재를 쓸어버리겠다는 듯이 맹렬한 기세를 보였다.

단언컨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일격이었다.

이 한 번의 마법이면 도시 하나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파괴력이 대단한 마법이었다.

그런데.

콰앙!

화륵, 화르르르르르륵!

운석이 폭발했다.

지옥의 불길과 맞닥트리는 순간, 허무할 정도로 운석이 쉽게 부서지며 그대로 불길에 휩싸였다.

카르트의 힘.

그가 김판석을 압도했다.

결국에는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절대자는 결과로서 증명했다.

“죽어라, 인간.”

웃음을 머금는 카르트.

그 모습에, 김판석은 과거의 한순간을 떠올렸다.

* * *

전생의 김판석.

그는 강해지고 싶었다.

세상을 내려다보던 천마처럼,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환상처럼 남은 기억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알렉산드르로서 오라를 창시하고, 마왕의 힘을 빌려 9서클의 경지에 올랐지만, 아무리 강해진다고 한들 스스로가 천마에 비할 바가 아님을 알았다.

허망했다. 오랜 세월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치열하게 살았건만, 우러러보는 그 존재에게는 감히 손가락 하나도 닿을 수 없었다.

결국.

패배의 대가로 마왕에게 버림받았다.

무저갱(無底坑)의 지옥에 떨어진 김판석은, 영혼이 소멸되는 과정을 겪으며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었다.

‘만약 내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천마 백중혁 님에게 버금가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감히 불가능한 일이기에, 나를 이렇게 만든 마왕의 경지에라도 도달할 수 있을까.’

김판석은 밑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바라보며 그래도 괜찮은 삶이었다고 자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들을 올려다보았다.

천마는 역시나 논외였다. 로만 드미트리로 나타난 천마를 상대하며,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열망이 더욱 들끓었을 뿐이다.

하지만.

마왕은 달랐다.

그를 넘어서고 싶었다.

정말 혹시라도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왕과 같은 존재들을 상대로는 이렇게 참담한 결말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한 고민은 박민우로 살아가면서도 이어졌다.

새로운 세상에는 마왕이 아닌 절대자들이 존재했고, 절대자를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상단전을 단련하고.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강했지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정답을 갈구했다.

발전을 열망했다.

그리고 다시 로만 드미트리를 만났을 때,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김판석은 길고 길었던 고민에 결론을 내렸다.

* * *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악의를 마주하며, 김판석은 조금은 허망한 듯한 어투로 말했다.

“내가 살아가며 느낀 단 하나의 진리가 있어. 그것은 바로 태생의 한계야. 아무것도 아니었던 존재가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룰 수는 있겠지만,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처럼. 그리고 너희와 같은 절대자나 마왕처럼 되기 위해서는 태생의 무언가가 반드시 동반되어야만 하지.”

김판석은.

아무것도 아닌 무지렁이였다.

타고난 것이 빈약했기에, 그는 축복받은 존재들과는 다르게 억겁의 세월을 녹여 스스로를 단련해야만 했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백 년의 삶도 길다면서 지루함을 느끼는데, 김판석은 강렬한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지루함과 고독함을 억지로 씹어 삼켰다.

그뿐이었다.

오라를 창시하고 9서클에 오르는 등, 그는 충분히 대단했지만 태생의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그래, 이게 한계겠지. 나는 내 주제를 알고, 이 이상으로는 절대 올라설 수 없음을 확실하게 깨달았어.”

화륵.

화르르르륵.

지옥의 불길이 날아들었다.

운석을 불태워 버린 그것은, 이번에는 자신의 목숨을 노렸다.

“그런데 말이야. 옹졸하고 속이 좁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는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뿐이야. 그분 외에 또 다른 존재를 인정하기에는, 내 성질이 더러워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거든.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얻어 낸 결과물을 보여 줄게. 태생의 한계를 인정하고 얻은 내 결과물을. 황제 폐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나를 우습게 볼 수 없음을. 나와라, 제단이여.”

쿵.

쿠르르르르릉.

지난 49일.

김판석은 네피르의 스킬을 습득했다.

그로 인해 망자는 소멸되었지만, 자체적으로 ‘제단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카르트가 비웃었다.

김판석이 비장하게 말한 것과는 다르게, 결과물이 겨우 제단 스킬이라는 사실에 황당함을 느꼈다.

“우리로부터 비롯된 스킬로 대항하겠다니. 참으로 우습구나.”

네피르.

제단 스킬.

모두 절대자의 권능이었다.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나타난, 제단의 제물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멍청한 새끼. 같은 스킬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법이지. 나는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에게 패배해 처참하게 찢겨 나갔던. 너의 동족인 ‘이 녀석’의 마력을 제단의 제물로 삼겠다.”

“……?!!”

순간.

카르트가 눈을 부릅떴다.

김판석이 독자적인 행동을 허락받을 수 있었던 이유.

모두 계획적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카르가스를 처리하면서, 김판석과의 계획대로 그가 ‘제물’로 삼을 수 있는 절대자의 흔적을 남겨 주기로 했다.

만약 적의 방심으로 단 한 명의 절대자를 처리할 수만 있다면. 일회성이기는 하나, 인간은 로만 드미트리 외에 새로운 무기를 확보할 수 있다.

고로.

번뜩.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육신의 일부.

제단이 카르가스의 힘을 먹어 치웠다.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는 힘으로 인해, 김판석이 눈을 부릅뜨며 엄청난 마력의 폭풍에 휩싸였다.

온전한 힘이 아니다.

카르가스의 일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격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9개의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폭발할 것 같았고, 김판석은 태생의 한계를 초월하는 엄청난 힘을 느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로만 드미트리나, 마왕이나. 감히 자신이 범접할 수 없었던 존재들이 어째서 그렇게 강했는지를.

세상을 내려다보고 생명체로서의 한계를 초월한 경지는, 일순간이나 김판석을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끄윽, 끄으윽.”

코피를 흘렸다.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토해 내고 싶었다.

일반적인 인간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김판석은 이를 악물면서 어떻게든 고통을 삼켜 냈다.

김판석은 분명히 태생의 한계에 부딪혔다.

하지만 무저갱의 지옥에서 악마들에게 영혼을 물어뜯기는 고통을 경험했던 그는, 적어도 정신력만큼은 인간의 육신을 초월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렇게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

번뜩.

“아아-!”

열 번째 고리.

김판석의 심장에, 열 번째 서클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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