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화 논공행상(論功行賞) (3)
이번 논공행상에서 가장 파격적인 인사는 무엇이었을까.
조나단 기사단장도, 펠릭스도, 페르난도도 아니었다.
그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범주였다면, 즉위식 직후에 한스에게 남작의 작위를 부여한다는 명령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한스는 전쟁에서 그 어떠한 전과도 세우지 않았다.
일개 하인에 불과하기에, 귀족으로서의 신분 상승은 본인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한스는 곧바로 로만 드미트리를 찾아갔다.
“……남작의 작위라니요. 제게 내려진 이 과분한 상이, 저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떤 이들은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말했지만, 한스가 살아온 세상에 이유 없는 보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과분했다.
만약 크리스와 케빈처럼 충분한 전과를 세웠다면 당연히 상을 받아 마땅하나, 세상이 혼란으로 뒤얽힌 그때 한스는 안전한 공간에서 전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진실을 물었다.
단 한 번도 귀족의 삶을 바라지 않았기에, 진실을 말해 달라는 눈빛을 보였다.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기뻐 날뛰어야 할 일을, 한스는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한스. 논공행상의 범위는 단순히 전과(戰果)만 해당하지 않는다. 그간 수많은 일이 벌어지는 동안, 너는 나의 삶을 세심하게 관리해 주었다. 그리고 네가 모셔 왔던 존재가, 지금은 드미트리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대체 왜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앞으로도 황제의 삶을 관리해야 하는 존재라면, 그에 걸맞은 보상과 직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말문이 막혔다.
사람들은 말했다.
한스는 행복한 존재라고.
일개 하인에 불과하지만, 드미트리 가문은 그를 단순히 하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한스의 역할을 존중해 주었으며, 한스의 가족이 살면서 불편함이 없도록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주었다.
사실 처음 하인으로 일을 시작할 때는 이러한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다.
하인들은 보통 무시 받고 도구처럼 여겨지기가 쉬운데,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을 사람으로 대했다.
그것도 모자라.
작위를 내린단다.
속에서 들끓는 감정에, 한스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정리가 되질 않았다.
“사실 네게 작위를 내리고도 앞으로 나를 위해 살아 달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내 개인적인 욕심일지도 모른다. 한스. 네가 원한다면 더는 하인으로서 일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네가 앞으로도 나를 위해 살고자 한다면, 내가 부여하는 보상을 받아들여 마음의 짐을 덜어 주길 바란다.”
선택권을 넘겼다.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랐다.
한스는 자꾸만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부터 자신은 드미트리를 떠나는 삶은 생각지도 않았건만, 자신을 존중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감정이 벅차올랐다.
드미트리는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그간의 행동들이 그 사실을 증명했고, 제국으로 도약한 지금도 다시 한번 현실을 말해 주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꿈이 있다.
논공행상에서 각기 다른 보상을 요구했던 것처럼, 한스는 작위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떠나서 감정적으로 충분할 정도의 보상을 받았다.
앞으로 드미트리에 어떤 일이 생길지라도.
이 한스라는 사람은, 그들의 동반자로서 드미트리가 평안하길 기원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좋습니다. 당연히 좋습니다. 앞으로도, 이 한스는 드미트리를 위해 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힘차게 반복해서 끄덕이는 그 모습에, 로만 드미트리는 웃음을 보였다.
* * *
국제 회의, 며칠 전.
한스의 소식은 금방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일 때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한스의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하인에게 귀족의 작위를 하사한 경우가 있었던가.”
“단언컨대 없었어. 생각해 봐. 귀족 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인데, 태생부터 타고나지 못한 하인에게 그 누가 귀족의 작위를 하사하겠어. 이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야. 아레스와 같은 전범자들에게는 엄격했던 황제 폐하가, 신분의 경계를 허무는 선례를 남긴 거라고!”
다들 감탄했다.
사실 일반인들을 대하는 로만 드미트리의 태도는 이전부터 유명했다.
보통 귀족들은 같은 귀족 태생이 아니라면 무시하기 일쑤인데, 드미트리는 노동자 계급을 철저하게 존중해 주었다.
