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화 기술 혁명 (6)
처음에는 당황.
이어서 분노가 치밀었다.
파트리스는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베르나르도에게 고개를 들이밀며 사납게 말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대한제국의 흠집을 들쑤셔도 모자랄 판에, 왜 다른 사람들처럼 환호한단 말입니까.”
베르나르도의 역할.
전문적인 지식을 발휘해 발표회를 망치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발표에 이렇게 환호성을 보낼 줄 알았다면, 절대 그를 대동하고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베르나르도도 파트리스가 분노한 포인트를 알았다.
하지만 수긍하진 않았다.
“파트리스 대통령님. 왜 그리 분노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만, 마론교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주님은 제게 발표의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그것을 지적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제국의 장인이 보여 준 발표는 그야말로 혁명이었습니다. 그동안 인류는 ‘스킬’에 의존해서 마나를 다루었는데, 방금 발표한 내용대로라면 단순히 마나 무기 제작을 떠나서 모든 영역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엄청난 기술을 선보인 겁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무슨 의미든 간에, 베르나르도 님께서도 그렇게 반응한다면 대한제국에 날개를 달아 주는 꼴입니다!”
“그게 뭐가 잘못되었다는 겁니까?”
베르나르도가 사납게 반발했다.
최대한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몇몇은 이상함을 느끼고 힐끗 눈치를 살폈다.
선구자 베르나르도.
대재앙 초창기부터 새로운 시대를 연구해 온 그는, 정말 인류의 구원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했다.
그가 마론교를 따르는 이유는 그들의 목적이 충분히 신빙성이 있기 때문이다.
성서가 말하는 내용, 드미트리의 전승자들. 막막하고 답이 없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항상 공통으로 거론되는 ‘마론 드미트리’를 소환해야만 했다.
그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다.
인류를 위해 최선이라 생각하는 믿음.
특정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해 마론 드미트리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그런 그에게.
대한제국의 발표는 단순하지 않았다.
“저 발표는 인류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제국이 만약 진실을 숨기고 본인들의 이득만을 위해서 숨겨 두었다면, 저는 어떻게든 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개하지 않았습니까. 마론 드미트리 님과 대한제국의 문제를 차치하고, 일단 대한제국이 새로운 기술을 발표했다는 사실 자체는 인류에게 해가 되지 않는 진실입니다. 대한제국의 발표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순간, 인류는 같잖은 분쟁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집단.
같은 소속이라고 해서 추구하는 바가 완벽히 동일하지는 않았다.
세바스찬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은, 베르나르도가 진심으로 인정할 만큼 대한제국의 기술력에 결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마론교는 어찌 되었든 인류를 위해 창설된 집단이다.
파트리스와 같이 목적을 위해서 악행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베르나르도와 같은 사람도 존재했다.
고로.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이번 발표회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베르나르도가 고개를 돌렸다.
파트리스의 표정이 일그러지든 말든, 인류를 발전시킨 위대한 업적에 진심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망했다.
파트리스는 말문이 막혔다.
베르나르도마저 인정한 상황은, 대한제국에 날개를 달아 준 꼴이었다.
하지만 아직 발표회는 끝나지 않았다.
박수로 물든 무대에서 박광덕이 내려오자, 이번에는 인천시장 김준혁이 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 * *
김준혁이 말했다.
“스킬의 근간이 되는 마나. 그것을 이해하는 분들이라면, 이번 발표회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대한제국이 공개적으로 기술 발표회를 진행한 이유는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를 부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마나 무기 시장은 격변할 것입니다. 단순히 각성에 의한 스킬이 아니라, 마나 자체를 다루는 방법으로 인류는 빠르게 강해질 것입니다.”
이번 발표회.
대한제국의 수뇌부들은 반대했었다.
기술을 왜 공개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로만 드미트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공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대재앙이 들이닥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한제국의 미래만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 인류 전체가 강해질 기반을 마련하고, 동시에 우리가 그 근간을 부여했다는 명예를 얻는다면 사람들은 훗날 대한제국이 세상을 통치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것을 전시한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위치를 따라올 수는 없다. 우리는 절대 추월하지 못할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이 ‘마나’에 대해 연구할수록 오히려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겠지.”
그때.
김준혁은 소름이 돋았다.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에, 로만 드미트리가 태생부터 군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제국은 감히 경쟁할 수 없는 수준에 올랐다는 진실. 아는 만큼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 우리의 손아귀에 마나 무기 시장, 그 이상의 것을 선사할 것이다.”
판을 깔았다.
안다고 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현대 사회는 아직 마나의 영역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두 번의 삶을 거치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체계를 갖추었다.
마나를 이해한 세상에서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경지. 후발 주자들이 아무리 발악한다고 한들, 겨우 수년의 세월로 그 간격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년은커녕.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려도 장담할 수 없는 일.
로만 드미트리의 자신감이었다.
그의 뜻을 받들어, 김준혁이 자신을 우러러보는 관중들에게 말했다.
“특별히 이번 자리를 위해서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께서 직접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 검을 제작했고, 앞으로 마나 무기 시장이 어떻게 변모할지를 검의 성능을 통해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신호를 보냈다.
완전히 압도된 관중들은, 또 다른 사내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지금부터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온전히 즐기시길 바랍니다.”
* * *
무대 위에 오른 사내.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E등급 헌터에 불과한 그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고 수많은 사람 앞에 섰다.
