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화 기술 혁명 (2)
박철민으로서는 더는 진실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에게 직접 허락을 받았기에, 기대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미라클의 마스터에게 진실을 말했다.
“직할대에 보급된 서른한 자루의 검 모두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가 직접 만드셨습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는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미라클의 마스터께서 말하는 기술 혁명을 일으킬 만한 요소는 전적으로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로부터 비롯된다는 겁니다.”
“……그걸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진실을 말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믿기지 않으시더라도, 그것이 제가 아는 진실입니다.”
마스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이름은 박광덕.
대재앙이 발발하기 전에도 장인이라고 불리던 그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마법 무기를 제작하는 것에 인생을 바쳤다.
하얗게 바랜 머리와 날카로운 눈빛. 스스로 마법 무기의 영역에서 장인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박철민이 말하는 충격적인 진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것이 황제 폐하의 작품이라고?’
탁자 위의 물건을 내려보았다.
일반인들은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단언컨대 저 한 자루의 검은 마나 무기 시장을 발칵 뒤집을 만한 요소를 갖추었다.
그런 보물이 로만 드미트리의 작품이라니.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
대한제국의 황제.
검 한 자루로 대재앙을 해결하고 부패한 중앙 정부를 척결했으며, 세계가 인정하는 강대국인 러시아조차 단번에 쓸어버린 괴물.
현재 러시아는 정부가 해체된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그들은 대한제국에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으며, 패배를 인정하고 친 대한제국의 노선을 탔다.
수년 전에는 상상치도 못할 일들이 로만 드미트리 하나로 모두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행보였다.
개인의 무력만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존재가 로만 드미트리인데, 그가 제작 기술마저도 갖추었다는 사실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예전에 이태성도 이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었다.
아무리 ‘제작 스킬’을 통해 마나 무기를 만든다지만, 제작의 영역에서는 수많은 세월을 녹여 내야만 완벽한 숙련도를 기반으로 좋은 무기를 탄생시킬 수 있다.
외관으로는 겨우 2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로만 드미트리가, 무력과 제작 기술을 동시에 갖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분은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는 분이니까.’
박광덕이 마른침을 삼켰다.
대한제국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존재기에, 박광덕으로서도 더는 불가능하다고 부정할 수가 없었다.
만약 상식의 범주에 살아가는 존재였다면.
대재앙을 해결할 때도, 중앙 정부를 상대할 때도, 러시아와 전쟁을 치를 때도.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대로라면 패배해야 하건만, 로만 드미트리는 전부 승리하고 대한제국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상식이 아닌.
사람을 믿었다.
박철민의 말이 진실이라면, 박광덕으로서는 어떻게든 검을 만들어 낸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스킬의 발현도를 유지하면서 철제 무기로서의 능력을 향상하는 방법.
기술 혁명이었다.
갈증이 일었다.
애가 탔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박광덕은 열망을 꾹꾹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를 직접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 * *
그날 오후.
박광덕의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박광덕은 로만 드미트리를 대면했고, 신하로서의 예를 갖춘 뒤에 본론을 말했다.
“황제 폐하. 그동안 수많은 마나 무기를 만들어 내면서 철제 무기로서의 강점과 마나 무기로서의 강점을 동시에 살리는 무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작 스킬’에 의존해야만 하는 현재 마나 무기 제작 시장의 현실이건만, 황제 폐하가 만들어 낸 검은 달랐습니다. 철제 무기로써 완벽하며, 마나를 받아들이는 능력 또한 등급의 체계를 상회했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기술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감히 올려다보지는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대한제국에서 절대적인 존재이기에, 공손하면서도 확고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대가 없는 호의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미라클을 운영하면서 대한제국 장인 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기에, 기술을 전수해 주신다면 금전적인 대가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협회장의 자격으로 대한제국의 무기 제작에 전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장인 협회.
각 나라마다 존재하는 세계적인 집단이다.
대한제국 장인 협회는 외국에서도 알아주는 집단인데, 사실 지금과 같은 거래가 아닐지라도 대한제국에 전적으로 협력했었다.
그래도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그동안은 단순히 애국심에 대한제국을 거래 우선순위로 생각했을 뿐, 보상을 이유로 협조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장인들의 협조를 받아 낸다면, 대한제국은 더욱 탄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의 생각은 달랐다.
“네 제안은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내 제작 기술이 기술 혁명을 일으킬 만한 것이라면, 현재 장인 협회를 구성하는 존재들은 새로운 시대에서 도태될 것이다. 단순히 제작 스킬에 의존하는 기술력으로는 더는 최고라고 인정받지 못하겠지. 나는 대한제국의 황제다. 이 나라의 권력과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 장인 협회의 거래를 받아들이면서까지 기술을 유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시간이 걸릴 뿐, 장인 협회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대한제국은 머지않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출 것이다.”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박광덕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로만 드미트리의 말대로였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면, 중요한 기술을 터득하지 못한 장인들은 자연스럽게 도태할 수밖에 없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자신의 제안이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건만,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의 생각일 뿐이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선순위에서 배제될 뿐이지. 미라클의 마스터 박광덕. 네가 새로운 기술력을 받아들여 대한제국의 제작 환경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나는 너에게 기술을 가르쳐 줄 의향이 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나의 배려는 단 한 가지의 전제를 대가로 한다.”
“그게 무엇입니까?”
“너와 미라클, 나아가 대한제국의 장인 협회 전체.”
무기를 뿌리고.
반응을 이끌었다.
