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8화 (448/615)

448화 마계 정벌 (3)

마계 정벌.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단어였다.

크리스의 발언을 한참이나 되새기던 이사벨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마계를 정벌하기 위해서 차원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예요?”

“그렇습니다.”

황당했다.

마계를 정벌하겠다니.

자신은 그동안 마계와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 발악했건만, 로만 드미트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론을 내렸다.

‘로만 드미트리는 정말 마계 정벌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녀 또한.

동조해 주고 싶었다.

마계 정벌이라는 이상적인 미래를 위해, 자신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의지를 불태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계를 정벌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목적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의지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불가능해요.”

단호한 대답이었다.

크리스를 바라보며 한 그 말에, 주변을 정리하던 병사들의 시선이 이사벨에게 집중되었다.

의도적이었다.

크리스를 포함한 이들 모두에게, 그리고 이들의 명령권자인 로만 드미트리에게 진실을 말했다.

“제가 마계에서 아득바득 발악하며 얻은 결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마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곳 마계에는 마계를 다스리는 마왕과 그를 모시는 세 명의 군단장이 존재해요. 방금 쓰러트린 3군단장 바벨은 마물 출신의 군단장이지만, 그 위로는 태생부터 귀족이었던 괴물들이 버티고 있어요. 사실 그런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바벨을 압도적으로 쓰러트린 로만 드미트리 님이라면, 상위의 군단장들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겠죠. 하지만 마왕은 달라요.”

마왕.

처음 그의 존재를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 이사벨은 숨이 막힐 듯한 공포를 느꼈다.

그는 특별했다.

마계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혼란스러운 시기에, 마왕은 절대 굴복하지 않는 마계의 악마들을 모조리 굴복시켰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당시에 마물에 불과했던 바벨은 마왕의 시선에 벌벌 떨었고, 그와 마찬가지로 대혼란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악마들이 마왕을 신으로 모시며 고개를 조아렸다.

마계가 통일되었다.

이사벨은 마물의 기억을 읽었고, 그날의 역사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마계의 기준은 인간의 세계와는 달라요. 마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 중에 제일 강하기에 마왕의 칭호를 얻은 것이 아니라, 그들 전부가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 마왕의 존재를 받아들였어요. 마계 정벌은 그런 존재를 쓰러트려야 한다는 의미예요. 저 또한 로만 드미트리 님을 믿어요. 짧은 시간에 대륙을 정벌한 무력이라면, 분명히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힘을 보여 주시겠죠.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신뢰의 영역이 아니에요. 마왕의 강함을 알고도, 우리가 적들에게 유리한 환경에서 싸울 필요가 있느냐죠.”

가슴이 아팠다.

인간들이 자신이 바라던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는데도, 그들의 결단이 틀렸다고 말하는 현실은 절망적인 기분을 들게 했다.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진심으로 인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비참한 현실일지라도 제대로 말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적어도.

마계 정벌은 아니었다.

이곳에서의 전쟁은, 전적으로 인간들에게 불리했다.

“우리는 지상계로 돌아가야만 해요. 지상계 또한 마계와의 동화로 적들이 온전한 힘을 발휘한다지만, 그래도 신의 축복 아래에서 적들의 공격을 맞받아칠 수 있어요. 그러니 선택하세요.”

고개를 돌렸다.

그 끝에는 로만 드미트리가 있었다.

“만약 선택을 되돌리고자 한다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지금뿐이에요.”

* * *

성녀 이사벨.

그녀의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충분히 일리가 있었고, 로만 드미트리도 그녀의 말이 무조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사벨. 우리는 이미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마계 정벌이라는 목적을 쉽게 생각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왕은 강하겠지. 우리는 진실을 알고도 선택한 것이다.”

병사들 모두.

표정에 동요가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했다.

마계에 도사리고 있는 적들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단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그런데도 병사들이 결단을 내린 이유는 명확했다.

적지(敵地)에서의 전쟁은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하며,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인간들은 완전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뿐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를 믿기에, 병사들은 기꺼이 인류의 미래에 목숨을 걸었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이사벨이었다.

마계의 진실을 말하면 설득될 줄 알았는데, 담담한 사람들의 반응에 그녀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선택을 되돌릴 수 없어요.”

우려의 목소리였다.

이사벨은 항상 최악을 걱정했다.

그렇기에 마계행을 택했던 것이고,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이 모두 죽어 버린 지금은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다.

단순히 분열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다.

조금의 위험 요소라도 있다면, 대세가 어떻게 되든 간에 자신은 위험성을 경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을.

다들 모르지 않았다.

동조하지만 않을 뿐, 사람들은 그녀의 희생을 기억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나는 그동안 투쟁의 역사를 살아왔다. 바르코도, 베네딕트 후작도, 발할라도, 크로노스도. 그들과 전쟁을 벌일 당시에는 모두가 불가능한 상대로 여겼지만, 결단을 내린 이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번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믿는다. 네게 묻겠다. 내가 3군단장을 상대할 때, 너는 내가 승리하리라고 믿었나.”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아는 바벨은 한 군단을 이끌 만큼 강력한 존재니까요.”

“너의 우려는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바벨을 쓰러트렸다. 나를 따르는 이들은, 내가 바벨을 쓰러트리라는 확신을 지니고 적들을 물리쳤다. 이사벨. 네가 두려워하는 존재들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니, 네게 필요한 건 나를 신뢰하는 믿음뿐이다.”

