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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70화 (570/615)

570화 단 1년간의 변화 (3)

며칠 뒤.

유럽 연합의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이슬란드의 연합 탈퇴 때문이었고, 먼저 도착한 수장들이 작은 목소리로 세간의 소문을 속닥였다.

“세간의 소문이 정말 사실일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연합의 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나라의 근간이 되는 무공과 상위 마법을 알려 주다니요. 그게 사실이라면 대한제국은 미친 것이 분명합니다. 듣기로는 아이슬란드의 일반 병사들도 대한제국의 철제 무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무상으로 지원했다고 합니다.”

“……참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인구 30만의 작은 나라입니다. 나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고, 강대국들의 웬만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습니다. 그런데 겨우 아이슬란드를 품으려고 그만한 지원을 하다니. 이건 노골적으로 보여 주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최근.

아이슬란드에서 벌어진 일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유럽 연합에서 최초로 이탈한 나라가 나타난 것도 문제인데, 대한제국이 아이슬란드를 대우한 방식에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겨우 30만의 연합국을 얻겠다고 철제 무구, 무공, 마법 서적을 무상으로 지급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아이슬란드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의 총리가 말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대한제국의 의도를 의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그만한 지원은 힘들다는 것을 다들 알지 않습니까. 제가 이번 사건에 대해 보고받으면서 놀랐던 부분은 백일의 장윤태입니다. 여러분 중에 장윤태가 어떤 인물인지 원래 알고 있던 분이 계십니까?”

“없습니다.”

“이번에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저도 놀랐습니다. 사람들이 대한제국을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전력이 대부분 ‘로만 드미트리 황제’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슬란드에서 벌어진 사건을 무명의 인물이 해결했습니다. 장윤태는 압도적인 마법을 보여 주었고, 그를 보좌하는 일반 병사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게 대한제국의 평균이라면 대한제국의 전력은 상상 이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번 사건의 임팩트는 대단했다.

대한제국의 저력을 확인하는 순간, 아이슬란드의 대통령처럼 마음에 균열이 일었다.

“솔직히 이제는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유럽 연합은 로만 드미트리 황제의 폭정을 걱정해 집단으로 움직였는데, 지난 1년간 그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며 안정을 추구했고, 최초의 연합국인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로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를 대우하는 태도를 보았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섣부르게 판단했는지도 모릅니다.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지른 적들을 잔인하게 처리했다고 해서, 로만 드미트리 황제가 폭군이라는 판단을 말입니다.”

“맞습니다.”

“대한제국을 무조건 배척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위기가 변했다.

단 한 번의 사건이었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벌어진 일은 편견을 한 꺼풀 벗겨 내기에는 충분했다.

만약 조금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사람들은 새로운 결론을 내렸을지도 몰랐다.

내적 흔들림이 점점 커지던 그때, 수장들의 말을 툭 끊으며 한 사내가 나타났다.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바로.

프랑스의 대통령 파트리스였다.

* * *

파트리스가 자리에 앉았다.

그가 마지막이었고, 파트리스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여러분들은 이번 안건의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 대한제국에 관한 유럽 연합의 결단을 말하지만,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대한제국이 정말 유럽의 안전을 보장한다면 그를 따르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방식이 잘못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가 손을 내밀었다고 한들, 대한제국은 그걸 받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유럽 연합은 그동안 유럽의 안전을 위해서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서로를 도와주는,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한 상생의 체계를 말입니다. 그래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유럽 연합은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 전체의 의견을 모아 결단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아이슬란드 또한 연합의 한 나라로서 동의한 부분이지만, 그들은 자국의 상황이 나빠졌다고 해서 기존의 관계를 무시하고 대한제국에 달라붙었습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일이지만, 대한제국은 마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아이슬란드를 받아 주었습니다.”

점점.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미 회의는 시작되었고, 언제나 유럽 연합을 주도하는 사람은 파트리스였다.

“유럽 연합의 체계가 붕괴되었습니다. 상황을 현명하게 판단하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슬란드 단 하나의 이탈로 인해 유럽 연합 전체가 우습게 되었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결단의 순간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건만, 로만 드미트리는 유럽 연합의 체계를 우습게 보았습니다. 아이슬란드를 받아 주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안일한 판단이, 단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증명합니다.”

워딩은 언제나 독재와 관련된 단어였다.

암영이 물밑으로 작업한 선동이었으며, 수장들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선동이 먹혀들었음을 의미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상식적인 체계를 갖춘다고 한들, 로만 드미트리가 권력을 독식한다면 그의 판단에 모든 것이 결정될 것입니다. 아이슬란드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우리는 문제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며, 최악의 상황에는 폭정에 인류가 위험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로만 드미트리를 따를 수 없습니다. 어떤 대단한 문제를 일으켜서가 아니라, 이번 사건과 같은 일들이 독재의 현실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로만 드미트리가 바라는 미래는 대한제국을 중심으로 한 독재 정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인류를 위해 많은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건 단순한 독재라고 보기에는 힘듭니다.”

스페인의 총리였다.

선동은 유의미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흔들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재앙에서의 활약.

기술 혁명.

로만 드미트리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근거가 충분했다.

그렇기에 유럽 연합은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1년이 지난 지금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고 말았다.

의도했던 그림이었다.

파트리스가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예, 동의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히 초대한 분이 있습니다.”

끼익.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문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환영해 주십시오. 마론교의 세바스찬 교주님을!”

털컥.

활짝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서는 한 사내의 모습에, 유럽 연합 수장들이 눈을 부릅떴다.

* * *

수장들이 당황했다.

마론교의 교주라니.