대장장이, 광부와 같은 직업들에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드미트리는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땅으로 불렸다.
애초에 하오문의 구성원들 또한 일반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과일가게 주인 등등 일반인들로 구성되다 보니, 드미트리의 특성은 더욱 도드라졌다.
그렇다 할지라도.
귀족의 작위를 하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설마 하인에 불과한 한스에게, 신분의 경계를 허무는 선례를 허락하리라고는 다들 예상하지 못했다.
드미트리와 떨어진 한 펍.
한스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인데도, 그들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일로 황제 폐하의 진심이 증명되었어. 황제 폐하는 모든 일에 편견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었는데, 아레스를 처벌한 것도 그렇고 한스의 일만 보더라도 언행일치임을 증명해 냈어. 적어도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드미트리는 우리에게 편견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을 거야.”
“난 말이야. 이번 논공행상의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드미트리로 이주해서 살아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어. 케빈, 한스. 이런 사람들은 고귀한 태생을 타고나지 못했어. 빈민가의 소년, 일개 하인에 불과했던 사람들인데, 황제 폐하는 드미트리를 위해 헌신한 노고를 잊지 않고 충분한 보상을 부여했잖아. 이것이야말로 앞으로의 미래야. 드미트리는 절대,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희생을 잊지 않아.”
신뢰는 한순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그간의 행보.
노동자 계급을 존중하고, 전쟁에서 사망한 이들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며, 이번 논공행상에서 파격적인 모습까지 보여 주자 사람들은 드미트리를 부르짖으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기뻤다.
그동안.
샐러맨더 대륙의 체계는 정말 참담했다.
크로노스 제국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고, 그들의 핍박과 대륙 정벌의 야욕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다.
악의 상징이었던 크로노스 제국을 쓰러트린 것으로도 모자라.
로만 드미트리가 말하는 이상적인 체계는 사람들의 의욕에 불을 붙였다.
어떤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권력과는 무관한 일반 사람들은, 변화하는 세상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한스의 일.
그날부로 드미트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더욱 의욕적으로 변한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그런 이야기였다.
* * *
다시 현재.
윌리엄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상대가 한스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머릿속에서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렸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한스 남작을 건드리다니.’
드미트리 리스트.
그 명단에 한스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최측근 인물. 어린 시절부터 로만 드미트리를 관리했으며, 그로 인해 매우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로만 드미트리는 한스의 파티에 직접 선물을 보낼 정도의 애정을 보였으며, 한스의 가족은 드미트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서 생활하고 있는 상황. 이번 논공행상에서 남작의 작위를 부여받은 것은 한스가 드미트리의 실세임을 증명하는 명백한 결과이기에, 드미트리에서 그를 만날 경우 하인 출신이라고 해서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한스 남작.
주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수도 없이 확인했건만, 윌리엄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른 상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사실 하인에게 하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행동이나, 상대가 한스 남작이기에 사고가 정지되는 것만 같았다.
일단.
사과해야만 했다.
앞뒤를 따지지도 않고, 윌리엄은 고개부터 숙였다.
“죄송합니다! 한스 남작님인 줄 모르고, 제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아닙니다. 행색이 이러하니, 충분히 착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스가 웃었다.
문제를 관대하게 넘어가는 그 태도에, 윌리엄은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으로 한스를 바라보았다.
“한스 남작님의 성품이 대단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게 정말 사실이었군요.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저를 포함한 프랑크 왕국 사람들에게 똑똑히 전하겠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자존심을 버렸다.
프랑크 국왕.
그는 로만 드미트리를 하늘처럼 떠받들기에, 괜히 문제의 여지를 남겼다간 프랑크로 돌아갔을 때 엄청난 분노를 직면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
권력의 중심에는 이제 드미트리가 있었고, 로만 드미트리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도 프랑크와 같은 나라들은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약육강식(弱肉強食)의 세계에서, 최고의 포식자를 제외한 모든 동물은 조심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한스가 관리인과 대화를 나누더니 말했다.
“프랑크 국왕께서 원하시는 부분들은 이미 모두 준비를 끝낸 상태입니다. 그에 대해 따로 전달받은 것은 아닙니다만, 사전에 어떤 부분들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미리 확인해 두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한스.
