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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490화 (490/615)

490화 변화하는 인천 (3)

새로운 세상.

새로운 문화를 공부하며, 로만 드미트리가 눈여겨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템(item)이었다.

최초의 대재앙이 일어날 때만 하더라도, 현대 화기를 앞세운 사람들은 전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아이템의 존재를 인식했다.

마나를 받아들여 스킬의 위력을 상승시켜 주는 아이템이야말로, 몬스터들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지킬 수 있는 무기였다.

개미굴을 준비하던 한 달.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받아들이던 도중, 로만 드미트리는 이 아이템에 관련한 정보에 빠져들었다.

‘아이템의 체계는 특별하지 않다. 게임 시스템이 익숙한 사람들이 아이템이라는 명칭을 붙였을 뿐, 사실상 아이템은 전생에 경험했던 마나 무기들의 초창기 버전에 불과하다. 오라가 발달하면서 마나를 잘 받아들이는 무기를 만들어 냈던 것처럼. 이 세상은 이제야 막 마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에 어울리는 무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제작 방법이 상당히 조잡했다.

이들이 아이템을 만들어 낸 시간은 겨우 20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 올린 드미트리의 기술력과 비교해도 상당히 차이가 났다.

오히려 드미트리가 이 세상의 기술력을 압도했다.

‘문화의 발달 시간을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겠지. 그리고 애초에 이 세상의 사람들은 마나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전생에는 부족할지라도 마나를 인식하고 마법이라는 새로운 갈래를 스스로 만들어 냈다면, 이들은 시스템이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 힘을 전달받을 뿐이다. 20년 만에 빠르게 강해진 만큼,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모래성을 쌓아 올린 것이지.’

오라든.

마법이든.

전생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어 냈다.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의 상식에서도 압도적인 영역을 구축했기에, 새로운 세상을 공부할수록 조잡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강민호의 승급을 확신했다. 힘의 원리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수라 심법과 수라 검법을 배운 강민호는 상당한 강점을 선보일 테니까.

팔락.

자료를 넘겼다.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S부터 F등급.

특히 천문학적인 액수에 팔렸다는 A등급 이상 아이템들을 확인하며, 로만 드미트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이들이 명검이라 부르는 무기는 내게 필요하지 않다. 그따위 무기로는 내 힘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없으며,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들을 위해서는 직접 무기를 제작할 필요가 있다. 시기는 개미굴 토벌 이후. 당면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한 이후, 이 세상에 맞는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처음부터 계획된 부분이었다.

그렇게.

로만 드미트리는 김준혁에게 대장간을 준비할 것을 명령했다.

* * *

김준혁이 말했다.

“사실 1년 전만 하더라도 인천 최고의 장인이 사용하던 대장간입니다. 그가 서울로 이전하면서 공실로 남았지만, 이곳의 장비들은 최상급이라고 자부합니다.”

대장간 내부.

익숙했다.

도구들을 꼼꼼하게 살피는 로만 드미트리의 모습에, 김준혁으로서는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제작의 영역.

로만 드미트리가 넘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을 수련해야 하는데, 로만 드미트리처럼 강한 사람이 제작 기술마저 뛰어나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편견이었다. 이태성과 마찬가지로 상식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상식적인 결론을 유추할 수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앞으로 한 달. 대재앙 혹은 인천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이 아니라면 나를 절대 찾지 마라.”

“알겠습니다.”

끼익.

쿵.

문이 닫혔다.

로만 드미트리는 오랜만에 작업을 준비했다.

화덕에 불이 붙었고, 대장간은 금방 열기로 물들었다.

화륵.

화르르르르륵.

‘내 혼을 담았던 스피릿(spirit)은 차원을 이동하는 과정에 소실되었다. 만약 그때와 같은 노력과 공을 들인다면, 스피릿에 버금가는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스피릿은 그때의 상황과 그때의 감정, 그 당시에 내가 경험한 모든 요인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 낸 걸작이라면, 지금의 내게는 그만한 불씨가 존재하지 않는다.’

