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화 변화하는 인천 (6)
취조실.
홀로 남은 이태성은 가만히 바닥을 바라보았다.
캄캄한 바닥이 인천의 미래인 것만 같았고, 문태준이 취조실을 나가며 했던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아아, 마지막으로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자백도 타이밍이 있는 법이야. 뒤늦게 내가 원하는 답을 말할지라도, 시기가 늦어 버린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지. 이태성. 네 실수는 조민우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중앙 정부에 반기를 내건 인천 정부의 소속이라는 거야. 아깝네. A등급의 재능이라면 중앙 정부에서 충분히 대우해 주었을 텐데, 대체 왜 미래도 없는 인천에 몸을 담갔을까.”
콰앙!
문이 닫혔다.
그때부터 취조실은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찾아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틀렸어. 이건 외통수야.’
후회스러웠다.
중앙 정부를 등에 업은 조민우조차도, 문제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 초반에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예상했어야만 했다. 자신은 조민우와는 다르게, 정말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금만 더 현명하게 생각했다면, 차라리 시험장 위에서 죽을지라도 조민우를 살리는 방향을 택했을 것이다.
참담했다.
자신으로 인해, 인천 정부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
‘중앙 정부의 권력은 절대적이야. 그들이 정답을 정해 놓고 압박한다면, 인천 정부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겠지. 과연 내가 계속 버티는 것이 옳은 일일까. 만약 인천 정부의 명령으로 조민우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씌운다면, 그때는 나나 인천 정부나 전부 살아남을 방법이 없어. 나 하나로 인해 인천의 미래가 끝날 수도 있다는 의미지.’
그건.
용납할 수 없었다.
인천은 변화하고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필두로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 자신이 인천의 발목을 붙잡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인천에 자신은 필요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라는 압도적인 강자가 존재하기에, 자신이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예전처럼 인천의 미래가 절망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악물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자백하자. 인천 정부의 소행이 아니라, 내가 살의를 참지 못하고 조민우를 살해한 것으로.’
죄를 떠안았다.
개인의 목숨보다, 다수의 미래를 생각했다.
그때였다.
가디언을 불러 자백하려는데, 그보다 먼저 취조실의 문이 열렸다.
끼익.
“나와.”
“……나오라니. 무슨 일이지?”
의문스러웠다.
중앙 정부로서는 자신을 풀어 줄 이유가 없었다.
이태성의 물음에, 가디언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걸 내가 일일이 설명해야 해? 그냥 직접 가서 확인해. 널 풀어 준 이유가 무엇인지.”
* * *
이태성은 사고 회로가 정지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앞의 상황.
피로 물든 문태준과 조달수 의원이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로만 드미트리와 김준혁이 있었다.
‘……이게 대체.’
이태성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격리되었던 직할대원들이, 이태성과 함께 접객실 한편에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보였다.
누구도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들이 처음 접객실에 들어왔을 때 확인한 장면은 피를 흘리는 문태준의 모습이었고, 곧바로 조달수 의원이 성난 표정으로 들이닥치면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달수가 말했다.
“네 요청대로 너의 사람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 그런데 말이야. 감히 중앙 정부의 영역에서 조사관의 피를 본 이 상황을, 너는 대체 어떻게 감당할 생각이지?”
그제야 알았다.
사건의 진실을.
로만 드미트리가 직할대의 자유를 요구했다는 사실에, 이태성을 비롯한 직할대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로만 드미트리. 네가 외국인이기에 대한민국의 실정을 모른다는 말은 통하지 않아. 상식적으로 중앙 정부의 조사관을 건드린 것은 엄청난 범죄이며, 그건 대한민국 전체를 건드린 것과 같아.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이 호로 같은 새끼야. 네가 지금, 대한민국을 건드렸다고!”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조달수는 금천구의 핵심 전력인 조민우를 잃었다.
사실 그가 금천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카인 조민우를 내세워서 세력을 키웠기 때문이었다.
그로서는 조민우의 죽음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금천구의 기둥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로만 드미트리를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를 찾았다.
로만 드미트리는 차분했다.
분노를 토해 내는 조달수의 모습에도, 그는 담담하게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게 대한민국의 뜻인가.”
“이 새끼가!”
“문태준은 인천을 상대로 명백한 적의를 드러냈다.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사실만 하더라도 직할대 전체를 고의로 살해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며, 조민우는 실력이 모자랐기에 역으로 당했을 뿐이다. 그런데 중앙 정부의 영역에서 피를 좀 보았다고 그렇게까지 분노하다니. 조달수 의원. 지금부터 충분히 생각하고 말을 내뱉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내 사람들의 안위를 확보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뜻을 확인하고자 이 자리를 찾았다. 문태준의 행태가 일개 개인의 일탈인지, 아니면 중앙 정부가 지금 인천과 전쟁이라도 벌이려고 하는 것인지. 네 대답에 따라, 내 결정도 정해지겠지.”
순간.
조달수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중앙 정부를 들먹이며 몰아붙이면 꼬리를 말 줄 알았는데, 로만 드미트리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결정해. 어떤 길을 선택할지.”
* * *
조달수는 진실을 알았다.
문태준의 잘못이었다.
애초에 조민우를 빌려 간 것도 직할대를 처리하기 위함이었기에, 로만 드미트리가 제시한 CCTV 자료가 눈에 밟힐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번 일을 공론화한다면, 중앙 정부로서는 오히려 인천을 처벌할 명분이 사라질 것이다.
분노가 치밀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는 상대의 주장이 맞으나, 그 논리를 내세우려면 중앙 정부와의 전쟁을 각오해야만 했다.
‘정말 중앙 정부와 전쟁을 하겠다는 건가.’
