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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평범하게 살 수 없다-487화 (487/615)

487화 트러블 (4)

사건은 며칠 전.

문태준과의 만남 직후로 돌아가야 했다.

로만 드미트리의 명령대로 김준혁은 직할대를 불러들였고, 그들은 영문을 몰라 어수선한 분위기를 보였다.

직할대는 정규군(正規軍)과는 다르다.

김준혁이 개인적으로 육성한 사병이었고, 인원은 30명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았으나 이태성을 필두로 인천 최고의 집단임은 분명했다.

그러한 평가가.

그들을 불러들인 이유였다.

인천이 새롭게 탄생하는 지금, 내외부적인 평가들을 바꿀 필요성이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김준혁 시장에게 나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인천을 다스릴 것이며, 그 시작으로 조금 전 중앙 정부와의 단절을 택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중앙 정부에 그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는 대신, 그들이 요구하는 의무와 책임을 다할 필요가 없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당황했다.

중앙 정부와의 단절.

그것은 설명을 듣지 못한 부분이었다.

아직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조차 낯선 상황에서, 그들은 본능적으로 김준혁의 눈치를 살폈다.

“인천은 격변할 것이다. 그 변화의 흐름에서, 김준혁 시장이 공을 들여 만들어 낸 너희 직할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다. 직할대의 수장 이태성은 B등급 헌터이고, 그 밑에 직할대원 전부는 C~D등급. 일개 조직으로서 어떤 이들은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겨우 그 정도의 전력으로는 인천의 위험을 막아 낼 수 없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 서울의 중형 길드 하나 감당하지 못할 전력으로, 인천의 안전을 운운한다는 것이 말이야.”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순간.

신랄한 비난에 직할대원 하나가 발끈했다.

사전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들은 김준혁으로서는, 주먹을 움켜쥐면서도 나서지 않았다.

직할대의 반발?

당연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그 사실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자존심을 들쑤셨다.

“말이 심하다라. 너는 너의 존재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대한민국 전체를 두고 비교한다면 저희가 아직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6년 전 직할대라는 이름 아래로 모인 직후, 저희는 매일같이 피땀을 흘리며 훈련에 임했습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사람들이 모두 1~2단계씩 승급했고, 인천에서는 저희에 비할 조직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저희의 노력을 깎아내리지 마십시오.”

“그래, 노력했겠지. 문제는 너희가 얼마나 노력했든, 그 결과는 보잘것없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삶.

전생과는 달랐다.

전생의 로만 드미트리는 강해질 시간이 필요했고, 크리스와 케빈 같은 사람들을 받아들여 군대를 형성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전생의 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에, 사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특정 세력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혼자로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인천을 받아들인 이유는, 로만 드미트리는 이제 공생(共生)을 바라기 때문이었다.

목적이 같다면.

같이 나아갈 것이다.

전생에 삶의 의미를 되찾았던 것처럼,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기를 바랐다.

‘직할대를 비롯한 이 세상의 사람들은 아직 내 기준이 익숙하지 않다. 그로부터 생겨나는 간격은 불신을 만들어 낼 것이고, 대재앙을 막아 내겠다는 내 목적에 잡음을 일으키겠지.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길 바라나, 그렇다고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그런 존재들을 바라지는 않는다.’

시작점에 선 지금.

현실을 보여 줄 필요성이 있었다.

앞으로 인천을 다스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맹목적인 관계를 형성할 압도적인 차이를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직할대를 불러들였다.

그들을 도발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반발심이 일어나게 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너희의 노력이 진짜라면 증명할 기회를 주겠다. 지금부터 직할대 전원이 날 공격해라. 만약 단 한 번이라도 유의미한 공격을 성공시킨다면, 나는 너희를 인정하고 독자적인 권리를 허락하겠다.”

* * *

예상 밖의 발언이었다.

직할대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김준혁이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는 상황에서, 그를 동시에 공격하는 것은 이성이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비겁하지 않은가.

직할대장 이태성 또한 말을 아끼자, 로만 드미트리가 차갑게 말했다.

“스스로를 증명할 용기조차 없다면 직할대는 오늘부로 해체할 것이다. 1분 주지. 그 안에 스스로를 증명하라.”

“……씨발.”

직할대원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해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처음에 로만 드미트리의 발언에 반발했던 직할대원이, 아직 망설이고 있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 말, 후회하지 마십시오.”

스릉.

검을 뽑았다.

이제는 낙장불입(落張不入)이었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에, 직할대원은 땅을 박차며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팟.

타타타탁.

빨랐다.

순식간에 로만 드미트리와의 거리를 좁혔고, 로만 드미트리를 해하지는 않을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상대는 전조 현상을 홀로 해결한 실력자다. 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라면, 유의미한 공격을 한 번 정도는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툭.

콰당!

직할대원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분명히 공격이 먹혔다고 생각했는데, 땅과 하늘이 뒤집히더니 그대로 균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썅.”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로만 드미트리가 다리를 걸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 그때부터는 이판사판이었다.

콰르르르릉.

스킬을 발동했다.

기본적인 스킬로 유명한 대시로 공간을 파고들었고, 공격 스킬을 연달아 퍼부으며 로만 드미트리를 밀어붙였다.

이제 다치고 말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로만 드미트리는 내뱉은 말을 지켜야 할 것이고, 거침없이 몰아붙이는 직할대원의 모습에 동료들이 초조한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훅.

짜악-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직할대원의 뺨이 날아갔다.

이를 악물며 다시 검을 휘두르자, 이번에는 반대편 뺨이 날아갔다.

짜악-

일방적이었다.

전혀 먹히지 않았다.

직할대원은 뺨이 크게 부풀었고, 대여섯 번 뺨을 얻어맞자 다리가 풀리는 모습을 보였다.

