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제2차 대륙 전쟁 (8)
파스스스-
그림자들이 도시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바람에 스며들듯 빠르게 골목길을 훑던 그림자들이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콰직.
콰드드득.
“으, 으아아악!”
사방에서 사람의 육신을 물어뜯었다.
어떻게 반항할 새도 없이 팔다리가 뜯겨 나갔고,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골목길 벽이 핏물로 흠뻑 물들었다.
그들은 피에 굶주린 아귀(餓鬼)와도 같았다.
전략적인 움직임은 완전히 배제되었고, 생명체의 움직임을 발견할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이번 작전.
마수에 가까운 그림자들이 주로 투입되었다.
혹시 모를 마법 폭탄의 가능성을 생각해 건물 안의 사람들은 노리지 않았지만, 물자를 나르는 등 밖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죽였다.
드미트리가 혼란으로 물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완전무장한 병력은 대부분 외성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기에, 힘없는 민간인들로서는 신음이 새어 나올 것 같은 입을 억지로 틀어막으며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흐읍.”
순간.
그림자와 건물 안의 여성이 눈을 마주쳤다.
창문으로 슬그머니 밖을 확인하려다 벌어진 일에, 그림자의 얼굴이 마치 악귀처럼 사납게 일그러졌다.
“크르르르륵.”
발견한 인간은 모조리 죽여라.
그림자들에게 떨어진 명령이었다.
건물 안의 인간들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존재를 발견했는데도 내버려 둘 만큼 상황을 복잡하게 계산하지는 않았다.
그림자가 거대한 몸을 부풀렸다.
창문을 향해 거대하게 자라난 손톱을 휘두르려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비추던 햇볕이 의문의 그림자에 가려졌다.
퍽!
콰득.
검으로 머리를 찍고, 목을 비틀었다.
그림자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그것이 시작되었다.
위치가 노출된 상황.
맥버니는 그림자의 머리에서 검을 거칠게 뽑으며, 자신을 발견한 그림자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적들의 숫자는 많지 않다. 아마도 도시에 혼란을 일으켜, 외성의 수비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의도겠지. 우리는 지금부터 민간인들을 보호한다. 눈앞에 날뛰는 그림자들을 모조리 죽여, 이곳에서의 문제가 외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우리 선에서 무조건 차단한다.”
“알겠습니다.”
사사사삭-
별동대가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다들 독특했다.
어떤 이는 걸음을 절뚝였고, 어떤 이는 맥버니처럼 팔 하나가 없었으며, 어떤 이는 무언가 불편한 듯 조금은 느린 걸음을 보였다.
그것은 별동대의 특징이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더는 무기를 잡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들이, 강렬한 열망으로 무기를 잡았다.
그들에게 맥버니는 희망이었다.
외팔이여도 엄청난 무력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증명하면서, 사람들은 맥버니를 매일같이 찾아가 지금의 별동대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로만 드미트리가 있었다.
강렬히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좌수검을 알려 주었던 것처럼 모든 해결책을 제시할 능력이 있었다.
“크르르르륵.”
“커억.”
비명이 울려 퍼졌다.
다리를 절뚝이던 별동대원이 땅을 박차며 상대의 가슴팍을 베었고, 다른 이들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림자들을 상대했다.
그림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마수의 형태는 몸을 부풀리며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고, 검을 사용하며 오라를 분출하는 그림자 또한 존재했다.
콰르르르르릉.
별동대원의 머리 위로.
검이 떨어졌다.
맥버니와 마찬가지로 팔이 한쪽밖에 없는 그는, 이미 공격을 시도한 상태였기에 수비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카앙!
“반격해!”
다른 별동대원이 대신 막아 주었다.
그들은 서로의 신체적인 결함에 따라 보완하는 방법을 훈련했고, 다리가 불편한 별동대원이 그림자의 공격을 쳐 냈다.
공수의 전환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마치 예상했다는 것처럼 외팔이 별동대원은 곧바로 오라를 일으켰고, 단번에 가슴팍을 베어 버리자 그림자가 몸을 부르르 떨며 연기로 흩어졌다.
이곳.
