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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502화 (502/615)

502화 6번째 대재앙 (3)

대재앙.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몬스터가 나타나는 방식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몬스터 웨이브.

차원의 공간이 뒤틀리며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현상이다.

두 번째는 전조.

지난 개미굴 사건과 같이,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전 세계에는 전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들이 대재앙을 기점으로 일제히 공격 태세로 돌아섰다.

본인들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들을 공격했고,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다수에게 공격받는 상황은 전조에 해당했다.

마지막 세 번째.

그것을 사람들은 블러드 레인(blood rain)이라고 불렀다.

몬스터 웨이브와 비슷하나, 차원의 통로를 통해 밀려드는 방식과는 다르게 특정 지역에서 소수의 몬스터들이 소나기처럼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자면 서울에 블러드 레인이 발생했을 때.

몬스터 웨이브는 성동구에서 시작된 몬스터가 서울 전체로 퍼져 나가는 방식이라면, 블러드 레인은 특정 지역 전체 어디에서든 몬스터가 나타나는 변수가 가득한 재앙이었다.

물론.

블러드 레인으로 나타나는 몬스터는 소수다.

하지만 방어 체계를 무의미하게 만들기에, 실질적으로 인명 피해가 가장 많은 현상이기도 했다.

캬악!

크르르르르륵.

인천 도심.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A등급 몬스터 오우거(ogre)가 사나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고, 지나가는 길에 방해되는 건물은 거대한 몽둥이로 부숴 버렸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강력한 괴력에 외벽이 버텨 내질 못했고, 그렇게 몬스터들은 족적을 남기듯 지나가는 길마다 도시를 빠르게 파괴했다.

그런데 인간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예민한 후각을 킁킁거리면서 살인에 대한 의지를 보였으나, 몬스터들은 인간을 찾지 못해 분노한 기색을 보였다.

캬아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는 몬스터들.

그들이 날뛰었다.

인간을 찾겠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오우거가, 순간적으로 강력한 살의를 표출했다.

캬악!

퍽!

무언가를 몽둥이로 내리쳤다.

바람이 찢겨 나가며 얻어맞은 생명체가 터져 버렸고, 오우거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지 주변에 있는 생명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오우거가 공격하는 대상이 인간들이었다면 당연한 광경이었겠지만, 오우거는 충격적이게도 같은 몬스터를 공격하고 있었다.

컹컹컹!

캬악!

다른 몬스터들이 오우거에 대항했다.

머리가 터지고 사지가 찢겨도 오우거의 육체를 물어뜯었고, 그런 와중에 다른 몬스터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몬스터들의 눈빛이 붉게 물들었다.

원래도 살의로 번들거리던 눈빛이, 아예 맛이 간 것처럼 마주하는 생명체를 모두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공멸(共滅).

서로 죽고 죽였다.

동족을 물어뜯던 오우거는, 주변으로 지나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크르르르르륵.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인기척의 주인.

그 또한 동족이었다.

하지만 오우거의 눈에 동족은 자신의 먹잇감인 인간으로 보였다.

그렇기에.

캬악!

쿵쾅쿵쾅!

오우거는 인간을 찢어발기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 * *

제2 방어선.

성벽 위에서 강민호가 놀란 기색을 보였다.

“……대단하네요.”

저 멀리.

몬스터들이 서로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면 성벽이 보일 위치이건만, 그들은 이곳을 보고도 ‘성벽’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진법의 효과였다.

김준혁이 덤덤하게 말했다.

“환영(幻影)을 일으키는 진법입니다. 진법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한, 지능이 떨어지는 몬스터들은 서로를 인간으로 인식하고 이곳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할 겁니다.”

지난 3개월.

김준혁은 진법에 매달렸다.

정말 신묘한 힘이었다.

진법의 효과를 확인한 김준혁은, 자신만의 무기를 갈고닦기 위해서 잠을 줄여 가면서까지 진법에 빠져들었다.

눈앞의 광경이 바로 그 결과였다.

환영 진법에 따라 인공물을 배치했고, 몬스터들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환영에 빠져들었다.

사실 김준혁의 힘만으로는 진법의 효과를 이토록 완벽하게 발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준비가 필요했다.

도시를 재배치했다.

진법에 유리하도록 도시를 새롭게 만들었고, 마나석을 곳곳에 배치해 힘을 실었다.

