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4화 (434/615)

434화 통합 랭킹 (1)

1시간 전.

에드윈 헥토르가 드미트리를 방문했다.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예의를 갖춘 에드윈 헥토르는, 지켜보는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발언을 내뱉었다.

“황제 폐하. 이번에 개최되는 랭킹전에, 마법사들도 참전할 기회를 주십시오.”

랭킹전!

현재 모두의 관심사다.

과연 누가 우승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에드윈 헥토르의 참전 선언은 전혀 예상 밖의 발언이었다.

사실 이전에도 통합 랭킹을 논의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랭킹 순위가 명예를 가져다주면서부터, 마법사들은 한때 검사들의 영역에 욕심을 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마법사들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반대 의견에 부딪혀서가 아니라, 마법사들의 특성 때문에 생겨난 결과였다.

마법사들은 다수의 싸움에 강하다.

전장이 넓으면 넓을수록, 지형적인 이점이 확보될수록, 마법사들의 폭발적인 마력은 전장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랭킹전은 일반적인 전장과는 달랐다.

제한된 공간에서 검사와 근접 전투를 벌여야 하기에, 캐스팅이라는 한계가 존재하는 마법사들은 분명히 제약이 있었다.

물론 상위 마법사들은 제약을 뛰어넘는 실력을 보였으나, 굳이 제 무덤을 파서 마법사들의 위상을 떨어트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지배적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황제 폐하께서 직접 개최하는 이번 무대는 모든 사람에게 스스로를 증명할 수 절호의 기회입니다. 저는 마법사들에게도 그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한된 공간에서의 전투는 마법사들에게 유리한 여건은 아니나, 그렇다고 마법사들이 검사들보다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 청을 받아들여 주신다면. 지금부터 통합 랭킹은 제일의 검사를 결정하는 무대가 아닌, 황제 폐하를 제외하고 제일 강한 사람임을 증명받는 경쟁의 무대가 될 것입니다.”

에드윈 헥토르의 의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랭킹전의 위험을 감수하려는 이유는, 전쟁 이후에 헥토르 왕국의 행보가 진실을 말해 주었다.

헥토르는 천공의 마탑을 흡수했다.

에드윈 헥토르 본인이 대마법사일 뿐만 아니라, 그가 마법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거듭나면서 크로노스 제국에 터전을 두었던 마법사들이 상당 부분 헥토르로 향했다.

그것은 믿음으로부터 비롯된 현상이었다.

알렉산드르의 종으로서 마법사들의 실종 사건을 주도했던 천공의 마탑주가 에드윈 헥토르에게 당했기에, 그라면 마법사들의 안전과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에드윈 헥토르가 마법사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서, 마법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상황이 빠르게 변했다.

헥토르 왕국은 마법 전력이 급격하게 강해졌고, 사람들은 어느새 헥토르를 마도 왕국이라고 불렀다.

‘이번 랭킹전에 대륙 모든 국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드미트리를 논외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다음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서로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지.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가 경쟁하는 랭킹전의 무대를 통해 국가의 저력을 증명해 낸다면. 한때는 망국(亡國)이라 불리던 헥토르가, 마법 전력을 내세워 단번에 새로운 권력자로 등극할 수 있다.’

손바닥 위.

대륙의 판도를 올려놓았다.

에드윈 헥토르의 의도를 알고도 목적을 물었고, 에드윈 헥토르 또한 로만 드미트리가 의도하는 대로 본인의 목적을 확실하게 밝혔다.

이것은 새로운 판도를 위한 싸움이었다.

스스로를 증명해, 드미트리 제국의 앞날에 헥토르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재밌었다.

의도가 노골적이라고 한들, 로만 드미트리는 에드윈 헥토르의 도전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고로.

“에드윈 헥토르 왕자. 네 요청을 받아들이겠다.”

모두가 열을 올리는 축제의 무대에, 그야말로 기름을 들이부었다.

* * *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랭킹전이 통합된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일 때면 모두 랭킹전에 대해 떠들어 댔다.

“와, 마법사들이 참전한다니.”

“네 생각은 어때. 과연 마법사들이 상위 순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흐음. 힘들지 않으려나. 마법사들의 저력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대륙에서 알아주는 검사들이 모두 도전할 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어. 마법사들은 단 한 명의 존재가 수천의 적을 휩쓸어 버리는 자연재해와 같은 존재지만, 그것이 한 명의 검사를 압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 제한된 공간에서는 그 단점이 더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고.”