드미트리의 땅이다.
별동대원들에게 매우 익숙한 공간.
골목길의 지형을 이용하며 신속하게 그림자들을 처리하는 모습에, 상황을 지켜보는 민간인들의 표정에 희망이 어렸다.
특히 맥버니의 활약은 발군이었다.
팔 하나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 번개같이 시도되는 그의 공격에 수십의 그림자가 먼지처럼 흩어졌다.
하지만.
아직 승리를 논하기에는 일렀다.
쓰러진 그림자를 처리하려던 맥버니는, 순간 감각을 파고드는 위험한 기운에 검을 들어서 막았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릉.
“크윽.”
뒤로 쭉 밀려났다.
울컥, 속에서 핏물이 올라왔다.
“겨우 너희들로 우리를 막으려 하다니. 그것이 얼마나 헛된 생각인지를, 네 목을 잘라 증명해 주마.”
콰르르르르르르릉.
사방에 일렁이는 오라.
확실했다.
눈앞의 그림자는 6성의 검사이며, 그림자들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 * *
한 번의 호흡.
숨을 들이켜고 내뱉는 그 순간, 맥버니는 바로 눈앞에 치고 들어오는 그림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팟.
콰르르르르르르르릉.
가까스로 막았다.
한쪽 팔을 들어 목이 날아가는 것은 어떻게 막아 냈지만, 맥버니는 단 일격에 뒤로 미친 듯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무려 6성의 오라 검사다.
로만 드미트리에 의해 오라의 체계가 새로이 정립되었다지만, 겨우 맥버니의 실력으로 6성의 오라를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퉷.”
핏물을 뱉었다.
찰나의 순간.
그림자가 다시 달려들려는 모습에, 맥버니가 준비해 두었던 마법 스크롤을 찢었다.
“헤이스트(haste), 스트렝쓰(strength).”
화악.
축복 계열의 마법이었다.
이것만으로 6성과의 간격을 줄일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림자를 눈앞에 두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일반 별동대원의 실력으로는 6성의 검사를 절대 상대할 수 없다. 내가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만 한다. 이 녀석을 쓰러트릴 유일한 방법은, 나머지 그림자들을 정리하고 동시에 공격하는 것밖에 없다.’
사실상 희망적이진 않았다.
죽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맥버니로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카앙!
카카카카카캉!
격렬한 격돌이었다.
강하게 몰아치는 그림자의 모습에, 맥버니는 정신없이 막아 내면서도 기묘한 움직임으로 급소를 노렸다.
좌수검 특유의 변칙성이었다.
일반적인 궤도를 이탈한 공격이 그림자의 허점을 공략했지만, 6성의 오라를 발현하는 존재는 맥버니를 압도하는 반응 속도를 보였다.
카앙-
공격이 막혔다.
동시에.
번뜩.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고개를 틀었기에 망정이지, 맥버니는 방금의 일격에 머리가 날아갈 뻔했다.
숨이 차올랐다.
남부 훈련소에 있을 때.
6성 검사와의 대결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한 훈련소를 담당하는 교관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태생이 그리 대단하지 못한 일반인에 불과했다.
지금도 크리스와 케빈처럼 대단한 일을 해낼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감당할 뿐이다. 도시에서 벌어진 학살극을 대신 해결해 줄 존재가 없기에, 맥버니는 목구멍에서 역겹게 울컥거리는 핏물을 삼켰다.
훅.
급소를 노렸다.
그림자가 씰룩, 웃었다.
“건방진 새끼.”
일련의 상황.
나름대로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도 맥버니가 훈련했던 대상이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라 로만 드미트리이기 때문이었다.
6성의 오라조차도 압도하는 파괴력.
그를 상대로 처절하게 훈련했던 시간들이 지금의 맥버니를 만들었고, 그 모습이 그림자로서는 매우 거슬렸다.
로만 드미트리가 없는 드미트리다.
겨우 그런 존재들 따위가.
알렉산드르의 야망을 막으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들의 세상에서 6성의 경지는 흔히 찾아볼 수 없지만, 크로노스 제국은 지난 작전에서 스벤이 죽었는데도 남들은 알지 못하는 새로운 6성 검사를 동원했다.
