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71화 (571/615)

571화 단 1년간의 변화 (4)

지금, 이 순간.

수뇌부들은 귀를 의심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드미트리 제국의 황제라는 사실은, 넘치는 충성심으로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드미트리 제국의 황제라니요.”

김준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김준혁이었지만, 충격적인 진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드미트리.

세상을 선도하는 이름이다.

드미트리의 섬광을 필두로 드미트리의 전승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인류가 지금까지 버티는 근간을 마련해 주었다.

사람들은 드미트리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훗날 전승의 방식이든 뭐든 드미트리의 황제가 세상에 나타난다면, 그를 중심으로 혁명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것이 마론이든, 또 다른 누군가든.

사람들은 드미트리의 황제를 우러러보았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가 스스로를 드미트리의 황제라고 말하자, 다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들의 반응.

이해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담담하게 진실을 밝혔다.

“마론교의 성서에는 드미트리 황제가 마계를 정벌하고, 이후 차원의 규율로 인해 샐러맨더 대륙을 떠났다는 내용이 존재한다. 그것은 진실이다. 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세상에 도달했고, 너희가 경험했듯이 대한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들 그동안 내 정체에 대한 의문이 있었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질문하지 않았던 의문을 외면해 왔던 이유는, 정체를 밝히는 것에 대한 망설임보다는 새로운 삶과 전생의 연관성을 배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초창기.

로만 드미트리는 두 삶을 분리했다.

드미트리에 대한 그리움을 완벽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때만 하더라도, 이번 삶과 전생은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드미트리의 전승자와 마론교 등, 전생의 흔적들을 경험하면서 두 삶엔 차원을 초월한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갈증이 일었다.

드미트리와의 재회를 바랐다.

단순히 군림하는 삶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삶의 목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나도 내가 왜 이 세상에 도달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드미트리 제국. 드미트리의 섬광과 드미트리의 악귀 등, 드미트리 제국의 인재들을 탄생시킨 존재가 바로 나 로만 드미트리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진실을 밝혔다.

이제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행보가 결정될 것이다.

잠깐의 침묵.

수뇌부들이 말없이 생각에 빠져 있는 그때, 김준혁이 수뇌부들을 대표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드미트리 악귀 사건 이후로 저는 마론교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성서의 내용이 진실일지도 모르며, 마론 드미트리의 존재를 경계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론 드미트리가 황제 폐하 본인이라면, 대체 어째서 지금에야 진실을 밝히시는 겁니까? 만약 1년 전에라도 진실을 밝혔다면, 대한제국은 모든 부분에서 일을 쉽게 진행할 수 있었을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김준혁의 물음.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 * *

마론교.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의 존재를 사이비라 생각했다.

자신을 마론 드미트리라고 표현하는 멍청함에, 전승자의 기억을 그럴듯하게 조립한 한심한 족속들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서의 존재’가 정말 차원 너머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진실을 밝히지 않고 마론교를 방관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네 말처럼 마론교의 성서가 나를 지목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행보를 들먹이며 인류의 영웅으로 추대했고, 만약 정체를 밝혀 사실을 입증했다면 대한제국은 마론교를 등에 업고 빠르게 세상을 통치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만들어진 판에서 군림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마론교는 전생의 행보를 말하며 내 이미지를 멋대로 해석했고, 내가 아무런 대가 없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진실을 밝혀 마론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이 말한 이미지대로 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론 드미트리의 행보.

그것은 로만 드미트리로부터 비롯되었지만, 그렇다고 세바스찬의 말이 정말 옳은 것은 아니었다.

세상을 구원하는 일?

로만 드미트리의 의무가 아니다.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천명이 아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대재앙에 맞서 싸우겠지만, 그렇다고 마론교를 따라 왔던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마론교의 존재를 오히려 족쇄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갖춘 힘이라면 반드시 군림을 이루어 낼 수 있건만, 괜히 마론교를 등에 업고 그들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으로 살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배제했다.

마론교를 외면했다.

성서를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만 드미트리가 생각하는 미래에 그들의 자리는 없었다.

“나는 새로운 로만 드미트리로서 평가받기를 바랐다. 너희에게 과거의 업적으로 인정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진심을 얻어 내고자 했다. 만들어진 이미지에 굴복하는 사람들은 나를 진심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지금에야 내 정체를 밝히는 이유이며, 곧 있을 국제회의는 편견 없이 나를 판단할 마지막 자리가 되겠지.”

그리고 두 번째 이유.

