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2화 (322/615)

322화 파란만장한 승급식 (1)

그 무렵.

소문의 주인공인 로만 드미트리는, 포로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드미트리로 복귀했다.

그리고 다음 날.

크리스는 씁쓸한 얼굴로 상황을 보고했다.

“……드미트리에 도착한 직후, 곧바로 부상자들의 치료를 진행했습니다만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특히 캐롤의 경우에는 고문에 의한 극심한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치료사의 말에 의하면, 회복을 완벽하게 끝마칠지라도 불구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불구.

가슴 아픈 단어였다.

고가의 포션을 들이부어 치료에 최선을 다했지만, 고문 과정에서 신경이 다치는 바람에 오른발을 저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사실상 병사로서의 생명은 끝났다.

신체 건강한 사내들도 전장에서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데, 절름발이 신세로 병사 생활을 계속 이어 나갈 수는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알겠다. 캐롤과 같이 부상의 후유증을 호소하는 이들은, 비전투 전력으로 분류하고 제3부대로 소속을 옮길 것인지를 물어라. 만약 일반인으로서 살기를 바란다면. 명예 전역으로 처리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아 보상하라.”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크로노스와의 전쟁.

한바탕 죽음이 휩쓸고 간 이후로, 드미트리는 사상자들에 대한 명확한 체계를 갖추었다.

그중.

핵심은 제3부대였다.

제1부대는 드미트리의 병사들, 제2부대는 로만 드미트리의 사병들을 의미한다면, 제3부대는 전력 외의 병사들을 뜻했다.

전쟁을 치르다 보면 캐롤과 같은 케이스는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전장에서 팔다리를 잃은 이들은 앞으로 병사로서 살아갈 수 없기에, 로만 드미트리는 그들을 위한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그게 바로 제3부대였다.

그들은 전투적인 역할에 투입되지는 않지만, 드미트리 군대를 위한 비전투적인 일들을 담당했다.

역할은 다양했다.

배식과 물자 관리와 같은 간단한 역할부터 시작해서, 정보 관리와 통신 업무 등 신체적인 제한을 고려하고도 감당할 수 있는 역할들을 부여했다.

일종의 배려였다.

병사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불구가 되면 일자리가 끊기게 되기에, 로만 드미트리는 그 방책으로 제3부대를 편성했다.

서로 윈-윈이었다.

병사들은 앞으로 살아갈 방안을 찾는 것이고, 로만 드미트리는 비전투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군의 사기를 유지할 수 있다.

그야말로 미래를 보장하는 체계였다.

크리스는 집무실을 나서면서,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사람을 모실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들었다.

적어도.

캐롤을 다시 만나는 순간이, 그리 부끄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 * *

캐롤이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선택은 네 몫이다. 제3부대로 소속을 옮기길 바란다면, 며칠 안으로 그렇게 처리해 주겠다.”

크리스였다.

크리스의 말을 들으며, 캐롤은 드미트리로 복귀하던 날을 떠올렸다.

“여보!”

“아들아!”

그의 가족.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달려 나왔다.

캐롤은 넓은 가슴으로 그들을 한 번에 안았다.

고문의 통증에 그들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 느리고 힘들었지만, 가족과 재회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통증이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삶을 물었다.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에, 캐롤은 예상치도 못한 말을 들었다.

“당신의 장례를 치르고, 로만 도련님께서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을 진행해 주셨어요. 그리고 남편을 잃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 주시기도 했고요. 여보. 나는 이 순간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금전적으로 아무리 풍요로워도 당신의 빈자리는 채울 수 없었고, 그동안 받은 보상들을 모두 돌려주어도 좋으니 당신만 내 곁에 있으면 돼요.”

헨더슨과 같은 케이스는 많았다.

가장을 잃은 아내는 드미트리의 도움으로 삶을 살아갔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펑펑 울었다.

그때는 캐롤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드미트리의 포로들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감행한 것으로도 모자라, 가족을 보살펴 주었다는 사실은 감정을 북받쳐 오르게 했다.

감사했다.

