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4화 서울 정벌 (1)
서울 정벌.
처음 그 안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김준혁을 비롯한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무모한 계획입니다. 인천의 힘으로 서울을 정벌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절대자가 대재앙을 예고한 이후, 각국의 수뇌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재앙이 발발하고 한 달 동안은 같은 인간들끼리 싸우는 것을 금지한다는 국제법(國際法)을 통과시켰습니다.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제 살을 갉아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도이며, 내란 또한 국제법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인천이 서울의 위기를 이용해서 그들을 무너트린다면. 전 세계의 국가들이 ‘인천’을 적으로 규정할 확률이 높습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모두가 중앙 정부를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인천이 국제법을 위반하는 순간부터 지방 정부들은 인천과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명분을 잃은 싸움입니다. 인천이 중앙 정부를 무너트린다고 한들, 인천은 오히려 미래를 걱정해야 합니다.”
국제법.
예민한 문제였다.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기에, 로만 드미트리의 발언에 다들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담담했다.
국제법과 같은 문제들은 이미 충분히 고려한 상태였다.
“너희의 말도 일리가 있다. 국제법을 어긴다면 전 세계가 인천을 공격할 것이고,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천으로서는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겠지. 그러나 국제법으로 인한 리스크는 무의미한 전제다. 중앙 정부는 이미 인천을 향해 적의를 보였고, 우리가 그들의 제안을 거절한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대재앙이 지나고 중앙 정부가 전력을 충분히 재정비한다면, 우리는 국제법이 보장해 주는 시간 때문에 유리한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건 감수해야만 하는 요소입니다.”
“아니.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지금이 적기다. 국제법은 강대국을 위한 법도다. 표면상으로는 인류를 위한 안전장치처럼 보이나, 강대국들이 국제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저질렀을 때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그들은 변수를 차단하려는 것일 뿐이다. 강대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이 자멸하지 않도록. 그래야 전 세계가 감당할 위험이 분산되기에, 인류를 명분 삼아 타국들을 제지하는 것이지. 나는 인천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를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미래에서 인천의 지위는, 국제법과 같은 전 세계가 정한 기준을 충실히 따랐느냐가 아니라 인천이 얼마나 강대한 힘을 갖추고 있는지에 의해 정해질 것이다.”
파격적인 논리였다.
국제법의 존재를 힘으로 무너트렸다.
“중앙 정부는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 지금 그들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중앙 정부를 압도적으로 무너트린 전과는 전 세계가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남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약소국이라고는 하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집약한 단체가 중앙 정부다. 일개 도시가 중앙 정부를 압도할 힘을 갖추었다면, 강대국이라고 한들 인천을 공격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사실 중앙 정부와의 전쟁에서 지방 정부의 힘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을 받아들이려는 이유는 대한민국 전체를 통합하기 위함이고, 만약 강대국들이 국제법을 들먹이며 경제적인 제재를 가한다면, 우리는 지방 정부에서 확보되는 자원들로 자급자족하는 방향을 택할 수 있다. 내가 단언하지. 과거에 이 세상에는 핵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한들, 핵을 보유한 나라는 차마 건드릴 수 없었지.”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할수록, 엄청난 위압감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나는 S등급 몬스터를 일격에 쓰러트렸다. 나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핵’과 같을 것인데, 강대국이라고 한들 감히 인천을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불가능하다. 설령 전쟁이 발발한다고 한들, 나는 그들을 감당할 힘을 갖추었다.”
오만했다.
엄청난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로만 드미트리기에, 김준혁을 비롯한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말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간의 행보.
이미 충분히 스스로를 증명했다.
그가 옳다면 옳은 것이고, 그가 가능하다면 가능한 것이다.
사실 전 세계를 감당할 자신감이라면, 대재앙이 끝나고 서울을 공격해도 큰 문제 없이 중앙 정부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적절한 시기를 공략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본인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갖추었다고 해도 항상 최선을 고민했다.
중앙 정부를 명백하게 적으로 규정했다면, 언젠가는 무너트려야 할 적들의 약점을 찾아 잔인하게 물어뜯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고로.
지금이 적기였다.
