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화 내란의 결말 (5)
며칠 전.
반란이 성공했다는 보고는 상당히 의외였다.
객관적인 전력만 보더라도 벨피르 후작의 반란은 실패해야 정상인데, 듣기로는 상당한 전력을 남기고 승리했을 정도의 대승이라고 했다.
의문이었다. 경비대를 매수하고, 황실의 병사들에게 미리 약을 탔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작전이었을까.
발할라 황제를 직접 경험한 로만 드미트리로서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단언할 수 있었다.
‘불가능하다.’
단순한 감이 아니다.
그동안 파악한 정보.
정확한 자료를 기반으로 할 때, 벨피르 후작의 반란은 황실의 전력을 갉아먹는 것에서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반란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로만 드미트리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세 가지의 가설을 생각했다.
첫 번째는.
‘발할라 황실의 전력이 생각보다 약했다면, 벨피르 후작의 기습적인 공격이 통했을 수도 있다.’
정말 만약에.
발할라 황제의 광기가 사실은 나약함을 숨기려던 허세였고, 로만 드미트리가 경험했던 것이 발할라 황제의 전력이었다면 이런 결과가 가능할 수도 있었다.
물론 신빙성은 매우 떨어졌다.
이미 황제의 자리에 오르던 날에, 발할라 황제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었다.
그날의 일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질렸고, 그것이 공포 정치의 기반이 되는 배경을 만들었다.
발할라 황제의 힘은 진짜다.
로만 드미트리가 직접 경험했을 때의 모습도, 바닥이 얕은 자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가설에 무게가 실렸다.
‘그에게 힘을 주었던 무언가에게 버림을 받았다면, 발할라 황제가 패배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유력한 가설이었다.
미스터리한 세력에 신빙성을 더하면서도, 압도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발할라 황제가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 또한 설명할 수 있었다.
문제는 힘을 주었던 의문의 세력이 대체 왜 발할라 황제를 버렸느냐다.
벨피르 후작이 발할라의 진실이라고 했던 말에 의하면, 발할라 황제의 세력은 전대 황제로부터 비롯되었다.
14번째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하면서, 그에게 세력을 밀어주고 반란이라는 과격한 과정을 통해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만들었다.
선택의 이유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렇게 물려받은 세력이 지금에 와서 발할라 황제를 버릴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발할라의 미래를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이와 같은 후계자 책봉은 말이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발할라를 몰락시키기 위한 선택이라기에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들어맞는 가설이 없었다.
생각을 바꾸었다.
한때 사람들이 떠들었던 것처럼, 어쩌면 크로노스가 발할라 황제의 배후일 수도 있었다.
‘그것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크로노스가 발할라 황제를 후원했다면.
알렉산드르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라면.
더더욱 버릴 이유는 없다.
아무리 반란군이 유리한 상황이라고 한들, 어떻게든 발할라 황제를 살려서 그들의 통제를 따르게 만드는 것이 크로노스 제국으로서는 이득이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일 경우, 크로노스 제국이 전쟁에 가담하지 않은 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
발할라 황제를 살린다면 두고두고 크로노스 제국에 이득일 텐데, 그들은 방관함으로써 자신의 수족만 잘려 나가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함정의 가능성이었다.
죽음으로 위장하고 무언가를 도모할 수도 있지만, 사실 정말 무의미한 행위였다.
발할라 황제의 힘은 압도적인 권력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공포 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세력을 무너트리는 선택은 그에게 아무런 득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벨피르 후작은 이에 관해서 확실한 검증 절차를 거쳤다.
그에게도 중요한 문제였기에, 상대가 발할라 황제임을 모두에게 증명했다.
결국.
완벽한 해답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14번째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순간부터 죽음을 맞이한 지금, 모든 것이 의문으로 얼룩졌다.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군.”
웃었다.
아주 만일의 상황.
혹시라도 벨피르 후작이 반란에 성공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밑그림은 얼추 그려 둔 상태였다.
그 결과가 실제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로만 드미트리도 이번만큼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변수가 난무하는 전장에서 변화에 휩쓸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변수에 상황이 뒤바뀌는 것.
전생에 수도 없이 겪었던 일이었다.
병사를 불렀다.
그러고는.
“비에토 공작에게 마법 통신을 연결하라.”
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 * *
다시 현재.
익숙한 광경이 재연되었다.
