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역사에 남을 첫걸음 (1)
알렉산드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초대장의 내용을 읽을수록, 그로서는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다.
[……크로노스의 황제, 알렉산드르가 개발한 ‘오라 분출법’은 근본부터 잘못되었으며, 오라의 체계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검술의 방향을 발표하고자 이번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부디 모두 참석하시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순간.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오라는 알렉산드르의 역린(逆鱗)이었다.
일개 무지렁이가 아니라 대단한 무림 고수였다면, 아니 적어도 무공이라는 것을 제대로 접하기만 했어도. 알렉산드르의 삶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미지의 힘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을 테고, 자신이 우러러보던 사람들처럼 검 한 자루로 샐러맨더 대륙을 평정해 버렸을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몰랐다.
알렉산드르가, 오라의 창시자가 왜 선구자의 길을 포기하고 마법사의 길을 택했는지.
오라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적인 위치를 위해서 오라를 발표했던 알렉산드르는, 단번에 새로운 권력으로 추앙받으며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쥐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처음에는 분명히 알렉산드르가 선구자로서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였지만, 샐러맨더 대륙에도 흔히 말하는 천재들이 있었다.
그들은 알렉산드르의 도움 없이도 빠르게 오라를 터득했고, 본인들이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오라의 새로운 갈래를 만들어 갔다.
한때 로만 드미트리도 인정했던 ‘오라의 강력한 폭발’을 활용한 방식은, 사실 세월이 흐르면서 알렉산드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연구하고 개발한 결과였다.
그때.
알렉산드르는 깨달았다.
무지렁이에 불과한 자신은, 머릿속 일말의 지식으로 겨우 지금의 명성을 얻어 낸 자신은.
언제고 추락하고 말 것이라고.
머릿속에서 일어난 균열은 그를 불안에 빠트렸고, 악마의 속삭임은 너무나도 손쉽게 머릿속을 장악했다.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는 선구자의 업적을 부정했다.
실패의 아픔을 되살리는 그의 행보에, 알렉산드르는 사나운 얼굴을 보였다.
“로만 드미트리. 네 눈에는 내 업적이 그리 하찮고 보잘것없다는 것이냐. 근본부터 잘못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이번 발표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알렉산드르는 황제의 자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오라를 공개했지만, 사실 로만 드미트리의 입장이라면 절대 무공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일무이(唯一無二)한 힘이다.
무공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고, 검술 발표회를 진행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로만 드미트리의 특별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부정하고 싶어도 오라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도태할 것이고, 지식의 보존만으로도 로만 드미트리는 너무나도 유리한 포지션을 선점했다.
대체 왜.
검술 발표회를 진행한단 말인가.
자신은 머리를 쥐어짜 내고 삼류 무인의 말을 보물처럼 떠받들었는데, 이런 대단한 기술을 발표회에서 언급하겠다는 발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도 크로노스 제국. 오라의 선구자를 배출한 제국까지 초대하면서 말이다.
자신은 무공을 알아보겠다고 비열하게 수십의 첩자를 보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발표회’로 반격하는 상황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끓었다.
열등감.
분노.
시기.
복잡했다.
확실한 것은, 로만 드미트리는 오만했다.
전생에 어떤 존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알렉산드르의 상식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오냐, 내가 눈을 부릅뜨고. 네 발표를 똑똑히 지켜봐 주마.’
그날.
역사적인 순간에, 알렉산드르는 관객 중 하나로서 존재할 것이다.
* * *
그 시각.
로만 드미트리의 행보에, 검술 학회가 발칵 뒤집혔다.
“이걸 보십시오! 로만 드미트리가 감히 알렉산드르 황제 폐하의 업적을 부정하고, 우리를 우롱하듯이 검술 발표회를 진행하겠다는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오라(aura)는 대륙의 근간이고, 사람들은 최초로 오라를 발명해낸 알렉산드르 황제 폐하를 국적과는 상관없이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현재 대륙 랭킹이라고 명명한 시스템은 이 오라를 뿌리로 두고 있는데, 대체 로만 드미트리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발표회를 진행한다는말입니까?!”
“맞습니다! 이건, 오라 검사들에 대한 도전입니다!”
사람들이 격하게 반발했다.