‘그동안 밤을 지새우며 준비한 덕분에 인천은 도심 전체가 몬스터들을 절망에 빠트릴 함정이 되었어. 환영 진법이 가동되는 한, 몬스터들은 쉘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겠지. 일차적으로 로만 드미트리 님이 외벽을 수호하고, 이차적으로 제2 방어선이 진법을 활용해 몬스터들이 쉘터로 접근하는 것을 막으며, 마지막으로 이태성을 비롯한 직할대가 내부의 몬스터들을 처리한다. 우리는 지난 3개월간 인천만의 힘으로 적들을 막아 낼 방법을 훈련했어.’

노력의 성과였다.

특히 진법은 민간인들의 도움이 컸다.

김준혁은 인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건물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은 두 팔 벌려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3개월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인천을 함정으로 탈바꿈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그간의 준비는 대재앙에 대항하는 최소한의 조건일 뿐, 이 위기를 모두 해결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김준혁이 말했다.

“진법은 만능이 아닙니다. 환영 진법을 뚫고 제2 방어선에 도달하는 몬스터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직접 처리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로만 드미트리 님은 외벽에서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규모의 적들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내부의 상황마저 로만 드미트리 님의 발목을 붙잡는다면, 인천의 생존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민호가 나섰다.

때마침.

몬스터 몇 마리가 환영 진법을 뚫고 나왔다.

동족을 물어뜯느라 피로 범벅이 된 그들은, 제2 방어선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살의를 분출했다.

캬악!

크르르르르륵.

달려드는 몬스터들.

강민호가 검을 뽑아 들었다.

“저도 그동안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 * *

3개월 전.

로만 드미트리는 강민호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검을 선물해 주며, 그에게 새로운 미래를 말했다.

“앞으로 찾아올 대재앙에서 나는 너를 인천을 수호할 마지막 관문으로 사용할 것이다.”

“……저를요?”

당혹스러운 대답이었다.

강민호는 자기객관화가 되었다.

E등급에서 B등급까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렇다고 마지막 관문을 맡을 수준은 아니었다.

로만 드미트리 또한.

그 사실에 동의했다.

강민호는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본인이 부여받은 임무에 대한 의지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강민호는 반드시 쉘터의 사람들을 지켜야만 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 그래야만 딸이 안전하기에. 강민호는 나와 같이 최전방에서 싸우는 것보다, 딸이 존재하고 있을 후방을 지키고 있는 것이 적절한 인물이다.’

딸의 존재.

강민호의 정체성이었다.

부족한 힘은 가르치면 그만이다.

전생에도 그랬듯,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만 있다면 로만 드미트리의 곁에서는 누구든 강해질 수 있다.

사실 처음에는 그 방법으로 귀혼마공을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닌 케빈을 단시간에 강하게 만들어 준 것처럼, 의지만 있다면 귀혼마공은 적절한 방법이었다.

고민 끝에.

로만 드미트리는 결론을 내렸다.

‘귀혼마공은 적절하지 않다.’

전생의 케빈.

그는 강해지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강해질 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모두 바치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표출했다.

강민호는 달랐다.

그는 살고자 했다.

어떻게든 살아서 딸의 곁을 지키겠다는 그의 의지는, 케빈과 똑같이 간절하나 본질적인 부분은 완전히 달랐다.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과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

완전히 다른 그 차이로 인해서, 강민호에게 귀혼마공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었다.

‘수호문(守護門).’

아주 오래전.

백중혁이 존재하기 이전의 시대.

정파에는 일인전승으로 이어지는 수호문이 존재했다.

그들은 악인들이 무림 정벌을 위해 악랄한 의도를 드러낼 때마다, 갑작스럽게 세상에 나타나 악인들로부터 세상을 구해 주었다.

케케묵은 역사에 기록되었던 존재. 그래서 백중혁은 수호문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확실히 대단한 무공이지만 천마신공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수호문은 왜 백중혁과 동시대에 존재하지 못했을까.

악인들을 상대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수호문의 후계자는, 그의 평판을 시기 질투한 정파인들의 수작질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 이후로 명맥이 끊겼던 무공이 마교의 서고에 들어왔고, 백중혁은 천마신공을 갈고닦는 과정에서 ‘수호문의 무공’을 경험했던 기억이 있었다.

수호문의 본질.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강민호에게 어울렸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너에게 수호문의 무공을 알려 주겠다.”