단언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마왕의 진실을 듣고도, 로만 드미트리는 패배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너의 숭고한 희생은 인정하나, 우리의 결단에 네가 개입할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선택하라. 성녀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우리에게 협력할지, 아니면 한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볼 것인지.”

그 말에.

이사벨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했다.

* * *

뒷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처음이었다.

인류의 명운이 걸린 상황에서, 이것이 너의 영역이 아니라고 말하는 상황이.

“이사벨, 너만 믿는다.”

“성녀님이시여, 저희에게 정답을 알려 주십시오.”

“여왕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사람들 모두.

이사벨만 바라보았다.

성녀이기에, 여왕이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인간 이사벨로 바라보지 않았고, 모든 문제의 해답을 그녀에게서 찾았다.

그래서 로만 드미트리의 말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명운이 걸렸는데도 자신이 개입할 여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스스로가 원한다면 방관자로서 남아도 좋다고 말했다.

문득.

레오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성녀로서의 짐을 내려놓는다고 한들, 인간은 언제나 그랬듯 답을 찾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새로운 정답을 찾았구나. 로만 드미트리를 따른다면, 크로노스와 발할라를 무너트렸듯 마왕조차도 감당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 레오의 말이 옳았어. 내가 아닐지라도 내 자리를 대체할 사람은 존재하며, 로만 드미트리는 그 역할을 충분히 이행하고도 남을 사람이야. 나는 그처럼 행동할 수 없어. 마왕과도 같은 미지의 존재를 상대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내뱉을 만큼 나는 강하지 않아.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마계의 존재를 언급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는 그 존재를 감당할 방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게 현실이었으니까.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기에 외면했고, 마계를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재해(自然災害) 정도로 생각했다.

루나는 그렇게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이사벨을 따르는 사람들만이 살아가는 세상이었고, 이사벨은 단 한 번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는 달랐다.

사람들의 신뢰를 끌어냈다.

크로노스를, 발할라를 무너트리면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자신을 따른다면 그 어떤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저런 자신감일지도 몰랐다.

벼랑 끝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일지언정, 지도자의 자신감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신께서는 알고 계셨던 거야. 어떠한 위험에도, 로만 드미트리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참.

머릿속이 복잡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는 개인의 목적을 추구할 뿐, 인류를 위해서는 희생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가 만약 신탁의 주인공이라면, 마계와 충돌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마계는 너무나도 위협적인 적이기에.

인류가 궁지에 몰리기 이전까지는, 절대 스스로가 마계와 전쟁을 벌이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오산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대담했다.

마계를 적으로 간주하자마자, 위험을 외면하기는커녕 대담하게 마계를 정벌하는 결단을 내렸다.

믿고 싶었다.

항상 정답을 말해 주지 않는 신보다도.

눈앞에 보이는 이 존재가, 정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랐다.

‘신이시여. 로만 드미트리가 정녕 당신이 기다려 온 신탁의 주인공이라면, 저는 지금부터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가슴이 시키는 일을 행하겠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겠습니다.’

침묵은 길었다.

사람들이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에, 어떤 선택을 내리든 사람들은 그녀를 응원하고자 했다.

이사벨이 말했다.

“같이할게요. 로만 드미트리 님을 따라, 마계의 악마들을 무찌르고 평화를 되찾고 싶어요.”

결단을 내렸다.

단호히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더는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 * *

상황이 정리되었다.

뜻이 모였다.

이사벨의 합류에, 대륙 연합군의 수뇌부들은 앞으로의 행보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사벨 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벨은 마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그녀의 정보를 토대로 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었다.

“마계는 지상계와는 구조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에요. 세상을 짙게 물들인 보랏빛은 어둠의 마력에 완전히 오염되었음을 뜻하며, 그로 인해 일반적인 동식물들이 자랄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 버렸어요. 그리고 그것이 마왕이 지상계를 점령하고자 하는 이유기도 해요. 수명이 다한 이 세상이 멸망해 버리기 전에, 다른 차원을 흡수하여 마계의 수명을 늘리려는 의도인 것이죠.”

차원의 규율.

그것을 무분별하게 어긴 대가였다.

만약 알렉산드르가 계속해서 존재했다면, 지상계 또한 언젠가는 마계와 같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아직 저조차도 마계에 얼마나 많은 마물이 존재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어요. 확실한 것은 마왕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마계 정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그는 마왕성이라고 불리는 마계에 유일하게 남은 건축물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그곳까지 다가가는 건 불가능해요. 차원의 문이 열리는 순간 마왕은 우리들의 존재를 눈치챘을 것이고, 분명히 이곳으로 병력을 보냈을 거예요. 만약 인원이 적었다면 신성력의 힘으로 행적을 지우면서 이동하겠지만, 이만한 병력으로는 마왕의 시선을 피해 움직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이사벨이 그동안 마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흔적을 지우면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면.

소모전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수많은 마물이 들끓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머릿수로 그들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사벨로서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다.

만약 그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로만 드미트리가 마계 정벌을 결심하기 이전에 어떤 방법이든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그렇다고 따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신성력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마왕성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행적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방법이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로만 드미트리를 향하자, 담담하게 이야기를 듣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사벨의 말처럼 이번 마계행에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보다 마계의 존재들이 그에 대해 더 잘 파악하고 있겠지. 신성력으로도 흔적을 지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 하나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대략적인 그림은 정해 둔 상태였다.

간단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

“전면전(全面戰). 우리는 지금부터 맞닥트리는 적들을 모조리 도륙하며 마왕성으로 이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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