대한민국.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감히 중앙 정부에 대항하는 존재는 없었다.
그런데 서슴없이 전쟁을 말하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에, 조달수로서는 강하게 나갈 수 없었다.
최근.
대통령 김정태는 의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재앙을 연구하는 미국의 마론(Maron)교에 의하면, 앞으로 1~2개월 안에 반드시 6번째 대재앙이 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당분간은 그 어떠한 분쟁도 삼가라. 이 혼란한 세상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일단 대한민국의 존속이다. 이 나라가 무너진다면 그간 쌓아 올린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지금 당장은 6번째 대재앙을 막아 내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대통령의 엄포였다.
대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한 분쟁으로 제 살을 갉아먹는 일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인천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하루면 쓸어 버릴 수 있는 약체라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병력조차도 대한민국으로서는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로만 드미트리가 정말 S등급 헌터라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일도 없었다.
‘확실해. 로만 드미트리는 지금 대한민국의 판도를 계산해서 의도적으로 도발하는 거겠지. 대한민국으로서는 실질적인 전쟁까지는 결단하지 못할 테니까. 빌어먹을 녀석. 대한민국의 상황을 뻔히 알면서, 정말 전쟁을 벌일 것처럼 협박하다니.’
분노를 삼켜 냈다.
웃음을 보였다.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조달수로서는 더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이번 일은 이대로 마무리하도록 하지. 조민우가 먼저 살의를 보였다면, 조민우의 죽음은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말이야. 로만 드미트리.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아. 네가 내뱉은 그 말. 중앙 정부와 전쟁을 벌이겠다는 그 말을, 너는 언제고 반드시 수습해야만 할 거야.”
끼익.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는데, 로만 드미트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대하지.”
뭘 기대한단 말인가.
애써 무시하려는데, 뒤이은 말이 조달수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
“너희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머지않아 너희는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 * *
콰앙!
문이 닫혔다.
방금까지 웃고 있던 조달수가, 악귀처럼 사나운 표정을 보였다.
“건방진 새끼가 감히!”
의원직에 오르고.
단 한 번도 오늘과 같은 수모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감히 중앙 정부의 권력을 넘보는 모습에, 조달수는 참을 수 없는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정말 죄송…… 컥!”
짜악!
사과하려는 문태준의 뺨을 날렸다.
이미 피로 범벅이 된 얼굴에서 핏물이 튀었지만, 조달수는 그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문태준의 머리채를 붙잡고 수차례 뺨을 날렸다.
짜악!
짜악, 짜악!
“네가 그따위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으면, 이 조달수가 이런 수모를 겪을 일은 없었겠지. 문태준 조사관. 앞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거야.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나도 너를 곁에 둘 이유가 없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문태준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얼굴이 붉게 물들었지만, 그에게는 조달수의 심기를 달래는 것이 중요했다.
조달수가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연락을 걸었다.
탈칵.
“지금 당장 비상 회의를 소집해. 안건은 인천의 반란. 로만 드미트리라는 개자식이, 감히 중앙 정부에 대항한 이번 사건을 공론화할 생각이다. 그리고…….”
로만 드미트리와 인천 정부.
그들을 하루라도 빨리 짓밟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퍼즐이 있었다.
“백의의 마법사를 불러. 대한민국의 악을 처벌하는 일이라면, 그 또한 반드시 참석할 테니까.”
* * *
조달수가 떠나고.
김준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조달수는 이대로 물러날 사람이 아닙니다.”
뒷말을 삼켰다.
그 또한.
조달수와 생각이 같았다.
대한민국의 판도를 생각하면 전쟁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기에, 로만 드미트리는 그 부분을 공략해서 강하게 나갔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러다 정말 전쟁이 벌어진다면. 인천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그 만일을 걱정했다.
조달수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김준혁의 마음에 불안감을 심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불안한가.”
“……예?”
“전쟁이 현실이 될까, 불안하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습니다. 상대는 중앙 정부입니다. 최근 인천이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로서는 로만 드미트리 님의 혜안(慧眼)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극단적인 수는,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충언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김준혁은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이해했다.
그의 마음을.
만약 이 자리에 크리스와 케빈 같은 전생의 인연들이 있었다면, 전쟁을 언급한 발언이 로만 드미트리의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아직 김준혁과 같은 현생의 인연들은 알아 온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한다고 한들, 비상식을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건 힘든 문제였다.
이번 일.
중앙 정부는 선택권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달수가 일단 한발 물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로만 드미트리의 선전포고에 중앙 정부는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이미 전쟁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 중앙 정부와 인천 정부의 격돌은 시기상의 문제일 뿐, 로만 드미트리가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부딪힐 것이다.
다만.
서두르지 않았다.
조달수가 선을 넘었다면 전쟁이 벌어졌겠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인천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전생에 나는 수많은 죽음을 경험했다. 혼자만 강한 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생과의 차이점이었다.
두 번의 전생을 살아가며 로만 드미트리는 멈추는 것을 몰랐다.
무조건 들이받고 쓸어 버렸던 그가, 한스와 같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전생에 경험하지 않았던가. 혼자서는 드미트리 전체를 보호할 수 없음을.
로만 드미트리가 없는 전장을 공략하는 적의 전략에, 드미트리는 많은 사람을 잃었었다.
그래서 여유를 가졌다.
어차피 벌어질 일을 서두를 필요는 없을 테니까.
로만 드미트리의 생각을, 김준혁과 같은 현생의 사람들은 인천을 위해 무모한 용기를 발휘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이태성이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털썩.
“저희를 버리십시오! 저희를 위해, 로만 드미트리 님과 인천 전체가 위험해지는 것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저희를 버리십시오!”
동시다발적으로 무릎을 꿇는 직할대.
진실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매우 크나큰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