대재앙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미스터리한 인물인데, 그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시선이 단번에 집중되었다. 세바스찬은 여유로운 얼굴로 걸음을 옮기더니, 파트리스가 한 발 물러난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파트리스와 마론교의 관계.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어차피 공공연한 사실이었기에, 파트리스는 자신의 자리를 내어 준 것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세바스찬이 말했다.

“마론교의 교주 세바스찬이라고 합니다.”

“…….”

돌아오는 환영은 없었다.

삭막하게 얼어붙은 분위기에, 세바스찬은 웃음을 보였다.

“제가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 다들 당황스러우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나서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정말 위험한 인물입니다. 마론교의 성서는 ‘마론 드미트리’ 님의 존재를 말하는데, 로만 드미트리는 마치 선을 모방하는 악마처럼 마론 드미트리 님의 모든 것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MARON, ROMAN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행동까지도. 하지만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드미트리의 악귀를 망설임 없이 죽인 순간,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세상에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

마론교의 신도는 파트리스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침묵하며 힘을 싣자, 신도가 아닌 사람들은 섣부르게 반박할 수 없었다.

“성서는 말합니다. 마론 드미트리 님이 강림하는 날, 그분의 권위를 넘보는 자들이 존재한다면 엄청난 혼란이 찾아올 것이라고. 로만 드미트리는 비정상적으로 과감합니다. 마론 드미트리 님의 강림을 코앞에 두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이 세상을 독식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만약 유럽 연합이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다면, 훗날 인류는 후회할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성서는 성서에 불과합니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는 인류를 위한 행보를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누군가의 반문.

세바스찬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성서는 결국에 증명되지 않은 글에 불과하다.

20년간 수많은 증명을 해 왔는데도, 마론 드미트리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항상 따라붙는 말이었다.

심기가 뒤틀렸다.

하지만 분노하지는 않았다.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 낸 지금, 세바스찬은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불신하는 점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마론교는 지난 20년간 ‘마론 드미트리’ 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얼마 전에 드디어 성과를 이루어 냈습니다. 며칠 뒤. 유럽 연합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참석한 자리에서, 마론 드미트리 님의 존재를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인류의 희망임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차원 이동.

완벽한 결과물은 아니었다.

소환까지는 몇 단계가 더 필요한 상황이지만, 진실을 확인할 만큼의 기술력은 갖추었다.

그 결과물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보일 것이다.

세바스찬은 들끓는 열망을 과감히 드러냈다.

“인류의 희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 인류가 로만 드미트리를 따를 이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마론 드미트리 님의 행보를 모방한 그 존재의 ‘목적 자체’를 의심해야만 할 것입니다.”

사납게 웃었다.

대업이 코앞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세바스찬의 욕망이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 * *

그날.

로만 드미트리는 초대장을 받았다.

발신자는 세바스찬이었고, 내용을 확인한 김준혁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의도가 노골적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마론 드미트리’가 정말 실존하는 인물일지라도, 괜히 참석해서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이유는 없습니다.”

지난 1년.

김준혁은 마론교의 행보를 주시했다.

드미트리의 악귀 사건으로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확인해 보고자 했는데, 마론교를 중심으로 대한제국을 의도적으로 선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의 근거는 빈약했다. 단순히 로만 드미트리를 매도하는 말이었지만, 신앙심이라는 것은 근거 없는 매도에 힘을 실었다.

드미트리.

그 세상은 실존했다.

드미트리의 악귀가 나타나면서 마론교의 성서도 진실인 것에 무게가 실렸지만, 김준혁으로서는 로만 드미트리를 배척하는 마론교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면 마론교의 말을 한번 믿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대한제국의 황제를 매도하기에 마론교를 적으로 분류하고 그들의 계획을 경계했다.

솔직히 답답한 마음이 있었다.

마론교를 처단하자고도 주장했었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그답지 않게 미지의 위험을 관망했다.

김준혁으로서는 진실을 알지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 또한.

마론교에 관해 충분히 알아보았다.

그들이 무엇을 의도하며, 성서의 정체가 무엇인지 등 마론교를 샅샅이 분석했지만, 오히려 마론교의 실체를 알았기에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로만 드미트리답지 않은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의 행보에 걸맞은 과감한 결단이었다.

그리고 지금.

때가 왔다.

불안한 눈빛을 보이는 김준혁의 모습에, 로만 드미트리는 초대장에서 시선을 떼며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수뇌부들을 소집하라.”

“……알겠습니다.”

30분 뒤.

대한제국의 수뇌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 또한 김준혁과 마찬가지로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더는 마론교가 황제 폐하를 매도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그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절대 참석해서는 안 됩니다. 마론교가 굳이 대한제국을 초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어떻게든 황제 폐하의 존재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선동에 익숙한 마론교는 마녀를 사냥하는 처형대에 황제 폐하를 올릴 것입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마론교를 척결하겠습니다.”

모두 신뢰를 보였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론교라 뭐라고 떠들든, 본인들이 직접 경험한 로만 드미트리가 대한제국의 희망임을 믿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연.

로만 드미트리가 수뇌부들을 둘러보았다.

김준혁, 이태성, 강민호…… 그리고 김판석.

그중 김판석 한 명을 제외하고는, 지금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밝히는 순간 충격을 받을 것이다.

판은 깔렸다.

이번 국제회의.

그것은 마론교만 의도하는 바가 아니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나는 마론교가 만들어 낸 판에 기꺼이 참여할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그들이 무엇을 준비했든 간에 나와 대한제국을 위협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확신이 아니다. 그동안 너희에게 밝히지 않은 진실이 있다. 나는…….”

곧.

세상이 뒤집힐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엄청난 충격이, 이곳 회의실을 뒤덮었다.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차원 너머의 세상에서 이곳으로 넘어왔으며, 그곳에서는 나를 드미트리 제국을 건국한 로만 드미트리 황제라고 불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