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전쟁 포로 (4)
뮤네즈 백작으로서는 외통수였다.
상부는 외면했고.
로만 드미트리는 극단적으로 나왔다.
중간에 끼여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일단 살아남기 위해 포로들을 데려오라고 소리를 질러 댔다.
그 결과.
“……포로들을 전부 데려왔습니다.”
죽어 버린 맥히튼 남작을 대신해, 또 다른 동부의 귀족인 브라이튼 남작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데려온 포로들은 그래도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지만, 지금 데려온 포로들의 상태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로만 드미트리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는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분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포로들.
한때, 동료였던 사람들이다.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악다문 입술은, 명령만 내린다면 당장에라도 검을 뽑고 뛰쳐나갈 기세였다.
그들 중.
루카스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정보 길드가 파악한 명단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이 자리에 없는 포로들이 있습니다.”
“그래?”
순간.
분위기가 더욱 살벌하게 변했다.
아직도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에 병사들이 죽일 듯이 쳐다보자, 브라이튼 남작으로서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정말 전부 데려왔습니다. 명단이 어떤 기준으로 작성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 자리에 없는 포로라면 그전에 죽은 사람들일 겁니다. 절대 저희로 인해 죽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전쟁 포로들은 처음 붙잡힐 때부터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도 알았다.
금방 발각될 거짓말임을.
포로들이 고문을 받다가 죽는 모습을 이 자리에 있는 다른 포로들이 똑똑히 목격했지만, 눈앞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실제로 전쟁의 부상으로 죽은 이들이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이든, 고문으로 죽인 것을 밝히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로만 드미트리가 포로들을 살폈다.
다들 엉망이었다.
그동안의 일들로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은 로만 드미트리가 자신들을 구해 주러 왔다는 사실에 복잡한 표정을 보였다.
살았다는 사실에 기쁘고 안도감이 들면서도, 그간 죽어 나간 동료들의 생각에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지금의 감정은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시선이 멈추었다.
가장 최근에 고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내의 모습에, 다시 브라이튼 남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눈에는 고문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 자리에 없는 이들 중 상당수는, 고문으로 인해 죽었겠지.”
말문이 막혔다.
변명할 수 없었다.
브라이튼 남작이 눈알을 굴리는 사이, 로만 드미트리가 사내에게 다가갔다.
“캐롤. 그동안 네게 무슨 일이 있었지?”
* * *
처음 포로들을 풀어 준다고 말했을 때.
캐롤을 비롯한 사람들은, 눈앞의 현실을 의심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너희를 구하겠다고 국경을 넘었다. 기뻐해도 좋다. 너희는, 드미트리로 돌아갈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믿기지 않았다.
호송을 위한 마차에 오르면서도, 사람들은 이게 현실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말, 그 짧은 연락을 받고 우리를 구하러 왔다고?”
넋을 잃었다.
캐롤의 마법 통신.
겨우 3초 정도가 연결되었을 뿐이고, 불안정한 통신 상태로 인해서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포로들은 절망에 빠졌다.
캐롤이 목숨을 걸고 마지막 기회를 살렸는데,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는 생각에 이제는 끝났다고 확신했다.
앞으로 자신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혹독한 노동을 강요하는 채석장에서, 그렇게 이름 없이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런데.
드미트리가 구하러 왔단다.
자신들이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끄윽, 끄윽.”
마차 안.
울음이 번졌다.
몸이 멀쩡했을 때는 남자는 우는 게 아니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어 댔다.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캐롤의 마법 통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인데, 로만 드미트리는 만일의 가능성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전쟁 포로가 있다는 확신이 들자, 과감하게도 크로노스의 국경을 넘어 포로들을 요구했다.
그들도 알았다.
그것이 쉽지 않은 결단임을.
나라의 지도자들은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모든 일을 조심스럽게 다루며, 특히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보통 소수의 희생을 택했다.
생각해 보라.
어차피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인되지 않는 수백의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수많은 사람을 위험에 몰아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한 이유로, 일반 평민들은 하찮은 개미처럼 무력하게 짓밟히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 포로.
예민한 문제다.
그걸 알기에, 로만 드미트리는 처음부터 전쟁을 각오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였다.
국경을 넘었다.
검을 뽑았다.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자신의 사람들을 돌려받겠다는 강한 의지가, 포로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지금.
“캐롤. 그동안 네게 무슨 일이 있었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캐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렇게 구해 주러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데, 로만 드미트리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간 있었던 일을 물어봐 주었다.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면 특별히 지금을 위해 공부했다는 것이기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터트렸다.
저분이.
나의 주인이시다.
고문을 받는 와중에도 굳건했던 캐롤이, 지금만큼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그간의 일을 말했다.
“……고문을 받았습니다. 학대를 받았습니다. 저들은 저희를 짐승으로 취급하며 밤낮을 가라지 않고 채석장에서 일하게 했으며, 조금이라도 쉬는 모습을 보인다면 가혹하게 채찍질을 가했습니다. 주군. 저는 아직도 제 옆에서 돌에 깔려 죽어 가던 동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숨이 가빠 오는 소리를 내며 살려 달라고 말하던 그의 모습에, 악마 같은 크로노스 제국의 녀석들은 조롱하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었습니다. 주군이 저희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 주기를 바랐기에, 마법 통신기를 붙잡고 포로들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점점 격양되며, 그간의 고통을 토해 내듯 울면서 외쳤다.