며칠 전에 발할라 황제가 목을 매달았던 처형대에, 이번에는 벨피르 후작이 처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상황에,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비, 비에토 공작님!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아닙니다. 반역도라니요. 저는 극악무도한 폭군인 발할라 황제를 직접 제 손으로 처단했습니다. 이것은 비에토 공작님 또한 바라던 일이건만, 어째서 모두의 바람을 이룬 저를 반역도라고 매도하십니까! 일단, 일단 이것 좀 풀어 주십시오.”
밧줄이 목을 압박했다.
벨피르의 병사들도 주변에 있었지만, 그들은 차마 벨피르 후작을 구하겠다고 검을 뽑을 수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
그가 버티고 있었다.
혼자만의 힘으로 발할라의 수도를 쑥대밭으로 만든 존재가 있기에, 병사들과 경비대는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차마 앞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에토 공작이 반역도라는 명분을 내세운 상황에서, 그것을 해명하지 못한다면 도와줄 명분이 없었다.
사람들이 충분히 모였다.
비에토 공작은 벨피르 후작은 무시하며,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부터 벨피르 후작의 죄목을 말해 주겠다. 발할라가 황제의 폭정(暴政)에 시달리던 그때, 벨피르 후작은 발할라 황제를 추종하는 앞잡이였다. 그는 발할라 황제와 같이 발할라의 많은 부분을 망가트렸다. 전사들의 숭고한 대결을 무시했고, 로만 드미트리가 발할라 축제에 초대되었을 때 로만 드미트리의 암살을 주도했던 사람이 바로 벨피르 후작이었다.”
“그건 해명할 수 있습니다! 저도 명령을 받는 입장으로서…….”
“입 막아.”
콱.
“끄읍, 끄읍!”
병사가 뒤에서 입을 막았다.
벨피르 후작이 눈을 부릅뜨며 어떻게든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지만, 비에토 공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너희에게, 벨피르 후작이 로만 드미트리에게 보냈던 마법 통신의 내용을 들려주겠다.”
삑.
[단도직입적으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로만 드미트리 님이…… 그 의도를 공유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탐탁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의 대화는 분명히 드미트리에게 득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통신의 내용이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반란을 주도하는 것은 좋았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반란군의 세력이었다면, 목숨을 건 그의 행보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벨피르 후작은 전세가 좋지 않자, 곧바로 로만 드미트리에게 연락해 반란에 가담할 것을 제안했다. 너희의 예상대로 나는 로만 드미트리와 결탁해 이번 반란을 도모했다. 발할라의 일에 외부의 힘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에 비난할 수도 있으나, 발할라의 축제에서 전사로서의 가치를 증명한 로만 드미트리는 발할라의 일에 개입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발할라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려 한다는 목적에, 그는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벨피르 후작은 어떠한가. 끝까지 반란군과 로만 드미트리를 매도하며 비난하던 그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발할라 황제를 배반했다. 발할라는 지금까지 벨피르와 같은 앞잡이들로 인해서 몰락의 길로 빠져들었건만, 그는 자신이 모시던 황제를 처단하고 발할라의 미래가 아닌 본인의 잇속만을 챙겼다.”
목에 핏대를 세웠다.
발할라는.
전사의 긍지를 존중했다.
발할라의 병사들을 해친 로만 드미트리보다도, 박쥐처럼 이리저리 붙어 다니는 벨피르 후작을 혐오했다.
표정이 바뀌었다.
다들 분노했다.
벨피르 후작은 발할라 황제와 다르지 않았다.
그도 결국은 암흑으로 얼룩진 발할라의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콰득.
“크악.”
입을 막은 손을 물었다.
입이 편해지자, 벨피르 후작이 바락바락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야! 너나 나나 똑같은 반란을 일으킨 것인데, 왜 너만 정의로운 사도인 것처럼 치장한단 말이냐! 내가 바로 발할라 황제를 처단한 영웅이다. 내가 반란을 성공시켰건만, 나를 반역자로 몰아가는 이 상황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나를 따르라! 나를 따라, 비에토 공작을 처단하라!”
그의 말은.
의미 없는 발악에 불과했다.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발악하던 벨피르 후작이 로만 드미트리와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그의 귓속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피르 후작. 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생전의 업적을 모두 부정당한 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반역도의 혈족들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겠지. 그것이, 다시 만나는 날 네게 주겠다고 약속했던 선물이다.]
로만 드미트리가 웃었다.
