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화 트러블 (1)
중앙 정부 조사관 문태준.
그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인천의 일을 마무리하고 대전의 일을 처리하는데, 갑작스럽게 동료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태준아.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이번에 인천에서 전조 현상이 발견되었다던데. 올해 벌써 두 번째 전조 현상이라서 인명 피해가 대단한 줄 알았는데, 인천 정부에서 빠르게 대응해서 초기에 제압했어. 거기까지는 인천 정부의 공로를 칭찬해 줄 일이지만, 소문에 의하면 사실 개미굴을 토벌한 사람이 인천 정부가 아니라는 거야.”
“……그럼 누가 토벌한 건데?”
문태준이 서류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전조 현상.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앙 정부가 나서지도 않았는데 전조 현상을 해결했다면, 일련의 상황에 고수가 개입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지방의 고수를 영입하는 것은 조사관들의 일.
혹시라도 성과를 올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태준은 피곤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관심을 보였다.
동료가 말했다.
“놀라지 마. 개미굴 하나에 여왕개미가 무려 수십 마리가 나타난 사건인데, 단 두 명이 개미굴에 들어가서 그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렸어. 그래서 지금 난리도 아니야. 서울의 유명 길드들이 미지의 인물을 영입하겠다고 인천에 접촉하는 상황이고, 지금 상부에서도 이와 관련한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야. 너도 알잖아. 그 정도 스케일이면 최소 A등급, 어쩌면 새로운 S등급이 탄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거. 백의의 마법사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미지의 인물이 S등급임이 밝혀지는 순간 아주 난리가 나겠지.”
놀랐다.
S등급의 가능성.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힐 사건이었다.
생각해 보니, 조금 전부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문제는, 이 미지의 인물 중 하나가 레드문을 멸망시킨 범인이라는 거야. 이거 네가 담당한 사건이잖아. 분명히 인천 정부의 소행으로 마무리했는데, ‘미지의 인물’과 동일한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이 레드문 멸망 직전에 레드문을 방문했다는 목격담이 있었어. 만약 그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새로운 인물을 사전에 밝혀내지 못한 네가 문책을 당할 가능성도 있어. 어쨌든 레드문 사건의 담당자는 바로 너였으니까.”
순간.
문태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때부터는 동료가 뭐라고 떠들든 들리지도 않았다.
“미지의 인물 이름이 드미트리 성을 사용하는 외국인이라던데. 웃기지 않냐? 요새 같은 시대에 드미트리를 이름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니. 뭐, 그 실력이면 그럴 만한 자격은 있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인천 시장 김준혁.
그는 분명히 레드문 멸망이 인천의 소행이라고 했다.
그런데 진범은 따로 있었고, 그 진범이 인천의 전조 현상을 해결했다면 단 하나의 결론이 나왔다.
“김준혁, 이 개새끼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속였다는 것.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지금은 이렇게 앉아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 * *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할 말이건만, 강민호는 아침부터 벌어진 일에 세상이 변했음을 느꼈다.
우우우웅.
[서울의 천검(天劍) 길드입니다. 로만 드미트리 님과 강민호 님이 개미굴 토벌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천검 길드는 항상 인재를 영입하길 바라며, 이번 사건을 통해 실력을 증명하신 두 분을 천검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천검이 얼마나 대단한 길드인지는 강민호 님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3대 길드이며, 저희는 두 분을 위해서 어떤 조건이든 맞추어 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답장 부탁드리겠습니다.]
[S 방송사입니다. 강민호 님 되십니까? 이번 개미굴 토벌 사건을 취재하고자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길드입니다.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개미굴 토벌이 사실이라면, 두 분에게 수십억의 연봉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이건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며, 혹시라도 등급 심사를 통해서 본인의 실력을 증명한다면 그 이상도 가능합니다.]
빗발치는 연락.
휴대폰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문제의 시발점은 헌터 데이터베이스였다.
정부를 통해서 의뢰를 받고 활동하는 헌터들은 이 헌터 데이터베이스에 개인 연락처를 등록해 두는데, 개미굴 사건이 이슈되면서 로만 드미트리와 강민호의 신상이 퍼져 나갔다.
문제는 로만 드미트리는 아직 따로 연락처가 없었다.
당연히 강민호에게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전산상으로는 E등급 헌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거액의 보상을 제시했다.
일단 만나야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만나야, 무소속의 인재들을 확보할 수 있음을 모두가 알았다.
난리였다.
사실 그로 인해서 현재 자신의 빌라에 머물지도 못했다.
사람들이 빌라로 몰려드는 모습에 황급히 도망쳤고, 로만 드미트리와 그는 인천 정부에서 마련해 준 오피스텔에 있었다.
자신과는 달리 로만 드미트리는 담담했다.
자신은 생소한 경험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로만 드미트리는 영입을 희망하는 이름들을 들어 보지도 않았다.
“확인할 가치도 없다.”
간결한 대답.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강민호만 애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난리를 피우는지 이해가 돼. 하루아침에 레드문을 멸망시키고, 개미굴의 전조 현상을 해결한 고수. 그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개인이라면, 사람들은 당연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 아니, 소속되었다 할지라도 어떻게든 빼앗으려고 할 거야.’
그때였다.
[김준혁: 연락 부탁드립니다.]
한 통의 문자.
기다리고 있던 일이다.
