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2화 (292/615)

292화 드미트리로 향하는 사람들 (5)

보름 전.

프레드 이후로는 더는 놀랄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조나단 기사단장은, 한 이름을 발견하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아레스]

“……아레스, 그 아레스라고?”

당혹스러웠다.

프레드, 로건과 같은 인물들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지원자들이건만, 아레스는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아레스는 흔히 말하는 천재였다.

발할라에서 태어나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성장세를 보이더니,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최연소의 나이로 발할라 랭킹에 등극했다.

만약 그 정도였다면.

사람들은 그를 대륙 제일의 검술 천재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레스는 항상 본인보다 높은 경지의 오라 검사들을 쓰러트리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일반적인 범주와는 다르게 ‘오라의 위력’으로 승부를 보지 않았다.

아름답게 상대를 밀어붙이는 체계적인 검술.

그가 스스로 만들어 냈다는 검술은, 오라의 차이를 극복하고 상대를 무너트렸다.

100위부터 차례로.

아레스는 자신의 순위를 높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벌어졌다.

대륙 랭킹 12위.

대륙 십이검의 일원인 슈나이더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었고, 아레스는 치열한 승부 끝에 슈나이더를 쓰러트리며 12위의 자리를 쟁취해 냈다.

그날의 일은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오라는 단계적으로 파괴력의 차이가 급격히 상승하기에, 6성의 오라를 사용하는 존재들은 그와 동급인 오라가 아니고서는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른 나이에 5성의 경지에 오른 아레스는, 검술만으로 파괴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검술의 천재.

사람들은 찬사를 보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아레스가 언제고 1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레스는 발할라 출신이나, 어느 한 곳에 매여 있지 않은 방랑 검사다. 그래서 발할라 황제와 크로노스 황제가 그를 차지하기 위해서 십수 년을 공을 들였지만,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지. 그런데 그런 아레스가 로만 도련님의 사병 모집에 지원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아레스의 지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밸런스 파괴가 분명했다.

* * *

아레스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

크리스는 올 것이 왔음을 알았다.

조나단 기사단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아레스 정도 되는 인물은 테스트를 생략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크리스가 그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로만 드미트리는 사병을 모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조건에 과하게 넘어서는 존재들이 지원한다고 한들, 로만 드미트리를 맹목적으로 따를 사병의 자질은 단순히 무력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게 크리스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차례가 왔기에 호명했고, 아레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크리스’를 상대로 지목했다.

그리고 지금.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크리스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디에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디에고를 상대로는 압도적인 파괴력에 일방적으로 밀리는 느낌을 받았다면, 아레스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오라를 사용하는데도 체감되는 압박감은 디에고 때보다 더했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검을 들어 공격을 막으면 취약한 부분에 아레스의 공격이 작렬했고, 아레스는 크리스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스텝을 밟아 숨을 돌릴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카앙!

카카카카캉!

불꽃이 튀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본능이 경고하는 대로 아레스의 파상공세를 막았고, 묵직한 오라는 방어를 뚫고 내부를 뒤흔들었다.

카앙-

검을 튕겨 냈다.

크리스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일섬.’

번뜩.

쾌속의 영역.

디에고와 프레드를 단숨에 쓰러트렸던 공격을 시도하는 순간, 아레스는 은발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크리스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크리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대부분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던 공격이었는데, 아레스의 눈동자는 분명히 ‘검의 이동 경로’를 파악한 것 같았다.

그리고는.

훅.

콰득.

공간을 파고들고, 막아서는 크리스의 가슴팍을 베어 버렸다.

갑옷에 금이 생겨났다.

조금 더 깊었다면 치명적이었을 공격에, 크리스는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상대는 검술 천재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그리고 단순히 강하다는 사실을 떠나, 크리스가 지금껏 상대했던 존재들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검사였다.

서부 전선.

크리스는 한니발을 만났다.

대륙 랭킹 3위의 그는 압도적인 오라를 사용했고, 크리스는 그와의 파괴력 대결에서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아레스는 한니발보다도 더 위협적이었다.

아레스가 한니발보다 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검술로 승부를 보는 아레스의 방식이 크리스에게는 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검술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면.

오라의 파괴력이 떨어지는 크리스로서는, 일방적으로 밀리는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번뜩.

콰르르르르르르릉.

반격을 시도했다.

빠른 공격으로 아레스와의 거리를 떨어트리더니, 크리스는 몇 걸음 떨어진 채로 숨을 골랐다.