중앙 정부를 무너트릴, 인천을 중심으로 새로운 판도를 만들어 낼 적기.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레드 타임이 끝나고 3일. 3일 안에 적아(敵我)를 구분하고, 적으로 규정한 이들을 모조리 쓸어 버릴 것이다. 명심하라. 앞으로 나를 따르려거든, 같은 인간들이 머리를 맞대 만들어 낸 국제법이 아니라 인천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판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 *
그리고 지금.
차영민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물었다.
“……사전에 인천 정부와 논의된 부분입니까?”
“그렇다.”
“크흠.”
당혹스러웠다.
서울 정벌이라니.
차영민은 국제법과 같은 복합적인 문제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의미한 전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인천 정부에는 김준혁이 있다. 인천 시장으로서 현명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인데 그가 아무런 생각 없이 로만 드미트리를 따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로만 드미트리의 곁에서 마치 호위무사처럼 서 있는 저 인물은, 백의의 마법사라 불리는 정의의 대명사이지 않은가.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에 의문을 가지기보다는, 로만 드미트리를 보고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로만 드미트리는 상식을 파괴하는 인물이야. S등급 몬스터의 머리를 일격에 날려 버리고, 몬스터 웨이브가 바다 위에 발생했는데도 손쉽게 해결해 버렸어. 내가 확인한 정보들만 하더라도 로만 드미트리는 등급으로 규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S등급을 아득히 넘어서는 강력한 힘을 갖추었고, 중앙 정부의 만행에 전쟁을 강행하는 성격이라면 그와의 관계는 단 한 번의 선택으로 결정될 확률이 높아. 상대를 재면서 애매하게 거리를 두었다간, 절대 그와 같이 나아갈 수 없겠지.’
마른침을 삼켰다.
인천 대 중앙 정부.
말도 안 되는 싸움이다.
사람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말하겠지만, 차영민은 로만 드미트리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냥 그럴 것 같았다.
본능이 강하게 이끌렸다.
‘이미 답은 정해졌어.’
본질을 보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하는 방향성.
현대 사회에서 백성이라는 오만한 표현을 사용하나, 항상 국민이 전부라 말하는 중앙 정부와는 다르게 백성을 외면하지 않았다.
백성을 위하는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
양자택일(兩者擇一)의 선택지에서, 어떤 것이 부산과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 좋은지는 명백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수뇌부들과 시선을 주고받더니, 차영민이 결단을 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제가 지금부터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 * *
울산.
그곳은 다행히도 대재앙을 직격으로 얻어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산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면서 영향권 안에는 있었고, 근방에 서식하던 몬스터들이 밀려들면서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레드 타임이 끝나고 한숨을 돌리려던 그때, 울산의 방어 거점 중 하나가 위험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지금 당장 도와주셔야 합니다. 성벽이 무너지면서 방어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일단 알겠다.”
통신을 끊었다.
울산 시장 이명환은 급격하게 밀려오는 통증에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대재앙 초기.
인천처럼 대부분이 쓸려 버린 도시들과는 다르게, 울산은 비교적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그것을 행운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숫자의 시민들이 생존하다 보니 인천처럼 도시를 축소화해서 방어 체계를 집중할 수 없었고, 울산으로서는 많은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방어 거점을 여럿으로 나누어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울산이 안전하다는 소식에 이주민이 몰려들면서, 울산은 지방 정부 중 손에 꼽을 만큼의 인구수를 갖추었다.
그래서 방어 거점을 세 개로 나누었다.
병력을 분산하여 나름대로 대재앙을 대비했으나, 조금 전에 그중 하나가 무너졌다는 보고를 들었다.
딜레마였다.
보고 내용대로라면 당장 지원군을 보내야 하지만, 현재 본거지의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레드 타임이 끝나고 섣불리 움직였다간 위험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다면, 수많은 울산 시민이 죽어 버리고 말겠지. 아아, 이를 대체 어찌한단 말인가.’
머리가 아팠다.
섣불리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무렵, 그는 의외의 연락을 받았다.
‘차영민?’
부산시장.
차영민의 연락이었다.
조금 망설이는 감정이 들었다.
차영민은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 직후, 울산을 비롯한 주변 지방 정부에 지원 병력을 요청했었다.
이명환은 간곡한 부탁을 거절했다.