마법 학회가 있듯.
샐러맨더 대륙에는 검술 학회가 존재했다.
그들은 크로노스 제국에 본거지를 두고, 각 나라에 지부를 두었을 만큼 상당한 세력을 형성했다.
그들의 존재 목적은 검술의 발전이었다.
최초의 선구자인 알렉산드르의 뜻을 받들어, 검술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오라 검사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세력이 바로 검술 학회였다.
그들은 중립을 추구하는 세력이나.
이번 일과 같은 사태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학회장.
세르게이가 말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오라’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만약 오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와 같은 행보를 가만히 방관한다면, 언젠가는 검술 학회가 설 자리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일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크로노스와의 전쟁으로 로만 드미트리가 분명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표현하며, 그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기대감에 부응한다면. 우리가 쌓아 올린 탑은 그날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검술 발표회.
학회의 이권(利權)이 걸렸다.
알렉산드르라는 존재를 신처럼 숭상하는 그들로서는,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알렉산드르 황제 폐하의 가르침이 부정되는 순간. 크로노스 제국뿐만 아니라, 오라 검사의 세계 전체가 균열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각 지부에 연락해, 로만 드미트리가 얼마나 위험한 일을 벌이는지를 강조하십시오. 메신저(messenger)를 공격해, 그의 행보를 깎아내리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직접 참관해서 그의 발표에 조금이라도 오류가 존재한다면.”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날카로운 눈빛은, 명백한 적의를 보였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 로만 드미트리의 평판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짓밟아야 합니다.”
* * *
검술 학회의 의도대로였다.
그들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이단(異端), 로만 드미트리를 경계해야 합니다!”
“드미트리의 사람들이 말하길, 로만 드미트리는 분명히 몇 년 전에 ‘드미트리의 얼간이’라고 불릴 만큼 형편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더니, 크로노스와의 전쟁에서 한니발을 쓰러트릴 만큼의 고수로 발전했습니다. 이게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로만 드미트리가 발표한다는 새로운 미래가, 정말 비약적인 발전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리라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로만 드미트리는 알렉산드르 황제 폐하의 업적을 부정하고, 그를 집어삼키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습니다!”
크로노스.
발할라.
레드포드, 헥토르 등등.
드미트리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검술 학회 지부의 사람들이 로만 드미트리의 존재를 의심했다.
확실히 비상식적인 행보였다.
아레스와 같이 말도 안 되는 성장세를 보인 사람들도, 과거를 따라가다 보면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존재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였다든지, 아니면 그만한 배경을 갖추었다든지. 그런데 로만 드미트리는 달랐다.
드미트리는 검술보다는 철광업에 특화되어있는 영지였고, 그들이 갖춘 부와는 상관없이 로만 드미트리의 발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오라의 근간을 건드렸기에, 그와 관련한 사람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로만 드미트리는 위험한 힘을 건드린 게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그의 성장은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의 수하들은 또 어떻습니까? 크리스는 드미트리 같은 변방에서나 이름이 알려진 검사였고, 케빈은 빈민가 출신 소년에 불과했으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 전부가 특별한 배경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들 또한. 로만 드미트리와 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사람의 성장에는 재능이 반드시 동반해야 함을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히 인간의 한계를 거스르는 위험한 힘을 건드린 것이 분명합니다!”
목소리를 높였다.
부정하고.
깎아내렸다.
오라의 근본이 잘못되었다는 그 말 하나가, 이렇듯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
검술 학회의 의도대로.
사람들은 의구심을 보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이번 일을 제대로 해명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세상이 떠들썩할 그때.
드미트리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
드미트리의 사람들.
그들은 로만 드미트리를 믿었다.
로만 드미트리가 개발한 새로운 체계를 직접 경험하고 터득했기에,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발표회가 끝나면 뒤집히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문제는 발표회 자체에 있었다.
로만 드미트리만의 업적을, 대체 왜 제국을 포함한 타국을 초대해서 발표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콘라드 자작이 말했다.
“검술 발표회 소식에 대륙이 난리입니다. 굳이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주군의 기술은 이미 검증이 끝난 상태고, 저희는 결과로 증명하면 됩니다. 검술 발표회를 통해 오라의 재정립이 이루어진다면, 기술의 누출로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드미트리만의 기술을, 외부에 유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반발.