“제 손톱을 뽑고, 발톱을 뽑고, 피부를 도려내는 그 와중에 무엇이 제일 고통스러웠는지 아십니까? 크로노스의 거짓말이 제 속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드미트리는 자국의 사람들을 버릴 나라가 아닌데, 비열한 크로노스가 진실을 숨기고 휴전 협상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하소연이었다.
정리되어 있는 말이 아니라.
그간의 일을 들어 달라는 의미였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달려가 고자질하듯, 캐롤에게 있어 로만 드미트리는 그런 존재로 보였다.
얼마나 토해 냈을까.
울음이 메말랐다.
너무 울어서, 이제는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끝까지 하소연을 들어 주었다.
둘을 제외하고는 정적이 내려앉은 공간에, 크로노스의 병사들은 감히 입을 조금도 뻥끗하지 못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마침내.
캐롤이 모든 감정을 토해 냈을 때, 로만 드미트리가 물었다.
“누가 널 그렇게 만들었지?”
그 말에.
캐롤이 고개를 돌려, 한 사내를 가리켰다.
그 사내는 바로.
제이슨이었다.
* * *
제이슨의 얼굴이 당황으로 얼룩졌다.
황급히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해명하려던 그는, 순간 끔찍하게 일어나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번뜩.
“크악!”
손사래를 치던 손이 그대로 날아갔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도망치려고 하자, 아킬레스건에서 피가 튀며 균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콰당!
바닥을 나뒹굴었다.
손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땅을 지탱할 수 없었고, 아킬레스건이 잘려 나갔기에 일어나려고 해도 마치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땅바닥에 수차례 얼굴을 처박았다.
몸이 덜덜 떨렸다.
캐롤을 고문할 때만 하더라도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던 자신이, 이런 모습으로 전락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로만 드미트리가.
제이슨을 향해 다가갔다.
브라이튼 남작은 둘 사이에서 걸음을 떨어트리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제발. 이제 그만하십시오. 포로들을 데려오라는 요구를 전부 들어드리지 않았습니까?!”
콱.
제이슨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땅바닥에 수차례 찍어 버리자,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제이슨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눈물과 콧물을 보였다.
“이 쓰레기가, 내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했다. 그렇다면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돌려줘야지.”
타협은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단검을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끔찍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살아 있는 채로 제이슨의 살점을 도려냈고, 발버둥을 치며 살려 달라고 말하는 모습에 얼굴을 찍어 눌렀다.
반항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로만 드미트리는 제이슨의 생명을 유지하면서 제일 고통스러운 고문 방법을 택했다.
분근착골(分筋錯骨)과 같은 방법은 이 녀석에게 사치였다.
눈에 보이는, 피가 튀는, 그런 고문 방법만이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무너트릴 수 있었다.
성벽 위.
크로노스 제국의 병사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이 울려 퍼지고.
피가 튀었다.
시선을 돌렸다.
차마, 산 사람을 고문하는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런데.
드미트리의 병사들은 아무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로만 드미트리의 잔인한 면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알았다.
저 잔인함이 자신들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기에 자신들이 따르는 사람의 모습을, 캐롤의 복수를 행해 주는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았다.
이윽고.
제이슨의 몸이 축 늘어졌다.
로만 드미트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피로 물든 머리를 넘겼다.
그리고는.
“뮤네즈 백작. 지금 당장 상부에 연락해.”
성벽 위를 올려다보며, 피로 물든 웃음을 보였다.
* * *
마법 통신이 연결되었다.
상황을 전달받은 멤피스 후작은, 통신기 너머로 딱딱한 음성을 내뱉었다.
[로만 드미트리. 예고도 없이 국경을 침범한 것으로도 모자라, 크로노스 제국의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는 것은 선을 상당히 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이라도 멈춘다면. 아랫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고, 이만 일을 마무리하도록 하지.]
일련의 과정들.
선을 넘었다.
만약 적당한 선에서 맥히튼 남작에게만 책임을 물었다면, 멤피스 후작은 이토록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과정이었다.
일방적으로 국경을 침범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맥히튼 남작과 제이슨을 죽였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뺨을 얻어맞아 퉁퉁 부은 맥히튼 남작과 고통에 몸부림치던 제이슨의 모습은, 크로노스 제국의 자존심을 툭툭 건드렸다.
언제까지 참을 것이냐고.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만 같았다.
분노로 들끓는 멤피스 후작의 목소리에,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멈추고 말고는 너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건. 너희가 내부에서 누구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렸든 간에, 내게는 그런 핑계들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부터 진심을 증명할 기회를 주지. 난 고문을 받다 죽어 간 내 사람들의 목숨을 대가로 최전방 방어 진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여 버릴 생각이다. 그때도 너희가 잘못을 인정하고 휴전 협정을 유지하기를 바란다면, 이곳을 불태워 버리는 것을 끝으로 그만 물러나도록 하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드미트리의 포로들을 모두 되찾고, 관련자들을 잔인하게 죽이기까지 했다.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는 것이냐!]
웃었다.
이죽거리며, 통신 너머에 있는 멤피스 후작에게 진심을 전달했다.
“그래야 알거든. 날 상대로든 뭐든 적당히 끝나지 않는다는 선례가 있어야, 다음부터는 같잖은 변명으로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지.”
[이런 미친 새…….]
툭.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적들을 모조리 죽여라.”
담담하게 내뱉는 명령에, 드미트리의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