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화 논공행상(論功行賞) (1)
즉위식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드미트리는 공식적으로 제국이 되었음을 선포했고, 그 자리에는 모든 국가의 대표들이 참석해서 드미트리의 뜻을 지지했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루나 왕국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최
근에 아르카디아 대륙의 기후가 안정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면서, 로만 드미트리는 루나 왕국 사람들의 뜻을 받아들여 루나를 병합(倂合)하기로 했다.
루나의 여왕.
이사벨은 현재 행방불명이었다.
국가의 병합은 매우 예민한 문제였으나, 이사벨은 자리를 비우기 전에 루나를 로만 드미트리에게 맡기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덕분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드미트리는 크로노스와 발할라의 땅을 강제로 강탈하지 않았으나, 끝없는 산맥 너머에 있는 드넓은 아르카디아 대륙 전체를 제국령으로 선포했다.
사실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사전에 논의되고 있었기에, 로만 드미트리는 무리하게 두 제국을 병합하는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상적인 마무리였다.
마계라는 예민한 문제가 있었으나, 로만 드미트리의 통제에 따라 대륙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갔다.
그로부터 며칠 뒤.
드미트리의 한 저택.
테라스에서 잘 관리된 정원을 바라보며, 저택의 주인인 크리스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대체 보상으로 뭘 요구해야 하는 걸까.’
며칠 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진행되는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로만 드미트리는 본인이 내뱉은 말을 이행했다.
조나단 기사단장은 황실기사단의 단장으로, 펠릭스는 황실 마탑의 마탑주로, 페르난도는 수도 경비대의 대장 등등 각자에게 어울리는 역할을 부여했고, 그들처럼 대단한 전과를 세운 인물들에게는 평생 놀고먹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금화가 지급되었다.
크리스 또한.
막대한 부를 얻었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화려한 저택도 로만 드미트리의 상이었기에, 앞으로 돈에 관해 걱정할 일은 없었다.
문제는.
로만 드미트리의 보상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앞으로 보름의 시간을 주겠다. 본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직접 나를 찾아와 그것을 요구하라. 나는 공을 세운 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부여할 것이다.”
보상의 선택권.
파격적이었다.
크리스는 특별한 직책 대신에 스스로 보상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부터 며칠 내내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보상에 제한이 없다고 말했다.
만약 크리스와 같은 인물들이 친위대를 나와 부유한 삶을 바란다면, 기꺼이 새로운 삶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머릿속이 꽉 들어찬 기분이었다.
사실 크리스는 보상을 바라서 전쟁에 나선 것도 아니고, 당장 손에 움켜쥔 엄청난 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도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만약 챙겨 줄 가족이라도 있었다면, 정말 평안한 은퇴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그에게 검사로서의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보상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크리스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차를 내버려 둔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겠어.”
선택권은 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
이미 보상을 요구한 사람들을 직접 만난다면, 크리스는 결정이 조금 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첫 번째 인물.
파비우스 백작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하사받은 그의 영지를 찾아가자, 크리스는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호화스러운 저택으로 안내되었다.
그야말로 금빛의 향연이었다.
외관에서부터 대부호(大富豪)임을 대놓고 드러내는 모습에다, 객실에 도착하자 찻잔마저도 금빛으로 반짝였다.
‘……찻잔도 순금인 건가.’
과연 파비우스였다.
이윽고.
파비우스 백작은 건물 외관만큼이나 화려한 장신구를 치렁치렁 매단 채, 환한 얼굴로 나타났다.
“크리스 님!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입니다, 파비우스 후작님.”
그렇다.
파비우스는 이제 백작이 아닌 후작이 되었고, 그동안 잘 먹고 잘살았는지 포동포동 올라온 살에 얼굴에는 기름기마저 번들거렸다.
파비우스 후작은 자리에 앉으며 살가운 미소를 보였다.
크리스와 같은 드미트리의 실세는, 파비우스 후작이 정한 특별히 관리해야 할 인맥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논공행상에서 무엇을 요구했는지를 알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물론 대략적으로 예상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직접 상황을 들어 본다면 제 선택이 쉬워질 것 같습니다.”
“아, 그런 문제였습니까?”
보상의 선택권.
그 범주에 포함되는 인물들은 몇 되지 않았고, 개개인이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파비우스 후작이야 뻔했다.
호화스러운 환경은 전쟁 포상금으로 받은 것 이상의 수준이었기에, 사람들은 그가 로만 드미트리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였다.
파비우스 후작이 말했다.
“보상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문제지요. 저는 주군에게 마르지 않는 재물과 권력을 바랐습니다.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려면 포상금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주군은 이곳 영지를 하사하셨습니다. 카이로의 내란 당시에 숙청된 인물의 터전인데, 가문 대대로 비옥한 토지와 뒤로는 금광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알짜배기 땅이지요. 특히 드미트리와 카이로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기에, 주군은 이곳에서 기반을 잘 갈고닦는다면 제 권력과 재력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흐흐흐흐,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파비우스는 원래 카이로의 귀족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몇몇 인물들이 소속을 옮겼고, 본래의 토지를 카이로에 팔아넘기는 대신에 로만 드미트리에게 새로운 영토를 하사받았다.
드미트리는 동북쪽 일대뿐만 아니라 반란이 정리되면서 국토를 조금 넓혔다.
