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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27화 (527/615)

527화 태풍의 눈 (3)

이번 작전.

LA의 명운이 걸렸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벤자민으로서는, 로만 드미트리의 무모함에 동조할 수 없었다.

“너무 무모합니다. 적진에 혼자 들어가겠다니요. 뱀파이어 로드는 S등급 이상의 등급이 확정적인 존재고, 그 외에도 수만 마리에 달하는 숙주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괴물을 대체 어떻게 혼자서 감당하겠다는 겁니까?”

“벤자민 장군. 너는 미국 정부가 왜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생각하지?”

“S등급 몬스터를 일격에 처리한 전적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나는 S등급 몬스터를 일격에 쓰러트렸다. 네게 다시 묻겠다. 네 판단의 근거는 대체 뭐지?”

“그, 그건…….”

말문이 막혔다.

S등급을 초월한 존재.

로만 드미트리에게 상식의 잣대는 무의미했다.

애초에 S등급 몬스터를 일격에 쓰러트리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이번 작전의 무모함을 논하는 것은 로만 드미트리에게 해당하지 않았다.

벤자민은 로만 드미트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았다.

스스로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번 작전을, 자신이 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사실 믿고는 싶었다.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면, 그보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없을 테니까.

“나는 대한제국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국제법을 어겼다. 미국 정부는 그러한 사실을 알고도 내가 이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모두 이번 거래로 인한 이해관계를 모르지 않는다. 나는 대재앙이 마무리되는 대로 미국 정부가 대한제국을 비난할 것을 알면서도 제안을 받아들였고, 미국 정부 또한 이번 거래로 대한제국의 입지가 공고해지는 것을 알고 있다. 벤자민 장군. 내가 약했거나, 미국 정부에 여유가 있었다면. 이번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미국 정부가 감당하지 못한 문제를 나 로만 드미트리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오(狂傲)했다.

상대는 미국이었다.

세계 제일의 강대국을 마주하면서도, 로만 드미트리는 내려보는 듯한 오만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벤자민으로서는 반박할 수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명백한 사실을 기반해 말했기에, 그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작전은 미국에 전적으로 불리하다. 뱀파이어 로드는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기에, 같은 국민을 처리하는 일에 자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LA에서 태어나 LA에서 자라난 병사들의 경우, 조금이라도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간 손속에 망설임이 생기겠지. 나는 다르다. 가로막는 적들을 모조리 도륙할 것이다. 너희가 원한다면 길을 여는 것까지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뱀파이어 로드를 상대하는 사람은 나 하나여야만 할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너희가 내 싸움에 방해가 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을 뿐이다.”

방해라니.

미국의 병사들을.

곧 도착할 S등급 헌터들을.

로만 드미트리는 겨우 방해물로 취급했다.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에게, 로만 드미트리가 확실한 종지부를 찍었다.

“나는 대가를 받고 이 자리에 왔고, 너희는 거래대로 내 도움을 받으면 그만이다. 너희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현실을 직시시켰다.

사람들을 압도했다.

그 모습에.

회의실 한편에서, 박민우가 감격 어린 표정으로 로만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 * *

LA로 떠나기 전.

로만 드미트리는 LA에 관한 정보를 확인했다.

꼼꼼하게 살피는 그 모습에, 박민우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왜 그렇게 세심하게 살피시는 겁니까? 어차피 일초지적(一招之敵)도 되지 않을 텐데요.”

S등급?

SS등급?

SSS등급?

그따위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천마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거늘.

박민우의 물음에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내가 강한 것과 별개로 변수는 발생한다. 완벽하게 승리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변수를 대비하는 태도에서 결정된다. 나는 완벽한 승리를 바란다. 이번 미국 사태로 사람들이 대한제국을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일말의 여지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순간.

심장에 화살이라도 맞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이거였다.

이래서 천마를 따르고 싶었다.

전생의 삶.

박민우는 알렉산드르로 존재했고, 오랜 세월 대륙 정벌을 준비하면서 이제 고지를 눈앞에 두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 완벽하게 패배했다.

로만 드미트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겨우 몇 년에 불과했는데, 철저한 준비성에 알렉산드르는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제는 진실이 보였다.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강한데도.

로만 드미트리는 방심하지 않았다.

일말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으니, 자신은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 단 한 번도 승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전율이 일었다.

‘이 새끼들아.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천마님을 경배하라! 세계 제일의 강대국? 천조국(千兆國)?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어차피 천마님 앞에서는 고만고만한 존재들일 텐데.’

웃음을 애써 삼켰다.

회의실에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와 그 외의 사람들.

자신은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로만 드미트리의 편에 존재했기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벤자민이 분노해서 자리를 엎는다? 그날로 미국은 멸망할 것이다.

꼬리를 말고 로만 드미트리의 작전을 받아들인다면, 뱀파이어 로드의 머리는 일격에 날아가 대한제국의 위상을 드높일 것이다.

어떻게 되든.

로만 드미트리가 답이었다.

패배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든든한 천마 코인을 드미트리만 독식하다니. 나쁜 새끼들. 처음부터 로만 드미트리 님이 천마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면, 마왕의 뺨을 날리고 난 천마재림 만마앙복을 외쳤을 거야.’

박민우의 속마음이었다.

같은 자리.

다른 생각을 품었다.

진지해지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박민우는 이 자리를 진심으로 즐겼다.

그때였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무모한 작전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산통을 깨는 목소리.

박민우가 사나운 눈빛으로 카터 대위를 바라보았다.

* * *

로만 드미트리의 발언.

