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화 기술 혁명 (5)
지금으로부터 몇 주 전.
프랑스도 초대장을 받았다.
대한제국에서 마나 무기 제작에 관련해서 기술 발표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알려 왔으며,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일정에서 2부의 주제는 따로 공지해 주지 않았다.
이미 ‘박철민의 사건’으로 전 세계 국가들은 대한제국의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당연히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프랑스의 대통령인 파트리스는 대한제국의 이러한 행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번 발표는 단순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만약 대한제국이 기술 혁명을 일으킬 만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들이 마나 무기 제작 시장을 집어삼키는 것은 시간문제다.’
마나 무기.
인류의 희망이다.
몬스터들을 통해 공급되는 무기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마나 무기 제작 시장은 그야말로 금광이라고 표현할 만큼 매년 엄청난 액수가 거래되었다.
그것을 한 국가가 독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한순간에 세계 경제를 휘어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단순히 과거에 석유 국가들이 엄청난 부를 확보했던 선례를 넘어서, 마나 무기는 사람들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었다.
배제할 수 없는 영역.
공급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우위인 시장에서, 대한제국의 도약은 경험하지 않아도 뻔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무력으로 처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러시아의 선례를 통해 이미 입증되었기에, 결국에는 드미트리의 강림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겠지. 마론교의 역할은 차원 이동을 이루어 내기 전까지 대한제국의 발목을 최대한 붙잡아 두는 것. 이번 기술 발표회를 통해서 대한제국에 날개를 달아 주는 일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그 중심에 대한제국이 존재하기에, 파트리스는 곧바로 세바스찬에게 연락해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마론교의 기술력을 빌려주십시오. 마론교는 대재앙이 발발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주도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마론교의 종교적인 사상을 떠나서, 그동안 연구하고 발표했던 결과물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할 정도로 마론교는 압도적인 기술력을 갖추었습니다. 지금은 그 힘이 필요합니다. 대한제국이 발표하는 자리에서, 그들의 기술력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면 대한제국은 날아오르던 힘을 잃고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마론교.
그들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다.
대재앙을 연구하고 발표하던 행보들이 증명하듯, 그들은 기술적인 면에서도 인류를 선도했다.
파트리스의 계획은 타당했다.
세바스찬 또한, 그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알겠다. 마론교의 연구를 총괄하는 선구자(先驅者) 베르나르도를 보내 주겠다. 그의 지식이라면 대한제국이 발표하는 기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이상의 것을 제시해 상황을 주도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파트리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선구자 베르나르도.
현재 세상에 통용되는 수많은 이론을 증명한 세계적인 연구자였다.
충분했다.
얼굴에 가득 떠오른 웃음이 증명하듯, 기술 발표회는 대한제국의 의도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 * *
기술 발표회 당일이 되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이동한 파트리스는, 미리 대기하고 있는 대한제국 병사들의 안내를 받았다.
“발표회장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파트리스와 수행원.
그들이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인천의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분명히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절망이 가득한 도시였는데, 단시간에 도시를 재정비하고 활력을 되찾았다.
인천 시장 김준혁의 능력이었다.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던 시절에도 인천을 발전시키던 그가, 로만 드미트리라는 든든한 배경을 얻은 이후부터는 본인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매우 거슬렸다.
대한제국이 안정되고 있는 상황은, 마론교에게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괜한 우려일 수도 있습니다만, 지나오는 길에 마주친 병사들 모두 상당한 강군으로 보입니다. 일반 병사들도 체계가 잘 잡혀 있고, 특히 직할대로 추정되는 인물들은 C등급 이하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최소 B등급, 어쩌면 그 이상의 실력자일지도 모릅니다.”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파트리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수행원이 조용하게 속삭인 말에, 그는 앞서 나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수행원의 말대로였다.
일반 병사들은 대부분 헌터로서 각성하지 못한 이들인데,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그 사실과는 별개로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세를 보였다.
문득 한 소문이 떠올랐다.