“후욱, 후욱.”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아레스와 자신.

테스트의 영역을 떠나서, 이번 승부는 진심으로 이겨 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의도가 어긋나는 순간, 나는 패배할 것이다.’

아레스가 다가왔다.

검을 늘어트린 그가, 웃음을 보이며 아직 여유가 있음을 드러냈다.

“드미트리의 섬광은 허명이 아니었군요. 부디, 끝까지 저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때.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르릉.

바로 옆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케빈과 로건.

둘의 승부가, 크리스보다 먼저 종지부를 찍었다.

* * *

강철의 로건.

강철(鋼鐵)의 의미는, 우직함을 뜻했다.

카앙!

케빈의 공격을 쳐 냈다.

케빈은 예상했다는 듯이 스텝을 밟으며 사이드 공간을 파고들었고, 로건의 사각을 노리는 공격을 시도했다.

보통은 뒤로 물러나면서 수비할 법한 상황이었다.

케빈의 움직임은 그만큼 위협적이었으나, 로건은 검을 크게 치켜들어 올리더니 오히려 한 발 나아가며 그대로 내리찍었다.

콰르르르르르릉.

폭발하는 오라가.

마치 번개처럼 떨어져 내렸다.

오라로 일렁이는 그의 육체는 케빈의 공격을 받아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그는 살을 내주는 대신에 케빈의 뼈를 작살 내 버릴 생각이었다.

케빈으로서는 공격을 회수하고 몸을 틀 수밖에 없었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에서, 먼저 목숨을 잃는 쪽은 오라가 약한 케빈일 수밖에 없었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경기장 바닥이 부서졌다.

로건의 시선이 곧바로 케빈을 따라잡았다.

폭발하는 오라가 땅바닥을 찌그러트리며, 로건이 케빈을 잡아먹을 듯이 순식간에 따라붙었다.

오라의 활용도가 수준급이었다.

아레스가 검술을 위주로 크리스를 압박했다면, 로건은 몸을 보호하는 오라나 폭발력으로 스피드를 상승시키는 등, 상대를 밀어붙이는 기술의 완성도가 대단했다.

나약함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겨우 테스트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자리에서, 케빈을 쓰러트림으로써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했다.

카앙!

카카카카캉!

명백한 우위.

로건이 승기를 잡았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입을 틀어막으며, 어쩌면 크리스와 케빈이라는 양대산맥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히죽.

케빈이 웃었다.

상대가 강할수록.

점점 궁지에 몰려가는 상황에, 케빈은 즐거운 감정을 숨길 수 없다는 듯이 자꾸만 웃음을 보였다.

잠식의 단계에 들어선 이후로 그는 극단적인 성향을 보였다.

감정에 더욱 솔직해졌고, 지금처럼 강자를 만날 때면 피가 미친 듯이 끓었다. 로건은 강했다.

강철의 로건은 우직함으로 상대를 무너트리는 검사였고, 상위권의 랭커들이 그와의 대결을 기피했기에 19위에 머물렀다.

실제로는 10위권 이상의 강자.

클라이브 백작으로서는 발작하며 그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케빈을 밀어붙이는 로건이, 케빈을 압도하는 로건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증명했다.

그렇기에.

쓰러트릴 가치가 있었다.

강자와의 승부는, 케빈의 존재 의미를 살아나게 했다.

‘나는 주군이 신뢰하는 제일(第一)의 존재여야만 한다. 크리스도, 페르난도도 아닌 바로 내가. 내가 주군을 대표하는 검이다.’

고로.

로건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빛나게 할, 너무나도 좋은 상대였다.

* * *

케빈의 웃음.

로건을 자극했다.

‘웃어?’

자신을 상대로.

그 누구도 여유를 부릴 수 없다.

설령 로만 드미트리일지라도 자존심이 상했을 일인데, 케빈과 같은 존재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케빈이 크로노스 제국과의 대전사 전투에서 블랑코를 쓰러트렸다는 소식은 들었다.

드미트리의 악귀는 이제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는 유명 인사가 되었고, 로건도 그의 실력을 인정했다.

다만, 자신이 더 강할 뿐이었다.

로건은 구석에 몰린 케빈의 모습에, 오라를 폭발시키며 밀고 나갔다.

콰릉.

콰르르르르르르릉.

오라가 범람했다.

그동안의 공격은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일격을 위해서 공간을 하나씩 제한했던 것이었다.

오라를 퍼트려 한 번에 들이닥치는 것은 오라 웨이브(aura wave)라고 명명한 로건의 비기.