그것이 바로 클래스의 차이였다.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르기에, 그림자는 분노를 표출하며 맥버니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콰앙!
콰콰콰콰쾅!
몸이 뒤흔들렸다.
크게 들썩일 때마다, 맥버니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생명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서걱.
“크흡.”
다리가 얕게 베였다.
맥버니가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자, 그림자는 승기를 잡았다는 듯이 실실 웃었다.
“가서 다른 사람들을 불러. 제발 도와달라고. 드미트리의 사람들이 모조리 죽게 생겼으니, 외성의 상황이 어떻게 되든 이곳을 도와달라고. 만약 네 녀석이 끝까지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나는 드미트리의 모든 사람을 죽여 버릴 것이다.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고, 내성으로 진격해 드미트리 국왕의 머리를 베어 버릴 것이다.”
끝났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승부였다.
크리스도 아니고, 케빈도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페르난도와 같은 근본이 있는 부류도 아니다.
일개 교관.
맥버니의 한계였다.
팔도 한쪽이 없는 그로서는, 6성의 오라 검사를 막는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여기서 죽는 건가.’
아마도.
그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별동대는 끝까지 임무를 완수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였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조금 떨어진 거리.
그곳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맥버니는 그 소리에, 1시간 전에 별동대원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 * *
1시간 전.
별동대는 외성을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조나단 기사단장이 각자의 역할을 상기시키며, 혹시 모를 변수를 차단해 달라고 부탁했다.
외성 너머.
소음이 들려왔다.
마법이 폭발하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병장기가 시끄럽게 뒤얽히는 소리를 들으며, 맥버니는 자신을 따르는 별동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를 처음 만났던 날. 나는 너희들이 제대로 미쳤다고 생각했다. 팔을 잃고, 다리를 잃고, 눈을 잃고, 매일 밤 악몽을 꾸면서 잠도 못 자는 녀석들이, 드미트리를 위해 다시 무기를 들고 싶다고 애원하는 꼴이 안쓰러우면서도 우스웠거든. 그때는 너희에게 그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나도 똑같은 일을 겪었기에, 너희가 앞으로 살아갈 희망이라도 찾길 바라는 마음에 별동대 대장의 자리를 받아들였지.”
그때.
맥버니는 탐탁지 않았었다.
어딘가 모자란 녀석들이 별동대랍시고 모여 다니는 꼴이, 겉으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검을 사용하는 오른팔을 잃은 날 절망에 빠졌던 자신처럼,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발악하는 녀석들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별동대는 창설되었다.
나름대로 임무를 부여받았으나, 실제로 실전에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묻어 둔 채 훈련에 임했다.
그리고 오늘.
드미트리는 위기에 빠졌다.
별동대의 힘이 필요할 수도 있는 상황에, 맥버니는 애써 억눌렀던 의문을 드러냈다.
“왜지. 왜 별동대가 되길 바란 거지.”
“……그야 당연하잖아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맥버니의 이야기를 담담히 듣던 한 사내가, 고개를 숙여 땅바닥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대장. 우리는 아직도 포로로 붙잡혔을 때의 일을 잊을 수 없어요. 캄캄한 공간에서 언제 고문을 당할지 몰라 벌벌 떨었고, 비명을 지르며 끌려갔던 동료들은 숨만 붙은 채 바닥에 버려졌어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은 분명히 들리는데, 전쟁 포로인 우리를 구해 주지 않는 드미트리에 대한 원망에 미칠 것만 같았어요. 사실 드미트리를 탓할 문제는 아니었어요. 드미트리는 애초에 전쟁 포로의 존재조차 몰랐고, 알았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살리겠다고 휴전 협상을 백지화하는 것은 너무나도 예민한 문제였으니까요.”
그의 이름.
캐롤이었다.
전쟁 포로였으며, 포로에서 해방된 이후에 제3 부대에 소속되었던 인물.