살면서, 자신이 드미트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자랑스러웠다.

크리스를 바라보였다.

앞으로의 미래를 묻는 물음에, 캐롤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소속을 옮기겠습니다. 주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악의 무리가 드미트리를 위협한다면. 절뚝이는 다리로 검을 들고 싸울 수는 없을지라도, 드미트리의 영광을 위해서 몸에 마법 폭탄을 두르고 적진으로 뛰어들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하겠습니다! 무조건 하겠습니다! 절 받아 주십시오!”

열정적이었다.

너무나도 비장한 의지에, 오히려 크리스가 곤란할 정도였다.

피식, 웃었다.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하나씩.

드미트리는 제국으로서의 기반을, 감히 다른 나라들이 넘볼 수 없는 철옹성(鐵甕城)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 * *

때는 한 달 전.

카이로 왕실 아카데미 B클래스에서, A클래스로의 승급(昇級) 심사가 진행되었다.

펄럭.

깃발이 휘날렸다.

대련을 시작하라는 의미에, B클래스 최상위 실력자인 휴고가 상대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빨랐다.

오라의 폭발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상대의 공간을 차단하는 움직임은 지켜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문제는 상대의 실력이었다.

해당 클래스 최상위 실력자들은 각자 대련을 진행함으로써 승급의 여부를 결정하는데, 대진표를 확인한 사람들은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웠다.

휴고는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상대는 승급 유력 대상인 로렌 드미트리였다.

훅.

공격을 피했다.

가벼운 움직임으로 공격을 흘려보내더니, 순간 휴고의 허점을 파악했다.

빠악!

파악과 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뒤로 튕겨 나가는 휴고.

그가 당황한 얼굴로 빠르게 검을 회수했지만, 어느새 시선 아래로 치고 들어오는 로렌 드미트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대련이 진행되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는 공방이 이루어졌다.

로렌 드미트리는 숨을 돌릴 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맹렬하게 상대를 몰아붙였고, 대련 시작 30초 만에 휴고의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익.”

이를 악물었다.

질 수 없었다.

대련의 패배는 잔류를 의미하기에, 휴고는 상대를 쳐 내며 거리를 떨어트렸다.

그러고는.

‘일격에 끝낸다.’

콰릉.

콰르르르르르릉.

가문의 비기.

오라를 폭발시켰다.

달려드는 로렌 드미트리의 타이밍에 맞춰, 오라가 폭발하는 검으로 상대의 몸체를 베어 버렸다.

통했다!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세상이 비틀렸다.

휘청.

털썩.

휴고가 쓰러졌다.

그로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로렌 드미트리는 순식간에 상대의 사각을 파고들더니 손날로 목덜미를 가격했다.

빠르고 정확한 공격이었다.

오라를 폭발시키면서까지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이는 상대를, 로렌 드미트리는 전력을 끌어올리지 않고도 확실한 승리를 쟁취했다.

“……역시.”

“드미트리의 핏줄은 다르네.”

교수를 비롯한 학생들이 감탄했다.

로렌 드미트리.

과거에는 심약한 성격에 검사로서의 가능성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똑같은 인물인지 의심이 생길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래서 최근 교수들은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로드웰 드미트리에 이어, 카이로 왕실 아카데미 최고의 재능은 로렌 드미트리일 것이라고.

그렇게.

“로렌 드미트리 승리. 승급을 축하한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A클래스로의 승급을 확정 지었다.

* * *

승급 심사를 끝내고도.

추가로 훈련을 진행한 로렌 드미트리는, 땀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덮은 상태로 라커룸 의자에 앉았다.

털썩.

“로렌. 시험이 끝나고도 그 몰골이 되도록 훈련한 거야?!”

바로 옆에서.

경악하는 동기의 표정이 보였다.

말을 내뱉기가 힘들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동기가 질린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너도 대단하다, 대단해. 왜 그렇게 악착같이 훈련하는 거야? 이미 B클래스에는 네 적수가 존재하지 않고, A클래스의 선배들도 네 존재를 경계하고 있잖아. 내가 장담하는데. 너는 반년 안으로 S클래스로 승격할 거야. 승격의 체계가 있어서 지금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거지, 이미 아카데미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그런가.”