대한제국의 수호대를 담당하는 강민호는 E등급 헌터에 불과했는데, C등급으로 2단 승급을 하더니 얼마 전에는 대재앙에서의 전과를 인정받아 A등급으로 분류되었다.
확실히 이상했다. 강민호와 같은 존재가 프랑스를 위협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케이스가 탄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대한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세계적으로 약소국으로 분류되었던 나라가, 로만 드미트리 등장 이후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확실하다. 로만 드미트리를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훗날 대한제국은 마론교의 대업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들을 최대한 견제하며 차원 이동을 서두르는 것만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방법이다.’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대한제국을 직접 방문해 보니 의지가 확고해졌다.
이들은 위험했다.
한때 대륙 정벌을 말하던 왕위룡보다, 짧은 시간에 세계를 본인의 중심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로만 드미트리를 먼저 처단해야만 했다.
언젠가 이 세상에 강림할 그분을 위해서. 인류가 골육상쟁(骨肉相爭)을 벌이지 않기 위해서는, 그분의 뜻을 받든 마론교가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기술 발표회는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을 뒤따라 걸어오는 사내.
로브를 눌러쓰고 신원을 숨긴 베르나르도가 존재하는 한, 이번 발표회는 파국으로 끝날 것이다.
* * *
각국의 주요 인사들.
그들이 발표회장에 자리했다.
미국의 존 해리슨, 프랑스의 파트리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거물들이 모두 참석했고, 그들은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곧 있을 발표회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그동안 파격을 행한 인물. 아무것도 아닌 기술을 발표하자고, 이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침내 시간이 되었다.
무대를 가리던 커튼이 양쪽으로 열렸다.
스르르륵.
“오호.”
“무대 위에 대장간을 구현해 내다니.”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건가.”
사람들의 반응처럼.
무대에는 대장간이 존재했다.
화덕과 기타 도구들이 세팅되어 있는, 동시에 관객들이 위험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 장비들이 마련되었다.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보통 기술 발표회는 기술을 누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런데 대장간을 구현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술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설명과 동반해 보여 주겠다는 의미였다.
그때였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더니, 무대 위로 한 사내가 나타났다.
저벅저벅.
다부진 체구.
하얗게 바랜 머리.
마나 무기 시장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미라클의 마스터인 박광덕임을 모르지 않았다.
박광덕이 걸음을 멈추었다.
무대 중앙에 서더니,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지금부터 기술 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마나 무기 제작 시장에 해박한 사람이라면, 철제 무기와 마나 무기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점을 다들 아실 겁니다. 제작 스킬을 사용해 마나 무기를 제작하는 순간, 해당 무기는 철제 무기로서의 강점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그동안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작업의 공백은 철제 무기의 퀄리티를 떨어트리고, 아무리 좋은 무기라 할지라도 험난한 전투를 감당하지 못해 부러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3년 전에 S등급의 무기가 2천억에 낙찰되고 첫 전투에서 부러진 사건은, 현 마나 무기 시장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예시입니다.”
사람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뻔한 얘기.
모두가 아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얘기한다는 것은, 지금부터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미로 보였다.
동요하는 사람들.
박광덕은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했다.
자신이 그랬듯, 마나 무기에 해박한 사람들이라면 이번 발표회의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다들 예상한 눈빛이시군요. 맞습니다. 대한제국에서 마나 무기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번 발표회가 끝나고 나면, 더는 내구도가 보장되지 않는 무기들이 단순히 스킬 발현도가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등급을 책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보여 드리겠습니다. 대한제국의 새로운 기술을.”
툭.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화덕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주변 도구들을 정리하며 본격적으로 작업을 준비했다.
심장이 뛰었다.
전 세계가 자신을 지켜보는 상황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경악시켰던 새로운 기술을 선보인다는 생각에. 지난 한 달 박광덕은 정말 미쳐서 살았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루의 전부를 대장간에 쏟아부었고, 그렇게 노력한 끝에 로만 드미트리의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말했다.
무대를 내어 주겠다고.
앞으로 대한제국의 마나 무기 시장은, 자신을 필두로 한 대한제국의 장인들이 선도할 것이다.
