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화 서울 정벌 (8)
친위대장 박강수.
세간의 소문처럼 그는 실력을 숨겼다.
진즉에 S등급에 부합하는 자격을 갖추었지만, 김정태 대통령은 박강수의 실력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S등급 헌터는 백의의 마법사가 유일하다.
만약 박강수의 실력이 알려진다면 그만큼 국력이 상승하겠지만, 김정태는 국익보다 박강수가 실력을 숨겨 자신의 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는.
박민우의 대항마였다.
혹시라도 백의의 마법사가 딴마음을 품었을 때를 대비해 왔는데, 다른 존재로 인해서 이렇듯 실력을 드러내게 될 줄은 몰랐다. 문
제는 상대가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S등급을 천외(天外)의 경지라 부르는데, S등급인 박강수조차도 로만 드미트리의 한계를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병사들을 도륙하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에, 박강수는 자신의 힘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상대임을 알았다.
‘그간의 행보와 순식간에 천여 명의 병사를 도륙하는 모습. 로만 드미트리는 명백하게 나보다 강한 괴물이다. 나와 친위대가 전부 달려들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겠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검귀 샤오룽이 있다. 우리가 판을 깔고 샤오룽이 마무리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괴물일지라도 승산이 없지는 않다.’
스륵.
검을 들었다.
샤오룽의 존재.
천군만마(千軍萬馬)였다.
사람들은 중국이 분열되었을 때를 대혼란의 시대라고 표현하는데, 그때 엄청난 활약으로 십만 명을 도륙했다고 알려진 사내가 바로 샤오룽이었다.
검귀라는 별명은 그의 실력을 증명했다.
중국의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야생의 맹수였고, 황제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괴물이었다.
이 자리에 S등급 헌터가 무려 둘이나 있기에, 박강수는 로만 드미트리를 상대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숨을 들이켰다.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을 예민하게 살피며, 그가 친위대에게 신호를 보냈다.
“상대는 대한민국의 적이다. 대통령님의 명을 받들어, 우리는 목숨을 걸고 적을 처단한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척.
척척척.
분위기가 험악하게 변했다.
박강수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을 예의주시하며, 마법 아티팩트로 샤오룽에게 비밀 음성을 전했다.
‘저와 친위대가 먼저 공격하겠습니다. 어떻게든 틈을 만들 테니, 기회가 생겼을 때 마무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S등급 몬스터를 일격에 쓰러트린 괴물이니만큼, 방심하는 순간 역으로 당할지도 모릅니다.’
샤오룽이 고개를 끄덕였다.
판은 깔렸다.
조금씩 거리를 좁혀 가던 박강수가, 갑작스럽게 폭발적인 마력을 분출했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한다.’
“폭격(爆擊).”
콰르르릉.
파파파파팟.
박강수의 전력.
비장의 스킬을 사용하며 빠르게 달려들었다.
폭격의 효과로 내부에서 마나가 미친 듯이 폭발했고, 박강수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뒤집히며 가시 바위들이 사방에서 솟구쳤다.
마치 하늘에서 미사일 세례가 떨어지듯.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엄청난 공격이었다.
박강수가 선두에서 로만 드미트리를 그대로 휩쓸었고, 친위대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박강수가 공격하는 전면을 제외한 모든 방향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
단 한 번의 공방.
승부는 단번에 결정이 날 것이다.
박강수는 이대로 로만 드미트리를 몰아붙인 뒤에, 샤오룽에 의해 승부가 마무리되는 그림을 떠올렸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는 물러나지 않았다.
위험했다.
제아무리 강할지라도, 박강수의 폭격을 정면에서 맞닥트린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박강수의 입술이 비틀렸다. 로만 드미트리가 이처럼 방심한다면, 승산이 더욱 상승한다고 믿었다.
그 순간.
‘천마검법 중반부 일초식.’
번뜩.
검을 뻗었다.
치고 들어오는 적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순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콰앙!
콰콰콰콰콰콰쾅!
사람들이 눈을 부릅떴다.
단 일격.
그 일격에, 친위대가 그대로 소멸(消滅)되었다.