스피릿 정도의 수준.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만한 노력을 들이붓는다면, 로만 드미트리는 반드시 스피릿 이상의 무기를 만들고자 했다.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목표기에, 앞으로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며 나는 많은 일을 경험할 것이다. 그렇게 쌓여 가는 무수한 요인들이, 나중에는 스피릿 이상의 무기를 만들어 내는 불씨가 되겠지. 그것은 추후의 일. 지금은 당분간 내가 사용할 검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 세상이 말하는 기준을 훨씬 상회하는, 내가 온전한 힘을 발현해도 버틸 수 있을 만한 그런 검을.’

카앙!

카앙-!

강철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열기가 로만 드미트리를 휘감았고,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장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또한, 한 달간 최대한 많은 무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곧 들이닥칠 대재앙에서, 내 사람들이 그따위 조잡한 무기를 사용하는 꼴은 볼 수 없다. 적어도 무기는 발목을 붙잡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천마로서 검을 만들고.

드미트리의 장인들과 어울려 살았다.

로만 드미트리는 이제 끔찍한 무기를 보면 인상을 찌푸리는, 장인들 특유의 고지식함을 갖추었다.

그것은 자신감이었고.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며, 로만 드미트리의 제작 실력은 전생보다 훨씬 발전했다.

화르륵.

화르르르르르륵.

염화신공(炎火神功).

불길이 완벽하게 통제 안에 들어왔다.

대장간 안을 넘실거리며 로만 드미트리의 의지에 따라 적절한 열기를 부여했고, 절정의 경지에 오른 제작 실력에 강철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태성도, 김준혁도. 로만 드미트리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인지.

파격적인 행보에 S등급일지도 모르는 무력은, 양파 같은 면모에서 겨우 한 껍질 벗겨 낸 것에 불과했다.

카앙-!

강하게 내리쳤다.

앞으로 한 달.

로만 드미트리는 뜨거운 불길 속에 빠져들었다.

* * *

한 달.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미국은 반복되는 전조 현상에 6번째 대재앙이 머지않았다고 경고했고, 실제로 각 국가의 정보기관들도 미국의 의견에 동의하는 자료를 내놓았다.

경제가 움츠러들었다. 병력을 재정비하고 물자를 쌓았으며, 세계 각국은 서로의 동맹 관계를 확인하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그 와중에.

한국은 소외되었다.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으나, 한국은 일방적으로 원조를 받는 상황이기에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재밌는 그림이었다. 한국이라는 작은 땅덩어리에서는 서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세계 전체에서는 그런 한국이 지방의 처지로 전락했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 대통령 김정태는 공개적으로 이런 발언을 내뱉었다.

“대한민국에는 나라를 지킬 인재가 필요합니다. 승급 시험장에서 스스로의 실력을 인정받는다면, 그 실력에 걸맞은 대우를 대한민국 정부가 약속드리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인재들의 의지를 절대 가벼이 여기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 국민을 위해. 모두 힘을 보태 주십시오.”

대재앙이 코앞에 들이닥쳤을 때.

매번 반복되는 일이었다.

대통령의 발언에 일시적으로 승급 지원자의 숫자가 늘어났고, 오늘도 아침이 밝자마자 시험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단순히 애국심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대통령의 발언이 심금을 울렸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대재앙 특수라는 특별 기간을 공략했다.

이 시기.

헌터들의 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다른 나라들도 적극적으로 귀화(歸化)를 추진하는 만큼, 대재앙 특수야말로 본인을 비싼 값에 팔아넘길 수 있는 기간이었다.

그래서 6번째 대재앙을 일부러 기다린 일부 헌터도 있었다.

계속해서 몰려드는 지원자들.

사람들을 차례로 받아 주던 승급장 직원은, 순간 수십 장의 지원서를 받아 들고는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이분들이 한 번에 지원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한 단체.

그들의 집단 지원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희망 등급이 높은 경우는 없었다.

‘이게 무슨.’

[D-C등급 희망 12명]

[C-B등급 희망 18명]

[B-A등급 희망 1명]

총 31명.