‘보여 주자. 그간의 노력을.’
화륵.
화르르르르르륵.
화덕에 불이 붙었다.
뜨거운 열기가 무대를 물들이자, 박광덕은 빨갛게 달아오른 강철을 힘껏 두드리기 시작했다.
카앙!
카앙, 카앙!
그때부터는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반복되는 동작.
반복되는 작업.
하지만 사람들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단순히 구시대적인 작업을 보여 줄 것이라면, 전 세계 거물들을 초대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망치질에 따라 마력이 폭발을 일으켰다.
카앙!
화르르르르르륵.
화염이 넘실거렸다.
마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거세게 일어나더니, 박광덕이 망치질을 반복할 때마다 강철에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로만 드미트리가 선보였던 기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현해 냈다. 박광덕과 같은 장인들은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시대적인 한계 때문에 문제점을 드러냈던 것이지, 로만 드미트리가 길을 제시해 주자 순식간에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카앙!
카앙, 카앙!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박광덕의 눈빛이 열망으로 물들었다.
흥분되었다.
자신이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작업을 진행한다는 사실에, 박광덕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만함이 들었다.
그렇게.
파스스스스.
1시간의 작업을 끝냈다.
지루하다면 지루할 수도 있는 시간.
정적으로 물든 관객석에, 박광덕은 마나로 일렁이는 강철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짧은 작업 시간에 마나의 양은 미약했지만, 마나가 머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결과물이었다.
“바로 이것이 마나 무기 시장을 바꿀, 대한제국이 만들어 낸 새로운 미래입니다.”
* * *
발표 전.
파트리스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어차피 뻔하지 않겠습니까. 대한제국이 마나 무기 강국도 아니고, 갑자기 특별한 기술을 발표할 리가 없습니다.”
“그냥 이번 발표회는 일종의 쇼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대한제국의 평판이 완전히 자리잡히지 않았기에, 일말의 성과라도 최대한 부각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말이 기술 발표회지, 기존에 있었던 기술을 일부 보완한 수준일 것입니다.”
파트리스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동조했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은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동안 아무런 모습도 보여 주지 못했던 대한제국이 갑자기 마나 무기 시장을 선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 때문이었다. 현재 초월 등급으로 분류되는 존재의 초대장을 거절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발표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심드렁한 얼굴로 지켜보던 파트리스가, 마나의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부터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카앙!
화르르르르르륵.
‘……이, 이게 대체.’
넘실거리는 화염.
폭발하는 마나.
망치질에 따라 강철에 흡수되는 마나의 모습에, 파트리스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직접 마나 무기를 제작하는 장인이 아닐지라도 기본적인 개념은 알았다.
마나 무기를 만드는 과정에는 마나를 불어 넣는 공백이 필요한데, 박광덕은 그러한 과정을 생략했다.
스킬이 아닌.
겨우 망치질로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때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주변을 힐끗 살펴보자 무대에 매료된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큰일이다. 대한제국이 정말 혁명을 일으킬 만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어.’
이를 악물었다.
계획과는 달랐다.
이대로라면 대한제국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진행될 확률이 높았다.
믿을 건 베르나르도뿐.
마론교는 단언컨대 세계 제일의 기술력을 보유했기에, 베르나르도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대한제국의 성과를 깎아내릴 방법이 있다고 믿었다.
불안한 마음에 더는 마음 편히 지켜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망치질에 따라 감탄할 때마다, 파트리스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마침내.
작업이 끝났다.
박광덕이 강철을 들어서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바로 이것이 마나 무기 시장을 바꿀, 대한제국이 만들어 낸 새로운 미래입니다.”
약간의 정적.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
“미쳤어!”
“정말 대단해!”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미친 듯이 환호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박광덕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단번에 알아보는 안목을 갖추었다.
파트리스가 원하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는 황급히 베르나르도를 보았다.
그에게 문제점을 찾았는지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휘이이익! 브라보! 이건 혁명이야, 혁명!”
선구자 베르나르도.
파트리스가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그는, 본래의 목적을 잊은 채 사람들과 같이 환호성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