한 번의 공격?

어림도 없었다.

참담한 광경에 직할대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들은 이태성의 눈치를 살폈지만, 무덤덤한 표정의 이태성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김준혁이 말했다.

“나는 너희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상대가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자존심 따위는 버려라.”

그 말이.

심적인 제한을 풀어 버렸다.

이태성은 김준혁과 시선을 마주치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쌍검을 뽑아 들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 * *

이태성은 말했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겠다는 결정과는 별개로.

자신은 김준혁의 사람이라고.

로만 드미트리의 오만방자한 발언에, 김준혁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지금부터 나를 중심으로 협공(挾攻)한다.”

“알겠습니다.”

챙.

챙챙.

직할대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들의 눈빛이 변했다.

이태성은 직할대의 정신적인 지주였고, 그들은 인천이 공격받을 것을 대비해서 항상 협공하는 훈련을 진행했었다.

지금 이태성의 명령은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미. 30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다가가더니,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팟.

콰르르르르릉.

사방으로 퍼졌다.

뒤로 돌아가는 사람, 양쪽을 파고드는 사람.

정면에는 이태성이 있었다.

이태성은 쌍검의 마력을 폭발시키며, 로만 드미트리를 단번에 베어 버리고자 했다.

‘쇄도(殺到).’

파파파팟.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는 엄청난 실력자.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는 이태성의 모습에, 로만 드미트리는 맞닥트리기 직전까지도 검을 들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이들을 상대로 검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지난 한 달간 이 세상의 기준을 공부하며, 이태성과 같은 이들이면 충분히 강자로 분류되는 실력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뿐.

자신의 기준에서는 부족했다.

장담컨대, 이들은 크리스와 케빈도 아닌 드미트리의 일반 병사 수준에서 정리할 수 있는 존재였다.

고로.

콰직.

“……?!”

그대로 내리쳤다.

주먹질 한 번에 이태성의 검이 산산조각이 났고, 충격적인 광경에 이태성이 눈을 부릅떴다. 그로서는 예상한 그림이 있었을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무기나 스킬을 사용하는 등 상식의 영역을 생각했건만, 투박한 주먹질로 자신의 공격을 받아칠 줄은 몰랐다.

이를 악물었다.

나머지 검 하나로 로만 드미트리를 공격하려는 순간, 마나의 폭풍을 뚫고 복부에 충격이 일었다.

빠악!

“컥.”

숨이 턱 막혔다.

복부에 작렬하는 주먹에, 이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놓치고 말았다. 평소에 독종이라고 불리던 이태성의 의지로도 버틸 수 없는 충격이었다.

정신이 완전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귓속으로 직할대원들의 비명이 들렸다.

“악!”

“크악!”

협공?

이미 의미를 상실했다.

선두에서 이태성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공격이건만, 이태성이 시작부터 제압당해 버리자 달려드는 족족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로만 드미트리는 여전히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스킬을 사용한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 냈고, 곧바로 이어지는 반격에 직할대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압도적이었다.

강한 줄은 알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이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콰득.

“컥.”

그대로 무너지는 마지막 직할대원.

끝이었다.

30명의 인원이 모두 쓰러진 상황에, 로만 드미트리는 차가운 얼굴로 이태성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끝인가.”

* * *

이태성은 넋을 잃었다.

전의를 상실했다.

겨우 1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그는 로만 드미트리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았다.

괴물이었다.

B등급의 실력자라고 불리는 자신조차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

충격을 받은 것은 김준혁도 마찬가지였다.

‘인천 사람들에게 로만 드미트리는 이방인이다. 특히 그 성향이 가장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직할대를 상대로,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을 따라야 하는 이유를 무력으로 증명해 냈다. 대체 어떤 과거를 지닌 사람이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궁금했다.

로만 드미트리.

그는 절대 일반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을 다룬 경험이 있어야만, 이렇게 과감하고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신음만이 들려오는 공간.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이것이 너희의 현실이다. 너희는 인천이라는 작은 우물 안에서 스스로가 강하다고 자위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다. 미리 경고하지. 앞으로 내가 다스릴 인천에서 너희와 같이 나약한 존재는 허락되지 않는다. 대재앙이 들이닥쳤을 때 힘이 약하다는 핑계로 절망적인 현실을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직할대를 탈퇴해도 좋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간의 노력?

피와 땀으로 물든 시간?

의미가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보여 준 단 한 번의 싸움이, 직할대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증명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대재앙을 막아 내지 못할 힘이라면, 아득바득 발악한다고 한들 헛된 노력에 불과했다.

“인천은 앞으로 격변의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새로이 탄생할 인천에서 너희가 직할대의 일원으로 존재하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한 달의 시간 동안 각각 1단계씩 승급하는 결과를 가져와라. 실패하는 사람은, 현재의 지위를 막론하고 직할대에서 강제로 탈퇴시킬 것이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태성이었다.

그는 B등급이다.

대한민국에 채 30명도 되지 않는 A등급을, 한 달이라는 단시간에 승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말뿐인 명령이라면.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이 자리가 마무리되고, 헌터 데이터베이스에 ‘강민호’라는 이름을 검색해라. 아마 이 자리에는 강민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몇몇 있겠지. 강민호는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명백하게 E등급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직할대원 중 그 누구도, 그보다 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지. 강민호.”

“예?!”

강민호가 화들짝 놀랐다.

그로서는 영문을 몰랐다.

직할대를 무너트리는 모습에 그저 감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3일을 주겠다. 2단계 승급으로 내가 한 말을 증명하라.”

불가능의 영역.

그것을 부정하는 예시로, 로만 드미트리는 강민호를 내세웠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