언젠가는 그것의 진가를 알아내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로만 드미트리는 그를 유용하게 활용할 생각이었다.
전생의 마스터 헨드릭처럼.
든든한 근간을 갖출 존재가 필요했다.
“나는 너희 전부가 내게 귀속되기를 바란다.”
* * *
대화는 끝났다.
박광덕은 넋을 잃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귀속된다는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너희는 대한제국 소속의 장인으로서, 지금부터 대한제국에 필요한 제작을 진행하면 된다. 그 대가로 기술의 전수가 이루어질 것이며, 내게 귀속된다고 해서 과도하게 너희의 자유를 침해할 생각은 없다. 지금처럼 장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면,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건대 너희는 부와 명예를 얻을 것이다.”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장인 협회 전체를 귀속시키겠다니.
협회장으로서도 섣부르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으나, 로만 드미트리가 흔들리는 마음에 종지부를 찍었다.
“강요하지는 않겠다. 단, 고민할 시간은 지금부터 일주일이다. 일주일이 지나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면 나는 새로운 방안을 찾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장인 협회를 한순간에 바칠 수는 없겠지. 만약 결정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일 일찍 내가 작업하는 공방을 찾아와라. 앞으로 진행하는 일주일간의 작업에서 내가 어떻게 검을 만들어 내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의 기한.
촉박했다.
하지만 시간의 압박보다도 박광덕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제작의 관전을 허락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제작의 베테랑이야.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술을 빼내는 것은 일도 아닌데, 그걸 과감하게 공개하는 것은 보고도 배울 수 없다는 의미겠지. 보통의 자신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는 본인의 기술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장인들은 대부분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대한제국에 귀속되어 일하는 것을 반길 장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모두가 로만 드미트리에게 호의적인 것은 사실이다.
대한제국의 영웅을 싫어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한순간에 결정하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관전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박광덕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장인들에게로 향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장인 협회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박광덕과 마찬가지로 다들 상당한 경지를 갖춘 인물들이었는데, 그들은 불신 어린 시선을 보였다.
“제작 과정을 그냥 보여 주다니. 무슨 생각이신 거지?”
“이를 빌미로 우리에게 구속력을 발휘하는 거 아닙니까?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를 존경해 온 사람으로서 대한제국을 위해 일하는 것은 기쁜 일이나, 강제적으로 귀속되는 것은 심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장인 협회는 힘이 없는 장인들이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창설된 것이 아닙니까. 국가에 귀속된 순간부터, 장인 협회는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인 협회 전체를 바칠 만큼의 기술력인지도 의문이 듭니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가 만들어 낸 검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수할 만큼 명확하게 체계를 갖추었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분의 특별함이 단순히 검에 깃들었다면, 그분이 만들어 낸 검만 특별할 뿐 기술 혁명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다들 타당한 의견이었다.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한 문제다.
새로운 기술력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의심 어린 눈빛으로 상황을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박광덕이 말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은,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가 정말 그만한 기술력을 갖추었다면 앞으로 우리는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장인 협회의 협회장으로서 확실히 보증하겠습니다. 제가 확인한 검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뭐 의심한다고 했습니까. 협회장님을 믿습니다. 로만 드미트리 황제 폐하 또한 믿고요.”
의심을 삼켰다.
일단은 확인할 기회가 주어졌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그것은 지금 선택할 문제가 아니었다.
공방 앞.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윽고 로만 드미트리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는 사람들의 인사를 손짓으로 받더니 담담하게 무기 제작을 준비했다.
불을 준비하고 도구들을 정리하는 모습. 장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모습이었다.
제작 스킬을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무기 제작은 공방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로만 드미트리의 준비 과정은 장인들 또한 수십 년에 걸쳐 최소 수만 번 이상을 반복해 왔던 일이었다.
준비를 끝냈다.
공방은 특별히 밖에서 안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로 변형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망치를 들고는, 힐끗 공방 밖에서 이곳을 바라보는 장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내 작업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기술을 터득하는 것은 막지 않겠다. 보는 것만으로 기술의 원리를 알아낸다면, 그것을 발전시켜 너희의 것으로 사용해도 좋다. 하지만 내게 귀속되는 것만이 새로운 시대에 도태되지 않는 방법임을 받아들인다면, 일주일 후 내게 확실한 의사를 표하라.”
화아악.
마나를 끌어올렸다.
이번에는 염화신공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자신만의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드미트리의 근간이 되었던 일반적인 제작 기술을 사용할 것이다.
마나를 사용한.
드미트리를 대장장이의 나라라고 불리게 만든 기술을.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장인들의 선택과는 별개로, 나는 지금 제작한 검을 세상에 전시할 것이다. 그것은 대한제국이 기술 혁명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동북쪽 일대에서 드미트리가 제일의 힘을 갖추었듯 대한제국이라는 작은 나라 또한 국가의 크기와는 상관없는 위상을 갖추겠지. 내가 바라는 것은 군사력을 배제하고도 세계를 압도하는 무형(無形)의 힘이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일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장인들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지켜보는 가운데, 로만 드미트리가 무언으로 본인의 의지를 드러냈다.
‘지금부터 보아라. 너희가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영역을.’
화르르르르륵.
화덕에 불이 붙었다.
뜨겁게 넘실거리는 불길 속에서, 로만 드미트리가 마침내 첫 망치질을 시작했다.
카앙-!
경쾌한 소리.
드미트리의 전설이, 새로운 삶에서도 재현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