부산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하나, 울산을 지키기에도 버거운 상황에서 부산을 도와줄 만큼의 여력이 허락되지 않았다.
혼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명환은 머릿속으로 충분한 변명을 생각한 뒤에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돌아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반란에 가담하십시오. 힘을 보태 주신다면, 울산이 직면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로만 드미트리는 차영민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인천은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본체라면, 부산은 처음으로 중앙 정부가 아니라 인천에 협력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차영민을 전면에 내세웠다.
설득을 당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한다면, 지방 정부의 마음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상대로였다.
차영민은 어떻게 설득할지를 잘 알았다.
[지금 중앙 정부는 지방을 도와줄 여력이 없습니다. 아니, 있다고 할지라도 중앙 정부에 우호적인 세력들을 먼저 챙겨 주느라 울산은 후순위로 밀릴 것입니다. 이명환 시장님. 로만 드미트리 님은 인천과 부산을 구해 주었습니다. 중앙 정부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갖추었으며, 그는 절대 자신의 사람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현명하게 판단하십시오. 두 번의 기회는 없습니다. 인천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다시는 지금의 선택을 번복할 수 없습니다.]
고민에 빠졌다.
쉽지 않은 문제였다.
로만 드미트리를 그만큼 신뢰하기도 힘들었고, 인천을 선택했다간 반란 세력으로 내몰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이명환은 생각을 바꾸었다.
차영민의 말처럼, 중앙 정부에 충성을 맹세한다고 한들 지금 당장 도와주겠다는 답변을 받을 수는 없었다.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눈앞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 울산의 위기를 해결해 줄 사람은 로만 드미트리가 분명했다.
그리고.
앞선 사례를 믿었다.
몬스터 웨이브를 직격으로 맞은 인천과 부산이 안전하다면, 인천은 그만한 전력을 갖추었을 것이다.
“……울산을 도와준다면, 앞으로 인천을 따라 반란에 가담하겠습니다.”
화면 너머.
차영민이 웃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 * *
사람의 마음은 간사했다.
협력하겠다고 말해 놓고도, 이명환은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지 수도 없이 되새겼다.
‘만약 중앙 정부가 인천을 제압해 버린다면. 반란 세력에 가담한 울산 정부와 나는 반란 세력으로서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되겠지. 정말 로만 드미트리를 믿는 게 옳은 일일까? 들리는 말들은 그의 강력함을 증명하지만,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들은 아니야. 만약 조금이라도 과장이 덧붙여져 있다면, 울산 정부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초조했다.
불안했다.
전화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우스웠다.
울산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소 며칠은 지나야 할 텐데, 자신은 평안하게 기다릴 강단이 없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전화기가 울렸다.
띠리리리.
‘아직은 너무 이르다. 다른 문제로 연락 온 것이겠지.’
마음을 내려놓았다.
벌써 특별한 성과를 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절망적인 소식을 말했던 목소리가, 지금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상황을 전달했다.
[시장님! 방금 방어 거점을 재탈환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천이 지원해 준 덕분입니다. 겨우 단 두 명이 텔레포트 마법을 통해 나타나더니, 방어 거점을 공격하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쓸어 버렸습니다. 시장님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이런 괴물들이라면, 중앙 정부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습니다!]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겨우 한 시간 만에 이루어진 성과에, 이명환은 흔들리는 눈빛을 보였다.
“……이게 가능하다고?”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차영민이 말한 반란.
그것이 더는 비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 * *
울산은 시작일 뿐이었다.
차영민은 지방 정부들을 차례로 설득했고, 성공 사례가 늘어날수록 지방 정부들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중앙 정부에 대한 반감.
감당하기 힘든 대재앙.
로만 드미트리의 강력함.
삼박자의 조합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 진짜라면, 지방 정부들로서는 동아줄을 움켜쥐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계획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남쪽 지역들.
수도와 떨어진 지역들은 금방 설득하는 것에 성공했으나, 점점 위쪽으로 향할수록 상황이 달라졌다.
차영민도 경고했었다.
대다수를 설득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전부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고.
아니나 다를까.
[그게 지금 무슨 개소립니까? 감히 중앙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자고요?]
하남시장 정문호.
중앙 정부의 끄나풀이 사납게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