“마론교를 방관한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어찌 되었든 간에 나와 목적이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난 20년간 마론 드미트리를 소환하기 위해 노력했고, 최근에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 냈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서 지켜보았다. 그들이 드미트리의 세상을 이곳에 불러들이기를 바라기에. 나는 마론교로 인한 변수를 완벽히 차단할 자신이 있기에, 그들의 존재를 방관했다.”

존재감이 부풀었다.

수뇌부들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사실 그들도 알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스스로를 드미트리 제국의 황제라고 밝힌 순간, 머릿속에 찝찝하게 남아 있던 의문이 모두 해소되었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어떻게 압도적인 무력을 갖추었는지를.

마치 황제의 자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모습은, 마론교의 성서가 말했던 것처럼 패왕(霸王)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실을 받아들였다.

현실을 인정했다.

전설의 존재를 눈앞에 두고 사그라드는 의문에,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확고하게 말했다.

“나는 새로운 삶에서 온전히 나의 능력으로 또 다른 황제로서 인정받았다. 이제는 진실을 밝힐 때가 되었다. 세바스찬에게 전하라. 나를 공개적으로 처형대에 올릴 그 자리에, 나 로만 드미트리가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더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수뇌부들은 역사적인 삶을 살아온, 그리고 지금은 자신들이 따르는 황제에게 충성심을 표출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날의 대화.

그것은 외부로 새 나가지 않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릴 대한제국만의 비밀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마침내 국제회의 당일이 되었다.

* * *

이번 회의.

유럽 연합만 참석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과 같은 전 세계의 수장들이 모두 참석했고, 중요한 자리이니만큼 다들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예고한 1년.

오늘부로 끝이었다.

아이슬란드를 시작으로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기에, 오늘 회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다들 알았다.

그래서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잡담도 나누지 않았다.

가벼운 대화조차도 편을 먹은 것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기에, 수장들은 침묵을 지키며 상황을 관망했다.

그때였다.

침묵을 깨고 파트리스가 입을 열었다.

“존 해리슨 대통령님. 공개적으로 대한제국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고 들었는데, 대체 왜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하신 것입니까? 며칠만 기다리면 제가 독재를 반대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요.”

시선이 집중되었다.

파트리스가 의도적으로 내뱉은 말에, 사람들은 존 해리슨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결단을 내린 겁니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는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완벽하게 설명되고 나서 대한제국을 지지하는 것과 그 전에 신뢰를 보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런 ‘차이’를 바랐을 뿐입니다. 6번째 대재앙에서 대한제국이 보여 준 모습은 인류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고, 그렇다면 대한제국과의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 미국을 위해 옳은 일이겠지요. 물론 이번 선택으로 더는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지는 못하겠지만,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습니까?”

파트리스가 웃었다.

바로 어제.

미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가 결단을 내렸다.

대한제국을 따르겠다는 입장이었고, 파트리스는 ‘진실’을 확인하지 않고 섣불리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란 말인가.

곧 마론 드미트리의 존재를 증명할 텐데, 멍청한 지도자들은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고 눈앞의 상황만 보았다.

뭐.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이번 국제회의가 끝나면, 세상은 완전히 변해 있을 것이다.

차례로 사람들이 입장했다.

로만 드미트리도 모습을 드러냈고, 이윽고 회의실에 모든 사람이 자리했다.

판은 깔렸다.

이제는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차례.

털컥.

“반갑습니다. 마론교의 교주 세바스찬이라고 합니다.”

세바스찬.

그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회의실의 구조는 독특했다.

각국의 수장들이 앉을 자리가 한편에 마련되었고, 또 다른 공간에는 마법 실험을 진행할 공간이 준비되었다.

이 모든 것은 세바스찬의 의도대로였다.

사전에 차원 이동 마법을 진행한다고 예고했기에,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광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걸음을 옮겼다.

이미 준비를 끝낸 마법진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한 사내와 시선을 마주쳤다.

‘로만 드미트리.’

드디어 실제로 만났다.

인류의 해악.

사람들을 선동하는 그 존재를 반드시 처리해야만 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이번 회의에 참석한 순간부터, 그가 무엇을 계획했든 뜻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웃음을 삼켰다.

시선을 옮기며 각국의 수장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20년. 마론교는 성서가 말하는 ‘마론 드미트리’ 님을 소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동안은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차원 이동은 인류가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사람들은 그런 마론교의 행보를 지켜보며 거짓이라 비난했습니다. 사실은 전승자들의 기억을 짜깁기한 사이비가 아니냐며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이해합니다. 신의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품는 것 또한 저의 역할이며,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인류를 위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얼마 전 마론교는 마론 드미트리 님의 존재를 증명할 확실한 성과를 얻었습니다.”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실험을 진행하는 마법사들이, 한 사람을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차원과 차원 사이. 그 영역에는 특정 사이클이 존재합니다. 일 년에 딱 두 번, 서로의 차원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그때를 노린다면 차원 너머의 ‘의식’을 이곳으로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아직은 차원 이동을 통한 생명체의 소환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기술적으로 조금 더 발전이 필요한 부분이나, 의식의 소환만으로도 우리는 마론 드미트리 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의식의 소환이라니. 그럴듯한 연기로 속일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까?”