* * *
정확히는 단 한 명.
박강수만이 살아남았다.
그의 힘으로 버틴 것이 아니다.
천마검법과 부딪치는 순간 폭격의 힘이 일방적으로 찢겨 나갔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의도적으로 박강수가 죽지 않을 만큼만 힘을 분배했다.
그렇다고 살았다고 보기에도 모호했다. 박강수는 피로 물든 얼굴로 숨을 헐떡였고, 로만 드미트리가 그런 그의 목을 붙잡았다.
콱.
“끄륵, 끄르르륵.”
숨이 막혔다.
로만 드미트리가 목을 붙잡고 들어 올리자, 박강수는 발을 버둥거리면서 안쓰러운 모습을 보였다.
눈앞의 현실.
믿기지 않았다.
폭격은 자신을 S등급으로 만들어 준 비장의 스킬이고, 친위대를 구성하는 수백 명의 헌터들은 절대 약한 존재들이 아니다.
그런데 친위대 전부가 단 일격에 당하고 말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그린 드래곤의 머리를 일격에 날려 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박강수는 분명히 단순한 힘의 차이보다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막상 로만 드미트리를 경험하자 그제야 진실이 보였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그린 드래곤은 그렇게 머리가 날아갔다.
상성과 같은 특별한 요소와 변수가 적용된 것이 아니라, 로만 드미트리는 차원이 다른 괴물이었다.
생과 사의 경계선.
흐릿해지는 의식 사이로, 로만 드미트리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종류의 인간들이 있다. 적들에게는 한없이 약하면서, 본인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강한 존재들. 중앙 정부와 너희가 그렇다. 대한민국이 실제로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한 힘을 갖추었다면…….”
“악! 아악!”
까득, 까드득.
목이 비틀렸다.
끔찍한 고통에, 박강수가 비명을 질러 댔다.
“그 힘을 이 나라의 안위를 위해 사용했어야지. 반란 세력과 같은 내부의 적들에게 검을 들이밀 것이 아니라, 진즉에 이 나라의 안위를 살펴 반란이 일어나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어야지. 너희는 죽어 마땅하다. 나는 너희와 같은 버러지 새끼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꽈득.
목을 부러트렸다.
발버둥 치던 박강수가 축 늘어졌다.
로만 드미트리는 박강수의 시체를 옆으로 던지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샤오룽을 향해 말했다.
“이번 싸움은 너희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선택하라. 중앙 정부에 가담하여 나를 적대하고자 한다면, 너의 결정으로 인해 중국 전체를 적으로 돌릴 것이다.”
김정태가 얼떨떨한 표정을 보였다.
친위대의 전멸.
충격적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감당하기 힘든 괴물이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건 아니었다.
중국은 세계를 대표하는 강대국이다.
감히 그들을 상대로 협박을 들먹이는 발언에, 로만 드미트리라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
눈을 부릅떴다.
귀를 의심했다.
고개를 홱 돌려 샤오룽을 확인하자, 샤오룽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희가 아무래도 잘못 판단한 것 같습니다. 중국은 절대 로만 드미트리 님의 대한민국을 적대할 생각이 없으며, 이만 병력을 물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어리석은 판단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샤오룽.
그의 태도가 돌변했다.
* * *
샤오룽의 명성.
허명(虛名)이 아니다.
그는 정말 십만 명을 도륙했고, 중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모두가 인정하는 초고수였다.
조금 전.
그는 친위대장의 계획을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먼저 희생하면서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는데, 샤오룽으로서는 계획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틈이 나면 전력을 다해 공격한다.’
꽈악.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마력을 끌어올리며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그런데 그때.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시도한 단 한 번의 공격에, 친위대가 단번에 소멸당하고 말았다.
“……이, 이게 무슨.”
경악했다.
너무 놀라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압도적인 파괴력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르는 중국의 진실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중국에는 무림이라는 세상이 존재했는데, 세월이 흐르며 그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10년 전. 대재앙이 발발하고 중국에 대혼란의 시대가 찾아왔을 때, 스스로를 무림의 후예라고 밝힌 한 사내가 나타나서 중국 전체를 통일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그가 바로.
