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9화 (349/615)

349화 낭만을 잃은 나라 (7)

슈나이더가 넋을 잃었다.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는 알바레즈의 모습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아레스를 보았다.

“……마, 말도 안 돼.”

과거의 아레스.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불렀다.

비약적인 성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이른 나이에 5성의 경지에 오른 그는 슈나이더를 쓰러트리면서 발할라 최고, 아니 어쩌면 샐러맨더 대륙 제일의 재능일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았다.

슈나이더는 그때의 아레스를 기억했다.

아레스를 상대로 무릎을 꿇으며, 대륙 십이검의 일원인 자신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을 마주하고서 깊은 절망감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도 아레스의 발전 속도는 비약적이라는 표현이 동반되었다.

그랬던 아레스가 6성의 오라를 발현하는 모습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강렬한 충격을 선사했다.

“대체 드미트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발할라의 랭커들은 아레스의 선택을 비웃었건만, 아레스는 짧은 시간에 6성의 오라라는 명확한 성과를 이루고 돌아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바레즈를 몰아붙이는 검술은 확실히 이전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로만 드미트리의 사람들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는 사례를 보았을 때, 아레스는 드미트리로 이적함으로써 등에 날개를 단 것이 분명했다.

다른 랭커들도 슈나이더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충격에 빠진 이들이 알바레즈의 시체와 아레스를 번갈아 보는 그때, 고메스 백작이 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 또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레스가 알바레즈를 베어 버리는 마지막 장면에, 그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로만 드미트리. 설마 이런 식으로 반란 세력을 도와주려는 것인가.’

비에토 공작.

그의 반란은 무모했다.

단순한 전력의 차이만 해도 10배 이상이었고, 최상위 실력자들의 차이도 압도적으로 밀렸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도움을 받는다면 전쟁의 명분을 잃는 상황에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반란을 선포한단 말인가.

발할라의 수뇌부들은 이번 기회에 반대파 세력을 단번에 일망타진(一網打盡)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로만 드미트리는 북부 전선으로 병력을 보냈다.

황제의 병력을 일차적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았고, 이번에는 아레스를 보내 알바레즈를 처리했다.

병력과 실력자의 열세.

두 문제를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이었다.

로만 드미트리의 계획을 되새길수록, 고메스 백작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상식적으로 판단했다간 그 녀석의 계획대로 휘둘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결단이 필요하다.’

눈빛이 악독하게 변했다.

드미트리의 전략.

약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발할라가 전사의 전통을 지키리라는 믿음이었다.

“지금 당장 아레스를 포박하라!”

“……예?”

“내 말 못 들었어? 그렇게 얼빠진 얼굴로 보지 말고, 대역죄인 아레스를 포박하란 말이다!”

순간.

랭커들이 당황한 얼굴로 눈치를 보았다.

아무리 발할라가 썩어 빠졌다지만, 결정전의 승자를 포박하는 것은 너무나도 야비한 행동이었다.

아레스는 대역죄인이 아니다.

발할라의 국적을 버렸다고 해서 그를 처벌할 명분은 충분하지 않고, 그가 저지른 잘못이라고는 발할라 황제의 사람을 쓰러트렸다는 것밖에 없었다.

다들 망설였다.

하지만 고메스 백작은, 어떻게든 아레스를 처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빌어먹을 새끼들. 내가 확실하게 말해 두지. 만약 이 자리에서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 녀석들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서, 발할라 황제 폐하에게 보고해 합당한 처벌을 받아 낼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지였다.

보수파의 수장.

그도 낭만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발할라 황제의 광기를 마주하며, 그 또한 현실에 타협하고 말았다.

그때였다.

“주군의 말처럼, 너희는 완전히 썩어 빠졌구나.”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아레스가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

* * *

발할라로 떠나기 전.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발할라는 전사의 긍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네가 결정전에서 승리한다고 한들, 그들은 승자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너를 죽이려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때 네게 필요한 것은 발할라가 썩어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추악한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한때.