“그래도 에드윈 헥토르 왕자라면 몰라. 그분은 발할라 제국의 공격을 막아 낸 전력이 있잖아.”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얼굴을 붉히며 랭킹전의 미래를 예견했다.

확실한 것은.

마법사들의 참전은 흥행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마법사와 검사는 어떤 식의 대결을 보여 줄지, 그리고 현재 대륙 제일의 마법사로 거론되는 에드윈 헥토르가 어느 정도의 순위를 기록할지.

관심이 집중되었다.

어디를 가든 대륙 랭킹에 관한 이야기로 분분했고, 이야기는 가지를 뻗어 나가더니 새로운 주제로 직결되었다.

“어떤 나라가 최상위 랭커를 많이 배출할까?”

결과는 정해졌다.

1위는 드미트리의 것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사는 드미트리에 대항하는 다른 나라들의 저력이었다.

만약 최상위 10위권에 드미트리 이외에 절반 정도만 이름을 올릴지라도, 그러한 강자들을 보유한 국가들은 상당한 명성을 얻을 것이다.

마법사들의 참전은 대회를 더욱 재밌게 해 줄 요소에 불과했다.

사실 사람들이 처음 이번 무대에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드미트리와 다른 국가들의 대결 구도였다.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랭킹전 당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그 무렵.

사람들의 관심만큼이나, 다른 국가들은 폭풍전야(暴風前夜)의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 * *

그 시각, 크로노스.

이제는 크로노스 황제라고 불리는 조웰슨 크로이트를 필두로, 크로노스의 수뇌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수뇌부가 말했다.

“현재 파악한 정보대로라면, 크로노스를 포함한 모든 국가에서 최강의 전력을 준비시킨 상황입니다. 랭킹전은 이제 과거와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과거에 랭킹전은 알렉산드르가 크로노스를 위해 만들어 낸 시스템이었다면, 지금은 국가의 가치를 증명하는 경쟁의 무대와 같은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크로노스가 성과를 내야만 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헥토르가 변화를 맞이한 것처럼.

크로노스 제국 또한,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는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크로노스 황제가 말했다.

“크로노스는 대륙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戰犯國)이다. 그 전쟁으로 우리는 제국의 뿌리가 흔들릴 만큼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그 피해를 완벽하게 복구할 수 없기에 매일 살얼음판에서 살아가고 있다. 크로노스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번 대회에서의 성과가 필요하다. 크로노스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음을, 드미트리가 나아갈 미래에 크로노스가 충분한 가치가 있는 나라임을. 우리가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현실이 변했다.

한때는 대륙의 지배자였던 크로노스가, 이제는 벼랑 끝에서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막대한 피해.

천문학적인 전쟁 보상금.

그나마 로만 드미트리가 자비를 베풀었기에 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막아 낼 수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제국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랭킹전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에드윈 헥토르뿐만 아니라, 크로노스도 이날을 위해 사활을 걸었다.

“우리 쪽 대표들의 상태는 어떻지?”

“완벽합니다.”

크로이트 가문의 외가.

벨라트로 백작이었다.

그가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전쟁의 여파에 크로노스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제국의 저력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번 전쟁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새로운 얼굴들이 있습니다. 특히 그중 랭킹 중상위권이었다가 현재 6성의 경계를 허문 멘데스라면,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낼 것입니다.”

멘데스.

크로노스의 새로운 기대주였다.

그의 실력은 인정하나,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명심하라. 이번 무대를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로노스만이 아니다. 그들 모두를 짓밟아라. 사활을 걸어라. 우리는 이번 무대를 발판 삼아, 크로노스 제국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명을 받듭니다.”

“명을 받듭니다.”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날.

크로노스 제국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대회를 코앞에 둔 모든 국가에서 이와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 * *

결전의 날이 밝았다.

이번 대회의 룰은 간단했다.

드미트리, 카이로, 헥토르, 움베르토, 레드포드, 프랑크, 크로노스, 발할라 총 여덟 개의 나라가 대회에 참전하는데, 각국은 16개의 자리를 약속받았다.