강민호가 로만 드미트리를 찾아가 말했다.
“인천 정부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중앙 정부의 조사관이 이번 일로 인천 정부를 방문했답니다.”
* * *
인천 시장의 집무실.
다섯 인물이 자리했다.
로만 드미트리, 김준혁, 문태준이 앉아 있었고, 뒤로는 이태성과 강민호가 서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문태준은 시작부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준혁 시장님. 솔직히 말해서, 이번 사건에 대한 소문을 듣고 화가 정말 많이 났습니다. 저는 레드문 사건에서 김준혁 시장님의 진술을 믿었습니다. 시장님과 같은 분이 스스로 레드문을 멸망시켰다고 말했기에, 특별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상부에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서울을 떠나기 전.
상부에 연락했다.
상부는 레드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만 드미트리를 영입하라고 못을 박았다.
그래서 일부러 지난 일을 들쑤셨다.
김준혁의 거짓말은 물고 늘어지기 좋은 주제였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진범은 인천 정부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로만 드미트리 님이라니요.”
“따로 자료를 보내 드린 것처럼, 그 사건은 정당방위였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만약 처음부터 이번 사건을 솔직하게 말씀하셨다면, 로만 드미트리 님의 정당방위는 인정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인천 정부는 레드문 사건을 덮으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새로운 진범이 밝혀진 상황에서 인천 정부가 제시한 그 어떠한 증거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을지 누가 압니까? 그렇다면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정당방위에 따른 살해가 인정되는 세상이라지만, 적어도 이 대한민국에서 일방적인 살인은 대가가 따릅니다.”
분위기를 주도했다.
험악하게 몰아가며, 김준혁을 압박했다.
“레드문은 앞으로 들이닥칠 대재앙에 필요한 귀중한 인재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루아침에 죽어 버렸습니다. 정당방위라고는 하나, 우리는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이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벌은 불가피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사건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처벌을 받든, 아니면 그에 따른 충분한 대가를 치르면 됩니다.”
충분한 대가.
그것이 진짜 속내였다.
김준혁은 문태준의 의도를 알면서도 대화를 따라가 주었고, 문태준은 술술 자신의 의도를 밝혔다.
“대한민국에서는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면죄(免罪)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 일하십시오. 무의미하게 죽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세상을 위한 일을 행한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더는 이번 문제를 캐묻지 않을 것입니다.”
* * *
뻔한 시나리오였다.
문제를 제기하고.
면죄부를 제시하는 방법.
대한민국 정부가 말을 들지 않는 고수를 옭아매는 방법이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시나리오에, 김준혁이 차분하게 반박했다.
“그건 부당한 처사입니다. 저희가 제시한 자료에는 CCTV 영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재판대에 올린다면, 로만 드미트리 님의 일은 명백하게 정당방위라는 사실이 인정될 겁니다.”
“……김준혁 시장님.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인데, 이미 로만 드미트리 님과 모종의 관계를 맺으신 겁니까?”
문태준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시종일관 반박하는 김준혁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준혁이 말했다.
“예. 인천은 로만 드미트리 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재밌는 말씀이네요. 독자적인 명령 체계를 부여했다고는 하나, 중앙 정부 밑에 존재하는 인천 정부가 일개 개인을 따르겠다니. 그건 명백하게 반란 행위로 간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요.”
문태준이 이죽거렸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는 채찍질이 필요했다.
김준혁과 로만 드미트리의 관계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대한민국은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실력자를 원했다.
조용히 지켜보는 존재.
그를 사납게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인천의 현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중앙 정부는 앞으로 인천과의 관계를 되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올해에만 전조 현상이 벌써 두 번째고, 전 세계적으로 전조 현상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5번째 대재앙이 발발하고 6년. 6번째 대재앙이 찾아올 사이클은 충분히 충족했습니다. 대재앙이 코앞입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이 대단한 고수라고 한들, 한 사람만 믿고 대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번 일.
상부에 전권을 일임받았다.
문태준의 발언에는 거침이 없었다.
“불가능합니다. S등급이고 뭐고, 일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에 모두가 ‘소속’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대한민국 정부는 앞으로 찾아올 대재앙에서 인천 정부를 배제할 것입니다. 그동안은 서울의 안전을 확보하고 인근 지역부터 차례로 도움을 주었다면, 지금부터는 인천을 배제하고 다른 지역을 먼저 도와줄 것입니다. 물론 아예 외면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부산, 포항 같은 끝자락에 있는 지역의 위험까지 모두 돌보고 나서 뒤늦게 인천을 찾아갔을 때, 인천이 과연 대재앙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협박이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
그들의 그늘 아래 존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에, 사람들은 중앙 정부의 말을 어길 수가 없었다.
문태준이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머리가 있다면 생각이란 걸 하십시오.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마시고.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지, 김준혁 시장님과 같은 분이라면 잘 아시지…….”
“끝입니까?”
순간.
로만 드미트리가 말을 끊었다.
지금까지 지켜만 보던 로만 드미트리의 개입에, 문태준은 의문스럽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웃었다.
중앙 정부의 반응.
기다렸단 바다.
판을 뒤흔들고, 로만 드미트리는 이와 같은 자리가 마련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합시다. 앞으로 중앙 정부와 인천 정부는 별개의 영역인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중앙 정부의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일 바에, 인천은 앞으로 찾아올 대재앙에서 중앙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