문득.
기억의 한순간이 떠올랐다.
무림을 정벌하고 마교의 무공을 일부 개방하겠다는 말에, 마교의 수뇌부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대체 왜. 마교의 무공을 개방한단 말입니까?”
“위험한 선택입니다. 마교의 무공을 터득한 적들이, 언제고 저희의 목에 칼을 들이댈지도 모릅니다.”
난리가 났다.
그들을 바라보며, 백중혁은 말했다.
“무엇이 두려우냐.”
사람들이 당황했다.
그들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백중혁을 향했다.
“내가 바라는 미래는 억제함으로써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겨우 천마신교의 ‘일부’를 공개했다고 그들이 우리를 넘어설 것 같으냐. 명심하라. 우리는 무림을 정벌했다. 공공의 적이 되었고, 우리를 낱낱이 분석하려는 이들로 인해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마교의 무공이 완전히 분해되어 버리겠지. 그렇기에 당당히 밝히는 것이다. 무림의 꼭대기에 오른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우리가 밝힌 정보들로, 사람들은 천마신교의 실체에 한발 다가설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약육강식을 따랐다.
천마신교의 힘이 약해진다면, 그때는 아무리 억제해도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
“천마신교의 역사에는 수많은 ‘천마’가 있었다. 그들은 나와 똑같은 삶을 살았고, 똑같은 무공을 터득했지만,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마교의 무공을 일부 공개하는 것은 완벽한 지배를 위한 과정이다. 마교의 무공에 대해 알아갈수록. 사람들은 우리를 경배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이룰 수 없는 업적이 아님을 알기에, 사람들은 감히 마교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
무지한 자들보다.
진실을 아는 자들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천마 백중혁이 강하다는 사실만 알뿐,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경지인지는 제대로 이해하지를 못했다.
마교의 무공을 개방하는 것은 이해를 돕는 과정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마공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들은 천마 백중혁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공포는.
상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상상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에 따라 갈래를 뻗어 나갔다.
백중혁은 공포에 불을 붙였다.
마교의 무공을 익히고 공부해서, 마교를 무너트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기를 바랐다.
“우리가 무림을 정벌한 것은. 마교의 무공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강하기 때문임을 명심하라. 무공의 개방은, 우리의 안일함을 붙잡아 주는 좋은 근간이 되어 줄 것이다.”
현실로 돌아왔다.
눈앞에.
우려를 표하는 귀족들이 보였다.
로만 드미트리가 말했다.
“이번 검술 발표회를 통해 밝히려는 것은 기초적인 토대일 뿐이다. 나는 오라를 재정립하고, 알렉산드르가 쌓아 올린 명성을 강탈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드미트리를 카이로에서 비롯된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는 순간 드미트리는 제국으로 도약할 발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너희에게 묻겠다. 겨우 기본적인 것을 알아낸 몇 년 전의 너희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간 현재의 너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번 발표회를 통해서 얻는 것은 드미트리의 위태로운 미래가 아니라, 알렉산드르의 업적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초석일 뿐이다.”
기초적인 토대.
무지한 자들에게 진실을 보였다.
드미트리를 우러러보도록, 드미트리가 새로운 위치로 도약하도록.
“세상의 흐름은 인간의 힘으로 억제할 수 없다. 언제고 오라의 체계는 뒤바뀔 것이고, 나는 그 시기를 앞당겨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드미트리의 이름을 기록할 것이다. 후발주자들은 우리를 앞지르지 못한다. 그들은 일부를 알 뿐이고, 진짜는 드미트리만의 전유물이다.”
오만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적들이 첩자를 통해 정보를 빼돌린다고 할지라도, 자신을 넘어설 수 없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진정한 군림은.
알고도 올려다보지 못하는 것을 뜻했다.
“나는 권력에 의한 권력을 바라지 않는다.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드러냄으로써, 우리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판도를 만들어 갈 것이다.”
늘 그랬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는 드러내길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드러내고.
적들을 내려다보며 찍어눌렀다.
파격적인 발언에.
범인(凡人)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상에.
드미트리의 귀족들은 넋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