이는 카이로와 약속된 부분이었고, 그 과정에서 주인을 잃은 땅들은 이렇게 파비우스 후작과 같이 공로를 세운 인물들에게 부여되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드미트리가 제국으로 성장하며, 일부 인물들은 아르카디아 대륙으로 넘어가 새로운 삶을 택했다.
“저는 말입니다. 평생 주군을 위해 헌신할 겁니다. 제가 이번 전쟁에서 나름대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만큼 보상해 주는 나라가 어디 흔합니까? 주군을 위해서라면 이 한목숨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보상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것이라면, 저는 매우매우매우 만족합니다.”
웃음을 터트렸다.
밝은 얼굴은, 정말로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대단하기는 하네.’
크리스도 인정했다.
파비우스 후작은 미래를 보장받는 보상을 부여받았고, 로만 드미트리의 말처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자신도 그와 같은 보상을 바란다면 어떻게 될까.
아르카디아로 이주해서 비옥한 땅을 선점한다면, 어쩌면 파비우스보다도 더한 권력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동하지는 않았다.
크리스는 갑자기 생각난 것을 물었다.
“그런데 바로 근처에 건물이 하나 더 올라가던데, 그건 무슨 용도입니까? 일반적인 용도라기에는 규모가 상당히 커서 시선이 갔습니다.”
“아, 그거요?”
히죽, 웃었다.
파비우스 후작이 고개를 숙이며, 음흉한 얼굴로 크리스와 시선을 마주쳤다.
“저만의 하렘(harem)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그게 남자의 진정한 낭만 아니겠습니까, 핫핫핫.”
확실했다.
파비우스는 정말이지, 전쟁의 보상을 제대로 누리는 사람이었다.
* * *
두 번째 인물.
펠릭스였다.
그를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던지자, 펠릭스는 크리스를 어딘가로 안내했다.
“……이곳은?”
“새로운 마탑의 부지입니다.”
넓은 토지였다.
인부들은 분주하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거대한 규모에 크리스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사실 황실 마탑은 처음부터 제 요구 사항이었습니다. 드미트리 제국을 대표하는 마탑을 건설해서, 제국 내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마법사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상에 걸맞은 시설과 매년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는데, 주군은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예산 같은 경우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 이상의 예산을 약속하셨습니다.”
새로운 마탑.
펠릭스가 뿌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프랑크 왕국에서 궁핍하게 살았던 피닉스가, 이렇게까지 성장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실 저로서는 크리스 님이 본인에게 솔직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이는 제가 바란 보상이 국익을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순수하게 제 개인적인 욕망의 발로입니다. 이 펠릭스가 만들어 낸 마탑이 대륙 제일이 되는 것. 저는 그 결과에서 비롯되는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며, 마법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듣기로는 파비우스 후작님도 정말 개인을 위한 보상을 부여받았던데, 크리스 님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소문은 서서히 퍼져 나갔다.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 로만 드미트리를 찬양하면서, 사람들은 논공행상의 수준에 혀를 내둘렀다.
완벽한 언행일치였다.
아레스를 처단하면서 단 한 번의 선례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는 과도할 정도로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파비우스 후작과 펠릭스.
그렇게 속속들이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그들은 로만 드미트리의 발언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크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두커니 서서, 그렇게 한동안 마탑이 건설되는 장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 *
마지막 인물.
조나단 기사단장이었다.
한참 훈련을 진행하던 그는, 잠시 쉬는 시간에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로 크리스 옆에 앉았다.
“그래서, 지금 어떻냐고?”
“예.”
재밌는 질문이었다.
조나단 기사단장은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웃는 얼굴로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크리스. 너도 알다시피 과거의 드미트리 기사단은 그리 대단한 집단이 아니었다. 너와 나의 존재로 인해 겨우 구색은 갖추었지만, 왕국 전체를 기준으로 한다면 별 볼 일 없었지. 그런데 말이다. 지금은 그때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모두가 드미트리 기사단에 소속되기를 바라고, 내가 드미트리 기사단의 발전을 위해 요구한 것을 주군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받아들여 주었다.”
그 또한.
펠릭스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파비우스는 순수하게 개인의 욕망을 따랐다면, 조나단 기사단장은 앞으로 시스템의 발전을 바랐다.
“난 그래서 주군에게 감사한 마음밖에 없다. 분명히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임을 알면서도, 이 대륙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투자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주군은, 드미트리 제국의 황제는 다르다. 전쟁의 보상으로 요구했다고는 하나, 그분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확실한 보상을 부여했다. 내가 바라던 꿈과 그리고 내 개인의 행복을 위한 모든 것을.”
눈앞의 풍경.
아름다웠다.
드미트리의 이름 아래 훈련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조나단 기사단장은 꿈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주군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드미트리를 위한 희생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확실한 보상을 부여하고, 각자의 세력이 강해지는데도 그 누구도 감히 주군의 권위를 넘보지 못하지. 크리스. 네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모시는 분은 우리가 바라는 모든 욕망을 떠안을 수 있을 만큼 대단하고 강한 분이기에, 네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와 대화를 하면서, 나를 찾아오기 이전까지 생각을 거듭하면서. 네가 진정으로 무엇을 바라는지를.”
얼굴에 뻔히 보였다.
크리스는 분명히 원하는 바가 있었지만, 아직 스스로가 그것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마지막 만남을 마무리했다.
해가 저물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크리스는 의외의 소식을 들었다.
자신보다도 먼저, 케빈이 보상 문제로 로만 드미트리를 찾아갔다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