* * *

성벽 아래.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오우거의 근육이 크게 부풀더니, 몽둥이로 성벽을 그대로 후려쳤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엄청난 충격이었다.

마법으로 보호한 덕분에 성벽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뒤이어 도착한 몬스터들도 성벽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머리로 들이받은 트롤(Troll)은 머리가 깨지며 피가 튀었다.

하지만 특유의 재생력으로 금방 회복했고, 계속해서 들이받으면서 성벽을 무너트리겠다는 집념을 보였다.

김준혁이 소리쳤다.

“몬스터들을 공격하라!”

팟.

파파파팟.

성벽 위.

화살이 발사되었다.

인천 소속 궁수들의 공격이었고, 마력을 잔뜩 머금은 화살들이 비처럼 쏟아지며 몬스터의 외피를 관통했다.

캬악!

캬아아아악!

몬스터들이 괴성을 질렀다.

그들은 발악하며 어떻게든 성벽 위를 오르려고 했지만, 김준혁은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몬스터의 얼굴에 마법이 작렬했다.

인천 소속 헌터들 중에는 궁사와 마법사 등 다양한 스킬의 직종이 존재했고, 원거리 헌터들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적을 막았다.

진법 너머.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환영으로 상당수의 몬스터를 처리했지만, 절대적인 숫자가 많다 보니 그들을 모두 감당하지는 못했다.

결국.

성벽은 뚫릴 수밖에 없었다.

웨어 울프가 엄청난 점프력으로 단번에 성벽을 뛰어올랐지만, 김준혁은 그 존재를 걱정하지 않았다.

강민호가 말하지 않았던가.

본인을 믿으라고.

웨어 울프가 성벽에 착지하는 순간, 강민호가 그의 팔을 날려 버렸다.

번뜩.

키야야야약!

웨어 울프가 괴성을 질러 댔다.

그는 사납게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강민호는 차분하게 웨어 울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상대는 A등급의 몬스터다.

이제 막 B등급의 자격을 확보한 강민호로서는 절대 쓰러트릴 수 없는 상대이건만, 지난 3개월의 시간에 그는 조금도 긴장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수호문의 무공.

대단했다.

방어 초식에 특화되어 있는 그 무공은, 이태성과의 대련에서도 단 한 번의 공격도 허락하지 않았다.

고로.

겁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

웨어 울프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냈다.

카앙!

카카카카카캉!

공격이 거칠게 밀고 들어왔다.

강민호는 웨어 울프의 공격을 차분하게 막아 내면서, 수호문 특유의 반격(反擊) 초식으로 상대의 육체를 갈라 버렸다.

로만 드미트리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유였다.

로만 드미트리는 먼저 주도적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길 바라는데, 수호문은 보호하고 반격하는 것에 특화되었다.

그렇게 접전 끝에.

푸확!

웨어 울프가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강민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성벽 위로 올라서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처리해 버렸다.

‘제2 방어선은 견고하다.’

김준혁의 생각이었다.

진법과 강민호.

그리고 성벽의 존재.

보수 스킬을 보유한 헌터들이 성벽의 내구도만 확보한다면, 충분히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간의 준비는 헛되지 않았다.

몬스터 웨이브와 블러드 레인이 동시에 들이닥치는 최악의 상황에서, 제2 방어선은 공격해 오는 몬스터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인천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전투로, 김준혁을 비롯한 인천의 군인들은 희망 어린 표정을 보였다.

그때였다.

진법을 빠져나온 몬스터들을 거의 정리하는 상황이었는데, 갑작스럽게 허공에서 균열이 일었다.

사람들이 당황했다.

균열은 몬스터의 등장을 의미했다.

몬스터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사람들이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다.

팟.

한 인간이었다.

그를 필두로, 다수의 인간이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성벽에 안착했다.

“백일이 인천을 도와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여러분! 이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선두의 정체.

바로 박민우였다.

그는 마력을 일으키며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그곳에는 이미 수북이 쌓인 사체만 보였다.

순간.

박민우의 표정이 당황으로 얼룩졌다.

이건 계획과는 달랐다.

분명히 로만 드미트리를 지나쳐서 인천이 공격받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멀쩡한 사람들과 수북이 쌓인 몬스터의 사체라니.

“……생각보다 안전하시네요?”

박민우가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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