테스트라는 상황을 떠나서, 확고한 승리를 위해서 로건은 승부수를 걸었다.

그 순간.

번뜩.

오라가 갈라졌다.

범람하는 오라가 찢겨 나가며, 그 뒤로 악귀의 얼굴을 한 케빈이 보였다.

‘천마검법 전반부 일초식.’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폭발이 일었다.

오라 웨이브와 천마검법의 충돌이 둘의 존재를 휩쓸었고, 로건은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이 케빈의 위치를 찾았다.

그런데 케빈도 마찬가지였다.

케빈은 로건을 향해 달려들었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오라의 범람에 휩쓸리는 것을 알면서도 물러나려는 기색이 없었다.

칼끝 위에.

둘이 존재했다.

케빈은 오라를 일으키며, 로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디 이것도 막아 봐.”

콰앙!

로건이 흔들렸다.

땅을 다리에 박으며, 케빈의 공격을 쳐 냈다.

“이것도!”

튕겨 나간 검의 반발력을 그대로 살려, 케빈이 후속 공격을 시도했다. 로건으로서도 반격의 기회였다.

하지만 케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본능적으로 방어를 택했다.

동귀어진의 수로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보다, 케빈의 공격이 자신보다 빠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예상대로.

콰앙!

공격이 작렬했다.

5성의 검사를 상대로, 케빈은 광기 어린 모습을 보였다.

“이것도!”

콰앙!

“이것도!”

콰앙!

“이것도 막아 보라고!”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그것은 광인(狂人)의 모습이었다.

오라가 휘몰아치는 칼끝 위에서, 강철의 로건을 상대로도 케빈은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전력을 다해 반격하면. 똑같이 천마검법을 활용해 로건을 찍어눌렀다.

오라의 근본적인 위력은 로건보다 떨어지기에 속이 뒤집히고 입에서는 핏물이 새어 나왔지만, 케빈은 오히려 피로 물든 이빨을 환히 드러냈다.

광기는 광마의 상징이었다. 로건이 약하다기보다는, 승리에 대한 강한 집착이 이변을 만들었다.

탁.

자신도 모르게.

로건이 한 발 물러났다.

케빈은 마치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력을 끌어올렸다.

‘천마검법 전반부 삼초식.’

순간.

로건도 매서운 눈빛을 보였다.

케빈의 강력한 일격을 마주하고도, 그는 강철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오히려 공격하는 것을 택했다.

콰릉.

콰르르르르르르릉.

오라 웨이브.

검을 휘둘렀다.

이건 테스트가 아니라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고, 두 검사는 서로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릉.

격돌했다.

격렬한 충돌이 일었고,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며 주변의 모습을 뒤덮었다.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는 숨을 죽였다.

케빈과 로건의 승부는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아레스는 크리스를 압도했다면, 케빈과 로건은 누가 승리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서로 승리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먼지가 가라앉았다.

이윽고.

케빈의 모습이 보였다.

주르르륵.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오라의 폭풍에 노출된 대가로 그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었지만, 처참한 몰골과는 달리 무릎을 꿇은 사람은 로건이었다.

케빈의 공격이 한발 빨랐다.

오라를 찢어발기며 치고 들어오는 공격에, 강철이라고 불리는 우직함으로도 끝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였다. 발할라를 떠날 때만 해도 상상치도 못했던 상황에, 로건은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졌습니다.”

인정했다.

케빈은, 승리할 자격이 있었다.

사람들은 환호하지 않았다.

압도되어,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케빈의 시선이 크리스의 무대를 향했다.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닦아 내며, 대결을 치르고 있는 크리스를 향해 소리쳤다.

“크리스 님!”

사람들은 말했다.

크리스는.

드미트리의 이인자라고.

케빈은 그것이 항상 못마땅했고, 들끓는 열등감은 항상 그보다 자신이 로만 드미트리가 신뢰하는 제일의 존재이기를 바랐다.

크리스를 싫어하고 증오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크리스는 처음부터 케빈을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케빈은 처음부터 그를 넘어야 할 산으로 보았다.

크리스가 로만 드미트리를 넘으려 하듯.

케빈이 그러했다.

“저는 드미트리가 패배하는 꼴은 지켜볼 수 없습니다. 만약 크리스 님이 저 녀석을 상대로 패배한다면. 다음은 제 차례입니다.”

히죽, 웃었다.

열등감.

그리고 맹목적인 충성심.

그것이, 케빈이라는 인간의 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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