웃었다.

듣기 좋은 말이었지만, 로렌 드미트리는 기쁨에 취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형들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

그동안.

로렌 드미트리는 제법 성장했다.

앳된 얼굴은 많이 사라졌고, 남자다운 얼굴을 보이면서부터 카이로 왕실 아카데미 여학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성과의 관계가 아니었다.

드미트리가 한참 폭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로렌 드미트리는 엄청난 무력감에 시달렸다.

‘……형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나는 가문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로드웰 드미트리는 눈을 잃었고.

드미트리는 크로노스의 공격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전쟁으로 번지는 상황에 자신도 참전하겠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그의 희생을 바라지 않았다.

형들을 믿으라는 말.

결국.

아카데미에 남았다.

다행히도 전쟁은 승리로 끝났지만, 드미트리 가문의 남자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어려도 자신은 검사였다.

헨더슨과 같은 사람들이 드미트리를 위해 희생했다는 말을 들으면, 로렌 드미트리는 도저히 동급생들과 웃고 떠들 수 없었다.

세월의 풍파에.

로렌 드미트리는 변화를 맞이했다.

형들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고 정체할 생각은 없었다.

꽉.

‘로만 형이 말했어. 나도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달리 먹었다.

예전과는 달랐다.

드미트리.

대륙의 실세로 떠오르는 가문의 핏줄답게, 로렌 드미트리는 그에 어울리는 남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 * *

승급식 며칠 전.

사미르 백작이 먼저 카이로스에 도착했다.

로렌 드미트리의 선물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평소 카이로와 왕래가 잦았던 귀족이 이렇게 말했다.

“카이로 왕실 아카데미에는 명망 높은 교수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은 학생들과 두루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특히 ‘로렌 드미트리’와 매우 친하다고 합니다. 듣기로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교수님을 만나서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물어본다고 하던데, 저희끼리 이렇게 머리를 맞댈 게 아니라 그분의 의견을 여쭙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은 방법이었다.

문제는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

사미르 백작은 곧바로 워프 게이트에 몸을 실었다.

상대는 카이로에서 워낙 유명인사라 보통은 바로 만날 수 없지만, 프랑크 국왕이 직접 부탁한 덕분에 약속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카이로스에 도착하자마자 카이로 왕실 아카데미로 향했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로렌 드미트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선물에 대해서 알아내야만, 며칠 안으로 그걸 준비해서 승급식에서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교수실 앞.

조금 빠르게 도착했다.

아직 약속 시각이 되지 않았기에, 한편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으며 미리 준비한 선물을 확인했다.

‘마음에 드셔야 할 텐데.’

프랑크산 와인이었다.

상대가 유독 와인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기에, 특별히 고가의 와인을 준비했다.

시간은 넉넉했다.

사미르 백작은 시간을 보낼 겸, 교수가 집필했다고 알려진 베스트셀러(best seller)의 책을 읽었다.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사람이 지나가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칠흑 같은 공간에서, 사내들은 거친 숨소리를 참아 가며 주변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가 혹시라도 적에게 들릴까 봐, 그때의 나는 이를 악물며 긴장한 마음을 숨겼다.]

책의 내용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에, 카이로 왕국의 사람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호기심 삼아 이 책을 구매했었는데, 워낙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전개에 이와 관련한 시리즈들을 전부 구매했다.

그래서 이번 만남이 특별히 기대되었다.

로렌 드미트리가 아닐지라도, 사미르 백작은 개인적으로 교수의 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끼익.

“안으로 들어오셔도 됩니다.”

비서의 말에.

몸을 일으켰다.

안으로 들어서자, 자신이 그토록 만나길 바랐던 사내가 환한 얼굴로 사미르 백작을 반겨 주었다.

최근에 가장 핫한 명작.

그날 그곳에 있었다, 전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의 저자(著者).

동시에 카이로 왕실 아카데미의 전임교수이기도 한 사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헨리 앨버트라고 합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