김준혁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분은 E등급 헌터인 이정민 씨입니다. 기술 발표회 기준으로 3일 전에 등급 심사를 진행했으며, 현재 E등급의 수준임을 확실히 증명받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C등급 몬스터 중에 아르마딜로(armadillo)라는 몬스터가 있습니다. 과연 E등급 헌터인 이정민 씨의 힘으로, 아르마딜로의 외피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웅성웅성.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르마딜로는 방어에 특화되었기에, 동급의 헌터들조차도 외피를 베어 내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스태프들이 무언가를 옮겼다.
아르마딜로의 외피로 만든 방패였다.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아르마딜로의 방패’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아르마딜로의 방어력은 매우 뛰어납니다. C등급의 스킬로도 상처를 입히는 게 쉽지 않기에, B등급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야 수월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만약 아르마딜로가 방어력에 걸맞은 공격력을 갖추었다면 C등급이 아니라 그 이상의 등급이 책정되었겠지요. 지금부터 이정민 씨는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가 제작한 검인 ‘레볼루션(revolution)’으로 아르마딜로의 방패를 베어 낼 것입니다. 만약 S등급의 스킬 발현도를 지닌 검이라면, 아르마딜로의 방패를 베어 낼 수는 있으나 아르마딜로 특유의 반발력에 검이 부러질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로 소드 브레이커라는 별명이 불을 정도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지요.”
김준혁의 의도.
매우 노골적이었다.
E등급의 힘으로 아르마딜로의 방패를 베어 내면서 반발력을 감당하려면, S등급의 스킬 발현도와 강철 무기로서의 완성도 또한 갖추어야만 한다.
박광덕이 마나를 불어 넣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면.
로만 드미트리가 일주일간 작업한 검은, 대한제국의 기술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증명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정민은 김준혁의 신호에 따라 아르마딜로의 방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검을 들었다.
조명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검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분출했다.
“스트라이크(strike).”
화악.
스킬을 발현했다.
붉은 마력이 폭발하더니, 그대로 아르마딜로의 방패를 베어 버렸다.
번뜩.
콰드드득.
방패가 그대로 찢겨 나갔다.
겨우 E등급에 불과한 스킬을 사용했건만, 견고하다고 소문이 난 아르마딜로의 방패가 그대로 찢겨 나가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다급하게 검의 상태를 확인했다.
기존의 검이었다면 반발력에 부러지거나 날이 나갔을 확률이 매우 높은데, 조명에 드러난 검은 처음처럼 건재한 상태를 보였다.
“와.”
“어떻게 이런 일이.”
사람들이 감탄했다.
겨우 한 자루의 검이 사람들을 압도했다.
새로운 미래를 증명하는 이 순간에, 김준혁이 단번에 관중들을 휘어잡았다.
“앞으로 마나 무기 시장에서 등급의 체계는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레볼루션과 같이 마나 무기로서의 성능과 철제 무기로서의 성능을 모두 갖추어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S등급에 걸맞은 무기임을 인정할 것입니다. 여러분. 새로운 시대를 축복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레볼루션의 새로운 주인을 선정하겠습니다. 가장 높은 금액을 말씀하신 분에게 레볼루션을 소유하는 영광을 드리겠습니다!”
완벽했다.
박광덕에 이어 이정민.
스토리가 완벽하게 구성되는 순간, 사람들은 김준혁의 발언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 **
레볼루션.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무기다.
S등급의 성능과 상징성을 생각하자, 시작부터 미국의 대통령 존 해리슨이 소리쳤다.
“3천억!”
“헉.”
“시작부터 3천억이라고?”
발표회장이 발칵 뒤집혔다.
아무리 국가 단위의 대표들이 모인 자리라지만, 3천억이라는 거금을 거침없이 내놓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의 예산은 국민으로부터 비롯되는 세금이다.
그것을 마음대로 사용했다가는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존 해리슨은 짧은 시간에 판단을 내렸다.
‘이미 기존의 S등급 무기들도 수천억에 팔린 선례가 있다. 게다가 레볼루션은 최초의 S등급이라는 상징성을 제외하더라도, 레볼루션을 통해 새로운 기술력을 연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3천억이라는 금액은 오히려 레볼루션의 가치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의 생각.
모두가 똑같았다.
3천억에 당황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예상했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4천억!”
“5천억!”
“6천억!”
브라질, 프랑스, 이탈리아가 참전했다.
기존에 S등급 무기들도 천억씩 호가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이번 경매가 수백억의 차이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술 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단순한 대부호가 아니다.
한 국가를 경영하는, 마음만 먹는다면 조 단위의 돈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존 해리슨은 사람들을 압도하기 위해 강하게 나갔다.
“1조.”
“와.”
“1조라니.”
사람들이 경악했다.
1조부터는 얘기가 달랐다.
아무리 좋은 무기라 할지라도 1조에 거래된 경우는 없으며, 제일 비싸게 팔렸던 무기가 5천억 수준이었다.
그런데 1조라니. 사람들은 단번에 존 해리슨의 메시지를 이해했다.
1조라는 금액은 단순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금액을 불러도 무조건 그 이상을 말하겠다는 강렬한 의지였다.
단번에 주변을 압도했다.
다들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초강대국인 미국을 돈으로 이길 자신이 없으며, 무엇보다 이번 일로 미국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때였다.
“2조.”
툭 내뱉은 말.
존 해리슨이 눈을 부릅뜨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따라붙지 않았는데도, 한 사내가 존 해리슨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 내며 한 번 더 말했다.
“3조.”
그는 바로.
왕위룡이었다.
천마의 검을 향한 강렬한 열망에, 왕위룡이 광기(狂氣)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