상부에서는 C등급 이상만 되더라도 어떻게든 붙잡으라고 말했는데, 승급 희망자들 전원이 C등급 이상을 지원했다.

만약 이대로 모두가 승급에 성공한다면? 단언컨대 역대급 사건이었다.

C등급은 그렇다 치더라도, B등급이 무려 18명이 동시에 탄생했다는 소식은 서울을 발칵 뒤집을 것이다.

그리고.

‘A등급도 있어. 지난 한 달간 새로운 A등급이 단 한 명도 탄생하지 않아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시기라는 평가가 있었지. 이건 엄청난 특종이야. 그런데 하필 인천 정부 소속이라니. 상부에서는 인천 정부는 탈락하도록 유도하라고 말했는데, 지금과 같은 시기에 이런 실력자들을 탈락시키는 건 너무나 큰 손해야.’

딜레마였다.

인천 정부.

한 달간 그들을 향한 압박은 더욱 심해졌다.

국내 정세에서 외톨이라고 불릴 정도였는데, 하필이면 인천 소속이라는 사실이 눈에 밟혔다.

어쩌면.

그들은 최후의 발악으로 승급 시험에 지원했는지도 모른다.

성공 확률은 희박하지만, 이렇게라도 인천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말이다.

직원이 말했다.

“일단 이대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A등급 승급의 경우에는 시험을 담당해 줄 분과의 스케줄을 조율해야 하기에, 오늘 바로 시험을 진행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일단 돌아가시면, 금방 시험 일정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

직할대의 승급 지원.

곧바로 문태준에게 알려졌다.

직원은 인천 소속을 떠나 그들을 회유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문태준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발악하는구나. 병신 같은 새끼들.”

웃었다.

지난 한 달.

인천을 빡빡하게 압박하는 상황에서, 김준혁이 비밀리에 육성한 직할대의 존재는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대부분 6년 전의 인연으로 김준혁에게 충성을 맹세한 존재들.

그때만 하더라도 그리 대단한 실력자가 아니었는데, 열심히 노력한 끝에 직할대장인 이태성이 B등급으로 승격한 것을 확인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조사해도, 그들은 이태성을 제외하고는 특별하지 않았다.

‘지방에서는 충분히 대단한 실력자겠지. 하지만 B등급도 되지 않는 고만고만한 녀석들로는 궁지에 몰린 인천의 상황을 뒤집을 수 없어. 이건 허세에 불과해. 한두 명이라도 승급에 성공한다면, 대재앙을 대비하는 상황에서 인천도 봐달라는 퍼포먼스. 내가 파악한 직할대의 실력으로는 그 이상 승급에 성공하지는 못하겠지. 이태성의 A등급 승급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정보에 기반한 판단이었다.

우스웠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악하는 모습에, 금방 자신이 바라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천은.

고개를 숙여야만 할 것이다.

그들의 반란은 현실을 외면한 이상에 불과했다.

‘다 로만 드미트리, 그 사기꾼을 믿은 탓이겠지. 지난 한 달간 로만 드미트리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어. S등급의 실력자라면 대재앙을 준비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본인의 위치를 어떻게든 부각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려고 했겠지. 그런데 가만히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을 의미하지. 실력이 거짓이라는 것. A등급일 수는 있어도, 중앙 정부의 압박을 이겨 낼 정도의 실력자는 아니야.’

참 같잖았다.

그런 존재가 감히 자신에게 망언을 내뱉다니.

인천은 그대로 두어도 자멸하겠지만, 문태준은 인천을 본보기로 확실히 짓밟고자 했다.

수하에게 명령했다.

“인천 정부의 지원자들은 모두 해당 등급의 상위 실력자들로 배정하라. 그리고…….”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인천이 중앙 정부가 주관하는 승급 시험장에 나타난 것은, 그들의 위기를 해결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벼랑 끝에서 밀어 버릴 악수(惡手)였다.

“시험을 핑계로 모두 죽여라.”

직할대의 전멸.

기대감이 부풀었다.

그런 참담한 결말이 공개되었을 때, 문태준은 인천을 찾아가 그들의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할 것이다.

그건 참.

재밌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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