소름이 돋았다.
눈을 부릅떴다.
벨피르 후작이 뭐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그의 발밑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퉁.
“컥, 커컥!”
처형이 거행되었다.
밧줄이 목을 압박했다.
벨피르 후작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하고 싶었지만, 숨통을 조이는 압박에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발을 허우적거렸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생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하지만.
부질없는 발악에 불과했다.
결국.
“……끄르륵.”
한때 발할라 최고 권력자였던 벨피르 후작 또한, 그렇게 발할라 황제와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 * *
상황이 정리되었다.
따로 마련된 자리.
비에토 공작은 로만 드미트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발할라가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반란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심이었다.
겨우 20만의 병력.
발할라 황제를 무너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고, 그것을 알기에 비에토 공작을 따르는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이번 일을 벌였다.
그런데 결과는 기적적으로 반란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발할라의 백성들을 선동하고, 황실의 병력을 회군시키고, 벨피르 후작마저 협박해서 발할라 황제를 공격하게 만든 일련의 상황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완벽했다.
만약 비에토 공작이 발할라 황제였다고 할지라도, 로만 드미트리를 막아 낼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서로의 약속을 이행했을 뿐입니다. 비에토 공작님 또한 약속을 이행했으니, 감사 인사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비에토 공작과의 거래.
조건은 두 가지였다.
반란에 성공한다면.
앞으로 발할라와의 우호적인 관계와 발할라 축제에 있었던 일을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이었다.
전자는 앞으로 차차 지켜 나갈 약속이라면, 비에토 공작은 공개적으로 사과를 넘어서 로만 드미트리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발할라의 행동을 진심으로 부끄러워하며, 로만 드미트리를 향해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기어코.
로만 드미트리는 바라던 바를 모두 이루었다.
추가로 벨피르 후작까지 처리함으로써, 발할라에 남아 있는 모든 악연을 완벽하게 제거했다.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원래라면 이대로 물러났겠지만, 로만 드미트리의 생각이 바뀌었다.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제 권한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은인을 위해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비에토 공작은 자신의 재산이라도 털어 줄 것처럼, 진심이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그러나.
“남부의 무덤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부탁의 내용을 듣는 순간, 비에토 공작의 표정에 균열이 일었다.
* * *
순간.
말을 잃었다.
남부의 무덤.
그곳은 예민한 장소였다.
발할라 제국의 근원(根源)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부 밀림에 위치해 있는데, 발할라의 황제들은 명을 달리하면 모두 남부의 무덤에 묻혔다.
그곳에 들어가겠다는 의미는 명백했다.
발할라 황제들의 시체와 같이 묻어 두었던 전대의 기록들을 확인하겠다는 것이었다.
비에토 공작이 곤란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웬만해서는 들어드리고 싶지만, 남부의 무덤에 들어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로만 드미트리 님이 자격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외부인은 보통 출입이 불가능한 것이 일반적이나, 발할라의 축제에서 전사로서 자격을 증명하면서부터 로만 드미트리 님은 단순한 외부인의 신분을 넘어섰습니다.”
그 또한.
로만 드미트리의 의도를 알았다.
발할라 황제와 관련한 기록을 확인하기 위함이겠지만, 이건 자신이 허락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부의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험’에 통과해야만 합니다. 발할라의 전사들, 그리고 남부 밀림의 소수 민족. 그들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며, 일대 다수의 대결에서 무려 일주일의 시간을 버텨야만 남부의 무덤에 발을 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로만 드미트리 님의 무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남부 밀림의 소수 민족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다크 엘프들 또한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남부의 소수 민족.
다크 엘프.
소문으로만 들었던 존재들이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웃었다.
“그것은 제가 감당할 일입니다. 판을 만들어 주신다면, 그 이후의 상황에는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크흠.”
신음을 삼켰다.
이번 일.
로만 드미트리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냈지만, 발할라 황제와 관련한 비밀은 따로 파헤칠 필요성을 느꼈다.
벨피르 후작은 분명히 공식적인 문서로 14번째 왕자를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했다.
그가 어떻게 그 문서를 확인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무덤에 관련 자료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한참을 고민했다.
비에토 공작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민을 거듭하더니, 이윽고 결단을 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내일 사람들에게 전사의 시험을 선포하겠습니다.”
다음 날.
전사의 시험.
전설에서나 거론되던 의식을 진행한다는 소식에, 발할라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