한 사내의 질문.

세바스찬이 웃음을 보였다.

“예리한 질문입니다. 만약 단순하게 차원 너머의 세상을 떠드는 정도라면, 이번 실험은 여러분들에게 확신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의식의 소환은 다른 문제입니다. 차원 너머의 의식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순간, 매개체로 선정된 사람은 잠시나마 그 사람의 형상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동화 현상이며, 성서의 주인인 그와 직접 나누는 대화를 통해 우리는 진실을 증명받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 마법적인 속임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전에 말씀드린 대로, 속임수를 판별할 마법사들을 대동하라고 말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지난 1년.

마법 실험은 유의미한 실마리를 얻었다.

일 년에 딱 두 번 진행되는 링크를 통해, 성서를 작성하던 시기의 ‘헨리 앨버트’의 의식을 이곳으로 불러들일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은 있었다.

하지만 마법 실험의 시도는 제한적이었기에, 마지막 실험은 진행하지 못한 채로 공개적인 자리를 통해 진실을 공개하고자 했다.

이미 수많은 임상 시험을 끝냈다.

헨리 앨버트의 의식은 단순히 마론 드미트리의 존재만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메모리 스톤을 통해 보여 주었던 것처럼 서로의 차원을 연결하는 근거를 제시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마론교의 대업은 순식간에 급물살을 탈 것이다.

마론 드미트리를 모방하는 로만 드미트리는 배척받을 것이며, 다음 링크의 시기가 도래했을 때는 드미트리와의 차원을 연결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한 발 물러났다.

세비스찬이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보여 드리겠습니다. 마론교가 20년간 준비해 왔던 노력의 결과물을!”

마법사들이 각자의 위치를 찾았다.

그러고는.

화악.

쿠르르르르르릉.

마력을 일으켰다.

거대한 마법진에 수백 개의 마나석이 박혀 있었고, 그것들이 환한 불빛을 일으키며 정중앙에 존재하는 ‘성서의 종잇조각’을 집어삼켰다.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인류 역사에 남을 순간이었다.

차원 이동을 주도하는 안드레스가 밝은 안광을 뿜어내더니, 마치 폭풍이라도 들이닥친 것처럼 그의 로브가 세찬 바람에 거세게 팔락이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윽.”

얼굴이 일그러졌다.

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붉게 도드라지는 혈관들은 당장에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참았다.

거대한 압력을 버텨 내며, 안드레스가 마침내 스킬을 발현했다.

“강제 소환!”

팟.

콰르르르르르르릉.

세상이 번쩍였다.

공간이 뒤틀리며, 매개체라고 불린 남성이 고개를 치켜들며 눈을 부릅떴다.

“아아-!”

헨리 앨버트.

그와 최대한 비슷한 조건을 지닌 남성.

매개체는 그렇게 선정되었다.

남성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몸이 착시를 일으키듯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윽고.

번뜩.

동화가 진행되었다.

갈색 머리의 남성이, 헨리 앨버트가 표현했던 모습으로 변했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안드레스는 강제 소환으로 헨리 앨버트의 의식을 불러들였을 뿐, 실제로 매개체의 모습이 변화한 것에는 아무런 마법적인 요소가 없었다.

이것은 차원 너머의 영혼이 깃든 것이 분명했다.

정말 마론 드미트리의 세계가 증명되는 순간에, 사람들은 어떠한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여기는…….”

사내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시야가 흐릿했다.

의식은 제한적이었고, 이 세상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없었다.

세바스찬이 황급히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헨리. 헨리 앨버트입니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헨리 앨버트.

성서의 저자.

정말 그의 의식이 깃들었다.

세바스찬은 기쁜 얼굴로 다시 한번 물었다.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드미트리 제국을 건국한 초대 황제의 이름이…….”

“헉?!”

그때였다.

헨리 앨버트가 눈을 부릅떴다.

흐릿했던 시야가 되돌아오며, 그의 시야에 세상을 군림하는 한 존재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헨리 앨버트가 갑자기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아, 황제 폐하. 신 헨리 앨버트가,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

순간.

세바스찬을 비롯한 사람들의 표정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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