그는 로만 드미트리를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드미트리 황궁 전체의 일을 세심하게 확인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국제 회의가 진행된다는 말에, 각국 국왕들의 정보를 확인해서 그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부분들과 선호하는 부분들을 체크 했다.
황궁의 실질적인 실세.
한스는 본인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제는 남작의 작위를 얻은 만큼 위치가 상승했지만,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잊지 않았다.
윌리엄이 감탄했다.
연이어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 모습에, 한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 드미트리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길 바랍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절 찾아오셔도 좋습니다.”
그날.
프랑크 왕국 사람들에게, 한스는 귀족의 품위를 갖춘 사람이라며 미담 하나가 추가되었다.
* * *
그 시각.
황궁 회의장에서 진행되는 국제 회의는, 하나의 안건에 의견이 나뉘었다.
레드포드 국왕이 말했다.
“랭킹 시스템을 되살리는 것에는 동의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우승자가 감히 황제 폐하에게 도전하는 권한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황제 폐하는 이제 대륙을 다스리는 입장입니다. 드미트리 제국의 권위(權威)를 넘보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저 또한 동의합니다. 검술 대결이라니요. 그런 위험한 일을 저희가 어떻게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다니엘 카이로였다.
각국의 대표들.
그들은 랭킹 시스템에는 동의하나, 크리스가 요구한 사항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전의 로만 드미트리는 귀족 가문의 후계자에 불과했다.
그때는 어떤 고난을 겪든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드미트리 제국의 황제로 올라선 그에게 이와 같은 위험한 일은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
예민한 문제였다.
대부분 반발하는 의견을 보였으나, 로만 드미트리는 흔들림 없는 음성으로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나는 황제이기 전에 한 명의 검사다. 검 하나로 이 자리에 오른 내게 있어, 나의 건재함을 증명하는 것은 오히려 황제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는 일이다. 너희가 생각하기에 내가 패배할 것 같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는 나의 권위를 황제의 자리를 통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가 직접 증명하기를 바란다.”
그 말에.
더는 반발하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의 말처럼 그는 검 하나로 스스로를 증명해 왔고, 그가 누군가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로만 드미트리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고 해서 도전을 피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매번 증명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은 대단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결국.
크리스의 안건은 통과되었다.
랭킹 시스템의 도입을 확정한 뒤에, 다음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서 루카스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며칠 전. 크로노스로부터 전달받은 정보가 있습니다. 일단 그것을 먼저 보여 드리겠습니다.”
신호를 주었다.
마법사들이 무언가를 설치하자, 모두가 보는 앞에 마법으로 만들어진 화면이 떠올랐다.
[재앙은 현실이 되었다. 어둠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아닌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여. 경계하라. 준비하라. 발악하라.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에 들이닥치는 날, 인류는 유례없는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신탁이었다.
사실 이 문제로 인해서, 로만 드미트리는 각국의 대표들을 불러들였다.
루카스가 말했다.
“크로노스의 밀실에서 발견한 신탁의 내용입니다. 이미 알렉산드르의 존재로 인해, 마계의 악마가 무언가를 도모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탁의 내용대로라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계획이 대륙을 머지않은 미래에 어둠으로 물들일 것입니다.”
다들 표정이 심각해졌다.
마계.
심각한 문제였다.
로만 드미트리는 마계의 존재를 세상에 밝혔고, 각국의 대표들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계는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세상이다.
알렉산드르와 같은 괴물조차도 그들의 하수인에 불과했기에,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침묵이 맴돌았다.
다들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마계의 존재는 현실이 되었다. 나는 백성들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이 문제를 방관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마계와 연결되는 통로가 존재한다. 언제 그곳에서 공격해 올지 모르기에, 우리는 불안에 떨며 기약 없는 공포를 감당해야겠지.”
묘한 발언이었다.
각국의 대표들이 이상함을 느꼈을 때, 충격적인 발언이 그들을 강타했다.
“나는 그들이 공격해 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마계의 통로를 통해 그들을 먼저 공격하고자 한다. 그것이, 이번 국제 회의를 개최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