발할라의 전사들이 목숨을 걸고 경쟁하던 시절을 낭만(浪漫)의 시대라고 불렀다.

그때의 발할라는 대단했다.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에 전사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았고, 말보다는 검을 주고받음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의 발할라도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낭만의 시대라고 불리던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바로 패배를 받아들이는 전사들의 태도였다.

아무리 대단한 세력을 갖추었다고 한들.

패배하면 깔끔하게 현실을 인정했다.

고개를 숙이고 승자에게 모든 세력을 내어 주는 것이, 그때는 미련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았다.

당연했다.

승자 독식.

강자는 모든 것을 쟁취했다.

발할라의 사람들은, 발할라의 낭만을 존중했다.

아레스 또한.

발할라 태생이다.

그래서, 어쩌면 로만 드미트리의 말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고메스 백작. 나는 진심으로, 발할라가 승패를 순순하게 받아들이길 바랐다. 적어도 그랬다면 추악한 밑바닥을 들춰내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발할라에서 태어나 발할라의 전사로서 자랐고, 지금도 발할라의 피가 흐르고 있는 나로서는 발할라의 명예를 지켜 주고 싶었다.”

이죽거렸다.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오문의 첩자들이 사람들을 선동했고, 그들은 발할라 신전에서 결정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일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에는 알바레즈의 시체가 보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직 결정전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있었던 그들에게, 아레스의 승리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아레스가 승리하다니.”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레스가 랭킹 2위인 건가?”

“벌써 2위라니.”

사람들의 등장.

고메스 백작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단번에, 아레스의 의도를 알아챘다.

‘영악한 녀석.’

사람들이 보고 있다.

그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승자인 아레스를 포박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이미 민심이 흔들리는 상황.

아레스는 민심을 자극하는 판을 만들었다.

만약 자신을 해하려고 한다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겠지만,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명령의 대가로 반란 세력에 민심을 완전히 빼앗길 것이다.

고메스 백작은 딜레마에 빠졌다.

처음에는 명령을 이행하려던 몇몇 랭커들도,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웃겼다.

낭만을 잃은 채 방황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아레스는 목소리를 높였다.

“발할라에게도 낭만을 잃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때의 발할라를 되찾고자 한다.”

이번 명령.

아레스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위험천만한 것임을 알면서도, 피가 끓어오르는 상황에 목숨을 걸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발할라의 랭커들.

그리고 고메스 백작.

아레스가, 그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나는 발할라 랭킹 2위의 권한을 사용해, 랭킹 1위의 세자르에게 도전하겠다.”

* * *

발할라 황제는 변덕이 심했다.

어떨 때는 국정(國政)에 관심을 보이다가도.

또 어떨 때는 심각할 정도로, 마치 황제라는 지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바로 지금처럼.

“알아서 하거라.”

아레스의 도전.

엄청난 사건이었다.

세자르가 무릎을 꿇었다간 그 여파가 대단할 텐데도, 발할라 황제는 나른한 표정으로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로 인해 고메스 백작은 벨피르 후작과 따로 만났다.

지금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할라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두 귀족이 힘을 합쳐야 했다.

벨피르 후작이 물었다.

“고메스 백작. 네 생각에는 세자르와 아레스, 둘 중 누가 이길 것 같지?”

“……크흠.”

고민에 빠졌다.

세자르와 아레스.

세자르는 명실상부 발할라 제일검이었다.

알바레즈조차도 세자르를 상대로 번번이 패배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자였지만, 문제는 아레스가 보여 준 퍼포먼스였다.

5성의 오라만으로도 알바레즈를 쓰러트렸다.

나중에 6성의 오라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 어쩌면 아레스가 발할라 제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이긴다고 확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세자르가 승리하는 것이 당연하나, 아레스는 로만 드미트리를 따르며 완전히 다른 경지에 올라섰습니다. 벨피르 후작님도 그의 모습을 보았다면 제 말의 의미를 알았을 겁니다. 알바레즈를 압도하고 무너트리던 아레스의 힘은, 발할라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던 경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이었습니다.”

“참 재밌는 상황이야. 세자르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니.”