그는 다른 동료들을 모아 맥버니를 설득했고, 별동대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 님이 우리를 구해 주셨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겨우 포로 몇 명을 구하겠다고 크로노스와의 전쟁을 각오하신 거죠. 대장. 왜 별동대가 되길 바라냐고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이 부여된 안전한 역할에 전쟁 보상금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는 거예요.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은 드미트리가, 크로노스와 같은 악의 무리에게 무너지는 것을 저는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한 명의 진심.
그것이 주변을 물들였다.
너도나도 자신의 진심을 밝혔고, 그들은 신체가 불편할지라도 드미트리를 위한 일을 직접 찾아 나섰다.
“어쩌면 우리는 별동대로서 죽을지도 모르겠죠. 전쟁 포로 신세를 겨우 벗어났더니, 그렇게 죽어 버린다면 참으로 덧없는 인생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그리고 우리가 드미트리를 위해 죽는다면. 그 희생으로 드미트리가 끝까지 그 존재를 지켜 낸다면. 저는 드미트리가 제 가족을 돌봐 주리라는 확신이 있어요. 제 아내를, 제 자식을. 드미트리는 절대 버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드미트리만큼은 건재해야만 해요.”
갈수록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도 사람이다.
죽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지만, 캐롤은 많은 일을 겪으며 목숨보다 중요한 가치를 알았다.
다른 이들이 침묵으로 동조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고, 별동대는 다른 부대들처럼 육체가 건강하지 않을지라도 정신만큼은 완전히 무장되었다.
드미트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겠다는 사람들. 그것이 바로 별동대의 정체성이었다.
맥버니가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고는.
“내가 오늘과도 같은 날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다. 상부에 이것을 정식으로 허가받기 위해 요청했지만, 상부는 내 요청을 거절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조나단 기사단장님 정도이고, 그분도 끝까지 반대하셨지만 나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해 겨우 허락을 받아 냈다.”
조심스러운 음성이었다.
하지만.
드미트리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 맥버니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말할 내용은 우리만의 비밀이고, 나는 부디 이 비밀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길 바란다.”
* * *
푸확.
피가 튀었다.
하늘을 수놓는 붉은 핏방울에, 캐롤은 초점을 잃은 얼굴로 비틀거렸다.
‘……이렇게 죽는 건가.’
지난 몇 년.
참으로 격정적인 삶이었다.
드미트리의 병사로서 남작 가문이 왕국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리 대단하지는 않아도 여러 전장을 전전하며 나름대로 공을 보탰다.
그러다 크로노스 제국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끌려갔다.
매일같이 고문에 시달리고, 이제는 정말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로만 드미트리는 가볍게 지나갈 수 있었던 통신 내용을 붙잡고 전쟁 포로들을 구하기 위해 나타났다.
감사했다.
이 세상.
비상식이 통용되는 세상이다.
계급 사회는 같은 인간을 등급에 따라 나누었고, 귀족이라는 존재들은 일반 평민을 하찮은 소모품으로 대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기에 로만 드미트리를 향한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그를 위해 헌신하나, 로만 드미트리는 헌신하는 마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금전적으로 보상하든.
태도로 보여 주든.
그는 모든 것을 대가 없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마음이 감사했기에, 가족의 안위를 돌봐 주었던 것이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기에.
캐롤은 드미트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드미트리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뭐라도 더 해 보겠다고 별동대를 창설했다.
“크악!”
그림자가 달려들었다.
자신의 뒤로.
민간인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림자는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민간인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다.
캐롤이 히죽 웃었다.
“드미트리는 너희가 탐낼 수 있는 땅이 아니다.”
지금 그가 아쉬운 점은.
앞으로 가족을 보지 못한다는 단 하나의 사실이었다.
하지만 드미트리가 멸망한다면, 그들 또한 무사할 수 없음을 알기에 이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콰득.
몸이 물어뜯겼다.
그대로 찢어발기려는 모습에, 캐롤이 그림자를 와락 안았다.
“나와 같이 가자.”
그 순간.
심장에 연결되었던 마법 폭탄이 반응했다.
콰앙!
콰릉, 콰르르르릉.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불빛이 일어나며, 그대로 캐롤과 주변에 있는 그림자들을 단번에 휩쓸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