검사와 마법사 할 것 없이 각국에서 16명씩을 선출해, 랭킹전의 결과에 따라 통합 랭킹 128위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드미트리가 절반 이상의 자리를 배정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판단에, 일단 최초의 통합 랭킹전은 기회를 균등하게 분배했다.

어차피 처음일 뿐이다.

128위의 랭킹이 정리되고 나면, 이후 1년간은 자유롭게 서로의 랭킹을 뺏고 빼앗기는 싸움을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통합 랭킹전이 열렸을 때.

그때는 각국에 확정된 자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128위를 차지한 랭커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우승자를 선별할 것이다.

최초의 대회.

드미트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정말 인산인해(人山人海)라는 말에 어울리는 상황에, 크로노스의 대표들은 주변 상황을 살폈다.

“다들 만만치 않아 보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확실히 각국이 이번 대회에 사활을 걸었다는 사실이 눈에 보입니다. 아마도 1라운드부터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우리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패배해서는 안 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리더는 멘데스였다.

몰락하는 크로노스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낸 6성 검사 멘데스는, 통합 랭킹전을 위해서 정말 미칠 듯이 훈련에 매달렸다.

사실 말만 다른 나라들을 인정할 뿐. 그는 패배할 자신이 없었다.

어떤 상대를 만난다고 한들, 반드시 상위 랭킹에 들어간다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다만.

“문제는 드미트리를 일찍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드미트리의 16인.

그중에는 크리스와 케빈도 포함되었다.

페르난도와 같은 굵직한 인물들은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참전을 포기했지만, 드미트리의 대표들은 그 누구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이 유일한 불안요소였다.

만약 1라운드에서 드미트리의 대표를 만난다면, 멘데스가 아무리 강한 검사라고 할지라도 하위권에 머물러야 할지도 몰랐다.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크로노스의 위상을 살려야 하기에, 만약 드미트리의 대표를 만날지라도 어떻게든 승리할 것이다.

‘제국은 태생부터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똑똑히 증명해주마. 크로노스는 반드시 최상위 16위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그때였다.

대진표가 발표되었다.

대진표는 추첨으로 진행되었고, 그 과정을 공정하게 밝혔다.

차례로 호명되는 이름.

어떤 이들은 환호를, 어떤 이들은 탄식을, 그렇게 감정들이 뒤얽히는 가운데 마침내 멘데스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18번째 경기 크로노스 제국의 멘데스.”

그리고.

“드미트리 제국의 케빈.”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멘데스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 * *

대진표 발표 이후.

멘데스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케빈을 상대한다는 생각에, 반드시 최상위 랭킹을 차지하겠다는 자신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필이면 케빈이라니.’

대륙 전쟁 전후.

케빈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드미트리의 악귀라는 별명으로 예전부터 위험한 존재로는 인식되었지만, 아레스를 쓰러트리고 그를 질질 끌고 다녔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레스도 홀로 발할라를 붕괴시킨 괴물이다.

그런데 그런 괴물을 집어삼킨 존재가, 바로 드미트리의 악귀였다.

그런 이유로.

모든 참가자는 공통적으로 두 존재를 만나지 않길 바랐다.

초반 라운드에 케빈과 크리스만 만나지 않는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해 볼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18번째 참가자 입장.”

마침내.

순서가 호명되었다.

긴장한 얼굴의 멘데스를 바라보며, 크로노스의 고위 귀족이 말했다.

“멘데스. 너에게 드미트리의 악귀를 이기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물론 승리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결과는 없겠지만, 설령 패배할지라도 네가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님을 모두에게 증명해 보여라. 그리고 약속하건대, 만약 승리할 경우 네 삶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그렇다면 겁쟁이처럼 머릿속으로 계산만 하다가, 크로노스 제국의 명성에 먹칠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케빈에 관한 생각은 소문일 뿐이다.

그를 직접 상대해 본 것도 아니고, 보통 전장에서의 소문은 부풀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알고 보니 아레스를 쓰러트린 일이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든지 말이다.

만약에 자신이 들었던 모든 소문이 사실이었다 할지라도, 새로운 경지에 들어선 멘데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걸음을 옮겼다.

날카롭게 벼려진 검을 든 채로,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저벅저벅.

맞은편에서, 생각보다 왜소한 체격의 사내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드미트리의 악귀.

그가 바로 소문의 주인공인 케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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