대륙 제일검, 카스트로.

그에 대적하는 유일한 존재.

최근 세자르의 대외적인 활동이 저조했다고는 하나, 세자르가 어떤 인물인지 이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은 모르지 않았다.

물론 사람들은 세자르를 만년 이인자라고도 표현했다.

카스트로를 절대 넘어설 수 없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발할라 제일검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벨피르 후작이 말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랭킹 2위의 권한을 막을 방법은 없다. 로만 드미트리의 의도는 명확하다. 제국의 병력을 북부로 분산시키고, 알바레즈와 세자르를 연달아 처리함으로써 황실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겠지.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발할라 황실의 힘을 믿어야만 한다.”

“이대로 두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상대는 발할라 황실을 유도했다.

더 분노해서 대응하도록, 반란군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벨피르 후작은 본질을 읽었다.

“로만 드미트리 또한 크로노스 제국이라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세자르를 믿어라. 북부의 병력을 믿어라. 발할라의 전사들은 강력하고, 전력을 다할 수 없는 로만 드미트리로서는 단시간에 승부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병력을 빠르게 보내, 헤르나드를 점령하라.”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아들였다.

벨피르 후작의 말처럼.

시간은 발할라의 편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때.

고메스 백작이 준비를 채 끝내기도 전에, 벨피르 후작과 그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달받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북부 전선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건.

생각보다 너무나도 빠른, 그리고 예상을 넘어서는 과감한 판단이었다.

* * *

발할라 북부.

로만 드미트리는 그곳을 바라보며, 크리스의 보고를 들었다.

“발할라의 최전방 방어 진지에 약 10만 명의 병력이 집결한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발할라 제국은, 북부 전선보다는 비에토 공작의 반란군을 토벌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군.”

내부의 적.

외부의 적.

간단한 문제였다.

발할라 제국으로서는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는 드미트리를 대비하는 것보다는, 일단 겨우 20만의 병력으로 반란을 일으킨 비에토 공작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발할라의 판단은 상식을 따라갔다.

아레스가 사람들을 동원했다고 세자르와의 대결을 승인한 것 또한, 상식을 벗어나지 못한 판단이었다.

‘크로노스와 발할라는 다르다. 아직 민심에 좌지우지되는 나라이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겠지.’

민심이 만약 폭동으로 이어진다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심각했다.

20만의 반란군에 백성들이 더해지고, 내외부에서 발할라 황실을 공격한다면 그때는 그들조차도 무사하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최대한 민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반란군이 전통을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인 것은, 그것이 발할라의 역린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일련의 상황.

로만 드미트리는 큰 그림을 그렸다.

‘아직은 발할라 황실에 유리한 상황이다. 단 일주일의 시간만 확보해도, 그들은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헤르나드를 점령해 버리겠지. 결국, 발할라 황제를 끌어내릴 권한은 반란군에 있다. 내가 아니라 반란군이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발할라 황실에 조금의 여유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북부에 병력을 더 보내지 않는 이유는 상식적인 판단에 의해서일 것이다.

드미트리와 헥토르 연합의 병력은 약 10만.

많지 않았다.

정보를 확인한 발할라 황실은,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보통 공성전이라는 것은 공격하는 진영에서 최소 2배 이상의 병력을 밀어 넣어야만 승산이 있다.

발할라 제국은 상당한 마법 방어와 10만의 병력을 배치했기에, 반란군을 쓸어 버릴 일주일의 시간은 문제없이 확보하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것이.

로만 드미트리가 생각하는 화룡점정(畫龍點睛)이었다.

드미트리는 항상 전쟁을 대비했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상단전과 관련한 마법적인 발전에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펠릭스.”

“예.”

“발할라의 성벽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얼마의 시간이 필요하지?”

무모한 질문이었다.

얼마의 시간은커녕, 상식적으로 성공 여부를 묻는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펠릭스는 확고한 어투로 말했다.

“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아레스가 세자르를 찾아간 그 시각.

그렇게.

로만 드미트리의 군대가, 북부의 국경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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