현재 중국의 황제였다.
황제는 비밀리에 무공을 전수했고, 중국은 10년 만에 빠르게 강대국에 부합하는 전력을 갖추었다.
사실 말이 비밀이지 강대국들은 이미 알고 있는 진실이었다.
중국은 그것을 전승자의 능력이라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황제로 인해서 새로운 무림이 형성되고 있었다.
샤오룽 또한.
무림의 후예였다.
그래서 검귀라고 불릴 만큼 강해질 수 있었는데, 그는 황제에게 패배하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렇기에 단번에 알았다.
로만 드미트리의 힘.
엄청난 무공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스킬 같은 것이 아닌, 체계를 가지고 마력을 분출하는 명확한 흐름이 보였다.
소름이 돋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대체 어떻게 무공을 터득했단 말인가.
진실을 알 방법은 없지만, 확실한 것은 로만 드미트리의 무공이 감히 황제를 압도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중국의 황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일인자.
그런데 그를 압도하는 무공을 갖춘 사내가 존재한다면, 무림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를 적대할 수 없었다.
강력한 힘을 떠나서 무림인들은 정통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이유로 샤오룽은 로만 드미트리를 적대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박강수는 로만 드미트리를 단순히 강하다고 생각했다면, 샤오룽의 눈에는 천외의 수준을 논하는 무공이 보였다.
고로.
“죄송합니다.”
한발 물러났다.
태도를 바꾸었다.
아직 진실은 명확하지 않았으나,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지금과 같은 판단의 근거는 차고 넘쳤다.
샤오룽의 판단.
그것은 김정태에게 매우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 * *
김정태가 분노했다.
화난 얼굴로 샤오룽에게 따져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병력을 물리겠다니요. 대한민국과 중국이 맺은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는 겁니까?”
이번 일.
문제 삼을 여지가 충분했다.
중국의 일방적인 배신이었고, 국가 간의 약속을 이따위로 처리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샤오룽은 오히려 화난 얼굴을 보였다.
“지금 사태 파악이 안 되는 겁니까? 대체 저런 괴물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라는 것입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반란 세력은 충분한 명분을 갖추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섣불리 개입했고,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합당한 책임을 질 생각입니다. 하지만 당신과 미래를 논의할 일은 없을 겁니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로만 드미트리 님의 통치를 받을 것인데, 당신에게 더는 해명할 이유가 없습니다.”
홱.
걸음을 돌렸다.
괜히 계속 이 자리에 있다가, 로만 드미트리에게 공격할 여지를 내어 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물러난다. 로만 드미트리 님.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나중에 공식적으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반란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친위대의 전멸.
중국의 후퇴.
김정태는 벼랑 끝에 몰렸다.
그제야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이 보였다.
널브러진 시체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모습에, 김정태는 창백한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나, 난 이대로 죽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도망쳤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영등포가 함락되었을 뿐, 아직 서울 전체에 자신의 세력이 남아 있지 않은가.
김정태는 황급히 로만 드미트리에게서 멀어지고자 했다.
그런데.
“도망치지 마십시오.”
“당신이 옳다면, 옳다는 것을 증명하십시오.”
서울 시민들.
그들이 길을 막아섰다.
일부는 김정태를 찬양했지만, 서울에도 분명히 김정태에게 반발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우리는 지방을 배척하는 당신의 선택을 지지한 적이 없습니다.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모두 처단하고 추방해 버리는 당신으로 인해서,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면서도 목소리를 내는 것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정태 대통령님. 아니, 김정태 씨. 그간 해 온 일들에 책임을 지십시오. 적어도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십시오.”
“이익.”
김정태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가 바닥에서 무기를 주워 들었다.
검을 높게 들며 시민을 베려고 힘껏 휘둘렀는데, 이상하게도 검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꽉.
소름이 돋았다.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설마.’
흔들리는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로만 드미트리.
그 괴물이 검날을 맨손으로 붙잡은 채로, 김정태를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