임팩트가 있었다.

정말로 혼자 뱀파이어 로드를 처리할 것만 같은 기분에, 카터는 상황을 망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저희가 걱정하는 부분은 만에 하나입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이 뱀파이어 로드를 처리해 준다면 정말 좋은 일이겠지만, 만약 실패해 버린다면 그때는 상황을 수습할 수 없습니다. 대체 왜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가시려는 겁니까? 혹시 이번 일로 전과를 올리시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저희와 힘을 합치십시오. LA 대응팀이 힘을 보탤 테니, 힘을 합쳐서 간단하게 적을 처리하면 되지 않습니까?”

버스에 탑승했다.

은근슬쩍 숟가락을 얹으려 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카터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에 카터는 흠칫 몸을 떨었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예상외로 담담하게 반응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는 미국 정부와의 거래를 이행하는 것일 뿐, 전장에서 너희의 안전은 보장할 생각이 없다. 그것에 동의한다면 작전에 동참해도 좋다.”

“저희를 무시하는…….”

“정말 감사합니다!”

카터가 발끈했다.

미국을 무시하냐고 말하려던 그는, 말을 끊어 버리는 벤자민으로 인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말은 옳았다.

그가 정말 LA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굳이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로만 드미트리의 작전을 저지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미국 정부가 그를 선택한 이유를 믿었다.

만약 로만 드미트리가 고만고만한 존재였다면, 국제법과 같은 문제를 안고서 거래를 제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상부에서 말했지. 만약 대한민국을 공격하는 존재들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마론교 소속일 거라고.’

카터 대위가 의심스러웠다.

LA 대응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만큼 능력이 출중한 인물인데, 대한민국과 관련한 문제로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마론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마론교는 대한민국이 국호를 변경한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기에, 벤자민은 눈치껏 대화를 중간에서 끊어 버렸다.

그는 미국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공이 누구에게 가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기에, 로만 드미트리의 발언에 오히려 믿음이 생겨났다.

벤자민이 말했다.

“LA 대응팀은 로만 드미트리 님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미국의 위험을 외면하지 않은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미국 정부와의 거래를 떠나서 저 벤자민은, 그리고 LA는 로만 드미트리 님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 * *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작전은 약 1시간 뒤.

지원군 도착 직후, LA 대응팀이 길을 열면 로만 드미트리가 뱀파이어 로드를 처리하기로 했다.

모두가 떠난 자리.

벤자민이 카터를 남겼다.

“카터 대위. 혹시 마론교의 신도인가?”

“그게 무슨…….”

“마론교의 신도라는 사실 자체는 문제 삼지 않겠다. 마론교는 간혹 과격한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대재앙이 발발한 이후 인류 발전에 많은 영향력을 끼친 단체니까. 하지만 마론교의 신념을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시키지는 마라. 만약 네 언행으로 대한민국이 지원을 철회한다면, LA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카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놓고 지적할 줄은 몰랐다.

벤자민 장군.

그는 전형적인 외골수였다.

미국의 안전만을 생각하기에, LA라는 거대한 도시를 그에게 맡겼다.

“나는 이 나라를 위협하는 요소를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카터 대위 자네가 그동안 이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지만, 만약 개인의 신념으로 모두를 위험하게 만든다면 나는 기꺼이 자네를 처형대에 올릴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 보도록.”

카터가 걸음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는 건장한 뒷모습에, 벤자민은 복잡한 눈빛을 보였다.

* * *

“멍청한 새끼. 뭐가 옳은지도 모르면서 지껄여 대기는.”

카터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신경질이 났다.

벤자민과 같은 인간들.

그들은 대체 왜 마론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성서에서 비롯된 쓸모있는 지식은 좋다고 받아들이면서, 왜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놓치는 걸까.

‘이 세상에는 천명(天命)이 존재한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 결국에는 그분이 현세에 강림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겠지. 성서의 내용이 앞으로의 미래를 증명하건만, 마론교가 이리 노력하는데도 아직도 한 치 앞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니. 참 답답하구나. 내가 지금보다 힘이 있다면, 세상을 통일하고 그분을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을 텐데.’

미국인 5명 중 1명은 마론교다.

사람들은 그것을 많다고 표현하지만, 카터는 아직도 겨우 한 명만 믿는다고 탄식을 내뱉었다.

마론교의 성서.

많은 것이 진실로 밝혀졌다.

보통 예언서라 불리는 것들은 열에 하나만 맞아도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어 대는데, 성서에 나온 내용은 지난 20년간 현실로 증명된 예가 많았다.

조금이라도 마론교에 대해 공부한다면.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한 허상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론교를 맹목적으로 믿는 신자로서, 벤자민의 태도가 참으로 답답하고 화가 났다.

일단 걸음을 옮겼다.

화가 난 것과는 별개로, 미국의 대위로서 작전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를 막아서는 존재가 있었다.

백의의 마법사였다.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순간, 뜬금없이 사나운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야 이 개새끼야. 네가 뭔데 황제 폐하에게 말을 그따위로 해?”

“……예?”

당황했다.

눈을 끔뻑거렸다.

박민우가 내뱉은 욕설이, 카터에게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백의의 마법사는 정의의 대명사이지 않은가.

성큼.

박민우가 걸음을 내디뎠다.

카터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거리를 좁히더니, 그를 바라보며 살기를 뿜어 댔다.

“이 새끼가 귀가 막혔나. 돌았냐? 네 녀석 따위가 감히 황제 폐하에게 말을 왜 그따위로 하냐고.”

이건 정말.

카터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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